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와 고서점 이야기
이광주 | 2003-08-01
독서인의 기쁨과 즐거움의 하나가 고서점을 찾는 일이다. 학생 시절에는 참으로 고서점들을 자주 찾았다. 고본을 찾아 고서점엘 갔다기보다도 책을 찾아갔다는 것이 오히려 적절할 것이다. 50년대 초반만 해도 신간 서적이라는 것이 별로 없어 고서점이 아니고는 서점을 찾아간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당시의 출판사로 기억되는 것도 을유문화사뿐이며, 서점으로는 종로서적 정도이다.
고서점은 참으로 많았다. 종로 거리와 충무로, 인사동 일대, 광화문에서 서대문 네거리까지. 그 밖에도 사대문 안 어느 골목에 들어서건 한두 집은 반드시 있었다. 고서라 하지만 대개가 일서(日書)이고 그것들 틈에 약간의 우리 책이나 양서가 끼어 있었다.
나는 상당히 게으른 편이지만 책을 찾는 데는 부지런하다. 나에게 책방은 보물섬이었으며, 그곳에만 들어서면 먹이를 노리는 사냥개처럼 나는 일순 기민해지고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다.
책방은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찾아가고 없어도 찾았다. 가난한 학생이면서 갖고 싶은 책에 대해서는 욕심을 부렸다. 1970년대 초 서독행 여권을 손에 넣고 잠을 이루지 못 한 밤,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린 것도 유럽 여기저기의 서점들 풍경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고서점들을 찾아볼 수 없다. 눈에 띄는 것은 신간 서점과 헌책방들뿐이다.
유네스코는 1964년에 ‘서적의 생산 및 정기 간행물에 관한 통계의 국제적 기준을 만드는 권고안’을 채택, 거기서 책을 정의하였다. 그에 따르면 책이란 ‘표지는 페이지 수에 넣지 않고 본문이 적어도 49쪽 이상으로 이루어진 비정기적으로 인쇄된 간행물’이다. 또한 유네스코는 첫 번째로 광고를 목적으로 발행된 것, 두 번째로 곧바로 없어지는 포말적인 것, 세 번째로 본문이 가장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것 등은 책이 아니라는 주석을 달았다. 그런데 고본에 관한 정의는 따로 없는 것 같다.
고본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일이 얼마나 지났건, 설사 어제 출간되었다 하더라도 주인이 바뀐 책, 즉 영어의 ‘세컨드핸드북’(secondhand book)과, 발간된 지 오래되어 더러는 희귀본이 되기도 한 ‘옛 책’(old book)이 그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본은 이 ‘옛 책’으로 생각하고 싶다. 우리가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고서점을 찾는 이유도 바로 이 ‘옛 책’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러면 얼마나 많은 세월을 거듭하여야 ‘옛 책’이라 할 수 있을까?
유럽에서는 구텐베르그의 활판 인쇄술 이전의 그리스·로마 시대와 중세의 사본 및 인큐내뷸라Incunabula)라고 불리우는 19세기에 발간된 초기 인쇄본을 진정한 고본, 즉 희귀본으로서 16세기 이후에 나온 책과 구별한다. 그 ‘옛 책’들은 책 중의 책으로서 떠받들어 장서가들이 몹시 탐냄은 물론, 그것을 몇 권 갖추지 못 하면 감히 반듯한 서재 혹은 도서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거슬러오르는 ‘옛 책’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꿈만 같다.
러시아에서는 출간하여 80년이 지난 책은 허가받지 않고는 해외 반출이 금지되어 있다고 들은 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 서화나 공예품들은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해외 반출이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책의 경우는 어떠할까?
나는 양장 이전의 우리의 옛 전통적인 서책들을 편의상 ‘고서’로 부르고, 8·15 해방 이전의 책들은 ‘옛 책’, 즉 고본으로 생각하고 싶다.
지금 서울과 우리의 크고 작은 여러 도시에는 고서점은 별로 없고 헌책방만 눈에 띈다. ‘헌 책’이라 하여 책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책이든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것보다는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면 ‘악서’가 없다고 할 것이며, 더욱이 헌 가구를 말하듯 ‘헌 책’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헌책방은 분명히 존재하며, 많은 고서점들이 부끄럽게도 헌책방이다. 왜 헌책방일까?
지금 우리 주변에는 버려진 책들이 범람하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가 버려지듯이 책이 버려지고 있다. 이사를 할 때 제일 먼저 ‘정리’ 대상이 되는 것도 책이다. 이런 현상은 영국이나 독일, 일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헌책방은 대체로 버려진 책들로써 잡다하게 서가가 메워져 있는 인상을 준다. 거기에는 사정이 있어 아쉽게 처분된 소장본들보다도 그저 헌 잡지, 헌 교과서와 한 묶음으로 정리된 책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헌책방의 가장 반가운 고객은 아마도 이삿집 뒤처리를 하다가 리어카에 가득히 버려진 책들을 나른 단골 손수레꾼일는지 모른다.
헌책방에도 가끔 ‘옛 책’과 뜻밖의 희귀본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가 묶음 속에 묻어온 것으로서 우연일 뿐이다. 헌책방이 고서점이 아니라 헌책방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주인이 책방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졌다기보다 고물상 같다는 점이다. 그러한 사실은 책이 책 대접을 못 받고 그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점포 안의 장면에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대접받기 위해 태어난 책이 대접을 못 받으면 그것은 더 이상 책이 아니다.
출판인과 편집자들이 책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독서인이 되어야 하듯이 서점의 주인 또한 독서가이며 애서가여야 한다. 더욱이 고서점 주인에게는 책을 둘러싼 폭넓고 깊은 교양이 각별히 요구된다.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책의 진가를 식별하고 희귀본을 발굴할 수 있는 서지학적 안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의 제일급 고서상 중에 예부터 서지학자가 적지 않았던 이유이다.
진정한 고서점이라면 유명·무명인사들의 장서인(印)이나 장서표를 대할 수 있는 책들이, 그리고 오래된 고서·한정판·저자 서명본·특제본·진본 등 애서가·장서가들이 탐내는 희귀본들이 그런 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몇 해 전 일본 동경의 유명한 간다(神田) 고서점 거리에 히틀러의 자필 서명이 든『나의 투쟁』(Mein Kampf)이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하는데, 그러한 희귀본의 출몰은 고서와 고서점의 선진국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고서점이, 기대에 설레면서 찾아갈 고서점이 참으로 아쉽다. 영국 웨일즈 지방의 고서점 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가 생각난다. 처음에 15채의 고서점으로 출발한 인구 1,300명의 이 고서 마을은 오늘날 세계 애서가들의 순례의 땅이 되고 있다. 우리도 지금 파주에 건설 중인 책마을에 고서점을 만들어 보자. 이 땅의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반듯한 클럽과도 같은 고서점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