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황토집과 자연 건강법
김정덕
솔잎은 약재로도 쓸 수 있다. 솔잎은 약리실험을 통해 생체조직의 산화환원 과정을 촉진하고, 수렴성 소염작용을 하며 출혈을 멎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신경쇠약증이나 비타민 C 부족, 머리털이 빠지는 데도 쓴다. 달여서 그 물을 먹거나 그 물로 씻는다.
*솔잎 베개 만드는 법
솔잎은 어느 때고 신선한 잎을 따서 쓰면 된다. 이왕이면 4월쯤에 행솔 향기 그윽한 솔잎을 구한다. 솔잎 결을 잡아서 베갯잇 속에다 차곡차곡 집어넣고 꿰맨다. 그 외 국화 베개, 찔레꽃 베개도 만든다. 그런데 국화 베개나 찔레꽃 베개는 말려서 넣는다는 것을 빼고는 그 만드는 방법이 솔잎 베개와 같다.
*봉숭아물 들이는 법
봉숭아는 장마가 끝난 뒤 햇볕을 듬뿍 받은 꽃을 딴다. 그 때쯤의 봉숭아꽃이 색도 진하다. 약간 시들해지도록 말리는데, 색소를 농축시키기 위해서이다. 꽃과 잎사귀를 1 대 1의 비율로 섞고, 백반을 10분의 1 정도 넣어 함께 찧는다. 고르게 찧어지면 손톱에 올려놓고 옥잠화 잎사귀로 덮어서 실로 묶는다(도시에서는 랩으로 싸서 고무줄로 묶기도 한다).
*옷에 감물 들이는 법
익지 않고 떨어진 감을 주워 모은다. 흙을 털어낼 정도로만 물로 대충 씻는다. 절구에 넣고 찧는다.
만들 옷이나 천을 절구 안의 찧어진 감과 함께 치대듯이 비빈다. 감물이 들었다 싶으면 꺼내 말리는데, 이 때 찧어진 감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채로 그냥 말린다. 그러면 감의 타닌이 햇볕을 받아 색깔을 낸다. 그 색이 옷의 올 속으로 스며든다. 찧어진 감이 붙었던 곳은 무늬처럼 남는다.
햇볕에 바짝 말랐으면, 천을 훌훌 턴다. 찧어진 감은 주걱으로 긁어내리면 떨어진다.
또 새로 땡감을 절구에 찧는다. 그리고 말렸던 옷이나 천을 다시 처음처럼 치대듯이 비빈다. 마찬가지로 말렸다가 턴다.
그 다음에는 이 옷이나 천을 물로 헹궜다가 널기를 다섯 번 정도 반복한다. 만약 천이라면 재단해서 옷을 만든다. 간단하게는 티셔츠부터 블라우스, 치마 등 다양하게 만들어 입을 수 있다.
*도토리
가을이 시작되면 도토리를 따러 다닌다. 따온 도토리를 까서 통째로 소금물에 1주일쯤 담가둔다. 물은 매일 갈아주어야 한다. 담갔던 도토리를 건져서 바작 말린 다음 방앗간에 가서 빻아놓는다.
흔히들 도토리를 묵으로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추석 송편 빚을 때, 쌀가루에 섞어 만든다. 도토리 송편 말이다.
또 겨울철 영양 간식 만드는 데도 쓰인다. 통밀빵을 만들 때 도토리 가루를 섞어서 만든다.
칼국수를 만들 때도 밀가루에 섞어서 만든다. 집에 행사가 있어 무지개떡이라도 할 때는 도토리 가루로 초콜릿색을 낸다.
이뿐만 아니라 반찬거리도 장만해둔다. 피마자 잎, 취나물 등을 그때그때 뜯어서 말린다.
풋고추에 찹쌀 풀을 만들어 묻혀놓았다가 튀겨 먹는다.
깻잎이나 깨꽃이 만개하기 직전 송아리를 깻잎과 같이 찹쌀 풀을 발라 말려도 좋다.
*카드 만드는 법
재료는 색종이를 붙일 딱딱한 종이(엠보싱이라고 함), 색종이, 셀로판지, 한지, 묶을 끈, 풀, 가위 등이다.
갖가지 모양과 색을 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색종이가 필요하다.
