|
♣2020년 8월 23일 성령강림 후 열 세 번째
성경 ; 출14:19-31, 롬14:1-12, 마18:21-35
제목 ;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인간의 문제점 -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여 남의 허물을 잘 용서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①(원인)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ㄱ.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ㄴ.타인을 정죄하거나 업신여길 권한이 우리 인간에게는 없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②(과정)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데에는 무척이나 인색합니다.
ㄱ.자기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하고 있습니다.
ㄴ.믿음이 연약한 자를 넘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③(결과)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가 무효가 될 것입니다.
ㄱ.우리는 다함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ㄴ.형제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할 경우, 하나님도 그 용서를 취소하실
것입니다.
2.하나님의 본성과 활동 (하나님의 치료) -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새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①(본질)하나님은 자비와 긍휼하심이 많습니다.
ㄱ.우리를 언제나 사랑으로 대해 주십니다.
ㄴ.연약한 자를 보시면 불쌍히 여기십니다.
②(활동)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ㄱ.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지난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ㄴ.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ㄷ.우리 편이 되셔서 모든 악한 적들을 물리쳐 주십니다.
③(결과)주를 섬겨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ㄱ.우리를 다 받아들여서 당신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ㄴ.예수를 다시 살리셔서, 언제나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3.인간의 응답 (건강한 삶) - 서로가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야 합
니다.
①(준비)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
다.
ㄱ.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살
아야 합니다.
ㄴ.우리는 타인의 죄를 심판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ㄷ.하나님의 심판을 진심으로 두려워해야 합니다.
②(실천)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용서하고 덮어주어야 합니다.
ㄱ.형제가 잘못을 했더라도, 그 잘못을 크게 나무랄 것이 아니라 따뜻
이 대해주어야 합니다.
ㄴ.우리는 사나죽으나 주님의 것임을 잊지 말고 그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③(결과)장차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ㄱ.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며 산 자는 주님의 용서가 유효할 것입니다.
ㄴ.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지옥에 갇히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4.파견사
목사 : 죄가 많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모든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하나님은 크신 사랑과 긍휼로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셨
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섬기면서 살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인 이웃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사랑함
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과 사랑의 빚을 갚아나가야
합니다.
회중 : 아멘.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면, 우리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죄의 용서를 받고 새
생명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건만, 우리는 그 은혜에 보답하
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형제의 잘못을 탓하기보다, 서
로 용서하고 좋은 관계를 가짐으로써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5.예배에의 부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마음을 다하여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송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분의 모든 은혜를 잊지 마라.
주는 우리의 모든 죄들을 용서하시며,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쳐주십니다.
무덤에서 우리 생명을 구원하시고 사랑과 자비를 베푸십니다. 여호와는, 좋
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시켜주시니, 우리가 독수리처럼 새롭고 힘이
넘칩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 주 여호와께 감사
찬송을 돌립니다.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고, 우리가 언제나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고 소망 중에서 살게 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 구
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 진
심어린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하고자 하오니, 우리가 정성껏 드리
는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예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6.공동의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생명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주시
고, 주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아감으로써 보람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게
하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주님
을 위해서 살겠다는 각오를 했사오나, 아직은 세상에 더 많은 관심과 정성
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주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늘 잊지 않고,
그 뜻에 따라 바르게 살아감으로써,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은혜에 보답하
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사는 것이 교회와 사회에 큰 유익이 될
수 있게 하소서.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을 허락해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성시교독
목사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마음을 다하여 그분의 거룩한 이
름을 찬송하여라.
회중 : 주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쳐주십니다.
목사 : 우리 생명을 구원하시고 사랑과 자비를 베푸십니다.
회중 : 주는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니, 우리가 독수리
처럼 새롭고 힘이 넘칩니다.
목사 :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화를 참으시고, 사랑이 넘치는 분
이십니다.
회중 : 그분은 우리의 죄 값을 그대로 갚지 않으시며, 우리가 저지른 잘못
에 따라 처벌하지도 않으십니다.
다같이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그분의 사랑은 땅에서 하
늘이 높음같이 높고 위대합니다.
