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서 인생을 만나다
1.
올해도 여름휴가의 시즌이 왔다. 매년 맞이하는 여름휴가이지만 휴가지와 방법에 대한 생각은 매년 달라지는 듯 하다. 우리가족은 올해 휴가는 요즘 미스트롯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송가인의 고향으로 유명해진 섬, 진도에 가기로 결정하고 일찌감치 여행포탈사이트를 통하여 진도의 펜션을 2박3일 예약하였다.
하지만 출발을 앞두고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장인어른이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것이다. 팔순이 다 되신 노인이 병원에 입원하셨으니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입원하신 한전병원에 문안을 가니 걱정했던 것보다는 장인어른의 안색이 좋은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이석증으로 일시적으로 어지러움이 온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아내도 마음을 놓은 듯 하였다.
장인어른도 “걱정하지 말고 휴가 다녀오게. 노인네 아픈 거는 일상다반사이니. 예약취소하지 말고 얼른 다녀와.”하고 말씀해주셔서 우리의 여행은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우리는 분당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한 후 기름이 떨어져 망향휴게소에 들렀다. 기름을 가득 넣고 배가 고파 휴게소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망향의 별미라는 닭개장을 시켰다. 아내와 연서는 떡라면과 유부우동을 시켜 먹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로 졸음을 쫓아낸 나는 계속 운전하여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지나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호남고속도로 중간에 백양사휴게소에 들러 문어와 오징어 튀김으로 간식을 먹고 계속 졸음이 몰려와 잠깐 눈을 붙이고 진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더 마시고 계속 운전을 하였다. 진도의 펜션까지는 450km가 넘는 거리로 서울부산보다 더 원거리인 듯 하였다. 호남고속도로를 지나 서해안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오후 5시가 다 되어 우리가 예약한 산새소리펜션에 도착하였다. 아침 10시반에 출발하여 6시간 반만에 도착한 것이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고속 질주는 차에게도 무리인 것 같았다. 차도 열을 받은 듯 엔진에서 드르르 소리가 들리고 보닛을 만지니 손을 델 정도로 뜨거웠다. 펜션은 야외수영장이 갖춰져 있고 내가 생각한 것 보다 규모가 컸다. 관리동에 가서 열쇠를 받으려고 하니 딸과 강아지 밖에 없었다. 주인장에게 전화를 하니 우리가 묵을 펜션 앞에 있다고 하여 해당동으로 가서 주인장에게 열쇠를 받아 입실을 할 수 있었다.
펜션 내부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깔끔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어 이용하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침대가 너무 출렁거려 연서는 방방 뛰며 좋아했지만 아내와 나는 조금 불편하였다. 짐을 모두 차에서 방으로 옮긴 후 우리는 저녁식사를 위하여 차를 몰고 밖으로 나왔다.
진도의 유명한 풍경 중 하나인 세방낙조를 보고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세방낙조전망대를 가니 일몰을 보기위하여 사람들이 너무 몰려 있어 한산한 곳을 찾다가 근처에 다도해횟집이라는 식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바닷가에 위치하여 낙조를 보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진을 찍기 위하여 식당 앞 정원에 나오니 진돗개 두 마리와 식사를 마친 관광객들이 낙조의 시작을 보고 있었다. 구름이 약간 끼여 있어 완전한 오메가사진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남해안의 일몰은 붉은 기운으로 장엄하게 느껴졌다.
낙조를 보며 병원에 계신 장인어른이 생각났다. 어지럼증으로 넘어져 부상당한 어깨가 빨리 쾌차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서서히 저물고 있는 그분의 인생말년이 지금 보고 있는 일몰처럼 천천히 그러나 평온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퇴직과 함께 다가올 나와 아내의 말년도 너무 고달프지 않고 지금처럼 취미생활도 하고 교우관계도 유지하며 즐겁게 맞이할 수 있기를...
낙조사진을 다 찍고 나서 우리는 2박3일 동안 먹을 간식거리와 생수 등을 사기 위하여 진도읍에 있는 하나로마트로 갔다. 하나로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펜션으로 돌아오니 이미 9시가 넘어 우리는 샤워를 하고 다음날을 기약하며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2.
다음날 아침 우리는 기상을 하여 어제 편의점에서 사온 컵라면과 햇반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팽목항으로 향했다. 연서의 여름방학 숙제 중 “역사의 현장 다녀오기”라는 수행과제가 있어 팽목항을 역사의 현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가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슬픈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는 그 곳 팽목항에 도착하자 우리를 먼저 맞이하여 준 것은 안개였다.
김승옥이 소설 “무진기행”에서 묘사한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같은” 안개가 진도의 팽목항을 감싸고 있었다. 이렇게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무리한 운행을 한 선장과 관계자들에 대한 원망이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안전운행을 했더라면 팽목항을 가득 채운 노란 리본도 없었을 것이고, 그 가족들의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길었던 기다림도 없었을텐데...
갑질과 편법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세월호같은 안타까운 역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고 그래도 세상은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곳이라고 연서에게 자신있게 말해 줄 수 있는 대한민국, 통일과 평화로 가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되기를 다시 한번 기원하며 우리 가족은 팽목항, 그 슬픈 역사의 현장을 떠났다.
