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탐방/서울 세곡동 법수선원 조실 성수 스님
"선(禪)은 우주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지요."
취재정리.사기순 사진.윤명숙
1923년 경남 울산서 출생하였으며, 1944년 천성산 조계암에서 성암(性庵)스님을 은사로 득도 하였다. 정선 갈래사(현재의 정암사)와 한백산 원효대사터, 해인총림(조실;효봉스님)등 제방 선원에서 안거하였다. 조계사, 범어사, 해인사 주지.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총무원장 을 역임하였다.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서울 세곡동 법수선원 조실로서 함양군 안의면 황석산 아래 토굴에서 정진중이다. 저서로<불문보감(佛門寶鑑)>.<불문열반법어>,<선문보감 >,<나는 어데로>등 다수가 있다.
지리산 자락의 웅장한 기운이 남아 있는 듯 황석산 아랫마을인 황대마을엔 웬지 모를 서기 (瑞氣)가 서리서리 감돌고 있었다.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자리한 마을, 그 명징한 마을분위기에 걸맞게 인심도 고왔다.
토굴 입구의 고목나무가 매우 인상적이다. 고목나무에 핀 눈꽃이 장관이다. 큰스님께서 피워 내신 설화인 듯... 성수 큰스님은 조립식으로 지안 법당에서 십여 명의 대중(보살님 10분, 처 사님 2분)과 함께 입선 중이셨다. 입선이 끝날 때까지 역시 조립식으로 지어진 요사채에서 기다리는데 알 수 없는 감동이 일었다.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동안거 결제에 들어 대중을 지도하시는 스님, 그 청정수행의 가풍을 엿볼 수 있는 청복(淸福)을 누림에 기꺼워했다.
스님, 이곳에 오시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으십니까?
"70이 넘게 살아온 나를 돌아보니 스스로 부끄러워서 산 속에 찾아들었습니다. '세상사 다 잊고 한번 멋지게 내 걱정이나 실컷 해보자'는 생각으로 몸이 오기는 왔는데 3년이 다 되도 록 내 걱정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 산골가지 하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여태껏 남의 걱 정 하느라 바쁩니다. '이 늙은 중아, 장(奬) 값도 못하고 80평생 뭐 했느냐'하고 한 방 호통 치는 사지새끼가 찾아오면 한바탕 춤을 추고 싶은데, 오라는 사자새끼는 안 오고 늙은 할매 들만 자꾸 찾아와서 조르니 쫓아낼 수도 없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스님도 대중들도 똑같이 생활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 말은 늙은 할매라고 했지만 그 노인들이 내 스승이에요. 80이 넘은 분도 셋이나 되는 데, 그 나이 많은 분들이 용맹정진하고 있으니 고맙기도 하고 장하기도 합니다. 도를 알고 모르고는 차치하고 그 정성과 성의가 대단합니다. 내가 하루종일 땅에 등 붙이는 일 없이 정진할 수 있는 것도 다 저 노인들 덕분입니다. 오늘 살다 내일 죽더라도 하는 척하다가 오 도독오도독한 도(道)의 맛을 알고 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보통 노인분들에게는 염불공덕을 지으라고 하는데, 스님께선 염불보다 참선을 강조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禪)은 우주에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선은 석가 것도아니고 가섭 것도 아니고 중생것도 아닙니다. 오직 눈뜬 장부의 재산입니다. 이 재산은 자물쇠를 잠가놓지 않아도 훔 쳐 가는 이 없고, 우주법계에 가득 차 있어도 보는 이가 흔치 않습니다. 선은 익히는 것도 아니고 연습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한 생각에 있는 것입니다.
실로 선을 모르고 사는 삶은 스스로의 생명을 죽이는 자살죄를 범하는 것이에요. 선을 알고 살면 생사가 따로 없다는 진리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선은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선은 한 마디로 누가 일러줄 수 없는 자오자득(自悟自得)의 무가보(無價寶)입니다.
흔히들 화두를 주고 받는데 화두를 타서 견성하는 이가 있다면 내 목을 내놓겠습니다.
선사(禪家)에는 화두로 인해 깨쳤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싯달 내자는 화두 탄 일이 없습니다. 싯달 태자가 새벽 별을 보고 대각을 이루었는데 싯달 태자가 새벽별에게 화두 달라고 마음 낸 일도 없고 새벽별 당신도 화두 준 일이 없습니다.
화두는 주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옛날 중국의 지엄선사는 화두 하난 얻기 위해 벽송 선사에게 10년을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을 들여도 화두를 일러주지 않자 하도 억 울하고 원통해서 우레 같은 항의를 하며 울고 돌아서 내려가는데 벽송 선사가 '지엄아, 지 엄아'하고 부른 데서 깨달았습니다. 스스로 깨달은 것이지 화두로 인해 깨달은 게 아닙니다.
