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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요한계시록 2장 8절)
서머나는 주전 3,000년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주전 800년 경 도리아인들의 침략을 받아 그리스로부터 쫓겨난 이오니아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터키 중서부에 걸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유명한 장님 서사시인 호머(Homer)가 태어나 활약한 곳도 바로 이곳 서머나였다.
한 때 리디아 왕국의 침략을 받아 페허가 된 이 곳에 알렉산더 대왕은 피구스 산 기슭에 성벽을 쌓고 새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 후 서머나는 버가모(Pergamum)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로마제국에 편입되어, 주전 3-2세기 희랍 시대에 크게 번성하였고 항구 상업 도시로서 유대인들이 이곳에 많이 살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이곳의 초대 교회를 핍박하였고,(계 2:9-10) '유대인들의 훼방'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이와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머나는 비잔틴 제국, 셀주크-오토만 제국 그리고 터키 등의 역사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그 지리적인 중요성때문에 계속 번성하였다. 비잔틴 제국은 도시 곳곳에 기독교적 유적을 남겨 놓았으나 아랍 및 터키인들의 침략으로 기독교 유적은 거의 사라졌으며 수차례의 자연 재난으로 거의 모든 고대 유적지가 대파되었으나 오늘날 여전히 옛날의 영화를 누리고 있다.
서머나교회 (폴리캅 기념교회)
서머나 교회는 황제 숭배 반대로 많은 박해를 받았을뿐 아니라 유대의 적대 세력을 만났지만 주님께 충성했기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받은 교회이다.(계 2:9-10)
요한계시록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상적인 것들 즉 가난, 비방 그리고 고난 등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 며 이들이 부요함과 역사적으로 좋은 평판을 얻게 될 것 을 시사해 주고 있다. 시내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서머 나 교회(폴리갑 기념 교회)는 17세기에 새로 지어진 건물 로 여러가지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
사도 요한의 직계 제자였으며, 그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았던 폴리캅은 115-116년 까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다.
156년에 서머나 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지방 총독인 스타티우스는 빌라델비아 등지에서 잡아 온 11명의 기독교인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야수의 먹이로 희생 시켰다.
이때 폴리캅은 밀고로 체포된 상태에 있었는데 어릴 적 부터 친구였던 스타티우스는 그를 살리기 위해 그의 신앙을 부정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폴리캅은 '86년간 나는 그분을 섬겨 왔고, 그분은 나를 한번도 모른다고 한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하란 말인가?' 하고 거절하였다. 군중들은 그를 사자밥이 되게 하라고 외쳤으나, 총독은 경기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에 성이 난 군중들은 물러가지 않고 그를 장작더미에 올리라고 외쳐댔다. 할 수 없이 화형에 처했는데 군중들은 '이 사람은 우리 신의 파괴자다. 기독교인들의 아버지다' 라고 외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기독교인으로서 최대의 찬사가 아닐까?
오늘날에도 그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그가 세웠던 교회 위에 현대식으로 폴리캅 기념교회를 세우고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3. 사데(Sardis) 교회
사데의 뜻: 남은 물건
소아시아 서쪽 해안에 있던 루디아
B.C 1200년경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지대이었다.
세월이 흘러 감에 따라 상업 도시로 번영하였으며 직물과 귀금속 생산지로 이름난 곳이다.
이곳에는 여신 시빌리의 신전이 있었고 부도덕한 제사의식이 거행되었다.
사데 교회가"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자"라는 경고를 받게 되었던 것도 이같은 밀의 종교의 보도덕한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 문이다(계3:1
B.C. 6세기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 크로수스 왕은 서구인들에게 부를 상징하는 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사데는 당시 부유한 상업도시로 직물, 귀금속 생산 및 사금이 유명하였으며 인류 최초로 금화를 만든 곳이기도 했다. '마이다스의 황금의 손' 전설의 근원지이기도 하다.이 곳에는 아시아 지역의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데미신전이 있었으며 부도덕한 제사의식이 거행되곤 하였는데 사데 교회가 경고를 받게 된것은 교회가 매우 번성하고 활동적인 반면 이러한 '밀교'의 부도덕한 영향을 받았으며 외관상의 일만으로는 완성된 일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로마 시대에도 이곳은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활을 하였으며, 1914년 프린스턴 대학 팀이 발굴을 시작하여 지금도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비잔틴 시대에 교회로 사용되었던 교회의 유적은, 거대한 아데미 신전의 뒷편에 있으며, 아데미 신전은 BC 335년 ALEXANDER 대왕에 의하여 재건 되었는데 이 신전은 희랍 시대에 가장 큰 신전 중의 하나로 크기가 약 100 미터 X 50 미터였다.