8.예화
1)지우개의 발명
존 브로크만이 쓴 ‘지난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이란 책이 있
다. 인쇄술, 전기, 비행기, 컴퓨터, 인터넷 등을 포함한 인류의 121가지 위
대한 발명품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외인 것은, 그 대단한 발
명품 중에 지우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우개가 발명되면서 비로
소 인류의 기록문화가 극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로 지우개가 아니었다면 지구상 여러 위대한 예술가의 데생이나 스케치,
또는 시인과 음악가의 작품들은 모두 현재와 같은 완성도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위대한 작가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실수투성이인
인생을 예수의 용서라는 지우개로 완성도 높게 만드신다. 그 지우개가 없
었다면 우리의 인생은 늘 고칠 수 없는 실수로 얼룩졌을 것이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용서란 지우개로 우리는
걸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관포지교
옛날, 중국 제 나라에 관중과 포숙이라는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가 있었
습니다. 그들이 함께 장사를 해서, 관중이 이익을 더 많이 가지면, 포숙은
"그가 집이 가난한 때문이야"하고 이해하였고, 또 관중이 사업에 실패하고,
과거에도 세 번이나 낙방을 했을 때에도 포숙은, "관중이 때를 잘 못 만난
탓이야. 그의 재능이 아까다!"하고 아쉬워했습니다. 관중이 전쟁에 나가 세
번이나 도망쳤을 때에도, "그에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 때문이야"하고 포
숙은 끝까지 관중의 인품과 처지를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훗날, 관중은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오직 포숙뿐이다!"하였습
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우정, 뗄 수 없이 가까운 사이를 일컬어, '관포지교'
라 하지 않던가! 오래 지킬수록 빛나는 것은 우정입니다!
3)성 프랜시스의 사랑
앗시시의 ‘성 프랜시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와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많아서
듣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가 수그러지게 한다.
프랜시스와 그의 제자들은 산속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소년이
혼자 남아 집을 지키는데, 악명 높은 산적 셋이 찾아왔다. 그들의 방문 목
적에 대해서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도적은 도적질하고자 하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 소년은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용기를 다하여 큰소리로 호통을 쳤
다. “남들은 땀 흘려 일하는데, 너희들은 남의 것을 훔쳐 먹으려는 것이
냐!” 도적들은 마음이 찔렸는지 그대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돌아오시자, 이 소년은 자랑스러운 듯이 있었던 일을 고했는
데, 프랜시스가 섭섭한 투로 말했다. “그건 네가 실수했다. 지금 곧 도적
들에게 가서 이 빵과 포도즙을 주고 오너라.”
소년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들을 바로 쫓아가서 빵과 포도즙이 든 선
물을 전달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먹지 않고 소년을 따라 수도원으로 왔으
며, 회개하고 프랜시스의 제자들이 되었다.
4)황선홍 선수의 너그러움
이번 월드컵 때,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한·미전에서
이을용 선수가 페널티킥을 실축했을 때였다. 언론의 표현대로 지옥에 떨어
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결과는 후반 안정환의 헤딩골로 비기는 경기가
되었다. 경기 후에, 황선홍 선수에게 기자가 질문하였다. 이을용 선수의 실
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때, 황선홍 선수는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저라도 실수했을 것입니다”고 답변하였다.
황선홍 선수의 답변이 두고두고 감동을 줬다. 작은 실수에 대해 날카
로운 혀로 비난하고 비판하는 우리들과 비교해보면, 서로를 이해해주고 격
려해주는 선수들의 단합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이런 팀워크가 4강 신화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터키와의 마지막
3·4위전에서 이을용 선수는 그림 같은 프리킥을 날려 1점을 추가해줬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해주고 격려해줄 때, 언젠가는 실수를
능가하는 축복을 안겨줄 수 있다.
