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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화요도보시 북악산 위에서 길상사 쪽 바라보는데 안가보신 분들이 계셔서 잡글이지만 최순우옛집과 길상사에 관한 후기 올립니다. 가볍게 참고하시길...
가을이 깊어가는 9월 27일 토요걷기는 동대문성곽공원을 따라 낙산공원을 거쳐 혜화문을 지나 가을 성북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최순우 옛집과 길상사를 들러 와룡공원 삼청공원을 둘러보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길을 걸으니 서울 600여 년의 역사문화적 저력을 새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역사적 문화적 가치와 내용이 아직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같이 가신분들하고 길상사에 가서 ‘처음 오신 분’ 하고 물으니 절반 정도 처음 오셨다고 합니다. 앞으로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일대 ‘낭만적인 역사문화산책’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출발지인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와 보니 역시 일행이 동대문성곽공원 입구쪽에서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동대문을 바라보며 낙산공원으로 해서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동대문이 연결되는 낙산은 해발 97m. 산이라고 하기에는 중량감이 없죠. 낙산은 낙타산이다 해서 여러 이름이 있는데 낮은 산이라 해도 역시 중요한 산이었습니다. 낙산에 올라가보면 예전 사대문 안 도심이 다 보입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바로 밑에 경복궁을 배치하고 전면에 남산, 좌우로 인왕과 낙산을 거느리게 한 만큼 당당한 한 축을 담당한 산입니다. 재미난 사실은 산이 낮아 모자라는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동대문의 원이름 흥인문을 <흥인지문 興仁之門>으로 ‘지’를 하나 더 넣어서 균형을 이루고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 공간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추구하는 선조의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완만한 낙산공원길을 여유롭게 걷고 혜화문을 거쳐 한성대입구역을 나와 찾아간 곳은 최순우 옛집.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로 한국 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긴 혜곡 최순우(순우도 사실 필명, 1916~1984년)선생의 옛 집으로 76년부터 서거 하실 때 까지 사셨던 곳입니다. 2002년 주변의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의식있는 시민들이 나서 보존의 가치가 있는 땅이나 문화재를 구입하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통하여 지켜낸 소중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성북동 최순우 옛집 입구. 10월 18일부터는 향로전시회를 연다고 합니다.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전통의 자연미를 따뜻한 마음으로 노래한 선생의 대표적 저서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완성된 장소이기도 하면서, 화려함보다는 담백한 아름다움으로 부드러운 한국적 미(美)의 원형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최순우 선생은 개성 출신으로 인천 출신의 우현 고유섭1905∼1944 밑에서 미술(사)를 접하면서 평생을 한국미 탐구에 바친 분입니다. 전문지식없이 고유섭 개성박물관장 밑에서 도제식으로 배운 그에게 훌륭한 스승은 너무 일찍 타계, 후에 독학으로 미술사에 천착, 한국적 미의 원형을 밝히는 84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완성하죠. 이 책은 드믈게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1990년대 초중반 전국적인 답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993에 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죠.
어쩌면 최순우와 유홍준의 작업은 80년대 이후 불어닥친 우리문화 다시보기 등 민중사학의 지평을 열고, 서양문화에 비판을 넘어 반격을 준비하는 나름 자양분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실 최순우 선생은 한국미술사학계로 따지면 변방인이자 비주류였으며 제도권의 전문훈련을 받지 못한 경력으로 학계에서는 쌓은 업적만큼이나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스승인 고유섭이 해방전 40살에 완성한 <한국탑파의 연구>가 아직도 기준이 될만큼 뛰어난 학자였고, 본인도 미술사에 큰 획을 거둔 것은 순전히 근면 성실한 연구자세에 기인했던 곳입니다. 최순우 옛집 현판에 걸린 자필 杜門卽是深山(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이다) 글귀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했지만 외로웠던 선생의 처지를 빗댄 것일수도, 아니면 자신의 연구공간 그 자체를 극대화 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 선생의 풍취가 어린 곳을 찾은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최순우 선생 생전 모습, 연구 및 집필공간. 이번에 가니 전시회 준비로 사진이 없어 따로 올립니다.
최순우 선생 옛집을 나오면 근처에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이 국보급 문화재, 전통미술품을 수집, 보관 정리 1966년에 문을 연 간송미술관이 있습니다. 평생을 한국미 탐구에 바친 최순우, 일본에 팔려가는 문화재를 보호하느라 조선최고 갑부의 사재를 다 턴 전형필 선생. 한국전쟁 발발시 두 분의 일화는 아직도 신화적입니다. 최순우 선생은 가족에게 피란가라고 하면서 집에 있는 솜이불을 들고와 그 솜으로 유물을 포장, 대전으로 부산으로 이송했고, 전형필 선생은 피란길에 안동에서 찾은 훈민정음 해례본 한질만 가방에 넣고 길을 나섰다고 하죠. 시대는 달리해도 한국문화 연구와 보호자라는 두 거인의 풍모를 느끼기에 충분했으며 새삼 역사의 무게를 느낍니다.
