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부여답사 후기입니다.
1월에 일부 작성 일정이 생각이 잘 안나 기다리다 (일정담당 누구지? ㅋㅋ) 지쳐서 이제 정리해서 올립니다. # 오메 2.8메가 인데 업로드 안되어서 다시 편집했읍니다.
전통의 멋이 숨어 있는 부여
송정석
다랑쉬가 만난 주인공들은 모두다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들이며 이번 부여답사의 주인공도 그 아름답고 멎진사람들 중의 한분으로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인 김영모교수님이다. 학술지, 전통문화서적 등 여러경로로 김교수님에 대해서 먼저 알고 있었고 대면기회가 없었는데 지난 1월 어느날로 분당의 모처에서 뵐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김교수님의 첫인상은 직접뵈는게 최고의 선택이지만 굳이 표현할 필요 없이 완혜가 다랑쉬가 만난사람들에 기고한 “ 우연히 만난 멋진 인연 ” 곳을 읽어보면 잘표현 되어 있다. 그날 김영모교수님을 직접 모시고 나온 효천감사님은 이번 답사주제로 백제문화답사를 할 예정으로 답사에 대해서는 김교수님이 직접 안내를 해줄것이라고 현장에서 교수님을 협박(?)하는 정도로 안내부탁을 하였었고 나는 이후 부여답사까지 그날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2007년 3월 31일 북다랑쉬는 수원지사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효천선생은 김영모교수님을 모시러 가야 한다고 죽전으로 가자고 한다. 전번 1월에 만나 잊고 있었고 그당시 내가 알고 있는 교수님의 생활패턴은 평일에는 학교에서 강의 하시고 주말에만 오시는 주말부부인데 가족과 함께 보내셔야 할 휴일을 다랑쉬답사 안내를 한다고 하니 기쁜 마음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한편으로는 전감사의 적극적인 답사추진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그림 1) 정찬주 감리님
그림 1) 정찬주 감리님
수원지사에서 향암선생을 모시고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거처 1시간 30분여 만에 벌써 부여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하니 부여란 곳이 생각보다 매우 가까운 곳이다. 부여는 나의 고향가는길의 일부 축선상에 들어오는 곳이지만 별로 가본적이 없었으며 몇 년전 직원가족의 상가조문이 있어 잠깐 들렀을뿐 나에게는 낯설은 고장이다.
백제역사재현단지에 먼저 도착한 남다랑쉬 회원들과 인사를 한후 올해 첫 번째 답사인 부여답사를 시작하였다. 백제역사재현단지는 1994년부터 약 4000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부여일대에 건립되는 것으로 현재 공사가진행중으로 금성건축의 정찬주감리님의 도움으로 미리 조성현장을 방문할수 있었다.
백제의 역사는 성공한 역사인 신라와 달리 멸망국가로 사료가 소실되어 자료가 미약하지만 당시 시대적인 기록과 조사를 통해 복원이 아닌 재현을 한다고 한다. 궁궐 건축물도 소실되어 없지만 당시 일본에 백제문화가 전래되어 가장 근접한 사료를 참고하기 위해 일본조사도 하였다고 한다. 주궁에 들어서니 어도가 전돌이다 현재의 어도는 돌로 조성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전돌을 깔았다고 한다. 전돌을 자세히 보니 백제의 디자인을 볼수 있는 것으로 조각이 되어 있는데 시공과정에서 전문가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을수 있으나 가급적 문화적 특성을 나타내려 백제의 디자인을 조사하여 전돌에 조각을 사용하였다 한다. 주춧돌과 기둥이 전통기법 그대로 조성되고 있었고 시공단계의 설명을 들면서 최기영 명장이 “ 이음새 하나가 천년을 버티는 것이여 ” 라고 고건축을 축조하고 있는 장면의 광고가 나오는 데 바로 이곳에서 촬영을 하였다고 하니 이곳의 꼼꼼한 시공정신에 믿음이 간다.