5)장발장의 관대함
빅토르 위고의 명작 ‘레미제라블’에는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합니
다. 한 사람은 선하게 살려고 애쓰는 장발장, 또 한 사람은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평생을 괴롭히는 형사 ‘자베르’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뒤, 장발장을 추종하던 청년대원들은 눈엣가
시 같던 형사 ‘자베르’를 잡아와 총살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발
장은 그를 풀어줍니다. 충격을 받은 ‘자베르’는 장발장을 향해 외칩니다.
“당신이야말로 나를 가장 죽이고 싶을 텐데 왜 나를 살려줍니까?”
그러자, 장발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세상에는 넓은 것이 많이
있소. 바다가 땅보다 더 넓고, 하늘은 그보다 더 넓소. 그러나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바로 용서라는 관대한 마음이오.”
장발장의 말에 차갑고 냉혹한 ‘자베르’ 형사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
이 흘러내립니다. 얼어붙은 골짜기는 봄바람만이 녹일 수 있습니다. 모질어
진 가슴은 관대한 마음만이 녹여줄 수 있습니다.
9.설교예문
♣성령강림 후 열 세 번째
성경 ; 출14:19-31, 롬14:1-12, 마18:21-35
제목 ; 우리에게는 형제를 비판할 권리가 없다
여러분은 이미 제 아내가 쓴 ‘보름달’이라는 책자를 받아서 다 읽어
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책 속에는 ‘참외’라는 제목의 글도 포함되
어 있습니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이곳저곳에서 저희가 살던 영춘으로 휴가를 왔습니
다. 그중에서도 처제네 가정은 매해 여름철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휴가
를 오곤 했습니다. 언제부턴가는, 처제네 가정만 오는 것이 아니라, 처제
주변의 사람들도 함께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에는, 처제 친구의 친구들이 처제와
는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휴가를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강변에다가 텐트를 치고 지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름날의 날씨
가 얼마나 변화무쌍합니까? 갑자기 폭우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통
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우리 집으로 피난을 와야만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는, 갑자기 들이닥친 열 명이 넘는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정신없이 지
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손님을 치르는 일에는 워낙 이력이 난 사람이라,
아내는 별 탈 없이 손님들을 잘 접대하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비바람이 그치고 날씨가 맑게 개였습니다. 그들은 염치
없이 하루를 더 묵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제 아내가 차려주
는 음식 맛에 홀려서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
들의 그런 결정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 손님들 중에는, 꼬마 손님들도 여러 명 되었습니다. 그 중의 한 아이
가 자기 아빠에게 참외를 따먹고 싶다가 졸랐습니다. 떼쓰는 아이에게 시
달리던 그 아빠는 ‘참외를 좀 따 먹으면 안 되겠느냐?’고 아내에게 물어
보자, 아내는 마지못해 승낙을 했던 가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심방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수
돗가에는 큰 소쿠리가 놓여 있었고, 그 소쿠리 안에는 참외가 가득 차 있
었습니다. 크기는 웬만해도 아직 덜 익은 참외를 비롯해서, 살구만한 새끼
참외까지 모조리 따서 물로 깨끗이 씻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 아빠의 표정은 더욱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그 얼굴 표정이
잘못했다는 얼굴이 아니라, 아주 큰일을 해낸 것처럼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로서는 엄청 속상한 일인데, 당사자는 아주 잘했다
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아내는 정말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나는 잘한다고 한 일인
데,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결코 칭찬해줄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일쑤 행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에는 절대로 수긍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아
주 잘못된 일인데도, 그 당사자는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
도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행한 일이나 그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비판을 하거나 시시비비 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공
식적으로 토론을 하게 되거나 비판이 꼭 필요할 때에는, 내가 생각하는 바
를 충분히 피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한 비판을 삼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비판하거나 참견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에는 갈등과 다툼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 갈등과 다툼이 심
화되는 바람에, 서로가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믿음이 약한 사람의 경우, 그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1)’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가 비록 실수를 하고 잘못을 했더라도 따뜻하게 대해야 한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쉽사리 용납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는 ‘다
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그 대신,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경험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우리의 이런 잘못된 관행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비
유를 들어 말씀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주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형제가 저에
게 죄를 지었을 경우, 제가 몇 번이나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만 용서하면 되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일
곱 번뿐만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주어야 한다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비유를 들어서 ‘용서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왕이 그의 신하들과 함께 국가에서 이미 정해놓은 날짜에 국가재
정에 관한 정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하는 것에다가 비유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많은 빚을 얻
어 쓴 다음, 그 빚을 갚지 않은 신하가 있어서, 왕은 그를 불러들여서 따지
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신하에게는 빚을 갚을만한 돈이 없다는 것을, 왕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하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했
습니다. 그래도 안 될 경우에는, 그 아내와 자식들까지라도 팔아서 빚을 갚
아야 한다고 엄히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하는 왕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제발 조금만 참
아주십시오. 곧 다 갚겠습니다.”하고 간청했습니다. 왕은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하의 빚을 다 탕감해주기로 했습니다. 말
하자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신하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의 처지가 도무지 빚을 갚을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그는 엄청 걱정하면서 왕 앞에 나갔던 참인데,
빚을 아예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던
것입니다.
