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정읍사>도 이중가(二重歌)?
학창 시절, 국어 고문(古文) 과목을 담당하셨던 이 아무개 선생님은 야간 학습 시간에 자주, 불콰해진 얼굴로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코허리까지 흘러 내려온 안경 너머로 눈을 치켜뜨시고 신라 향가 <처용가>를 읊으셨다.
동경 ᄇᆞᆯᄀᆞᆫ ᄃᆞ래 새도록 노니다가
드러 내 자리ᄅᆞᆯ 보니
가ᄅᆞ리 네히로섀라
아으 둘흔 내 해어니와
둘흔 뉘 해어니오
여기저기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도 선생님은 정색하고 처용가를 해설하셨던 장면이 떠오르는 오늘 이야기다.
작가는 「삼국유사」에 실린 유일한 백제 향가 <정읍사>를 이중가로 해석한다.
조선조 중종(1506-1544)때에 왕이 이 노래 속 음사(淫詞)와 관계되는 말을 고치라고 명하여 고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종(1470-1494)때에도 <정읍사>를 음란한 노래라 하여 금지 가곡으로 규정한 적이 있단다. 리얼리?
우리가 알기로는 <장터에 나간 남편을 염려하는 아내의 노래>이며 음란하기는커녕 아름답고 서정적인 가사로 칭송되어 왔는데...
그런데 작가는 한 마디로 <정읍사>는 성애가(性愛歌)라고 단정한다.
겉으로는 아내의 남편 사랑 노래이나 속은 뜨거운 섹스 정경을 그린 대담한 여인의 노래라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작가가 「만엽집」 해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도 한참 후의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읍사>에 얽힌 갖가지 수수께끼가 씻은 듯이 풀리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던 이상한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만엽집」의 작가 중에는 백제인이 많았다.
5세기 이후 줄곧 왜를 지배해온 백제 왕가가 672년 천무왕의 쿠데타로 고구려-신라-가야 연합세력에 패했을 때, 백제인들은 정권 탈환을 노리며 노래로 사발통문을 돌렸다.
‘왕을 암살하자’, ‘누구를 왕으로 세우자’ 하는 메시지 외에 정권 비판의 신랄한 노래 또는 시름에 젖은 비가(悲歌)로 불렀다.
이 경우 겉 노래는 성애가이거나 경치를 묘사한 서경가(敍景歌)가 많았다.
이와 반대의 경우로 아름다운 노래지만 속으로는 대단히 야한 섹스를 읊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정읍사>가 그러하다고 한다.
성종 때 편찬된 악학궤범에 실려있는 정읍사의 원문과 해독이다.
ᄃᆞᆯ하 노피곰도ᄃᆞ샤 어긔야 머리곰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全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ᄃᆞㅣᄅᆞᆯ 드ᄃᆞㅣ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ᄋᆞㅣ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가논ᄃᆞㅣ 점그랄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달님이시어 높직이 돋으시어 멀찍이 비추십시오
(내 님은) 시장에 다니시던가요
아, 진 데를 디딜까 두렵습니다
(무엇이든(어느 것이든) 다 놓아버리십시오
아, 내 님 가시는 데에 날이 저물까(행여 불길한 일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여기에서 후렴인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는 해독에서 빠져 있다.
그 이유는 ‘어긔야’, ‘아으’는 ‘아!’와 같은 감탄사이고, ‘어강됴리’와 ‘다롱디리’는 노랫가락에 맞추는 뜻 없는 소리이므로 해독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일본 만엽 학자들의 행태와 흡사한 논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뜻이 없는 소리라는 이 구절이야말로 <정읍사>의 모티브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를 작가는 설명하지만 차마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다만 작가께서 새롭게 해석한 속 노래를 옮겨본다.
달님이시어 높직이 돋으시어 어기어 멀찍이 비추어 주시오
어기어 샛강 좋으리 아 자롱지리 전이 젖어 열리셨나요
아, 진 데를 디디실가 염려됩니다
어기어 샛강 좋으리 터질듯합니다 놓아버리십시오.
어기어 내 가는데 잠기실까 염려됩니다,
어기어 샛강 좋으리 아 자롱지리
* 달 : 일본 「만엽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성 또는 어떤 세력의 궐기를 의미
* 어긔야 : 「만엽집」에서는 노를 젓는 행위의 뜻
* 전 : ‘물건의 위쪽 가장자리가 너부적하게 된 부분’(한글학회 큰사전)
* 어강(샛강) : 속 노래로 여성 의미
* 어느ᄋᆞㅣ다: 내부에 축적된 것이 터질듯하다
<정읍사>가 백제 가사가 아니라는 일부 주장도 있는데 그것은 정읍이라는 지명은 백제가 멸망하고 한참 지난 757년 이후의 이름이기 때문이기에 이 노래는 그 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다.
그러나 작가는 백제 가사로 확신한다.
그 이유는 작법이나 기교, 낱말의 쓰임새가 7세기 후반 「만엽집」의 백제인들의 노래와 일치되기 때문이란다.
작가는 백제 가사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에 실린 신라 향가 중에도 이와 같은 이중구조의 노래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중 수로 부인에게 바닷가 절벽 위에 핀 철쭉꽃을 꺾어 바친 <노인헌화가>를 예로 지목한다.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702-737)때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임지로 가던 신라 최고의 미인으로, 그의 미모에 반한 용왕에게 수 차례 유괴되곤 했다는 전설속 인물이다.
바닷길 ‘수로(水路)’를 이두식으로 풀이하면 ‘몰지’가 되는데, 이것은 ‘몰려오는 남자’의 뜻이 되기에, 잇단 유괴소동을 야유한 이름일 것으로 추측한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뜻밖에 한국인의 해학과 예지를 건지게 될 것이다”는 작가에게 점점 빠져드는 젊은이는 없을까?
나는 그러나 천천히 빠져나오는 기분이 든다^^
30년 전쯤에
광고 : 다이어트 식품 광고
강철수(1944년생).
70~80년대에 스포츠 신문에 연재하던 그의 작품, <발바리의 추억>의 달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재기발랄함의 상징이었던 달호의 여자친구까지.
이후 <사랑의 낙서>라든가 <팔불출> 같은 작품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가 <호랑이 선생님> 드라마의 작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장편소설 광고 : 고백
80년대에 <어둠의 자식들>, <인간시장> 등 사회 부조리 속 어두운 세계를 내놓고 펼쳐 보이는 소설과 영화가 유행했었는데....
<성은 ‘시’ 이름은 ‘브랑탕’이었다>는 작가는 지금은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단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