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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전문성, 자기 계발에 충실하기 위해서 결혼, 출산을 더욱 기피하고 꺼린다.
자신보다 더 나은 경제력, 연봉을 가진 이성을 찾고 싶다.
더 이상 청년층에서 교육, 취직 같은 암울한 미래에 대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첫째로 직장생활, 전문성, 자기 계발에 충실하기 위해서 결혼, 출산을 더욱 기피하고 꺼린다. 특히나 여성의 경우 아직까지 결혼 후 경력단절 문제가 크기 때문에 이 모습이 더 두드러진다.[6]자기 직무, 직업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니 이것은 쉽게 비판하기 힘든데 자신의 미래와 생존이 달린 문제라서 그렇다. 자기 직업과 전문성에 충실하겠다면, 이것은 그 분야의 발전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다면, 독신이나 딩크족으로 자녀 없이 사는 게 남에게 불행을 주지 않는 예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준비가 안 된 사람이 자녀를 낳았을 때, 그 자녀가 계속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막장 부모도 상당수는 이것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둘째로 절대다수의 여성들은 자신보다 더 나은 경제력과 연봉을 가진 남성을 찾고 싶은 상향혼을 원한다. 개인의 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을 찾겠다는 것이다. 굳이 자신보다 가난하거나, 돈을 못버는 사람을 만나서 고생하며 살아야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처음에는 무직 여성이 직장인 남성과 결혼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점차 독신남성의 증가로 인해 남성들 역시 여성의 경제적 조건을 보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남편의 경제능력을 고려하게 된다. 셋째로 "자녀 양육비 지원이 되지 않아서 저출산이 심화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자녀 양육비를 지원한다고 하여 이미 출산율이 유의미하게 늘어나지는 않고, 오히려 기존에 이미 태어난 자녀의 학원비, 사교육비에 돈을 더 투자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남성은 남성대로 안정된 직업과 경제력을 강요당하는 상황이라, 남성들도 여성에게 더치페이를 요구하거나, 여성의 집안 배경, 이혼 여부, 예비장인 장모의 조건, 여성이 직업이 있는가 없는가 여부 등의 조건을 본다.[7] 또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로 대도시 지역부터 여성의 직업 여부와 여성에게도 무조건 맞벌이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교사, 간호사,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의 여성을 선호하는 것은 결혼 이후 경력 단절에 노출될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들이 이러한 직군에서 경쟁이 몰리는 이유도 결혼 이후 제대로 된 직업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간혹 시골 농촌의 가부장제적 가치관을 가진 마초 남성이라면, 과거의 남성 역할을 강요한다 해도 받아주는 일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만큼 가사분담이나 평등한 성 역할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남성도 결국 점차 조건에 맞는 여성과 결혼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않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 애당초 결혼시장, 연애시장에서 탈락한 남성들이 취미생활 등에 몰입하는 것과 별개로, 결혼시장, 연애시장에서 조건을 내세우고 거래를 요구하는 남성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 생산직이나 소기업 생산직에 종사하면서 150~200대의 월급을 받는다 해도, 지저분하고 위험한 일, 노동 강도와 체력소모에 비해 턱없이 낮은 월급은 상대방에게 메리트를 주지 못한다. 이는 남녀관계없이 배우자 감은커녕 연애대상으로도 배척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개인의 욕구충족 극대화는 국가 입장에서는 손실이겠지만 당연히 범죄라고 볼 수 없다. 개인의 욕구 충족을 원하는 것은 행복추구권 문제로서,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애초부터 정치인들이 직무유기로 청년층을 무시하는 정책이나 자행하는 허접한 생각이나 갖고 있는 것이 문제였고 수십조를 쏟아부어도 출산율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개인의 욕구 충족 노력을 도덕적으로 정죄하는 것은 오히려 선택권침해, 인권침해일 뿐이다. 오히려 이것을 인정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문제는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 전체주의와 자유주의를 판별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막말로 이런 개념을 극대화시킨다면 국가에서 강제로 가축 접붙이기 하듯이 국민들의 출산을 강제해서 당장의 출산율 문제는 해결되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 해당 사회는 더 이상 민주적이지도 않을 것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만한 사회는 더더욱 아니게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 더더욱 아이를 낳고 결혼할 이유도 없는 사회가 된다.