그가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마침
그에게 빚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갚아야 했던 국가채무에 비
하면, 그 종의 빚은 ‘새 발의 피’였습니다. 그만큼, 얼마 되지 않는 아주
적은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종에게는 그 돈이 아주 큰돈이었습니다. 그 종은 그 빚을 금
방 갚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하는, 그에게 빚진 그
종의 멱살을 잡고 ‘당장에 돈을 내놓으라.’고 다그쳤습니다. 이에, 그 종
은 그 신하 앞에 엎드려서 ‘조금만 시간적인 여유를 달라.’고 빌었습니
다.
그렇지만, 그 신하는 들을 체도 하지 않고 그를 끌고 가서 감옥에 가두
었습니다. 그리고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한다고,
그 종에게 엄포를 놓으면서 협박했습니다. 그러자,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
던 다른 종들이 왕에게 찾아가서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다 고해
바쳤습니다.
왕은 엄청 속이 상했습니다. 왕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베풀어준 호의를
망각하고, 자신보다 더 불쌍한 처지에 있는 종을 냉정하게 대한 그 종의
처사가 심히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그 못된 신하를 궁으로 불
러들여서 추궁했습니다.
“이 악독하고 뻔뻔한 사람아! 나는 네가 간절하게 애걸하기에 너를 불
쌍히 여겨서 그 엄청난 빚을 다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내가 너에
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다른 사람에게 마땅히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
지 않겠느냐?”
왕은 몹시 노해서 그를 감옥에 가두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 신하에게 베풀었던 자비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말하자면, 탕감해주었던 그 모든 채무를 다 갚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 그 신하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행한 것입니까? 그 신하가 종
에게 받아야 할 돈은, 왕으로부터 탕감 받은 돈의 6십만 분지 1에 불과했
습니다. 그러니까, 그 신하가 탕감 받았던 돈에 비하면, 그가 종으로부터
받아야 할 돈은 너무나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어리석은 신하는 한
번 잘못된 행동을 취함으로써, 갚지 않아도 될 많은 돈을 갚아야 했고, 뿐
만 아니라 감옥에도 갇히는 불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빚이란 ‘용서와 관용’을 의미합니다. 왕은
하나님을 의미하고, 그 왕의 신하는 오늘 우리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
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도무지 다 갚을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사
람이 행한 죄와 잘못에 대해서 너무나 너그럽지 못하고 너무나 냉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끝끝내 다른 사람의 죄와 잘못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지
못할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긍휼과 자비를 거두어 가신다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의 용서함을 받은
우리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죄의 용서함도 무효가 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만일 타인의 죄를 용
서하지 않아서, 우리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지은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게 되고 영원한 사망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큰 비극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일이 추석입니다. 추석은 누구나 다 함께 즐거워해야 할 명절입니다.