사대교회-현재 :사르트(sardis)
| 성서의 내용 B.C. 6세기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 크로수스 왕은 서구인들에게 부를 상징하는 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사데는 당시 부유한 상업도시로 직물, 귀금속 생산 및 사금이 유명하였으며 인류 최초로 금화를 만든 곳이기도 했다. '마이다스의 황금의 손' 전설의 근원지이기도 하다.이 곳에는 아시아 지역의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데미신전이 있었으며 부도덕한 제사의식이 거행되곤 하였는데 사데 교회가 경고를 받게 된것은 교회가 매우 번성하고 활동적인 반면 이러한 '밀교'의 부도덕한 영향을 받았으며 외관상의 일만으로는 완성된 일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로마 시대에도 이곳은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활을 하였으며, 1914년 프린스턴 대학 팀이 발굴을 시작하여 지금도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비잔틴 시대에 교회로 사용되었던 교회의 유적은, 거대한 아데미 신전의 뒷편에 있으며, 아데미 신전은 BC 335년 ALEXANDER 대왕에 의하여 재건 되었는데 이 신전은 희랍 시대에 가장 큰 신전 중의 하나로 크기가 약 100 미터 X 50 미터였다.(퍼온글) 사대교회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신앙적으로 거의 다 죽어가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와 비슷하게 신랄한(?)책망을 받는다 "살아 있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극소수 이지만 순수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이 다시 소생 하도록 깨우쳐 주면서 회개 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사대교회에 대해서 급박한 재림을 강조하여 시대적인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오늘날 사데 교회 유적도 기원도 잘 모른다. 거대한 아테미 신전의 유적 뒤편에 붙여지은 비쟌틴 시대의 조그만 교회 유적지를 살펴 볼 뿐이다. 혹시 거대한 아테미 신전의 유적을 교회유적으로 착각 하는 것은 아니겠지? 왜 교회터를 그렇게 잡아서 지었을까? 어쩌면 아테미 신전 터도 교회의 부분으로 같이 사용햇던 것이 아닐까? 헐어 버리기에는 당시의 기술과 지방교회로서는 상상도 못했을 터이니...... |
4. 두아디라(Thyatira) 교회
두아디라의 뜻:회생
버가모에서 남동쪽으로 약 32km지점
(1) 소아시아 루디아 도에 있는 성읍으로 빌립보의 여신도 루디아의 고향이다(행16:14).
(2) 소아시아 일곱 교회중의 하나(계1:11, 2:18).
(3) 음행,간음,사탄의 깊은 것이라 하여 심하게 책망하였다(계2:20-24).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 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대 주께서 그 마을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한지라 (사도행전 16장 11절- 14절)
버가모와 사데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B.C. 7세기 경 리디아(Lydia)인들이 거주하며 "펠로피아(pelppia)"라 불렀다. B.C. 3세기경 SELEUCUS 1세는 이곳에 도시를 세우고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 시켰으며, 한 때 로마와 동맹 관계에 있던 버가모 왕국의 지배 하에 있다가 로마의 속령이 되었다.
비잔틴 제국 시에는 아시아 일곱 교회 중의 하나가 위치하여 크게 번성하였으며 1425년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두아디라의 역사적 중요성은 군사적인 것과 상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이다. 두아디라는 지형상 훌 륭한 요새라고는 할 수 없으나 지리적으로 길고 넓은 골짜기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많은 유대인들을 이주시켰기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상술과 지리적 특성은 자연히 상업도시로 번성케 했으며, 이때 이미 상인조합(길드/Guild)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행전 16:11-15 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에 빌립보에서 '두아디라에서 온 루디아'를 만났다고 되어 있다. 루디아는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다. 현재 두아디라는 과거의 어떤 유적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도시의 한 귀퉁이에 아마도 아폴로 신전으로 보이는 신전 하나와 회랑이 있는 길 그리고 하나의 커다란 비잔틴 교회 기둥들만이 부서진 상태로 그냥 방치 되어 있다.
