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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바리와 사이조, 혼란스런 헨로미치
1.000엥 오셋타이에 내재된 여인의 강렬한 염원 덕인가.
비가 내리는 것도 모르게, 나의 헨로상 생활중에서는 최초로 숙면한 밤이었다.
헨로야도(遍路宿)라는 이름에 맞게 헨로상에게 편안한 잠자리가 되어주는 집인 듯.
그러나, 밤새 비가 내렸음에도 내릴 비가 남아있는 듯 불안한 아침.
비맞을 태세를 완비하고 헨로야도를 떠난 시각은 10월 5일(日曜日) 아침 6시 30부쯤.
우울한 날씨 외에는 150번현도를 따르는 헨로가 무리 없이 시작되었다.
코묘지의 반대편 골목 안에는 히기리다이시(日切大師/日切山弘福寺)가 있다.
두 절 사이를 지나가는 150번현도를 따라 다이묘징 강(大明神川橋)을 건넜다.
유로(流路)가 총8.65km에 불과하다는데도 폭이 꽤 넓은 강이다.
강을 건넜을 때 어제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던 159번현도가 다시 등장하고 헨로미치인 150
번현도는 골목길처럼 우측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그럼에도 60번레이조 요코미네지로 가는 헨로는 150번현도를 계속해서 따른다.
골목길을 헤매듯 해야 함을 의미한다.
일요일이기 때문인지 아직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이른 아침의 마을길이지만 이따금 등장
하는 사각 헨로석주의 확인을 받으며 신호등교차로를 건넜다.
상대 도로는 중앙선침범 절대금지의 '광역농업용도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농촌지역 영농 중의 교통안전을 보장한다는 의지를 담은 도로 같아서 부러웠다.
각종 영농기계 없이는 농사가 불가능하게 된 우리 농촌.
기계 의존도가 절대적이며 이로 인해 각종 사고(농기계들의교통사고)가 격증하고 있지만
막을 대책이 막연한 우리 현실에서는 부러운 정책중 하나다.
교차로를 건너 사이조시립 토요니시중학교(西条市立東予西中學校)를 지났다.
요시오카(吉岡)우편국, 사이조경찰서의 신마치주재소 등이 모여 있는 신마치(新町).
옛 '신마치다이칸쇼'(행정관소)가 있었음을 알리는 기둥판(新町代官所跡)이 서있는 곳.
잦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분해되기 전에는 이 지역이 신마치의 다운타운이었을 것이다.
150번현도가 신마치에서 좌로 지그(zig)하여 노변의 석등(石燈籠)을 지난 후 재그(zag)
하면 가미이치(上市/西条市)다.
지그재그를 다시 하면 현도가 150번과 155번으로 양분하고 헨로미치도 두 길을 따르는데
내가 택한 헨로는 후자다.
너른 들판의 농사용 수로를 건넌 후 얼마쯤 지나서, 단바라 초 이케다(丹原町池田)마을에
진입하여 헨로는 155번현도를 떠난다.
헨로는 이케다 마을회관(池田集會所)을 지나는 길을 따라서 V자 형태로 헤어지다가 현도
(155번)와 평행 상태를 유지하며 남하한다.
마을길이며 농로지만 정지가 잘 된 포장로라 현도에 뒤지지 않는 길이다.
농사용 수로를 건너서 직진을 계속하고, 우측에 자리한 진자(天滿神社)입구를 지나 다른
농사용 수로를 건넌다.
이어서 신호등 있는 사거리에서 48번현도와 교차하여 사이조시청단바라지소(西条市丹原
總合支所)와 단바라소학교(西条市立)가 좌우에 있는 길을 지난다.
헨로미치는 헨쇼지(遍照寺)와 에미시마진자(惠美洲神社)를 지나 교차하는 사누키카이도
(讚岐街道)의 우측을 따라서 147번현도 한하고 직진한다.
일본의 3대신흥종교(天理敎, 金光敎, 黑住敎)중 하나라는 콩코교탄바라교회 앞에서 남행
하는 현도(147번)에 합류하여 너른 나카야마 강(中山川/石鎚橋)을 건넌다.
행정구역이 사이조시의 탄바라초 이케다에서 코마츠초 오토(小松町大頭)로 바뀌며 60번
요코미네지9.07km를 알리는 헨로석주를 지난다.
이어서 이와네공민관(西条市石根公民館)을 지나고 농사용 수로를 또 건넌 후 이와네소학
교(西条市立)를 지나 11번국도(小松街道)를 횡단한다.
오토교차점(大頭交叉点)인데 보도교를 이용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사이조 시에 진입한 후 헨로미치의 분기점이 6곳이나 된다는 것.
시코쿠헨로 88레이조(1200km)의 아루키 헨로상에게는 이 안내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되레 헨로상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택일을 요하는 약간의 우회헨로가 아니다.
88레이조에는 들지 못하나 버금간다는 벳카쿠(別格) 또는 방가이(番外) 레이조라 불리는
사찰이나 다른 이름 있다는 사찰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혼란을 줄 뿐이다.
