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소고小考
-목성균의 다랑논을 읽고- 신금철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명절과 제삿날이면 어머니의 손에는 물 마를 날이 없었다. 청춘에 홀로 되어 종갓집 살림을 도맡았던 며느리에게, 일 년에 여덟 번이나 치러지는 제사와 차례는 얼마나 버거운 일이었을까. 어머니는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임에도 스무 명 남짓 일가친척이 함께 모여 지내는 제사상을 소홀함이 혼자 차려내셨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쌀독이 바닥을 보일 때면 단지 속에 아껴둔 쌀을 꺼내 인절미를 만드셨고, 수확 전 추석이 찾아오면 덜 여문 벼를 낫으로 베어 ‘풋바심’을 해서라도 절구에 벼를 찧어 하얀 쌀밥과 송편을 올리셨다. 철없던 시절, 나는 그 지극한 정성이 어머니들의 당연한 본분인 줄로만 알았다. 그저 평소에 맛보지 못한 쌀밥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명절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부끄러운 기억이 ‘다랑논’을 읽는 내내 책장 사이에 스며든다.
작가는 다랑논을 회상하며 그리움에 젓는다. 또한, 다랑논에서 삶의 원칙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지은 분들의 노고와 성실한 삶의 편린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풍요와 편안함에 길든 우리들에게 안일安逸한 태도를 반성할 기회를 부여한다.
다랑논은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게다. 어른들 사이에 다랑논이라도 한 뙈기 있으면 좋겠다는 한숨 섞인 소리가 자주 오르내리던 시절이었다. 한 뙈기의 땅이 간절했던 시절,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다랑논은 농부에게 희망이자 힘겨운 노동의 일터였을 것이다. 논두렁 까지도 풀 한 포기 허용치 않고 부뚜막처럼 매끈하게 다듬던 정성, 모내기하며 굽은 허리를 추스르던 농부의 구슬땀이 다랑논 물결 위로 어룽거린다. 손목이 아리도록 심은 벼 포기에서 꽃이 피어날 때 농부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으리라. 자식 같은 곡식이 부실한 땅에서 병이라도 앓을 때면, 그 애타는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나는 들판이 온통 푸른 융단을 펼치는 6월을 유독 좋아했다. 땅 기운을 맡은 벼 포기가 싱그러운 물결로 일렁이고, 제 세상을 만난 개구리들이 합창하는 논둑길. 그 길을 걷다 보면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초록 바람이 좋아 가만히 눈을 감곤 했다. 그것은 흙과 바람, 풀의 향기를 아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귀한 선물이었다.
언젠가 사계절의 찰나를 기록하는 사진가인 남편을 따라 남해 가천마을의 다랑논을 찾은 적이 있다. 6월의 햇살 아래 어린 모들이 제 땅에 뿌리를 내리며 재롱을 부리던 풍경은 마치 먼 이국의 동화처럼 낯설고도 아름다웠다. 야드레한 벼 포기들이 하늬바람에 살랑이며 춤을 추고, 부서지는 남해의 윤슬은 평화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 뒤에는 척박한 땅을 일구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의 고단한 숨결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이제는 안다.
작가는 글의 말미에서 사라져가는 다랑논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시골 태생인 나 역시 ‘동병상련’의 허전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찌 사라지는 것들이 다랑논뿐이랴.
거대한 문명의 물결은 작고 사소한 것들을 소리 없이 지우고 집어삼킨다. 농촌의 미풍양속과 옹기종기 5대가 한집에 모여 굴뚝에 연기를 내어 한솥밥을 먹으며 정을 잇던 대가족 문화의 소멸은 상전벽해를 이루어 원형과 본질까지 탈바꿈시켰다.
두레로 농사짓던 집단의 정, 마을 한복판 차일遮日을 두르고 벌인 잔치 모습, 온 동네가 슬퍼하며 상여에 망자를 모시던 장례문화 등 공동체 정신은 이제 박물관의 유물처럼 박제되어 가고 있다.
변화와 혁신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단지 풍경뿐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제 농촌에서 젊은이의 웃음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들처럼 노인들만이 고향의 명맥을 잇고 있다. 주인 잃은 다랑논에는 잡풀이 무성하거나, 농사 대신 관광객을 유혹하는 화려한 유채꽃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비록 다랑논의 원형은 사라지고 새로운 얼굴로 변모해가고 있지만, 그 땅에 서려 있는 조상들의 정신만큼은 잊히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커다란 욕심이나 명예보다 오직 가족의 배부름과 건강을 기원하며 땀 흘렸던 그 순수한 소욕少欲의 삶을….
오늘따라 다랑논에 아늘거리는 유채꽃밭의 노란 물결이 내 마음을 흔든다. 평생 흙을 만지며 정직하게 사셨던 조상님들이, 이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유채꽃 물결 속에서 환히 웃으며 편히 쉬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