그림 2) 재현단지 주궁
그림 2) 재현단지 주궁
그림 3) 어도
그림 3) 어도
그림 4) 궁궐 천장
그림 4) 궁궐 천장
그림 5) 목조탑
그림 5) 목조탑
우측에 이곳 단지의 랜드마크를 형성하고 있는 수직적인 건축물이 보이는데 백제시대 사찰의 목조탑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 사료와 함께 당시 전래된 백제문화와 가장 가까운 일본 사천왕사와 비슷한 건축물로서 축조방식도 독특하며 그비용도 70억원이나 든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백제문화재현단지의 관람을 마치고 정찬주 감리님과 기념촬영을 한후 다음 답사지이며 금강하류일대를 한눈에 볼수 있는 성흥산성으로 향했다.
성흥산성은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테뫼식으로,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 안에는 남·서·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 3곳과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가 남아있으며 우물터주변에는 현재도 약수터가 조성되어 있다. 663년 당시 이곳을 공격하던 당나라장수 유인궤(劉仁軌)가 이 성이 험하고 견고하여 공격하기 어렵다고 한 것에서 난공불락의 요새지에 마련된 성이었으며 답사길도 성안에 들어서기까지는 꽤나 험한 길이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하였다고 하여 해마다 제사드리는 사당이 있다.
그림 6 성흥산성 느티나무
그림 8 대조사 불상
해질녁에 성에 올라오니 아름드리 느티나무, 석성으로 된 성벽과 석양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느티나무 아래서 회장님이 직접 제조하여 가져오신 소시지안주에 막걸리를 한잔씩하며 당시 이곳을 지켰을 백제인에 이야기를 하였다.
그림 7 성흥산성 석양
그림 6 성흥산성 느티나무
그림 8 대조사 불상
그림 7 성흥산성 석양
저녁식사로 부여시내에 있는 구드래 나루터에서 웅어회를 맛볼수 있었다. 오랜전 배가 이곳까지 들어올때는 흥하였다고 하지만 현재는 몇곳의 횟집만이 이곳이 흥하였다는 걸 알수 있었다. 웅어는 멸치과의 어류로 우어, 위어, 웅애로 불리기도 하며 주로 바다에서 살지만 산란기에 하천으로 회유하는 습성이 있는 어류다. 예전에는 한강하류에서 많이 잡혔다고 하는데 현재는 이곳 백마강에서만 맛볼수 있는 귀한 물고기가 되었다 하니 묻혀진 백제의 역사와 달리 자연유전자원은 잘 보존되는 것 같다.
4월 1일 아침, 만수산 무량사의 분위기는 통일신라시대 건립된 전형적인 고사찰로서 극락전, 석탑, 조경수목 등 2005년 지리산 일대 생태문화답사 당시 그날 추운날씨에 실상사를 보는듯한 분위기다. 무량사 극락전은 아름다운 창살과 목조건축물로 동양에서 최대규모인 540cm의 흙으로 빚은 불상인 아미타소조불좌상(阿彌陀塑造佛坐像)이 모셔져 있으며, 사찰내에는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중이 되어 유랑생활을 하다가 이곳에 입적하여 현재 이곳에 김시습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림 6) 무량사
그림 6) 무량사
그림 7) 건물후면 배수처리
그림 7) 건물후면 배수처리
그림 8) 대웅전 창살
그림 8) 대웅전 창살
무량사 앞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후 부여시내로 향하여 김영모교수님과 교수님이 모시고 나오신 오늘의 부여 문화재 여계장님을 만나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약간의 흰머리와 얼굴에서 풍기시는 이미지가 백제의 후손처럼 따뜻하게 보이시는 여계장님은 다랑쉬를 위해서 휴일을 반납하시고 백제문화를 알리기위해 나오셨다 하니 항상 자신들의 일에 열정인 이런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그림 9) 건물기단쌓기
그림 9) 건물기단쌓기
그림 10) 부소산성 성벽길
그림 10) 부소산성 성벽길
관북리 유적은 백제의 왕궁터와 고려·조선시대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1983년에 충남도기념물 제43호(傳百濟王宮址)로 지정되었다가 관북리 725번지 일대를 포함하여 184필지 9만 5048㎡를 2001년 2월 5일 사적 제428호로 변경지정되었으며, 부소산성남측에 위치하여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로서의 학술적 의미가 크다. 이곳 유적은 현재도 발굴중이며 궁궐앞의 광로 도로의 석재도수로 등 곳곳에 당시의 역사를 볼수 있는 발굴현장을 많이 볼수 있는데 묻혀진 역사를 성급하게 발굴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복원을 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관북리 유적의 후원격인 부소산성은 테뫼식(산 정상 부근에 머리띠 모양으로 성을 쌓는 방식)과 다시 그 주위를 감싸게 쌓은 포곡식(성의 내부에 평지가 있는 형태로 성을 쌓는 방식)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토성으로 성을 쌓는 방식인 판축공법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성벽을 쌓는 분의 노력과 기술에 따라 달리 현재는 아이들의 놀이터와 등산로처럼 흔적만 남아 있는 성벽을 걸었다.