최순우 옛집을 나와 바로 길을 건너 길상사로 향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길상사는 매번 느끼지만 도심 속 힐링을 느낄 몇 안되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무소유 법정 스님과 대원각 7천 여평을 아무 조건없이 흔쾌히 희사한 김영한(법명 길상화 1916-1999) 여사로 인해 길상사는 글자 그대로 길(吉)하고 상(祥)서로운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여기는 곳입니다.
맑고 향기롭게... 백석 시인, 김영한 여사, 무소유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인연이 깃든 길상사
그러나 아름다운 연꽃이 진흙더미에서 피어나는 것처럼 길상사도 알고보면 슬프고 어두운 긴 여정을 거쳤기에 더 아름답고 빛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길상사는 김영한 여사와 무소유 법정 스님 사이에 백석 백기행(1912-1995) 시인의 존재가 있었기에 연결됩니다. 김영한, 아니 기생 진향과 봉건잔재와 식민지 지식인으로 고뇌하던 백석이 이루지 못한 사랑이 길상사로 이뤄진 것이죠.
김영한 여사는 집안의 가난으로 어려서 시집을 가고 병약한 남편은 우물에 빠져 자살, 그후 빚 때문에 기생이 되는 권번에 들어가 기생 진향이 됩니다. 1930년대 식민지 풍경, 어쩌면 김동인의 <감자>에 나오는 복례와 같은 여인의 삶이었지만, 총기가 많고 글을 즐겼던 그녀는 보통 기생은 아니었고 일본 유학 중 스승의 함흥에서 일제에 의해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함흥에 갑니다. 스승 뒷바라지를 위해 그곳에서 기생 생활을 하다가 백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집니다.
촉망받는 시인, 일본 유학파에 함흥고보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백석과의 사랑은 불꽃처럼 타올랐지만, 백석 집안의 완강한 반대로 사랑은 이루지 못하고 남북으로 헤어진 채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백석은 이태백의 시에 나오는 <자야오가>라는 작품에서 진향에게 나의 ‘자야’라는 애칭을 주면서 함께 만주로 도망가자고 하지만, 남자의 장래를 염려한 그녀는 이를 외면하죠. 백석은 그녀에게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라는 시를 남기고 떠납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중략)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김영한은 천상 조선의 여인이자 전근대적인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평생에 걸친 이별과 그리움은 없었을텐데요. 이후 김영한은 서울에서 대원각 요정을 하며 큰 돈을 벌지만, 평생 백석을 그리워 하며 삽니다. 백석이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하루종일 음식을 들지않고 백석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김영한이 운영한 대원각은 삼청각 오진암과 더불어 대한민국 3대 요정으로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과 박정희의 3공 시절 대표적인 권력자들의 비밀공간이 됩니다. 대원각의 어두운 면이죠. 권력 실세들만의 공간이 된 이곳은 낭만도 풍류도 아닌 권력자들의 권력의지와 그 소비만 이뤄지던 곳이죠. 한 시절 어둡고 음침한, 권력자들의 밀실이던 곳이 바로 대원각이었습니다.
말년의 김영한 여사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 대원각을 희사하겠다고 합니다. 희사한다는 김영한 여사, 안받겠다는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줄다리기는 오래되고 그 진정성이 확인된 후에 대원각은 길상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1995년 12월 14일 길상사 창간 법회에서 김영한 여사는 “나는 죄많은 여인이고 불교는 잘 모르지만, 많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 입은 저 팔각정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퍼지길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수천억의 재산을 기부하는 그녀에게 일부 세인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자 김영한 여사는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수천억의 재산도 백석 시인의 시 한줄 값어치도 안된다고..."