동방으로 통하는 대로상의 상업 중심지. 오늘날의 소도읍 아키사르. 옛 시대의 잔재는 남이있는 것이 없다. 질그릇에 대한 언급은 그 도시의 산업중 하나를 반영시켜 주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산업은 염료(자주빛) 업이었다. 자주장사로서 빌립보에서 바울을 만났던(행16:14) 루디아는 두아디라 출신이었고 또 집에 돌아가서 그 곳에 교회 세우는 일을 도왔을 것이다. 그 교회의 또한 여자는 교인들을 그들의 믿음에서 떠나 부도덕에 빠지게 하였고 그 악한 영향으로 인하여 요한의 편지에서 구약의 인물과 짝을 이루는 제2의 이세벨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변함없는 신앙생활
(요한계시록 2:18-29)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게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 위대로 갚아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집, 가구,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만큼은 바꿔지면 안될 요소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풍향계처럼 바람따라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정황이 변하여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이 변하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주님께서 두아디라(버가모와 서머나교회 중간에 있는 초대교회 중의 하나) 교회를 칭찬하시고, 책망하시고, 권면하신 말씀을 통해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결단 할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칭찬 받은 행위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칭찬 받은 내용은 다섯 가지인데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입니다. 그 내용들을 자시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사업은 주님을 위하여, 주님 때문에 하는 일을 말합니다. 계2:2에 '네 행위와 수고를 알고' 라는 말씀은 주님 때문에 힘쓰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 일이요 칭찬 받는 사업이 될 수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 교인들과 같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인생 가운데서 주의 일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남자집사가 급환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평소에 예배위원으로 봉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치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실에서 예배를 드린 후 그 집사는 '목사님, 퇴원하면 잘하겠습니다. 이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집사님, 무얼 잘 하시겠다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목사님 안내위원, 헌금위원으로 봉사하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작아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이 주님의 일이라면 기쁨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주님은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 사랑은 말(言)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참 사랑은 행동과 실천이 있을 때 가치가 있으며 자기 목숨까지 바치는 것을 사랑의 최고경지라고 합니다. 요일3:18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라고 기록합니다.
③ 믿음 사업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 분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행해야 생명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집사, 권사, 장로, 목사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④ 섬기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직분을 가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섬기는 일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치있는 일인지를 발견하고 섬기는 자세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⑤ 끈기있게 인내하는 일입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행했던 주의 사업 가운데 인내를 가지고 계속적인 섬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점점 성숙되는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보고 무엇을 칭찬하실 것인가, 나에게 믿음이 있는가, 하늘나라 갈 때까지 주의 일에 동참하는 인내가 있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책망을 살펴봅시다.
20절에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내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세벨은 北이스라엘의 7대왕 아합의 부인입니다. 그녀는 바알 우상을 섬기는 지중해 해양 국가인 시돈왕국 출신이었습니다. 이세벨은 아합과 신하와 온 백성에게 우상숭배를 가르칩니다. 정략적으로 정책적으로 우상을 섬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은 우상숭배뿐 아니라 그것을 지적하고 반대하는 엘리야 선지자를 잡아죽이려고 합니다. 그 죄의 모양은 이세벨이라는 이름 속에도 나타납니다. 이 여자는 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왕권을 이용해서 백성의 재산을 약탈합니다. 그래서 남편 아합의 왕조는 이 여자로 인해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상숭배를 햇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세벨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상숭배의 문화, 사상을 대적해야 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야 됩니다.
본문은 이세벨을 용납할 때 세 가지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침상에 던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인 질병을 통해서 징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은 원수에 의해 창밖에 던져져 처참한 심판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불행한 여자입니다(왕하9:33). ② 큰 환난 가운데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고통, 재난, 슬픔입니다. ③ 사망으로 그의 자녀들을 죽인다는 엄청난 심판입니다.
