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입도요문론 강설(頓悟入道要門論 講說)
17. 금강경(金剛經)의 경천(輕賤)
【本文】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독송하여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전세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의 사람들의 경멸과 천대를 받음으로 해서 전세의 죄업이 곧 소멸하여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선지식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오직 악업만 짓고
청정한 본래 마음이 삼독의 무명에 덮여서 능히 나타나지 못하므로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금세의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 것은, 곧 오늘 발심하여 불도를 구함으로
무명이 다 없어지고 삼독이 나지 아니해서 곧 본래 마음이 명랑하고 다시 어지러
운 생각이 없으며, 모든 악이 영원히 없어져 버림으로써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하느리라.
무명이 모두 없어져서 어지러운 생각이 나지 아니하면 자연히 해탈한 것이므로
마땅히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니, 곧 발심할 때가 금세요 격생이 아니니라."
問 若有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하야 若爲人輕賤하면 是人은 先世罪業으로 약유선남자선여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 應隨惡道어늘 以今世人輕賤故로 先世罪業이 卽爲消滅하야
응타악도 이금세인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하니 其義 云何오.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기의 운하
答 只如有人이 未遇大善知識하야 唯造惡業하야 淸淨本心이 被三毒無明所覆하야 지여유인 미우대선지식 유조악업 청정본심 피삼독무명소복 不能顯了故로 云爲人輕賤也요 以今世人輕賤者는 卽是今日에 發心求佛道하야 불능현료고 운위인경천야 이금세인경천자 즉시금일 발심구불도 爲無明이 滅盡하야 三毒이 不生하야 卽本心이 明朗하야 更無亂念하고 위무명 멸진 삼독 불생 즉본심 명랑 갱무난념 諸惡이 永滅故로 以今世人輕賤也요 無明이 滅盡하야 亂念이 不生하면 제악 영멸고 이금세인경천야 무명 멸진 난념 불생 自然解脫故로 云當得菩提니 卽發心時名爲今世요 非隔生也니라. 자연해탈고 운당득보리 즉발심시명위금세 비격생야
【講說】 이 경문을 생멸 견해로써 피상적으로 해석하면 부처님의 근본 뜻을 모르고 맙니다. 경멸(輕蔑)과 천대(賤待)의 내용이 다른 것임을 지적하기 위하여 대주 스님이 이렇게 인용하신 것입니다.
위의 내용 가운데에서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는 것과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라고 하는 것은 해석이 정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함은 자기의 진여본성이 무명업식에 가려서 진여본성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함이지 실제로 어떤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고 구박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무명이 진여를 덮어서 진여를 보지 못함을 말합니다.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라 하는 것은 발심 구도하여 무명을 경멸하고 천대하여 진여가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결국 앞에서는 진여자성을 무명이 경멸하고 천대하였으며, 뒤에서는 무명을 경멸하고 천대하여 진여본성이 드러난 것이니 이것을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선가(禪家)에서는 글을 이상하게 해석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해석하여야만 경멸과 천대의 뜻을 바르게 아는 것이지 문자대로 해석하면 부처님 뜻은 모르고 맙니다. 우리가 참으로 공부를 부지런히 해서 불법을 바로 알면 이렇게 해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은 항상 "글자를 의지해서 해석하면 삼세 부처님들의 원수이다[依文解 三世佛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피상적인 글자에 구애되지 말고 법문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글자는 볼 것도 없이 뜻만 알아야 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선가에서는 "경을 떠나서 해석하면 곧 마설과 같다[離經說卽同魔說]"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만 부처님의 뜻을 바로 알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참 곤란한 일입니다. 문자에 집착하면 삼세 부처님의 원수가 되고 문자를 떠날 것 같으면 마설이라고 했으니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는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지 않습니까?
마설이 되어도 안 될 것이고 삼세 부처님의 원수가 되어도 안 될 것이니 여기서는 이것이 모두 양변입니다. 마설도 버리고 부처님 원수도 버릴 것 같으면 중도정견이 나옵니다. 분명히 문자에 의지해서 설명하는데 문자를 떠나고 문자를 떠나서 설명하는데 분명히 문자에 의지해 있어서, 아무리 문자에 의지해서 설명하지만 조금도 문자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리 문자를 떠나서 설명한다고 해도 문자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참으로 무애자재하게 바른 견해를 가지고 부처님 뜻으로 조사들의 뜻을 옳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이런 자유자재한 해석을 가지지 못하면 영원토록 불법을 매몰해 버리고 그 뜻을 모르고 맙니다.
여기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경멸과 천대의 해석을 두고서 사람들의 생각과 대주 스님이 생각하는 바가 틀리기 때문에 의심을 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내가 이런 예를 들어 설명한 것입니다.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