부소산성의 사자루는 이곳 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서 사방을 두루볼수 있는 곳으로 현재도 부여시내를 전망할 수 있다. “사진 잘 나오는 곳”의 위치에서 촬영을 하니 제법 사자루가 멎지게 잡히지만 앞에 있는 소나무가 오히려 거슬린다.
백마강변의 바위위에 세워진 정자인 백화정은 주변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삼천궁녀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6년에 세워진 정자로서 전설은 슬프지만 강주변의 전망하나는 멎진곳이다. 백화정 아래의 고란사는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0년(고려현종 19년)에 지은 사찰로 절뒤 바위 틈에 고란정이 있어 그 바위틈에 고란초라는 여러해살이 식물이 자라는 곳으로 이 고란정의 약수는 한번 먹으면 3년이 젊어진다고 하는 신비의 약수로 많은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이약수를 시음하려 북적인다.
이곳 고란사의 종은 부여 8경의 하나로 답사중에는 들을수 없었지만 노랫소리만큼 아름답게 강변에 위치를 잡았다. 고란사 나루터에서 관광유람선을 타고 백마강의 노래를 들으며 백제의 아픔이 서려있는 백마강과 낙화암 주변을 관찰하였다.
그림 11) 백화정
그림 11) 백화정
그림 12) 고란사
그림 12) 고란사
그림 13) 고란사옹벽
그림 13) 고란사옹벽
그림 14) 고란사 종
그림 14) 고란사 종
식사후 오후에는 정림사지 박물관과 정림사지를 에 들러 현재 일부많이 그 위치를 지키고 있는 정림사지와 탑을 볼수 있었다. 특히 이곳 정림사지뿐만 아니라 부여주변의 전통공간들은 백제의 문양을 활용해서 담장, 울타리, 벽면 등 외부 장식을 많이 활용하였다.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에 있어 오류나 오히려 전통의 계승인지 어색한 부분들도 많이 볼수 있는데 이곳 주변은 많은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백제만의 특색 있는 문양들이 많다.
그림 15) 벽면무늬
그림 15) 벽면무늬
그림 16) 울타리무늬
그림 16) 울타리무늬
그림 17) 담장무늬
그림 17) 담장무늬
그림 18) 포장무늬
그림 18) 포장무늬
성흥산성, 대조사, 무량사, 부소산성, 정림사지, 궁남지 등 백제문화는 오랜 역사와 함께 꾸밈보다는 소박한 맛이 있으며 여기에 백제세공기술의 백미인 금동대향로처럼 멎스러움도 함께 숨어 있는 곳이다. 잊혀진 역사가 이제야 복원되기 시작하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추진된다 하니 다행이다. 또한 잊혀진 기록들을 다시 찾으려 애쓰시는 김교수님 여계장님 같은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어 부여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 끝으로 이번답사안내에 휴일까지 반납하시고 수고를 해주신 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