이세벨의 문화 즉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는 이 세 가지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는 생명과 기쁨과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권면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25절에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너희에게 있는 것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선물을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를 유지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잘 간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먼저, 예수를 바라볼 때 변함없는 은혜와 진리와 성령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우리는 변하기 쉬운 인간입니다. 히 12:2절에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은, 사탄의 유혹, 사망권세를 다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세례 받은 것은 예수님과 합일(合一)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산다는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변함없는 신앙생활로 고백하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5.버가모 교회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요한계시록 2장 12절)
이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된 곳이나, 도시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역사적인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더 시대부터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하자 그의 막료인 리시마쿠스(Lysimachus)는 버가모가 천연적 요새에 위치하고 있음을 깨닫고 산의 정상에 성을 쌓고 아크로폴리스를 형성 하였다.
리시마쿠스가 죽자 버가모 왕국이 탄생하였고, 이후 버가모는 로마 시대를 거쳐 비잔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문화와 의학의 도시로 번영하였다. 이곳의 부의 근원는 농업과 은광, 가축, 양털 직조 그리고 글씨 쓰는 양피지 였다.
양피지는 이곳에서 처음 제조 되었으며, 특히 유메네스 2세(B.C. 197~159)에 의하여 창설된 도서관에는 약 20 만권의 책들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신전 건물은 기독교가 국교로 채택된 후 버가모 교회로 사용되었다. (사진)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BC 133년 로마의 속주 아시아의 수도가 된 버가모는 천혜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황제신의 숭배를 거절한 기독교인들에게 대표적인 박해의 장소가 되었던 것을 배경으로 말씀한 것으로,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의 초대 감독으로 추측 된다. 그러나 속주 아시아의 수도는 후에 세력이 커진 에베소로 옮겨지게 된다.
아스클레피움
주전 4세기에 세워진 병원으로서 그 후 AD 400년대 까지 약 800년간 소아시아에서 의료의 중심지 역활을 하였다. 세계 최초로 정신요법을 중심으로 한 치료 방법을 써서 일광욕, 운동요법, 맨발걷기 요법, 음악요법 등으로 치료 하였다.
지진으로 대파 되었으나 아직도 그 잔해는 그대로 남아 있다.
환자는 이 긴 길을 걸으면서 나는 나을 수 있다는 암시를 받는 고도의 정신요법으로 치료를 받았다
아크로폴리스
SERAPIS를 위한 신전이 남아 있으며 비잔틴 시대에는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RED HALL에는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교회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신전 밑에는 SELINUS 강이 흐르도록 설계 되었다.
버가모 교회(pergamum)-현재:벨가마(Bergama)
| 성서의내용 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수 많은 이교의 잡신을 숭배하였다.도시주변 산성에는 제우스 신전 아테네 신전 트리얀 신전과 왕궁이 있었고 의학의 신-뱀 신의 신전도 있었다고 한다-(현재 군의관 뺏지 참고) 버가모 교회는 다른지역보다 더 심한 정치적 압력과 이교적 유혹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성서에도 "사탄의 왕자"가 있는 곳이라고 칭했나보다. "발람"(구약 민:22-25)이단의 상징이며 그 교훈은 거짓으로 순수한 신자들을 꾀어 타락 시키는 일이었다. 당시 니골라당은 소아시아일대를 감염 시킨 향락주의, 자유방탕주의 ,영지주의 혼합주의 의 합리화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신앙의 자유주의를 지칭한 것이라고도 한다. 안디바는 일곱 교회중에 유일하게 순교자 명단에 오른다. 그래서 이 교회는 칭찬을 듣는다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순교자가 있는 교회도 책망을 받는다. 오늘날 어떤교회 유형일까? 현재는 "벨가마"불리우며 그리 큰 도시는 아니나 주변 산위에 거대한 유적들로 쌓여 있다 버가모 교회의 기원이나 역사는 알 수없다. 지금 버가모 교회의 유적으로 인정되는 것도 요한시대의 교회 건물이 아니고, 로마시대의 다른 신전 건물이었으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채택된후 교회건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교회 건물로 순례객들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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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빌라델비아(Philadelphia)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요한계시록 3장 7절)
이 지역은 리디아(Lydia) 왕국 시대에 칼라테부스(Callatebus)라는 이름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그 후 B.C. 159~138 페르가뭄(pergamum, 성서의 버가모)의 앗탈로스(Attalus) 2세, 필라델푸스 (Philadelphus)는 동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이 지역에 도시를 건립,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라델비아라고 명명했다. 이것은 합성어 로써 '형제애'를 의미한다.