김영한 여사에게 역사의 질곡은 논외일 것입니다. 그녀에게 남북분단은 사랑했던 연인과의 헤어짐이고 권력자들의 비밀공간이었던 요정은 그저 삶의 연장이었겠지만, 대원각을 길상사로 바꾼 것은 개인의 구원을 넘어 역사의 해원(解寃)이라는 장엄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권력자들의 밀실을 대중의 광장으로, 불우한 여인들의 삶이었던 곳을 대자대비의 도량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여간한 (역사)인식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9월 20일경이면 만개하는 길상사의 꽃무릇, 선운사든 불갑사든 어디인들 꽃무릇이 다를리 있겠는가요? 어디든 또 사연이 없을리 있겠나요? 그러나 길상사 꽃무릇은 참 단아하게 다가옵니다. 그리 붉지도 그리 엷지도 않게, 화사하지도 않게 경내 곳곳에 다소곳이 피어 있더군요. 그런 꽃무릇을 보자니 어쩌면 김영한, 아니 시주 길상화의 현현(顯現)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인지 어디 군락지에 핀 꽃무릇보다 길상사 꽃무릇이 더 애틋하면서도 소중하게 다가오더군요.
길상사 꽃무릇, 어쩌면 김영한 여사의 환생이 아닌지.. 2013년 9월 21일 사진
‘이룰 수 없는 사랑’, ‘슬픈 추억’의 꽃말이 가진 꽃무릇, 어쩌면 영원한 그리움을 안고 산 김영한 여사의 영혼이 깃든 길상사 안에 있기 때문에 더 빛난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김영한 여사는 세속의 그런 번뇌들을 다 내려 놓으셨겠죠.
특이한 사실은 백석과 김영한 여사 두 분 다 84세로 꽤 장수하신 편이라는 것입니다. 백석은 북에서 김일성대학 국문과 교수도 역임하고 재혼을 하는 등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두 분이 오래 사신 것은 남과 북에서 서로를 그리워 하며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질긴 삶을 버티며 오래 사신 것이 아닌지... 재혼을 한 백석과 홀로 그리움을 안고 산 김영한, 누가 더 행복했는지... 그런 어리석은 질문도 생각해 봅니다.
길상사를 나오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비록 몇송이 밖에 안남았지만 다음 가을에 길상사에 가게 되면 꽃무릇과 오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 안의 그리움, 나만의 꽃무릇을 위해서...
성북동 길을 걸으면서 김광균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떠올립니다.
성북동 산에 번지(番地)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廣場)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祝福)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이하 생략)
시인은 1960년대 성북동 일대가 급격히 산업화 되고 인간들이 밀려오면서 비둘기(자연)가 쫒져나는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런데 그후 아이러니컬하게 성북동은 80년대 강남 개발 전 서울에서 가장 부촌으로 고급주택가가 즐비한 곳이었고, 지금도 고급주택가와 각국 대사관저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그런데 비둘기는 보이지 않더군요. 길상사와 그 부근에 비둘기들이 다시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길상사를 나와 삼청각으로 해서 와룡공원-삼청공원으로 향합니다. 그 여름 무더웠던 기억은 사라지고 가을을 준비하고 있는 길, 세월의 변화는 숲길에서도 조용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랜 걷기도 끝이 보이는 법. 와룡공원을 지나 말바위쉼터(여긴 바위가 말 형상이 아니라 북악산의 끝이라는 末바위더군요)로 해서 삼청공원으로 내려오면서 걷기는 끝났습니다.
삼청공원은 여러 가지 뜻이나 내용이 있을 수 있지만, 도교에서 삼원(三元)의 화생(化生)인 삼보군(三寶君)이 관할하는 영역으로,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을 지칭,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도교의 최고 이상향을 의미합니다. 길상사를 거쳐 마음의 정화를 조금이라도 하고 와서 그런지 삼청공원에 내려오니 해가 짧아져 어둑해졌어도 마음이 넉넉해지더군요. 마무리 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인 것 같습니다.
삼청공원에서 공식종료를 했어도 일부분들은 여운이 남았는지 가회동 북촌길로 해서 안국역까지 걸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보니 오늘 여정을 음식에 비유하면 낙산일대는 에피타이저, 최순우 옛집과 길상사는 메인코스, 와룡-삼청공원, 그리고 북촌길은 깔끔한 디저트 같은 코스 같더군요. 일종의 정찬(a la carte)을 누린 날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감사를 드리며 다음 좋은 길에서 뵙겠습니다.
낙화는 유수처럼
동대문성곽공원 입구에 있는 표지석들. 돌에는 공사책임자의 이름이 있는 공사실명제를 뜻합니다. 일정구간 담당자의 이름인 것이죠. 성곽쌓기는 국가노역, 웅장한 성곽을 보면서 백성의 노역을 생각해봅니다.
서울 동북쪽 관문 구실을 한 혜화문
최순우 선생이 자필로 쓴 '두문즉시심산' 문을 닫으면 심산유곡이다.
