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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매는 기쁨과 슬픔, 호불호 등을 어떤 표정으로도 내비치지 않았다. 예의 그 흰 눈 같은 차가운 얼굴에 설중매 같은 고고한 아름다움만을 표출하고 있다.
임금은 회의와 재판을 파한 후 삼칠성주 일행을 위해 특별한 호의와 함께 오찬을 베풀고 그들에게 후한 선물도 내렸다.
임금은 그들과 친히 함께 한 오찬 자리에서 명했다.
“앞으로 한 달 간, 내 칠십칠 회 생일이 돌아올 때까지 이 사람들을 궁 밖의 영빈관에 편히 머물게 하고 대접에 소홀하지 않도록 하라.”
삼칠성주 일행은 곧 영빈관으로 안내되었다. 해모수도 다른 일행과 함께 영빈관으로 향한다.
오는 도중 연은소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황녀 설이매에게 물었다.
“공주마마, 해모수 오라버니를 영빈관에 머물게 하고 폐하의 칠십칠 회 생신 때 그를 위해 자리를 마련한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요?”
그녀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아바마마께서 그에게 중요한 직책을 주시려나 봐요. 함부로 추측할 수는 없지만, 이 황궁에서 일하게 될 것 같아요.”
설이매 공주가 무표정한 낯으로 연은소에게 대꾸했다.
“그럼 우리는 이제 해모수 오라버니와 헤어지고 더 이상 그를 만나볼 수 없는 건가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렇게 되겠죠?”
“그럼 공주님은 궁중에 사시니까, 해모수 오라버니를 늘 만나볼 수 있겠네요?”
“호호호호호!”
설이매가 정말 오랜 만에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그녀가 그렇게 크게 웃는 것을 처음 본지라 다 신기하게 생각했다.
“내가 해모수 공자를 가로챌까봐 걱정되나요?”
설이매가 반농담조로 연은소의 정곡을 찔렀다. 연은소가 대꾸를 못하고 쩔쩔매었다. 그녀는 비록 해모수와 남매지간이 되었다고는 하나, 입양된 몸인지라, 결혼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파양과 폐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궁에서 일한다고 하여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이 환화궁은 아주 넓어요. 서로 약속하지 않으면 만날 수조차 없어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도 궁중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연은소가 미간을 펴며 진지하게 문의한다.
“영빈관에 머물 수는 있어요. 임금의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그를 초빙해서 당분간 친구로 지내거나 아니면 스승으로 모실 수도 있죠. 하지만 친구를 자기 집에 오래 묵게 할 수는 없겠죠?”
“그럼 우린, 폐하의 생신 축하연이 끝나는 대로 내려가야 하나요?”
“아마 그렇겠죠?”
연은소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 듯했다.
“호호호! 하지만 아직 한 달간 여유가 있으니, 그 동안에 마음껏 노세요. 해모수 공자와 함께.”
설이매가 다시 유쾌하게 웃었다. 해모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제가 공주님의 시녀가 되면 안 될까요?”
연은소가 불쑥 말을 던졌다.
설이매는 해모수에 대한 연은소의 정이 그토록 집요한 줄 몰랐다가 깜짝 놀랐다. 설이매 공주가 연은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단호히 대꾸했다.
“안 돼요!”
머쓱해진 연은소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세요. 여기 계신 분들은 저의 친구이니까 영빈관에서 오래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내가 아바마마께 간청해 볼 테니까요.”
백설처럼 차가운 설이매의 얼굴에 포근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한참 후 일행은 초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영빈관의 정원에 둘러앉았다. 환꽃과 여러 종류의 가을 화초들이 뜰 안에 가득하고, 은은한 향기는 사위를 맴돈다.
“공주마마, 폐하께서 해모수 공자에게 어떤 직책을 내리실 것 같습니까?”
번조선의 왕세자 기비가 설이매에게 물었다.
“글쎄요. 저도 짐작할 수 없어요. 그는 젊고 용맹하니까, 어쩌면 궁궐 시위대나 어전 친위무사단親衛武士團에 두실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위대나 친위무사단에 들어가려면 여러 사람 앞에서 학문과 무예를 선보이고 실력을 인증 받아야 해요.”
모처럼 해모수와 삼칠성주, 기비, 기진, 단, 설이매, 연은소, 백선의, 청아련 등은 거의 매일 어울려 인생을 논하고 시를 읊으며 무예를 이야기하고 또 사랑을 갈파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 와중에서도 해모수는 영빈관 한쪽 귀퉁이에서 방을 하나 차지하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어머니 묘고미향이 준 <행심록해>를 자세히 탐독할 수 있었다. 근 한 달 동안 해모수는 두문불출하고 그 안에 수록된, 묘고미향의 지혜와 무예를 읽으며 의문이 생기면 곧장 어머니를 찾아가 물었다.