3.5. 가치관의 변화와 개인주의의 확산[편집]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가족를 위한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문화는 점차 퇴조하고 있다. 서구에서 유입된 개인주의 가치관의 확산과 인권에 대한 개념 확산 이외에도, 부모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거나, 지원받지 않더라도 간단한 아르바이트나 임시 일자리 등으로도 충분히 생계 유지가 가능하다. 내집마련과 자동차 구입 등에 대한 욕심만 버린다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외동자녀 혹은 형제자매가 많아도 2명, 3명 이상을 넘지 않는 환경에서 성장했거나 생활고를 이유로 자녀를 방치하는 가정도 많이 존재해왔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많은 사람 속에 부대끼며 사는 일이 많이 없어졌고, 바깥 생활에서도 예전에 비해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면 아주 절친이 아닌 이상 더욱 다른 사람을 상대할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옛날에는 자연스럽게 또래의 친구들과 직접 만나고 어울려 같이 놀아야만 놀 수 있었던 환경에 비해 1980년 이후의 미국, 일본, 1989년 이후의 한국에서는 퍼스널 컴퓨터의 가정 보급 보편화와 인터넷 등 통신망 보편화로 다른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도 충분히 혼자서 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8]
설령 인터넷의 취미 동호회나 커뮤니티, 친목단체를 통해서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공통된 주제 이상의 깊은 대화는 나누지 않게 되며 여기에 현재까지도 잔존하는 가부장제적 역할에 대한 기대, 높아진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가 합쳐지고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이 확장되었다.
따라서 인간관계보다는 개인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1992년 민주화 이후로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이 서서히 확산되면서, 개인, 혼자만의 공간에 몰입하는 일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자란 세대는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하거나 희생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크게 느낀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양보나 희생해야 될 당위성은 없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 현재 젊은 세대 일부의 눈에는 결혼생활의 장점보다 개인의 생활을 희생해야 하는 결혼생활의 단점이 더욱 부각되어 보이고 그러한 결혼이 부정적으로 보이면서 거부 현상이 많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결혼 적령기의 인구를 줄이게 되었다.
또한, 이 세대의 일부는 상대적으로 인간관계에서 미숙한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에서 미숙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서투르다는 의미다. 따라서 당연히 연애나 결혼에 장애물이 될 확률이 높다. 한 번의 말실수로 상대방의 마음을 심하게 상하게 할 정도의 미숙한 사회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딱 한 마디라도, 상대방의 결점이나 약점이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말이나 상대방을 그보다 잘나다고 간주되는 누군가와 비교하는 말을 하면 그 말을 꺼낸 사람에 대한 호감은 일순간에 증발하고 더 이상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다.
심한 경우는 가족이나 친한 소수가 아닌 사람들과의 대화조차도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2020년대가 된 최근에는 사람들 사이에 접촉할 일이 점점 감소하면서 연애, 결혼, 중매도 모두 어려워졌고 심지어 상대를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채팅 어플마저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래서 결혼중개업체에 의존하지 않으면 만남이 힘들거나 아예 결혼을 단념해야 되는 수준까지 이르기도 한다. 사실상 결혼정보업체로 가지 않으면 결혼이나 연애를 전제로 만날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런 수단으로 만나서 결혼을 하더라도 정말로 미래가 행복할지는 미지수다.
3.5.1. 비사교적 유형의 인간 증가[편집]
농경사회와 봉건사회 그리고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과 원만하지 못한 것,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심각한 성격적인 문제, 결함 정도로 취급하였다. 사람이 서로 생각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것에 대해 인정하기 싫어하거나, 알지 못하거나, 한 가지 기준과 틀에 여러 사람을 맞추려는 현상이 인류 역사상 오래도록 존재하였다.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속마음을 숨기고 억지로 어울리는 척하거나 융합하는 척을 하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
타인과 부대끼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거나 꺼리는 사람
소수이지만 시대, 장소마다, 국가마다 별로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융합되지 않거나, 타인에게 진심을 숨기고 억지로 남과 어울리는 척하는 사람, 체면과 눈치가 보이는 것 때문에 타인에게 약점을 드러내기 싫어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하는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왔다. 다른 사람과 맞지 않는다면 억지로 상대할 필요는 없다. 아마도 성격과 환경적 요인 탓이겠지만 이들 중에는 다른 사람과 덜 상대하는 직업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어딘가 이상한 사람, 성격에 문제 있는 사람으로 몰려서 대부분 반쯤 매장되거나, 자신만의 공간에 칩거, 은둔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빠르게는 19세기 이후의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 스위스 독립과 루소의 계몽주의 시대부터, 늦어도 1850년대 산업혁명기 이후 또는 1960년대 이후 종전 이후 유럽, 미국 등에서 개인주의 의식의 확산과 인권의식, 권리의식 확산과 정보 확산 등으로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타인과 잘 융합하지 못하는 성격, 그런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과 공격도 점차 줄어든 상태이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관심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긴 하다. 물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범죄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생각이 제각기 다르고 취향도 다르기에 그런 것이 서로 간에 안 맞는 부분도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억지로 반드시 누군가와 어울리거나 친해져야 되는 것도 아니다.