하지만,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할 추석이 즐겁지도 않고 반갑지도 않은 사
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는 그
부모나 형제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해서 추석이 그다지 즐겁지 않은 사람들
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서로 간에 갈등과 다툼이 있어서, 함께 만나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
고 있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내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추석명절이 즐겁고 기쁜 날이 될 수 있겠습
니까?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에게는 형제를 비판하거나 업신여길 권리
가 없다(롬14:10)’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다같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죄인들입니다. 다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경우, 우리
또한 주께서 지신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용서함을 받
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는 것이 아
니라, 우리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
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지금, 타인이 지은 죄를 용서하지 않아서 고통과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장차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다른 사람의 죄를, 내가 미리 심판함으로써, 그 죄의 댓가를 내가 대
신 치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었으면, 그 죄를 지은 사람
이 고통과 불행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건만, 엉뚱하게도 심판권이 없는
내가 그 죄를 심판하게 될 경우에는, 그 죄의 댓가를 내가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나를 억울하게
한 사람이 있다면, 억울하게 한 그 사람이 불행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를 억울하게 한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억울하
다고 생각하는 나만, 억울하게 한 사람의 죄를 심판하면서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공평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불공평한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겠습니까?
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독일군에게 쫓기는 유대인
을 숨겨주었다는 이유 하나로, 네덜란드의 처녀인 ‘코리 텐 붐’과 그녀
의 가족이 나치 수용소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끔찍한 고문 때문에, 그녀의
온가족은 모두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만, ‘코리 텐 붐’만은 기적적
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코리 텐 붐 여사는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용서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녀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곳마다, 크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아 죄를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독일에서 특별집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곳
에는, 그녀의 명성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
습니다. 저녁 집회를 은혜롭게 마치고, 코리 텐 붐 여사는 교회 정문 앞에
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악수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때, 자기 앞에 서서 손을 불쑥 내미는 노신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다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지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노신사는 바로, 자기 가족을 고문해서 죽게 만들
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처녀였던 자신의 옷을 전부 벗겨내고, 온갖 고
문을 하며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수모를 안겨주었던, 바로 그 전범이었기
때문입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사람은 내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나님께 고했습니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
녀의 마음속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그 사람
까지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그녀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그 즉시 마음속으로 회개했습니다. 놀
라운 주님의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다시금 마음속 깊이 깨닫고, 그를 용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그 노신사와 용서의 악수를 하
면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모두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
고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고, 그녀는 고
백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집에 김 3박스가 택배로 배달되어 왔습니다. 보낸 사람
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계속, 홍성에 사는 김 권사
님이 봄가을로 김을 보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권사님은 지금 아주 어
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만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죽을 수밖
에 없는 형편이라고 하니, 그 권사님이 얼마나 어려운 형편인지 알 수 있
을 것입니다.
그 권사님이 김을 보내준 것은, 김을 먹을 때마다 자기 가족을 위해서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김을 먹을 때마다 그 가족의 문제
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새벽에도 빠짐없이 그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권사님에게 그런 문제를 안겨준 시동생에 대한 권사
님의 미움과 원망이 아주 엄청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시
동생 때문에, 한 해에 수천만 원의 이자를 물어야 하니, 돈벌이가 시원찮은
권사님 가정으로서는 얼마나 큰 부담이 될 것이며, 그리고 얼마나 억울하
고 속상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시동생에 대한 권사님의 미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모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우리가 먼저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우리의 죄와 그로 인한 모든 문제를 풀어주신
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저는 그 권사님과 전화하면서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습
니다. 그랬더니, 권사님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동생에
대한 모든 미운 마음과 억울한 감정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은 마음이 아주 가볍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에, 그러니까 바로 지난 주 목요일에, 그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곧,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와 같은 소식을 듣고
서 제일 먼저 저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권사님의 전화를 받고 나니,
제 마음도 기뻤습니다. 그동안, 공짜로 김을 먹고 있는 것만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머지않아 그 미안한 마음을 완전히 털어버릴 수가 있게 되
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형제를 비판하거나 심판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지은 죄
에 대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 지은 죄나 잘못한 것을 내가 대신 하나님께
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가득하기를 원한다면, 타인에 대
한 심판이나 정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은 어떤 죄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이 더 큰 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
고, 우리 형제의 죄와 잘못을 용서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 안에서 더욱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