어머니의 상세한 설명에 해모수는 즉각적으로 그 속의 비의를 깨우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행심록>을 수백 차례 이상 읽으며 거의 외우다시피 한데다, 삼년 동안 석실에서 이를 깊이 연구했으므로 <행심록해>를 서너 차례 정독하자, 그 안의 모든 내용을 거의 다 깨우칠 수 있었다.
무예에 있어서도 그 책의 암시에 힘입어 가일층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된다. 어머니 묘고미향의, 무예에 관한 깨달음은 매우 심원하고 오묘했다. 어머니와 단둘이 몇 차례에 걸쳐 남몰래 무예를 시험해본 후, 해모수는 그 사실을 더욱 절감했다.
묘고미향은, 어쩌다 해모수에게서 불완전한 점이 발견될 경우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시정해주었다. 어느 날 해모수는 어머니와 함께, <삼일신고>의 반진일신返眞一神(진리로 돌이켜 신과 하나 됨), 신인합일神人合一에 대한 진리와 나라통치 이념, 옛 역사, 무예 등등 전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니 묘고미향은 매우 박학다식했다. 해모수 자신이 어머니로 알고 있었던 유모도 책을 몹시 중시하며 집안의 재산을 팔아 책을 사고, 해모수에게 독서를 권장했기 때문에 해모수도 어릴 때부터 무척 많은 책을 읽었으나 묘고미향의 사색과 지혜의 깊이는 비할 바 없이 심원해 보였다.
둘이 한참 토론을 벌이고 있을 때, 한 시녀가 와서 손님이 찾아왔다고 알렸다. 두 사람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나며 음성이 들린다.
“들어가도 되오?”
바깥의 목소리를 듣고 묘고미향은 아연한 낯으로 일어섰다.
“들어오십시오. 나리.”
이윽고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해모수가 보니, 그는 다름 아니라 자신의 부친인 아남성 욕살 여을이었다. 깜짝 놀란 해모수는 일어서서 아버지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자, 아버님을 뵙습니다.”
“오냐, 앉아라. 내 아들아, 네가 여기 환화궁까지 들어오다니, 자랑스럽기 그지없구나.”
여을은 여전히 서 있는 묘고미향을 보며 말했다.
“부인께서도 그 빼어난 자태와 미색을 잃지 않았구려.”
“모두가 삼신천제 하나님의 은총과 나리의 은덕 때문입니다.”
“내가 부인과 해모수에게는 죄송하기 짝이 없소. 나의 불찰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소. 처음부터······.”
“아닙니다. 나리.”
묘고미향이 여을의 말을 끊었다.
“제가 원해서 나리께 간 것입니다. 나리께서는, 이제 고인이 되신 안 마님의 안위를 염려하셔야 했으므로, 잘못은 제가 한 거죠.”
“아니오. 과오는 내가 저질렀소. 내 죄과를 용서해 주시오.”
“이미 지난 일을 들추어 무엇 하겠어요?”
“우리 아들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주어 고맙기 이를 데 없소.”
“아닙니다. 나리. 아주 덕망 높은 유모를 두신 것 같습니다.”
여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이 떠난 후 해모수를 맡아 길러준 그녀는, 참으로 지혜롭고 아름다운, 무예도 뛰어난 여인이었소. 그녀의 공을 잊지 못하오. 그러나 해모수로 하여금 그녀를 어머니로 부르게 하고, 친모인 부인을 잊도록 만든 것은 나의 크나큰 불찰이었소.”
해모수는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의 얘기가 나오자 눈물이 다시 핑 돌았다. 자신도 친어미로 알고 있었고 또 친어미처럼 놀라운 사랑으로 자신을 돌보고 길러주신 젖어머니. 그녀가 새삼 그리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제 해모수가 여기까지 왔으니 나리께서 해모수의 앞날을 잘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니오. 늙은 내가 무슨 힘이 있겠소? 오히려 부인께서 이 아이를 잘 돌보아 주시오.”
“폐하께서 해모수를 위해 어떤 자리를 예비해 놓고 계시는지 나리는 혹시 아시는 바가 있는지요?”