김홍도 작품집에서 집자한 '오수당'. 오수는 낮잠, 당은 집이나 건물을 의미, 오수당은 낮잠자는 곳이라 할 수 있죠. 최순운 선생은 무척 근면성실하신 분, 낮에는 중앙박물관 관장으로 행정업무, 밤에는 한국미의 원형을 밝히는 일, 주말에는 영주 부석사 등 전국 각지의 문화재를 살피러 다니셨죠. 무엇보다 선생을 힘들게 했던 것은 한국미의 원형을 밝히는 일. 미개척분야를 선구적으로 이끈 분으로 어떤 면에서는 최순우 선생이 낮잠 자보는 것이 소원이 아니었는지..
이 집으로 이사하니 친구분이 선물하셧다는 '매심사 梅心舍' 매화의 마음이 깃든 집이란 뜻인데 매화는 선비의 지조를 의미하죠. 매심사가 마음에 드셨는지 현판으로 달으셨다고 합니다.
최순우 옛집의 핵심은 이곳 후원의 마당입니다. 자연친화적인,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한국적 미의 한 표본이죠.
최순우 옛집을 나와 길 건너 길상사로 가는 길 입구에 있는 조지훈 시인 집터 표시. 눈에 '아주' 안띄게 만들어 놓았네요.
길상사 앞 효재스튜디오. 생활속 전통 인테리어로 인기가 많은 곳이죠.
수천억 재산을 희사하고 염주 한벌과 길상화 법명을 받으신 김영한 여사. 그 뜻을 기린 공덕비입니다.
공덕비 옆 김영한 여사 소개글
길상사 입구의 관세음보살상, 성모마리아상 처럼 보이는 것은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의 작품이기 때문이고 이런 종교간 포용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길상사의 본질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법정 스님의 법어
법정스님 영정을 모신 진영각
가을 깊어가는 길상사..진영각에서 본 길상사.
길상사 로고와 묵언. 수행공간이기도 합니다.
길상사 적묵당. 보통은 대웅전 격 극락전 오른쪽에 위치해 선원(禪院)의 역할을 함.
극락전 가는 쪽문
예전에는 떠들썩한 연회소리가 넘친 곳. 이제는 극락전
내년 가을을 기약합니다. 길상사 사진들은 2013년 9월 21일 사진들.
대원각과 쌍벽을 이룬 삼청각. 세월의 변화와 함께 이제는 고급한정식, 고급 연회장으로 쓰임.
삼청터널쪽에서 와룡공원 가는 길. 가을 분위기가 물씬나네요.
와룡공원에서 삼청공원 가는 길,성곽으로 이어진 길.
성북동은 한양 도성으로 보면 성밖, 역사가 비켜간 곳이지만 역사를 아주 많이 품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죠.
여기는 낙산공원 길
말바위 쉼터 부근
삼청공원 길
삼청공원에서는 올라가는 길이지만 와룡공원쪽에서는 내려오는 길.
토요걷기, 가을 성북동 함게 걸은 노정(코스)이 다 보입니다.
길이 아쉬웠던 분들은 북촌한옥마을을 지나 안국역까지...
* 배경음악은 Susan Jacks의 ‘Evergreen', 백석과 김영한 여사의 영원한 사랑이 늘 기억되도록...
첫댓글 후기글 잘 보았습니다. 성북동길은 꼭 들러야 할 문화역사탐방길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시간상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렇게 자세히 후기글을 올려 주셔서 마치 가본듯 생생하군요. 미술사의 족적을 남기신 최순우 선생님의 삶과 내력 그리고 남북으로 갈라진 백석과 김영한 여사의 애뜻한 사랑이 요정 대원각이 길상사 법당으로 승화되는 괴정을 마치 옆에서 문화해설사가 설명하듯이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군요. 유명한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그리고 김광섭시인의 시 '성북동비둘기'까지 첨부하시니 글의 향에 정신을 잃을 정도입니다. 다시금 해박한 지식과 놀라운 필력에서 많은 배움이 되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 날!
리딩 한번 해주셔도 좋을 듯 합니다~~
저의 집에서는 걸어서 가는 곳인데
생각처럼 가보지 못합니다^^
행복한 아침에
고운 후기 남겨주신 낙화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자세한 설명과 함게 한 후기 덕분에 몰랐던 얘기들을 많이 알았네요...
꽃무릇 보러 9월 다녀 왔지만 언제나 항상 가면 마음 편하고 머리가 맑아 지는것 같아요...
매년 한번씩은 친구들과 마실삼아 가는 곳!
천천히 느릿느릿 걸으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는 곳!
들러들러 내려와 주변까지 걷고 싶게 만드는곳!
그 곳 이야기를 담으셨군요.
커피가 생각납니다.^^
길상사는 한 번도 가 보질 못했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백석의 그녀인지 아닌지 모를 그녀가 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