당장에 한국에서도 1970년대~1980년대처럼 아이들에 대한 인권이 많이 보장되지 않던 시대에는, 자녀들을 귀찮게 여겨서 집에 있지 말고 나가서 놀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중에서도 육아를 매우 귀찮아하거나, 아이를 싫어하는 유형인데 주변의 권유로 인해 억지로 결혼한 사람들은 부모가 되어서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냉담하게 대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이들은 주변의 권고와 부모가 결혼하라고 해서 억지로 원하지 않던 상대와 마지못해서 결혼한 유형도 상당수 된다. 결국, 나이가 들고 황혼 이혼이 늘어난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성격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사람,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줄 가능성도 낮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어울리기 싫어한다면 필연적으로 누군가와 연애를 하거나 결혼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지게 된다.
3.6. 이중잣대와 불공정 거래에 대한 반발[편집]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늦어도 산업혁명 때부터, 미국은 1960년대부터 결혼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포장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결혼은 대부분 집안끼리의 거래가 수반되어 있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었다. 전근대사회까지만 해도 "나는 못해도, 나는 이 조건을 못 갖추었어도 너는 갖추어야 된다, 너는 해야 된다" 라는 생각이 통하기는 했다. 그것을 종교적 권위나 도덕 윤리의 이름으로 미화하면 더욱 반발하기 어렵기는 했다.
나는 되지만 (혹은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너는 안 된다는 이중잣대와 내로남불같은 사고방식은, 타인에게 무조건 반감과 불쾌감을 주게 된다. 개인주의나 인권, 권리 의식에 민감한 개인이나 지역일수록 그런 이중잣대에 대한 거부감과 반감은 매우 강하다. 이런 이중잣대스러운 말과 행동을 보이는 본인은 그것을 잘못이나 차별이라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대방의 기분과 감정을 더 악화시킨다.
정보력이 부족한 시대이거나 고정관념, 종교적 가치관, 인습이 지배하던 시대일수록 그런 고정관념이 일부 먹혀들었고, 윗사람이나 연장자의 권위에 의해서, 집안에서는 부모나 집안어른들의 지시에 의해 대부분 순응하였다. 결국, "나는 못 했어도 너는 해야 한다", "내가 이 조건을 못 갖추었어도 너는 갖추어야 된다. 너는 해야 된다" 라는 생각을 넘어서, 그 조건이 안 되는 사람이나 그 조건대로 못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조롱을 하고 심하면 매장하는 일까지 있었다. 예를 들면 "남자가 집과 차를 마련해야 된다", "남자가 경제력을 갖춰야 된다", "여자는 무조건 나이가 어려야 한다",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된다" 등이 그런 것이다. 이렇게 혼수와 예물에 대한 강요, 시집이나 처가 식구들에게 보낼 선물 강요 등도 있다. 이런 것은 인간의 평등한 권리나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나 상대방에서는 그에 대한 대가나, 상응하는 조건이 아예 없는 부조리함도 있었다. 이런 것이 일부 통하거나 묵인되었고, 한쪽의 양보로 넘어가거나, 이 외에도 많은, 암암리에 강요되는 심한 부조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는 인간에게는 도덕적, 윤리적인 공격이 가해졌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시대가 변하고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그런 부조리들은 더 이상 어림없는 일이 됐다.
애초부터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개인의 마음이고, 그 조건을 선택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조건에 대한 대가나, 비슷한 조건을 자신이 어느 정도 갖추었다면 이중잣대나 불공정거래가 아니다. 문제는 자신은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려는 이기적인 인간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상대방, 혹은 상대방 부모에게 피해의식이 있다면, 다른 상대방에게 가하는 이중잣대나 요구사항이 더 심하고, 더더욱 가혹해진다. 이를 가리키는 용어로 갑질이라는 신조어도 2016년 무렵부터 등장하였다.