바로 지엄 선사에게 간곡한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애를 태워준 벽송선사가 진정한 선지식입 니다. 속히 일러주는 것은 도인 만드는 길은 아닙니다. 화두를 주고 받고 인가를 해주는 일 이 허다한데 이 모두가 다 서툰의원이 사람 잡는 격입니다. 도를 모르는 이에게 도를 알았 다고 점검해주면 그보다 더 큰일이 없는 것입니다."
스님, 젊은 날 당대 선지식들과의 일화가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새방 직후 우리 은사스님께서 해인 총림에 가라고 사시길래 찾아가니 당시 도감이셨던 구 산 스님께서 공양주를 하라고 하더군요. 공부하러왔지 공양주 하러 온 게 아니라고 버티니 부조실이셨던 인곡 스님께 데려가더군요. 인곡 스님 앞에서도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니 나중에는 효봉 스님(당시 해인사 조실)께서 '이놈 하심(下心)하기 위해 하소인(공양주)좀 하 거라'고 하시는데 '조실 큰 스님께서 저 위에 있는 상심(上心)을 가르쳐주시고 하심을 하라 고 하셔야지 상심도 모르는 놈한테 하심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하고 대꾸를 했지요.
효봉 스님께서 한참동안 가만히 계시다가 왜 왔느냐고 물으시길래 도 배우러 왔다고 하자, 도는 7일 안에 해결지어야지 7일 안에 해결 못지으면 70년 해도 못한다고 하시면서 '7일 안 에 도를 해결 못하면 조실주장자에 맞아죽어도 괜찮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서 약서에 지장을 찍고 퇴설당 상선원에서 정진에 들어갔지요.
엿새 만에 내 나름대로 도를 해결짓고 효봉 스님께 찾아가 보여드리니 스님께서 그것은 아 니라고 하시길래 '성수 내것은 도가 아니거니와 효봉 니것 내 놓아라'하며 대차게 나갔습니 다. 그리고 '성수 니는 못쓰겠다'는 스님께 '여기 쓰고 못 쓰는 게 어디 있습니까. 천하 만 물은 선(禪)이닌 게 없고 세상만사는 도(道)아닌게 없네'라고 큰소리로 읊었더니 스님께서 허허 웃으시더군요.
그 뒤로도 스님께서 말 없는 가운데 많이 이끌어 주셨지요. 날이 갈수록 효봉 스님이 그리 워집니다. 또 맞아죽을 각오로 정진하는 눈푸른 납자에게 잡아먹히는 게 내 바람입니다. 자 식보다 손자가 나아야 집안이 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치열한 구도열이라는 말이 이제서야 실감이 됩니다. 스님 출가할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출가할 때의 마음이사 다른 스님네들도 다 간절하셨겠지요. 어릴 적에 원효 대사에게 푹 빠wu 있었어요. 3년 동안 술도 안 마시고 고기도 안 먹고 출가할 준비를 하고, 원효 대사같 은 도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19세 되던 해에 집은 나왔습니다.
1년 동안 도인을 만나기 위해 전국의 절을 다 찾아다녔는데 도인은 하나도 안 보이고 산 좋 고 물 좋은데에 고대광실 지어놓고 놀고먹는 것 같이 보이는 겁니다. 그래 하도 부아가 나 서 하루는 도인스님이 계신다는 범어사를 찾아가 소란을 피웠지요.
"큰중 나오라'고 도량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쳤더니 큰중(동산 스님)이 나와서 '총각 왜 큰중 을 찾았는고' 하며 물으시길래 1년 동안 전국 절찾아다닌 이야기를 하며, 놀고먹는 중만 늘 면 이 나라는 황무지가 될 것이라며 내 의문에 납득이 가게 답변을 해달라고 했지요. 그랬 더니 아무 말씀도 없이 입 닫고 눈 감고 고개를 숙이고는 한 시간이 넘게 그 자리에 서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 표정이 얼마나 숭고해보이던지 더 이상 대 응도 못하고 그냥 물러 나왔지요."
일제말 어찌 보면 황폐한 교계의 상황을 보고 실망을 많이 하신 듯 싶은데 어떻게 출가하셨 는지 궁금합니다.
"범어사에서 소란을 피운 뒤부터는 도인 찾는 것은 포기했지요. 불현듯 소가 호랑이를 이겼 다는 옛이야기가 생각나 소처럼 풀만 먹고 영웅이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천성산 조계 암에 가서 초식수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1년을 꼼짝없이 지내고 있었더니 암자의 노스 님(性庵스님)이 은근히 불러 역대 영웅호걸치고 무식한 이 없으니 글 배우러 온 게 아니라 고 만류하다 스님께서 하도 성화를 하셔서 초발심자경문을 배웠습니다. 배운 것 그날 그날 다 외워바치니까 또 가르쳐주시고 나 또한 처음 생각과는 달리 재미가 나서 계속 배웠지요.