11번국도를 건넌 헨로는 묘다니강(妙谷川)과 함께 가는 147번현도를 따라 등대처럼 키가
큰 타카토로(高燈籠) 앞을 지난다.
타카토로는 이시즈치진자(石土神社/小松町妙口)의 석등롱으로 국가지정등록문화재란다.
마을의 북서쪽 산기슭에 자리한 높이 9.5m, 하부직경이 약 1.5m되는 등롱으로 이 지역의
랜드 마크로 사랑받고 있다나.
고가 마츠야마(松山)자동차도로 밑을 통과한 후 코마츠초 오고(大鄕)마을회관을 지났다.
한참 전진해 요코미네지 전방 7km 지점, 오고마을에서 휴게소를 만났다.
사이조 시에 들어선 후 최초의 헨로휴게소다.
아침에 벤토를 샀지만 먹을만한 장소가 없어서 먹지 못했을 정도로.
마츠야마 시 이후 헨로상에 대한 관심도가 시들한 느낌이 완연한데 까닭이 무엇일까.
이마바리와 사이조, 2곳 시(市)는 아루키 헨로상을 위한 시설(휴게소 기타)이 열악하며,
주말(土, 日)이기 때문일까 인사성(특히 학생들)도 냉랭한 편이다.
그렇다면 거민들은 평일에만 인사를 나누고 학생들은 등.하교때만 인사하는가.
극진한 오셋타이 여인과 극과 극의 대조를 보이고 있다.
난이도 최고인 최후의 코로가시 헨로미치 요코미네지
해발 70m에서 완만하게 오르는 길.
마츠야마자동차도를 지난 때부터 이따금 보이던 감나무지대가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노변의 대사상(大師石像/코보대사?)을 지난다.
뒤에 있는 작은 건물은 대사가 1박한 집이라고 전해온단다.
이어 (주)아카사키(赤崎)설계 고마츠연수소 옆을 통과한다.
설계 전문업체 답게 특이하다.
'야마노킷사텐 텐도무시'(山の喫茶店てんとうむし/무당벌레?)
이색적인 커피집이라고 광고만 하고 문을 잠근 자가배전가배(自家焙煎珈琲)집.
고마츠초 이시즈치(石鎚) 길가의 문닫힌 커피집이 자꾸 돌아다보아졌다.
오자키하치만진자(尾崎八幡神社)를 지나 '60番橫峰寺4.2km' 표목 이후에도 요코미네지
전방 2.2km, 유나미(湯浪)휴게소까지 2km는 완만하게 오르는 차도다.
147번현도가 끝나는 곳, 해발300m 지점을 저변으로 하여 높이450여m까지 2.2km 사변을
오르는 직삼각형 형국의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에 견주면 해발1500m진달래대피소에서 백록담에 오르는 정도라 할까.
다른 점이라면 진달래대피소에 없는 수제 지팡이들이 이 휴게소에는 다량 있다는 것.
'오셋타이지팡이(お接待杖)'라며 어느 것이든 마음대로(自由に) 짚고 가란다.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헨로상은 알맞은 것을 짚고 올라가라는, 감바레(頑張れ
/힘내세요)의 뜻이 내포되어 있을 텐데 보는 것 만으로도 원기를 공급받는 기분이었다.
내 나라 호남정맥의 종점인 백운산(1.218m/전라남도 광양시)의 들머리(옥룡면 동곡리)에
등산용 지팡이가 한다발 놓여있었다.
광양소방서 119구조대가 대나무로 만든 '119안전지팡이'.
호남정맥 종주자와 지역 등산객들의 안전 산행을 염원하며 그들이 애써 만든 이 지팡이에
뭉클한 감동을 느꼈었는데 이국땅 시코쿠에서도 그랬다.
이 휴게소에는 지팡이 외에도 침구들이 있고 경고판도 있다.
테풍의 피해로 위험한 곳들이 많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전락, 전도와 미끄러짐, 낙석과 토사붕괴, 도목(倒木) 등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며 돌발적
악천후에는 등산을 중지하고 숙박할 수 있도록 비치한 침구들이란다.
우리가 주저 없이 본받아야 할 일본인들의 철저힌 준비성이다.
비록 짧은 거리, 짧은 시간이지만 드디어 등산다운 등산을 하게 되었다.
가뭄에 물 만난 물고기에 비할까.
신명이 났지만 초입의 주의환기대로 도처에 복병이 깔려 있다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울창한 숲속 음산한 지역의 바위지대와 계단들이 최근에 내린 많은
비로 인하여 매우 미끄럽다.
그렇기는 해도 안전산행을 위한 휴식용 나무탁자와 벤치들이 놓여있다.
또한, 요새 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얌전한 묘타니강(妙谷川)이 고마울 뿐이었다
등산의 기본적 난이도는 직삼각형의 빗변과 높이의 상호관계로 측정할 수 있다.