또한, 날이 갈수록 장기화된 경제불황과 남초 사회로 인한 경쟁이 심해지는 세태로 되레 낙오되는 여성들도 또한 속출할 것이란 견해도 존재한다. 실제로, 남성들에게 "이미 세상은 남초로 된 현대사회의 상황"을 넌지시 인식시키면 자신이 원하는 여성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했다는 심리학계의 연구 결과가 있으며,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여성에게는 온갖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반대로 "자신의 목적에 방해가 된다." 라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더욱 지독하게 내쳐버리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한다. 물론, 상대가 같은 남성이라도 쳐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설명이 더 이상 필요한가? 여기서 현대사회의 경쟁의 폐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 경제인구의 남초로 인하여 남성의 영향력은 증가하고 여성의 영향력은 더욱 감소하게 될 것이란 예측도 존재한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나라를 유지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경쟁에 직접 참여하여 생산을 행하는 세대이니만큼 더 많이 참여하고 더 많이 생산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95년 이후 집집마다 컴퓨터가 보편화되고, 곧이어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다양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부당한 대접과 대우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고, 따라서 부당한 대우를 부당대우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점차 "나는 못해도, 나는 이 조건을 못 갖추었어도 너는 갖추어야 된다, 너는 해야 된다" 라는 생각에 대한 반감을 품고 반발하는 것 또한 역시 심화되었다. 부당한 요구나 부당한 조건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전히 남편감, 아내감, 사위감, 며느리감에게 나는 못해도, 나는 이 조건을 못 갖추었어도 너는 갖추어야 된다, 너는 해야 된다는 생각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쉽게 바뀌지도, 변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계층이나 조건이 안 되거나, 상대방의 수준이 낮다고 생각되면 알아서 서로 기피하거나 암묵적으로 꺼리는 현상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3.6.1. 이중잣대와 거지근성에 대한 반발[편집]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하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어떤 권위의식이나 나는 특별하다는 식의 특권의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는다. 다만 역지사지 보다는 받기만 하려 하거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상대방에게 반감과 거부감을 준다. 개인주의와 권리, 인권의식이 강한 1970년대생 이후의 세대에게서는 이런 이중잣대 역시 갑질로 보는 층도 등장했다.
가부장제 시대에는 상대방이 이런 행동을 보인다고 해도, 한쪽에서 참고 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혹은 살면서 '고쳐보겠다, 받아들이겠다' 라는 마음씨를 가지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인권과 권리의식이 향상되고 정보를 쉽게 접하면서 그런 이중잣대,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하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결국, 이를 싫어하게 되는 사람들은 서로 간의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자신만의 선호도와 호불호가 확실하게 되면서 폭주하지 않고 절제하는 성격을 갖게 된다. 싫다는 것은 확실하게 싫다고 말하게 되는 것.
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아니더라도 어떤 피해의식이나 애정결핍이 심한 사람들 역시 그런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하면 안 된다" 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태도에 대해 심한 반감과 거부감을 넘어 혐오감까지 드러낸다. 자신이 싫은 것은 남도 싫어한다는 기본적인 사고방식 혹은 염치 등을 상실한 사람들로 인해 인간관계 내지는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대한 피로도와 스트레스 역시 은연중에 증가한 상태.
간혹 자신이 상대적 약자이거나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가난 등의 이유를 들어 상대방에게 기대고 의존하려는 이들도 있다. 이를 거지근성이라 한다. 다소 유아 같은 사고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상대적 약자이거나 가난하다 해서 상대방에게 무조건 배려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과거 유교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하여 자신이 상대적 약자이거나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가난한 것에 대해 상대방이 나를 먼저 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상대방에게 기대거나 의존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 물론, 반대로 자신이 가난해서 상대방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존재 역시 점차 인간관계에 환멸감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상대방에게 기대고 의존하려는 점을 지적하면 오히려 피해의식이나 자격지심, 열등감이 발동해서 상대방을 노골적으로 몰아붙인다. 결혼 상대방이나 연애 상대, 혹은 그 부모나 형제자매 중에 이런 사람이 존재하여 깨지거나 헤어지는 남녀 역시 꾸준히 존재해 왔다.
2001년 이후 한국 사회에도 점차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인권의식과 권리의식이 향상되면서 차별, 부당한 대우, 부당한 조건을 참거나 이해하려는 일도 그만큼 감소, 줄어들고 있다. 이미 가족인 부모-자녀 간에도 그런 태도로 심리적, 정서적 갈등이 대두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쌩판 타인이 나에게 이중잣대를 들이대거나, 심하게 의존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이런 성향으로 인한 결혼, 연애의 파탄도 점차 증가하고 있고, 나이가 들거나 혹은 청년세대일수록 그러한 조짐이 보이는 인간관계는 과감하게 피하거나 외면하는 일도 벌어진다. 상대방의 이중잣대나 거지근성을 일방적으로 참고, 인내하는 일이 사라지면서, 출산 가능성도 당연히 그만큼 낮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