하얀 닥종이를 산 후 봄에 쑥, 소금, 물푸레나무 뿌리를 달인 물로 닥종이에 색을 들이면 녹색의 예쁜 색을 가진 종이가 만들어진다. 붉은색을 내고 싶으면 자초를 사다가 소금, 물푸레나무 뿌리를 태운 재를 약간 넣고 달여 닥종이에 물을 들인다.
그러면 예쁜 진달래 색의 종이가 나온다. 물론 그 색의 농담 정도는 마음껏 조절할 수 있다.
-황토
황토에는 탄산칼슘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물을 섞으면 찰흙으로 변하는 것도 이 탄산칼슘 때문이다.
황토 입자의 크기는 0.02~0.05밀리미터이며, 석영· 장석· 운모· 방해석 등 다양한 광물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화학적 조성을 보면 실리카 60~65퍼센트, 철분 5~6퍼센트, 알루미나 10~13퍼센트, 마그네슘 2퍼센트, 나트륨 2퍼센트, 칼륨 1.5퍼센트, 석회 8퍼센트 등이다.
한편 황토 한 스푼에는 약 2억 마리의 미생물이 들어 있다.
황토 속에 있는 이끼, 곰팡이, 방사균, 세균 등의 미생물은 유기물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 유기물은 식물의 영양 공급원이 된다. 뿐만 아니라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 유기물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품으로도 활용된다.
최근 일본 미생물연구회에서 '흙 속의 효소‘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먼저 카탈라아제이다. 이 효소는 현재 흙의 효소 가운데 가장 높은 활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효소는 생물에게 독소를 제공하는 과산화수소를 제거하여 생물이 살아갈 적절한 토양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인체 내에서 대사작용 과정중 과산화지질이라는 독소가 발생하면 노화현상이 온다. 그런데 양질의 황토 속에 몸을 넣고 있으면 흙의 강한 흡수력으로 체내 독소인 과산화지질이 중화· 희석될 수 있다.
즉 황토는 인간에게 노화를 억제하고 젊음을 유지시켜 주는 효능을 발휘한다.
두 번째는 디페놀 옥시다아제이다. 역시 흙의 산화력, 분해력을 강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세 번째는 사라카제이다. 황토를 벼나 보리 농사에 써보았을 때 비료의 요소에 걸맞는 결과를 가져왔다.
네 번째는 프로테아제이다. 프로테아제는 단백질 속의 질소가 무기화할 때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가수분해시키는 효소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생물체의 경우에는 암이나 종기, 기타 부폐한 세포를 흙 속의 효소인 프로테아제의 도움으로 분해시킬 수 있다. 민간 요법에서는 곪은 상처나 체내의 독소 해독을 위해 황토를 활용하는 것도 이 같은 근거에서 나온 것이다.
-흙은 생명의 원천
우리 선조들은 흙을 민간요법의 한 재료로 써왔다. 배탈이 나면 황토수를 마셨고, 독충에 물리면 황토를 발라 독을 뺐다. 이같은 민간요법은 거의 모든 질병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것은 흙의 약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흙은 주생활에서도 절대적인 요소였다. 흙이야말로 우리의 기후 풍토에서 가장 알맞은 건축재였다. 흙은 여름에는 남태평야의 뜨거운 열대 더위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차가운 한대 추위를 막아주는 이상적인 건축자재였다. 흙은 사계절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여름철의 습기를 흡수했다가 건조한 계절에 뿜어내 준다. 또 흙 미립자 틈 속으로 바람도 들여 환풍도 해 준다.
과일이나 야채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여 쉽게 썩기 때문에 보관에 힘이 드는 것들이다. 그런데 섭씨 13도 내외, 습도 80~85퍼센트만 보장해주면 썩지 않는다. 바로 이 이상적인 온도층이 지하 3~5미터이다.
바로 이 이상적이고 쾌적한 지하 공간을 땅 위에 재현시켜 놓은 것이 황토집이다. 따라서 황토집에 산 사람들의 무병장수, 혹은 질병 치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전해져 오고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정호다완의 원형인 구정 사발을 재현한 최차란 여사가 집에 직접 황토방을 지었다. 방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그 밑에는 쑥을 넣은 뒤 때고 밤새도록 땀을 빼기를 계속했다. 그러자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출혈, 가래와 담이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은 아예 황토방을 지어놓고, 그 자신뿐만 아니라 병을 얻어 찾아온 휴양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황토가 살리는 생명체들
흙이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이나 다른 동물의 생명을 보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 하나의 예가 복숭아 씨를 감싸주는 흙에 관한 것이다. 복숭아 씨를 황토로 싸 발랐다가 땅에 심으면 싹이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과실도 풍성해진다고 했다.