주후 17년과 23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 이 도시가 대파 되어 이 도시에는 아무런 고대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이미 마을이 들어서 있어 발굴도 불가능하다. 다만 기독교 유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 하나가 파괴된 모습으로 나마 남아있다. 이 교회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져 사도 요한에게 바쳐졌다.
비교적 높은 4개의 도움으로 구성된 이 교회의 벽에는 11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가 희미하게 남아있으나 그나마도 점차 마모되어가고 있어 방문하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빌라델비아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충성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곳은 사데, 버가모 그리고 라오디게아와 히에라 볼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이들을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 였다. 이곳은 농업과 가죽제품, 직조업이 주요 산업이며 농산물로는 포도를 재배 하였는데 소아시아 내의 300여 교회에서 쓰는 성찬식 포도주를 무료로 공급하여 형제 사랑을 실천하였다.
지금도 이 곳에 수십km의 포토밭이 펼쳐져 있다. 또 빌라델비아는 아랍인들의 침략속에서도 끝까지 남아있었던 기독교의 마지막 보루였었다
빌라델비아(Philadelphia)
뜻: 형제 우애
리디아(Lydia) 왕국 시대에 칼라테부스(Callatebus)라는 이름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그 후 B.C. 159~138 페르가뭄(pergamum, 성서의 버가모)의 앗탈로스(Attalus) 2세, 필라델푸스 (Philadelphus)는 동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이 지역에 도시를 건립,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라델비아라고 명명했다. 이것은 합성어 로써 '형제애'를 의미한다.
사데에서 4키로 동쪽의 소아시아 루디아 성읍. 소아시아 고원지대와 서머나 사이의 중요한 산업도시.
B.C 138년 이전에 버가모왕 아탈저스 빌라델 버스가 세운것으로 언제 교회가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계록에는 일곱 교회의 하나로 나타난다(계3:7-13).일찌기 순교자가 생겼고 1300년 이후 대감독 구역이 되었다.
주후 17년과 23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 이 도시가 대파 되어 이 도시에는 아무런 고대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이미 마을이 들어서 있어 발굴도 불가능하다. 다만 기독교 유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 하나가 파괴된 모습으로 나마 남아있다. 이 교회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져 사도 요한에게 바쳐졌다.
일곱 교회중 유일하게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는 교회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한 것 같으나 내실이 있는 교회였다. 이 교회는 건실한 신앙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쳤으며, 여러 가지 신앙의 시련이 닥쳐와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인내와 성실로써 현실을 잘 극복해 나갔다. 그래서 "성전의 기둥과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약속된다. 오늘날도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습이다.
7.라오디게아(Laodicea) 교회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 하는것을 내가 증거 하노라 (골로새서 4장 13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이가 가라사대 (요한계시록 3장 14절)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 프리지아(Phryghia, 성서상의 부르기아)의 수도로 교통의 요지인 리커스 계곡에 위치하여,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발전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셀리우코스(SELEUCID)왕가의 안티오쿠스(ANTIOCHUS) 2세가 그의 부인 LAODICE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라오디게아라 불렀다.
라오디게아는 근처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내리는 온천물이 이곳에서 만나기 때문에 질병치료에 도움을 주었을 뿐아니라 귓병을 치료하는 특효약과 콜로니온이라 불리우는 안약의 산지로 유명하여 의료도시로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
역사상 수차례의 지진으로 인하여, 이 도시의 유적은 대부분, 땅 속에 파묻혀 지금은 황무지화 되어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 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계 3:15~16)
이곳에서 6.5KM 떨어진 히에라볼리의 온천 물이 수로를 통해 라오디게아로 흘러 들어오게 하였다. 라오디게아의 온천 물은 이곳에 도착하면 식어서 덥지도 차지도 않은 물이 되었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음이 덥지도 차지도 않음을 책망하고 있다.
골로새서에서도 라오디게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골 4:16, 2:1, 3:13~15) 특히 마지막 절의 문안인사에서 라오디게아에 있는 "눔바"라는 여자의 집에 교회가 세워 졌음을 알 수 있다.
파묵칼레 (PAMUKKALE)
목화의 성이라는 뜻의 파묵칼레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성서상의 히에라볼리이다. 산위에서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