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위생사 와 생수(샘물),특공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원효대사와 설총 스크랩 드라마 선덕여왕 덕만공주의 첨성대 VS 신라의 통치자 선덕여왕의 첨성대
ROKSAC 추천 0 조회 135 09.09.14 21: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드라마 선덕여왕 덕만공주의 첨성대

VS

신라의 통치자 선덕여왕의 첨성대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가 대단하다. 탄탄하고 극적인 스토리 전개로 인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에 한 몫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첨성대이다. 국보 제 31호로서 신라시대 경주에 건립된, 오늘날 경주의 대표적인 문화재의 하나이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매우 익숙한 이 문화재가 드라마 선덕여왕의 덕만(이요원 분)이 공주의 신분을 되찾는 과정에서 흥미롭게 다뤄졌다.

 

 

** 덕만공주의 첨성대 **

 

ⓒ MBC 드라마 선덕여왕 29화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덕만공주의 첨성대'는 이러하다. 하늘의 변화를 독점적으로 이용하던 미실의 권한을 빼앗아 그것을 백성들에게 돌려 주고, 첨성대로 하여금 하늘의 변화를 알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자 덕만과 대립하던 미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어지는 세계에서 덕만공주의 발상은 같은 지배자로서 규칙위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덕만공주는 꿋꿋이 첨성대 건립을 추진한다. 드라마에 의하면 첨성대는 하늘의 변화에 대한 알 권리를 백성에게 주고, 더욱 부강해지는 신라는 꿈꾸고자 하는 의도로 건립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신라를 통치했던 최초 女王의 첨성대도 그랬을까?

 

 

** 선덕여왕의 첨성대 **

  

 ⓒ 문화재청

 

사실 드라마와 달리, 첨성대는 덕만공주 시절이 아닌, 덕만이 여왕이 된 다음에 건립된다. 정치에서 권력을 내려놓거나 위임하는 것은 사실상 성립될 수 없다. 빼앗김 혹은 강탈을 포장하는 말일 뿐. 더구나 전제왕권의 확립으로 국가의 단계로 나아가던 고대 역사에서는 왕권을 강화하는 것 만이 진행될 뿐, 드라마의 덕만처럼 지배자로서 백성을 위해 그 권한을 스스로 놓는 행위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첨성대 제작의 의도와 그 의미 또한 말할 것도 없다. 첨성대. 권한을 내려놓기 위한 것이 아닌, 여왕으로서의 불안정한 지위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었다.

 

 

 

 

** 첨성대에 대한 논쟁 : 천문대? 종교적 제단? 상징물? **

 

 첨성대에 대한 논쟁은 매우 세부적이며, 여러 견해를 절충하는 입장도 있어 그 논쟁이 복잡하다. 실제로 '첨성대 토론회'가 여러 차례 열린 바 있는데, 그 논쟁을 크게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천문대설 *

 

 첨성대(瞻;바라보다 星;별 臺;대): 별을 바라보는 대

 

첨성대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건축물의 의미 자체가 '별을 바라보는 대'이므로 천문대로 여겨져왔다. 또한 첨성대가 축조되었을 무렵 천문 현상을 관측한 기록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평지에 건립되어 그 다지 높은 위치가 아니라는 점과 건물의 구조상 드나들기 힘들고, 천문을 관측하기에는 불편한 구조라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되었고, 상설천문대가 아닌 일식, 월식 등의 비상시에 첨성대의 꼭대기에 시설을 설치하여 관측하는 특설 천문대라는 주장도 있다.

 

* 종교적 제단설 *

 

백정ㅡΙㅡ마야

석가불

 

 진평왕의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왕비는 마야(摩耶)부인이었다. 불교에서 석가불의 아버지가 백정이고 어머니가 마야임을 생각할 때, 진평왕(백정)과 마야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석가불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독실한 불교 왕가에서 태어나 왕이 되었지만 女子라는 한계가 있었다. 불교에서 여성은 바로 성불할 수 없는 존재로, 남성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선덕여왕은 제석천왕이 있는 도리천(불교세계)에서 남성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을 것이고 그 통로가 첨성대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진평왕과 선덕여왕 때 신라 그 어느 왕대보다 불교의 대중화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렇듯 첨성대가 불교의 수미산을 상징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고 제단설이 있지만, 제물 등의 운반이 불편했을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첨성대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 상징물설 *

 

 선덕여왕 재위 기간은 대외적, 군사적으로 다사다난 했다. 또한 女王이라는 비교적 안정적이지 못한 지위는 독립 왕국으로서의 신라를 과시하고 여왕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자 했던 정치적 의도가 담긴 천문 관계 상징물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첨성대는 그 형태가 '김유신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과 닮아 있는데, 고대 '우물'이 '한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해주는 터널'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첨성대를 '우주우물'로 보고 선덕여왕이 이 세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도구로써 첨성대를 쌓았다는 주장이다. (첨성대를 우물로 보는 이와 같은 경우, 종교적 제단설의 불교와 연결된다.)

 

* * *

 

 첨성대에 대한 자료가 매우 적어 하나의 결론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많은 연구자들에 의하면 대체로 (상설이 아닌) 천문 관측의 기능을 인정하며 정치적 혹은 종교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복합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겠다.

 

 

** 첨성대, 그러나 확실한 것은 **

 

 

 * 천문대일 경우 *

 

 하늘의 변화를 실제 정치적 현상의 변화와 관련된다고 여겼던 고대에 한 나라를 지배하는 군주는 하늘의 변화를 알고 활용해야 했고 천문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일이었다. 따라서 신라시대에는 천문을 하는 사람을 천문박사라고 하여 천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문을 연구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 '별을 바라보는 대'로 첨성대가 건립된 것이라면 그것은 누구나 하늘의 변화를 알 수 있도록이 아니라, 왕권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것이다.

 

 * 종교적 제단일 경우 *

 

 신라의 국왕 선덕여왕을 석가불로 상징화 한 것은 석가의 권위를 빌려 왕권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당시 여왕이라는 이유로 다른 나라들로 부터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황룡사 9층 탑, 분황사 등은 여왕으로서의 힘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볼 때, 첨성대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상징물일 경우 *

 

 여왕으로서의 불안한 지위에 대하여 또한 대외적으로 신라의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여왕의 상징물이었다면, 이 또한 왕권을 굳건히 하기 위한 것인 셈이다.

 

 

* * *

 

 천문대이건 종교적 제단이건 상징물이건 또는 다른 무엇이건 간에,

선덕여왕의 첨성대왕권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백성에게 나누어주거나, 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덕만공주의 첨성대는 드라마다.

 

 

 

 

 

▲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김윤지 기자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