초발심 자경문을 다 외워바치니까 49일 안에 십만독을 읽으라고 하시더군요. 뭔가에 이끌리 듯 스님께서 하라는 대로 초발심자경문 10aisehr을 40일 만에 외워바쳤습니다. 그러자 스님 께서는 암자까지 내놓으시고 나를 데리고 정선 갈래사(현재 정암사)에 가서 한 철 나고 이 듬해에는 한백산 원효대사 토굴터에 데리고 가셔서 '여기서 10년을 살면 네 목적을 이룰 것 '이라고 말하시고는 내려가셨습니다.
참으로 자비로운 스승이셨습니다. 불교교리에 대한 것은 은사스님께 다 배웠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닙니다. 해방이 된 지도 모르고 1년을 넘게 초식하며 살다가 약초 캐는 사람들이 해방 이 된 것을 알려줘서 스님을 찾아 뵈었지요. 당시 남한 제일의 선방이 있었던 내원암 주지 를 하고 계셨는데, 우리 스님은 11살에 사서삼경 다 마치신 석학일 분만 아니라 일제 때 흐 려진 선풍(禪風)을 바로잡은 걸출한 선객이셨습니다."
제자를 이끌어주는 스승의 애틋함이 매우 감동적입니다. 스님, 수십년 동안 수행하고 포교해 오시는 가운데 안타까운 일도 있으셨을 듯싶습시다만.
"희로애락이 다 무상할진대 뭐 중이 안타까운 일이 있겠는가마는 한 가지 지금도 아쉬운 일 은 있습니다. 내포부 중의 하나가 사람 만드는 공장 만드는 것이었어요. 동국제강의 고장경 호 거사님이랑 구체적인 방안까지 논의했는데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내 평생을 걸고 해 보 고 싶은 일이었는데 성사가 안 되어서 한동안 마음 골병이 들었었지요.
나는 여자들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세상은 여자들이 하는 일이 매우 다양해졌지만 만고에 변하지 않을 여자들의 일은 자식을 낳아 잘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대 영웅 호걸치고 어머니가 훌륭하지 않은 이는 없습니다. 여중군자 양성하는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게 원이었는데... .
요즘도 할머니들을 만나면 '며느리 속 썩이면 며느리 가슴에 시커먼 꾸정물이 가득 차서 그 속에서 나온 손자는 망나니가 된다. 그러면 집안이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 며느리 일부려 먹 을 생각말고 좋은 손자 낳아서 잘 기를 수 있도록 독려하시오' 라는 말을 하고 처녀를 만나 면 '처녀적부터 바른 심성을 기르고 헛말, 헛짓, 헛걸음을 하지 않아야 좋은 인연 만나 결혼 잘하고 자식도 훌륭한 인물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임신 중에 있는 이나 자식을 기르는 이들을 보면 '옛말에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 신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자식에게 혹 허점이라도 안 보일까 매사 조심하며 수행하고 정 진해야 한다. 제 잘못은 모르고 자식 허물만 나무라는 어리석음을 절대 범해서는 안 된다' 고 당부하곤 합니다."
모든 이들이 가슴깊이 새겨듣는다면 청소년 문제 등 갖가지 사회문제가 사라질 듯싶습니다.
스님, 세상이 혼란스러워 삶의 갈피를 잡기가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 가야 할지 한말씀 더 부탁드립니다.
"지금 세상이 거꾸로 가는 세상입니다. 자기 자신은 찾을 생각 안 하고 바깥경계에 시달리 며 자기를 죽여가고 있어요. 부처님께서 평생 동안 설하신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견성 (見性)해서 생사자재법, 즉 죽지 않는 도리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따르지 않고 무작정 믿으면 되는 줄 알아요. 믿을 신(信)은 따라가는 것을 말함입니다. 불교신자라면 부처님을 본보고, 부처님을 닮고자 약속해야 합니다. 덮어놓고 절 에 가서 엎드려 절만 할 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흉내내고 부처님 행동을 흉내내야 하 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수 백생 동안 입과 손과 발과 마음을 잘 쓰고 관리를 잘 해서 성불하신 것입니 다. 자비보시행을 하시고 수행에 힘쓴 생애, 복과 지혜를 두루 갖추신 부처님의 생애를 본 받아야 합니다.
부귀영화가 보장되어 있는 왕자의 자리를 버리시고 피나는 수행 끝에 성불하시어 한평생을 중생교화에 힘쓰신 부처님, 세상사람들이 추종하는 것을 다 갖추고 계셨건만 그것을 헌신짝 처럼 버리신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재물도 명예도 아니라는 것을 확 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신자라는 사람들도 재물과 명예, 무상하기 짝이 없는 희로애락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불안해 합니다. 실로는 그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는 그림 자에 불과한 것인데 말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부처님 말씀에 귀기울이고 부처님 흉내내다 보면 살 길이 열립니다.
부처님 닮아가다 보면 우리 안에 본래 깃들어 있는 불성(佛性)이 피어나기 마련입니다. 부처 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산 불자가 될 수 있도록 다 같이 간절하게 원력을 세웠으면 합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