일정한 높이(해발)에서는 빗변(등로)이 짧을 수록 구배의 각(된비알)이 커지며(심해지며)
정해진 빗변의 길이에서는 높이의 장단(長短)에 따라 구배가 결정되니까.
또한 구배의 각이 커지면 밑변이 짧아지며, 밑변이 짧아질 수록 구배의 각이 커진다.
높이 450m에 빗변 2.2km가 이루는 각은 평균 10도쯤 된다.
등로(빗변) 2.2km는 장거리는 아니지만 굴곡이 심한 요코미네지 산길에서는 밑변이 짧아
지므로 된비알들이 불가피한데 미끄럽기까지 해서 조심해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 시코쿠레이조 중에서는 3번째 높지만 가장 어려운 '헨로코로카시'라 하는 듯.
고맙기 그지없는 만큼 안타까웠다
아침에 느낀 대로 간밤에 쏟아내다 어떤 사정으로 중단하여 남은 비를 안고 있기 때문인
듯 거북한 날씨가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그래서 쉬지 않고 먹지도 않고 계속 걸었는데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한 날씨.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산문을 통과할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각에 해발745m에 자리한 요코미네지의 산문을 통과할 때부터.
요즈음 이 지역에 내리는 비는 서서히 가속이 붙거나 힘을 더해가지 않고 시작하는 순간
부터 맹렬한 힘을 과시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까.
식사(아침겸 점심)도 참으며 갖은 애를 썼음에도 납경소 직전의 휴게소(通夜堂)에는 약간
의 비를 맞고 당도했다.
17km 남짓 걷는 동안에는 단 1명의 아루키 헨로상도 보지 못하였는데 츠야도에 도착하여
장년 헨로상 3인을 한꺼번에 만났다.
일행인 듯 한 그들은 막 떠나려다가 쏟아지는 비에 츠야도에서 멈칫거렸으며 잠시 후 9.6
km 전방인 61번코옹지(香園寺)를 향해 떠났다.
그 곳 슈크보에 예약이 되어 있다며.
긴 나무벤치와 나무탁자 몇개씩이 전부인 컨테이너(container)형 간이건물.
아루키 헨로상을 위한 야숙일람표에는 없는데 하기모리가 알려준 츠야도다.
나는 츠야도와 휴게소로 활용되고 있는 듯한, 이 단순한 입식 공간에 갇힌 몸이 되었다.
별동(別棟)인 이 집을 날려버릴 듯이 가공스런 바람과 함께 워낙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츠야도 사용 허락을 받으러 후다쇼까지 갈 엄두마저 내지 못하고 있는 것.
설마, 허락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 추방이야 하랴마는 올라오다가 츠야도와 지호지간
지점에 코야(小屋/觀音堂?)도 있음을 확인했으므로 불안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폭우와 동반한 이상 한파였다.
가을 한파가 몰려온 고산 산사의 추운 밤을 내 여름용 침낭이 이겨낼 수 있을까.
어둑해 가는 때, 풍우가 잠시 소강상태인 틈을 타서 후다쇼 직원의 허락을 받고 돌아왔다.
낮에 감 농원을 지날 때 손이 쉽게 닿은 가지에서 감 2개를 땄는데 1개는 이미 먹었고 남은
1개와 김밥과 빵으로 저녁식사를 할 요량으로 있을 때 낯설지 않은 중년 여인이 왔다.
조금 전에 후다쇼 직전의 요사채(?)에서 본 여인이다.
요코미네지의 청소담당 보살인 듯 한데 우중에 왜 왔을까.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갔으니.
얼마 후에 그 여인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한아름의 이불을 안고.
이부리어항의 진베광장에서 했던 것처럼 2벤치를 맞대어 침대를 만들고(메뉴'시코쿠헨로'
21번글참조) 깔아놓은 여름용 침낭이 너무 빈약해 보였던가.
침구의 도움을 부탁해 볼까 망설이다 말았는데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혼토니 아리가토고자이마스"(
여인은 농아(聾啞)?
진심으로 고마워서 인사를 했는데도 아무 반응 없이 돌아갔으니.
벤치로 만든 임시 침대에 두툼하게 깔고 덮을 수 있는 깨끗한 요와 이불이다.
두껍고 폭신한 요를 깔고 얇은 침낭위에 부드러운 이불을 덮어 침대를 완성했다.
더없이 훌륭한 침대에 누워 더없는 행복감을 만끽하다가 비로소 공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빵과 김밥을 주식으로, 당감을 디저트로 하여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그 여인이 또 왔다.
방금 끓인 듯 뜨거운 물통과 컵, 녹차 티백(tea bag) 2개를 담은 쟁반을 들고.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는데도, 이번에도 말도 표정도 없이 돌아갔다.
농아임이 분명하지만 더 이상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는 나는 안타까웠다.
그녀가 내게 이처럼 거창한 오셋타이를 베푼 까닭을 내 알 수 없지만, 그리 하고도 무반응
일 수 밖에 없는 그녀인들 오죽 안타까우랴.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