“폐하께서 중대사를 놓고 나와 단둘이 자주 얘기를 나누시지만, 해모수에 관해서는 아직 내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소. 어쩌면 친위무사단에 두실지도 모르오.”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해모수가 이 나라를 위해 장차 큰일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 때였다. 밖에서 헛기침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폐하께서 나리를 찾고 계신다고 하옵니다.”
여을이 문을 열었다.
“삼칠성주님과 해모수 공자님도 함께 지금 즉시 폐하를 알현하라는 전갈이옵니다.”
세 사람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채비를 갖추고 대문을 나서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시가 그들을 데리고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긴다. 한참 동안 걸어 올라가자 환꽃이 만발한 커다란 동산이 나오고, 동산을 통과해 곧장 위로 올라가니 여러 채의 웅장한 건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장려한 대문을 통과한 후 몇 개의 문을 더 지나서야 그들은 어느 대전에 이르렀다. 임금이 거기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폐하! 아남성 욕살과 삼칠성 성주, 해모수 대령했사옵니다.”
“들라 이르게.”
안에서 좀 피곤에 지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시가 문을 열어주자 세 사람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고열가 임금은 높은 곳에 좌정하지 않고 밑으로 내려와 마루에 방석을 깔고 홀로 앉아 있었다.
여을을 필두로 묘고미향과 해모수가 들어가 임금께 큰 절을 올렸다.
“폐하께 문안드리옵니다.”
“어서들 일어나 앉으시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임금이 내시에게 말했다.
“여기 술과 안주, 다과를 좀 가져다주게.”
임금은 세 사람을 훑어보며 감사의 말부터 꺼냈다.
“이번에 열성조의 유산을 이곳까지 운반해온 데는 삼칠성주와 해모수의 공이 컸다고 들었소.”
“모두가 천제님과 폐하의 은덕이옵니다.”
묘고미향이 겸손히 허리를 숙이며 아뢰었다.
“내가 세 사람을 개인적으로 부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소. 하나는 보물 처리문제이고, 또 하나는 해모수의 직위에 관한 거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우선, 색불루 임금께서 남기셨다는 보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옳겠소?”
“폐하, 그건 가만히 놓아두면 보기에만 좋을 뿐 아무런 쓸모없는 돌멩이나 마찬가지이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유익하게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하옵니다.”
여을이 대답했다.
“어디에 어떻게 쓰면 좋겠소?”
“국내의 보석 상인들과 천하 각국의 무역상들을 통해 모든 보화를 금화로 바꾼 다음, 국고에 넣어 필요한 때에 백성을 위해 지출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이번에는 임금이 삼칠성주를 향해 물었다.
“경이 보여준 색불루 임금의 유서에 따르면, 색불루 임금께서는 천명영검과 천명신검을 둘 다 소지하고 있는 후손 임금에게 이 보물을 유증한다는 유언을 남기셨는데, 그렇다면, 난 그것을 처분할 자격이 없지 않겠소?”
“그렇지 않사옵니다. 비록 두 개의 검을 소유하지는 않으셨사오나 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군주이시니 선대 임금님의, 시대에 어긋난 유언을 나라의 상황에 맞게 고칠 수도 있사옵니다.”
“그래도 무언가 꺼림칙하구려.”
“아마 색불루 임금님께서는 이 보물이 근 천년 동안이나 지하에 묻혀 있을 것으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하셨을 것이옵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 나라의 임금이 두 개의 검을 소지할 것으로 짐작하셨을 것이옵니다.”
그 때 해모수가 입을 연다.
“폐하, 외람되지만, 제가 설이매 공주에게 맡겨둔 그 검을 폐하께 드리겠사옵니다. 나머지 하나는 저의 부친께서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
여을이 얼른 말을 받았다.
“나머지 하나는 신이 신의 장자인 해로운日露雲에게 유증했사옵니다. 폐하께서 명을 내리시면 그에게서 회수하겠습니다.”
“아니오, 아니오. 내게는 그런 검이 필요 없소.”
“괜찮습니다. 나중에 폐하께서 이들에게 다시 그 검을 유증하시면 되옵니다.”
“잘 알았으니, 보검 얘기는 꺼내지 맙시다. 우선 보물을 국고에 넣어두는 것이 좋겠소. 하지만 그것이 화근 덩어리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소.”
“그걸 방지하기 위해 폐하께서 그 보물을 공개적으로 처분하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여을의 말을 묘고미향이 거들었다.
“그렇사옵니다. 이런 일은 은밀히 행하면 오히려 의혹과 여러 가지 병폐가 생길 수 있으니, 공공연하게 집행하는 것이 무난한 방책이라 여겨집니다.”
