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뱀발 :
재수할 때,
돈이 없어 친구들이랑 라면에 소주 먹고 취해
그저 청춘을 절망하고 있을 때
읊조리고 읊조렸던 시였는데,
올해 수능에 출제되었습니다.
그때는 광주와 관련시키고 싶어
모든 구절들을 그쪽으로만 생각했는데,
'침묵해야 한다는 것' 정도나 그렇지
도무지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겨울의 사평역,
거기 쪼그리거나 움츠린 사람들에게
톱밥난로 한 줌 던져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생각해보고 했습니다.
점점 추워지는 시간들,
서로에게 톱밥 한 줌 던져줄 수 있으면 쓰것습니다.
너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톱밥은 필요할 테니까요.
첫댓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어디서나 그리움을 호명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겨울 눈꽃이 날리고
추워하는 역사에 나란히 앉아 기차를 기다리며
역사 톱밥 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한순간을 점화 시킬 때
비로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그리운 시간들이 호명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눈물이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지라도
투명하게 용솟음치는 슬픔은 치유를 가져옵니다.
눈물이 남아 있고
우리에게 사평역이 남이 있으면 우린 스스로를 정화 시키며
치유될 수 있는 희망도 있는 겁니다.
문득 내게 아직 눈물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