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맛집계의 중원이자 정글이다.
원조집은 물론이요 이를 따라 생긴 수없이 많은 아류들이 군집을 이뤄 보이는 때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곳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중 어느 누구하나 최고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그 위세들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치찌개만큼은 마포 일대에서 25년째 독보적 왕좌에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굴다리 식당이다.
소박한 외관의 굴다리 식당은 행정상으로는 서울시 공덕동에 자리하고 있는데 내부로 들어서면 30평 남짓한 공간에 30명 정도 수용 가능한 테이블이 놓여 있다. 김치찌개 전문집 중에서는 기교적 넓은 공간이며 한눈에 보아도 관리가 잘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입구 정면에서 보이는 주방은 홀 내부 어디에서나 그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청결하여 손님들은 비교적 안심하고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아줌마 하나하나' '아줌마 두개두개'
단골손님들은 하나같이 암구어인 듯한 숫자로 채 자리를 잡기 전 부터 주문을 한다. 이 숫자들은 굴다리 식당의 메뉴인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의 개수를 뜻하는 것인데 메뉴라고 해봐야 이 두 가지 밖에 없어 주문하는 이나 주문을 받는 이나 헷갈릴 일은 없다.
밑반찬은 김, 열무김치, 꽁치조림등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곤 하지만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이 계란말이이다. 리필은 어렵지 않게 가능한 계란말이는 그 모양새부터 정성스러움이 느껴진다. 얇게 펴 부친 계란을 차곡차곡 말아 놓은 단면으로 이를 알 수 있는데 운이 좋으면 갓부친 것을 먹을 수 있지만 아니라고 해서 한참 전에 해놓아 차갑게 식은 것이 상에 놓이지는 않는다.
물론 평범한 계란말이이니 맛이 대단할 것은 없지만 밑반찬일 뿐인 계란말이에 이정도의 정성을 쏟는다는 것은 칭찬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부분이다.
대다수 식당의 김치찌개가 반조리 상태로 나오는 것과는 달리 굴다리 식당의 김치찌개는 완조리된 상태로 대접에 놓인다. 덕분에 주문 즉시 상에 놓이는데 칼칼한 맛을 내는 갓 끓인 찌개 맛을 원하는 이에게는 다소 부적합할 수 있겠다.
이걸 집어서!
이렇게 먹으면 환장합니다.
하지만 완조리 상태의 김치찌개가 내는 순하고 푸근한 맛의 매력은 반조리 상태의 김치찌개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맛이다. 마치 집에서 끓여 먹는 듯한 이집 김치찌개의 맛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돼지고기에서 우러난 것인데 비록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이 일방적으로 비계가 많지만 얼리지 않은 생고기여서 그 풍미와 치감이 훌륭하다.
찌개의 맛을 좌우하는 김치의 경우 적정기간만 숙성시킨다고 한다. 비록 김치만을 놓고 본다면 깊고 풍부한 맛이 묵은지에 비할 바가 못 될 테지만 굴다리 식당의 김치찌개는 돼지고기의 비계에서 우러나온 지방이 김치에 스며들면서 묵은지 못지않게 깊고 풍부한 맛을 낸다.
특히 순한 맛과 어우러지도록 비교적 짜지 않게 간이 잘 맞춰져 있어 만족스럽다.
굴다리식당의 김치찌개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은 국물이다.
역시나 돼지고기 지방과 맛좋은 김치가 육수와 어우러지면서 아주 훌륭한 맛을 내기는 하지만 달달하니 조미료의 맛이 느껴진다.
무시하고 먹어도 좋을 정도이긴 하지만 우짜든 아쉬운 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이제 곁가지로(어쩌면 메인일 수도) 제육볶음 소개 들어간다.
터프하게 잘려있는 돼지고기가 눈을 압도하는 제육볶음은 돼지기름과 볶아져 내는 고춧가루의 매운 냄새를 머금고 있어 코끝마저도 압도한다.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한 부위를 볶아서 내놓는 제육볶음은 그 육질부터 대단하다. 물론 찌개와 마찬가지로 비계의 비율이 상당히 많지만 신선하고 품질이 좋아 신선한 비계 특유의 아삭거림이 느껴져 살코기가 부족해 아쉬운 것은 대번에 사라진다.
게다가 쫄깃한 껍데기 역시 훌륭한 치감에 한 몫 더하는데 분명 산지 아닌 곳에서 이보다 더 선도 좋은 돼지고기를 맛보기란 쉽지 않음을 확신한다.
이렇게 푸셔서
비벼 드시라!
고기만 훌륭한 것이 아니다.
양념 또한 칼칼하게 고기의 맛에 힘을 더 해주는데 마늘 맛이 조금 강할 뿐 별다른 양념을 넣지 않아 전체적인 제육볶음의 맛을 푸근하고 정겹게 한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양념에 꼭 밥을 비벼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문은 물론 식당 내부까지 '맛있는 햅쌀밥 제공'이라 써 붙여 놓을 만큼 굴다리 식당은 그네들이 제공하는 밥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누구든 맛보게 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것이다.
물론 최고급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백반집의 묵은 쌀 공깃밥을 상기시켜본다면 전기밥솥에 지었음에도 알알이 살아있는 굴다리집 햅쌀밥의 품질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미각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혀의 고통이라 일컫는 매운맛.
헌데 요즘 기자의 미각에 1가지 감각이 더 추가된 듯하다.
친절한 맛이 바로 그것이다.
이 친절한 맛은 몹시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하면 생소금을 한줌 쥐어 입에 넣은 듯 짜게 느껴지고
모자라면 혓바닥이 따끔따끔하니 알싸하다.
반대로 적절한 균형을 갖추었을 땐 시나브로한 만족감이 사뭇 남다르다. 마치 겨울철 퇴근길, 영하의 한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집에 돌아와 따뜻한 이불 속에 손과 엉덩이를 천천히 밀어 넣은 그런 안락하고 편안한 맛처럼 말이다.
그런 요즘, 기자는 굴다리식당의 그 친절한 맛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손님 응대태도는 물론 수없이 밀려오는 추가 주문에도 상냥한 표정을 유지하는 종업원들의 친절도는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아 찾는 이의 맘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총평
기자 개인적으로는 시리즈에 소개된 식당 중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을 따름이다. 다시 먹고 싶은 김치찌개집을 가고자 한다면 주저 없이 굴다리 식당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이보다 더 객관적인 방법도 없는 듯하다.
물리지 않는 맛.
다시 먹고 싶은 맛.
더 줘서 그리고 상냥해서 친절한 맛.
본 기자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넘어 마력이어따.
....물론 최고는 아니다.
★★★★☆
맛도 훌륭한데 리필까지되는 햅쌀밥, 푸근한 맛이 너무나 흡족했던 김치찌개, 시골집에서 먹는 듯한 제육볶음. 기똥찬 밸런스다. 단 최고는 아니다.
푸근한 김치찌개를 찾던 이.
강한 맛이 부담스러웠던 이.
친절함과 인심이 그리운 이.
질 좋은 돼지고기를 원하는 이.
갓 끓인 김치찌개만을 원하는 이.
조미료 알러지가 있는 이.
묵은 쌀밥을 좋아하는 이.
비계가 부담스런 비만 여성.
그리고 남성
싸가지 없는 종업원이 좋은 이.
첫댓글 ㅋㅋ....글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한솥 도시락' 김치찌게 도시락 맛있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