“지혜로운 생각이오. 그건 그렇고 두 분의 아들 해모수 얘긴데, 지난번에도 비쳤듯이, 해모수를 내 곁에 아주 가까이 두고 싶소. 어떤 직책이 합당할 것 같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쓰십시오. 하지만 제 자식이 폐하께 누를 끼칠까 심히 염려됩니다.”
“아니오. 내가 보기에, 해모수는 지금 나이가 어리다 하더라도 장차 대성할 인재요. 지혜가 만인 위에 뛰어난지라 문사의 자리가 합당하지만, 무예도 비길 자가 없다는 소문을 들었소. 내가 신변에 가까이 두고 싶어, 우선 어전 친위무사단의 부장副將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임명하고 싶은데 어떻소?”
단군조선은 문무양면을 몹시 중시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세 사람이 일제히 엎드려 사례했다.
임금의 어전 친위무사단은 일백이십 여명의 무사와 열두 명의 부장, 한 명의 대장으로 구성되어, 황궁 시위대에 소속해 있었다. 임금의 친위무사단 대장은, 얼마 전부터 여을의 장남 해로운日露雲이, 황궁 시위대장을 겸해 맡고 있었다. 해로운은 이전에 아남성의 수비대장직에 있다가 영전되어 황궁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임금의 말을 들은 해모수는 한편으로 기뻤으나, 또 일면으로 자기 장형의 수하에 들어갈 것 같아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장형의 수하에서 벗어나고 싶어 천명신검과 <행심록>을 가지고 도망쳐 나온 게 수 년 전인데, 다시 그 아래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뭔가 찜찜했던 것이다.
결국엔 하늘 상제께서 다시 자기를 친형의 지배 아래 두어 친형에게 복종시키려 하는 것이 아닌가? 과거에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을 회피한 것이, 이렇게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연단이라면,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내 생일 때 그대를 친위무사단에 정식으로 소개하고 문무백관들 앞에서 그대의 무예와 지혜를 시험해 보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니 준비해 주게나.”
“폐하, 명심하겠사옵니다.”
해모수는 고열가 임금 앞을 물러나와 부친 및 모친과 헤어진 후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즉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삼신일체 하나님께 칠배七拜를 올린 후, 호흡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통에 들어갔다.
황홀하고 행복한 기운이 온 머리와 심장, 전신에 감돌기 시작했다.
“자비롭고 거룩하신 삼신일체 천제 하나님, 폐하의 생신 때 문무백관 앞에서 천제님의 지혜로우심과 위대하심을 드러낼 수 있도록 소인에게 문文의 지혜와 무武의 능력을 주소서.”
마음 속으로 기원하면서 해모수는 하나님과의 교통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가없는 평강이 든든하게 올라오고 뜨거운 감격이 일어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슴은 황홀한 기쁨으로 벅차기 이를 데 없었다.
“하나님, 하나님, 한없이 고마우신 삼신일체 천제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사모하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이 미천한 인간에게도 하사하셔서 부디, 환웅임금이 가르친 성통공완性通功完을 이룩하게 하소서.”
‘해모수야, 내가 너를 아끼노라. 네가 만일 마음을 다해 나를 섬긴다면 이 강산을 네게 줄 터이니, 하늘의 도로 다스리라.’
수년 전 석실의 꿈에서 신인에게 들었던 음성이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 갑자기 격한 감정이 복받쳐 이전보다 더욱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렀다.
“천제님의 크신 은덕, 감사하고 또 감사무지하옵니다.”
해모수는 이렇게 고백하며 다시 엎드려 천제께 삼육구대례三六九大禮를 올렸다.
삼육구대례란, 흔히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 불리는 것으로서, 큰 절을 세 번 올리는 것인데, 첫 번째 큰 절에서는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째는 여섯 차례, 세 번째 큰 절에서는 아홉 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다. 이는 배달겨레 전통의 큰 절로서 상제 하나님이나 임금님께 올리는 최고의 예법 가운데 하나다.
해모수는 상제께 정성을 다해 삼육구대례를 올린 후 어아가를 불러보았다.
♬ 어아어아, 우리 하나님 크신 사랑
배달나라 우리 모두 억만년 잊지 마세······.
어아어아, 억만인 우리 모두 큰 활처럼 강한 마음, 배달나라 영원하리.
억만년 크신 사랑,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가슴 속에서 감동과 희열이 일어 노래를 그치고 싶지 않았다. 해모수는 계속해서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다음 장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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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2. 6. 17.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