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유현우,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과 2학년)
“현우야 괜찮아?”
처음 정신을 잃어서부터, 병이 모두 나을 때 까지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다. 5년 전, 나는 쓰러졌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중, 평범한 체육시간에, 평범하지 않게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친구들은 모두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 댓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생애 처음이었다. 아마, 마지막이기도 할 것이다.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이었다.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발작과 비슷한 경련을 하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보건실이었다. 주변을 살펴보고, 손과 발을 움직이는 짧은 찰나에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물밀 듯이 들어왔다. 혹시나 다시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될까, 손과 발이 마음대로 움직여지는지 수십 번을 반복해보았다. 내 몸이 정상이라는 안도감이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쓰러진 이유에 대한 불안함이 찾아왔다. 교실로 돌아갔을 때,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시선은 내 온몸 구석구석을 찌르는 듯 했다. 친구들은 수도 없이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괜찮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보았다. 첫 번째 검사가 끝나고, 나를 쳐다보던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그때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조영제를 투여하고 다시 진행한 검사에서 내 머릿속에 무언가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선생님의 표정에 연민이 묻어나왔다. 그 날 밤, 집과 3시간 넘게 떨어진 기숙사에 부모님은 2시간 반이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하였고, 간단히 짐을 정리하여 본가로 올라갔다.
며칠 후 서울대병원에서 진단받은 내 병은 뇌종양이었다. 잘 믿지도 않았던 신들이 원망스러웠고, 진단받았던 날 유달리 쾌청하던 하늘이 부숴버리고 싶을 만큼 미웠다. 진료를 받고, 나오며 간호사 선생님께서 괜찮은지 물어보셨다. 괜찮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밤새 눈물을 지우지 못하셨고, 어머니는 나를 부여잡고 미안하다며 거듭 이유 없는 사과를 하셨다. 지옥이었다. 몸보다 마음이 아픈 게 더 아픈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우는 것도 지쳐갈 즈음, 입원을 하고 수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입원을 하고서도 내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들은 입원 생활과 수술 과정 중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만 먼저 설명을 하셨고, 내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질문에 확답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의사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내가 살아서 나가는 것이 기적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괜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첫 병실의 옆자리에 계셨던 할아버지는, 아침에 수술 방으로 내려가시고 올라오지 못하셨다. 할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빈 침대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고, 잠깐 병실을 비우고 돌아온 사이에, 침대의 이름표에는 할아버지의 이름 석 자가 사라져 있었다. 비어있는 이름표를 바라보고, 내 머리맡에 있는 이름표를 다시 바라보았다. 괜스레 공허한 기분이었다.
MRI를 확인하는 진료에서, 담당 교수님께서,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의대를 잘 보내기로 소문난 학교인 것을 아시고, 내게 의대를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성의 없이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실제로 그때 당시에는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뿐 더러, 내가 건강하게 걸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확답을 하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했다. 진료 후에 나가는 내게 교수님께서 괜찮은지 물어보셨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드릴 뿐이었다.
수술은 새벽이었다. 자다가 일어나 약을 먹고 수술실로 출발하는 내게 부모님은 괜찮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겨우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괜찮고 싶었다. 괜찮으리라 기도했다. 수술실로 들어가 마취를 시작하면서도 머릿속으로 ‘괜찮을거야 현우야, 괜찮아’ 라는 말을 반복했다.
수술은 너무 성공적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4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중환자실에서 정신을 차렸고, 2시간 후에 부모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부모님께 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입으로 겨우 했던 말은 ‘이제 진짜 괜찮아’였다. 그 후에, 중환자실에서 너무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어, 지루해하는 나를 보시고 담당 교수님이 일반 병실로 올려 보내셨다.
몇 시간 뒤, 교수님이 올라오셔서 수술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셨고, 내게 축하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의대 오라는 말과, 신경외과를 하라는 말씀을 하시었다. 목이 메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감사한 마음에 나오는 눈물을 참고,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자 살짝 미소를 지으시고 나가셨다. 그때 결심했다.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되겠다고.
의대에 입학했다. 힘들었던 수험 생활을 끝내고 성공적으로 의과 대학에 입학했다. 감사한 마음에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교수님 덕분에 살 수 있었고,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에 왔다고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교수님은 신경외과에 와서 자신에게 수련을 받으라는 말씀과 함께 앞으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셨다.
문을 닫고 나오는 기분은 썩 괜찮았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 날 유달리 쾌청하던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다. 괜찮았다.
첫댓글 가장 잘 배우는 방법은 가르쳐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환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환자가 된 후 의사가 되는 방법이 아닐까요?
글의 전개가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습니다. 작품 자체가 감동이니 감동은 충분하나
중간에 반전이나 클라이막스가 있게 구성하면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수필의 형식을 잘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