기름이 떨어져 우리는 에스오일에서 주유를 하고 진도타워로 갔다. 진도타워 전망대에 올라가니 한눈에 진도대교의 아름다운 모습과 진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너무 더워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 한참 있다가 배가 고파 점심을 먹기 위하여 밖으로 나왔다.
진도대교 북단에 있는 울돌목한정식 뷔페에 가니 저렴하게 한정식뷔페를 먹을 수 있어 부담없이 점심을 해결하였다. 점심을 먹은 후 연서가 “아빠, 진도에 왔는 데 진돗개공원에 가야지.”하는 바람에 진돗개테마파크에 가게 됐다.
진돗개테마파크에 도착하자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지 야외공원에 진돗개가 보이지 않았다. 시설관계자에게 물어보니 폭염으로 진돗개 공연이 모두 취소되어 실내에 진돗개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테마파크 실내로 들어가 기념관 안을 관람하였다.
한참을 냉방이 되는 실내에 있다가 아내가 “수영복을 가져 왔으니 해수욕장에 한번 가죠?”하여 우리는 진도에서 가장 유명한 가계해수욕장으로 갔다. 한참을 달려 가계해수욕장으로 가니 진도관광홈페이지에서 본 멋있는 가계해변이 나왔다. 우리는 가지고 온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수욕을 하였다. 하지만 연서가 몸이 안 좋은지 수영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우리는 한시간 정도만 해수욕을 하고 가까이에 있는 신비의 바닷길로 차를 몰아 갔다.
신비의 바닷길에 가니 뽕할머니와 호랑이 동상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해변을 보니 섬으로 가는 바다가 보였지만 바닷길은 3월말이나 열린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실내에 바닷길을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아까부터 몸이 안 좋다고 하는 연서 때문에 우리는 일찍 저녁을 먹고 펜션으로 돌아가서 쉬기로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하여 진도읍에 있는 수산물공판장 횟집으로 가니 손님이 너무 많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공판장 근처 전복집으로 들어가 전복뚝배기와 전복불고기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진도의 전복은 싱싱하고 쫄깃쫄깃한 식감으로 유명하다. 맛은 있었지만 전복의 양이 생각보다 적어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저녁을 마치고 어두워진 밤길을 차를 타고 펜션으로 돌아왔다. 어제 마트에서 사놓은 간식거리로 전복의 부족함을 달래고 진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3.
다음날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위하여 주인장을 찾으니 펜션의 수영장에 물을 갈고 있어 열쇠를 건네며 잘 쉬고 간다고 인사를 하였다. 다음에 또 오라는 말에 기회가 되면 다시 오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 코스로 해남의 땅끝마을에 들르기로 하였다. 진도에서 40km 정도 거리로 다음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불확실하여 가기로 했는데 가는 도중 뜨거운 날씨에 무리를 해서 그런지 차에 문제가 생겼다.
땅끝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가파르고 구불구불해 힘들게 올라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더운 날씨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하여 휴게소 매점에 들렀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차를 자세히 보고 타이어에서 연기가 난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가 확인을 해보니 정말 하얀 연기가 뒷바퀴타이어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타이어를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서 보험회사 긴급출동서비스를 호출했다. 잠시 후에 핸드폰으로 연락이 와서 30분쯤 걸린다고 하였다. 우리는 전망대로 올라가서 눈앞에 보이는 남해안 땅끝 전경을 바라보았다. 한반도의 최남단 땅끝마을은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차에 대한 에피소드도 하나 제공해주었다. 고속도로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정비기사를 기다렸다.
도착한 정비기사는 타이어와 차량을 점검하고 타이어 문제가 아니라 타이어 뒤에서 바퀴를 보호하는 고무패드가 녹아서 너덜너덜해졌다고 했다. 떨어진 고무패드와 타이어가 마찰을 일으켜 연기가 난 거라서 고무패드를 일단 탈착하고 운전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정비기사가 가지고 온 벤치로 패드를 탈착시켜 조치를 해 주었다. 우리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타이어 때문에 예민해져 우리는 서울로 가면서 휴게소에 자주 들러 타이어 및 차량상태를 점검해주었다. 10년과 10만km를 넘으면서 빈번하게 문제를 일으키는 차량을 이제 바꾸어 줄 때가 된 것이라는 아내와 연서의 말에 나는 올라오며 최근에 새로 나온 현대의 SUV차량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아내와 연서도 좋아하였다. 하지만 15년을 넘는 세월동안 우리가족과 함께 한 지금의 소형차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고생만 시키고 늙으니까 고려장하듯 폐차할 생각만 하는 우리가 미워서 타이어에 연기를 피워서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하였다,
군산휴게소에서 유부초밥과 메밀국수로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저녁이 되기 전에 늙은 애마와 함께 서울에 무사히 도착을 하였다.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도착한 후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뜨거워진 보닛을 어루만지며 차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첫댓글 박종성 전국장님 제가 댓글을 단다는게 실수로 글을 삭제해서 박국장님 댓글이 사라졌네요 죄송합니다 즐거운 한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