집에서 가축을 많이 키울 때 닭 가운데 좀 건강하지 못하다 싶은 것들이 자꾸만 마당 흙을 파고 주둥이를 묻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개도 마찬가지였다. 누런 개가 마당을 뒹굴곤 했다. 며칠 그러는가 싶으면 어느 새 건강해서 온 마당을 휘젓고 다녔다. 그것이 제 몸을 다스리는 건강법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황토의 약성을 활용한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황토는 제독, 항균작용을 한다. 뿐만 아니라 지혈제이며 응고제이다. 따라서 황토를 몸에 댐으로써 몸 속에 있는 균을 죽이고, 땅의 기운을 받아 건강을 회복한 것이다.
-황토집의 역사
흙은 냉기나 열기를 고루 차단하는 데 더없이 좋은 건축재이다. 여름에는 아무리 뜨거운 햇볕이 쪼여도 그 열기가 내벽까지 전도되지 않고, 겨울에는 아무리 차가운 냉기가 외벽을 냉각시키더라도 그 냉기가 내벽까지 전도되지 않는다.
흙은 이처럼 열 차단 효과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몬순지대에 속해 비가 잦고, 따라서 습도의 진폭이 큰 편이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다고 느끼는 온도는 64%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장마철이면 습도가 90%까지 올라간다. 따라서 습도 조절이 가능한 건축재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흙이다.
흙은 습도가 높을 때는 습기를 흡수해서 습도를 낮추어주고, 습도가 낮아지면 머금었던 습기를 뿜어주어 쾌적한 습도를 유지해준다. 그래서 사계절 내내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흙은 통풍 효과가 뛰어나다. 흙은 미립자 틈틈이 통풍이 된다. 겨울에 찬바람을 막기 위해 창을 작게 하였어도 숨이 막히지 않았던 것도 흙의 환기작용 때문이었다.
황토벽은 흙에 지푸라기를 썰어넣어 함께 짓이겨 바른 것이다. 이것은 흙 속에 지푸라기가 들어감으로써 신축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엉기게 해서 흡착력을 크게 한다. 황토벽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크게 부서지지 않는 것은 이처럼 지푸라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흙에 지푸라기를 썰어넣는 또 하나의 이유는 황토벽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푸라기에 있는 균이 흙 속에 들어가 습기를 빨아들이는 작용을 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황토집에서는 아무리 장마가 길어도 곰팡이가 생기는 법이 없다. 벽의 습도가 사시사철 고르기만 하다.
한편 지푸라기는 황토집에 살던 선조들에게 중요한 생활 도구였다. 우선 김장을 하고 독을 묻을 때 가장자리에 지푸라기로 띠를 둘렀다. 지푸라기에 있는 균이 김치나 장 속에 들어가 발효시키는 데 촉진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메주를 띄울 때 지푸라기로 끈을 매놓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예전에는 우리 선조들은 그 신발재료로 지푸라기를 이용했다. 지푸라기가 흔해서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푸라기에 있는 균이 일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즉, 짚신을 신음으로써 우리가 뱉어내는 일산화탄소를 빨아들여 건강을 유지시켰다는 점이다.
지푸라기는 곡물을 보관하는 용기로도 두루 쓰였다. 이유는 지푸라기는 습기가 차지 않아 곡물을 보관하기에 안성맞춤인 통기성 때문이다.
-옛날에는 황토집을 이렇게 지었다
황토집을 짓는 계절은 주로 봄이었다. 흙이 여름을 지내고 나면 쉬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쉰 흙은 제대로 독을 빨아들이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봄철에 막 파낸 흙으로 집을 지었다.
집 짓는 과정 가운데 뼈대를 갖추어 나가는 몇 개 과정을 설명해 본다.
<터 닦기>
집터는 지관을 데려다가 보았으며, 대개는 정남북 방향으로, 앞에 산이 있으면 오목한 곳으로 잡았다. 집터의 높은 자리는 괭이와 삽으로 깎아내고, 낮은 자리는 메워서 다진다. 집터의 높이는 지면에서 한자 정도 높게 했다. 집이 높아서 햇볕이 집안 깊숙이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정초>
다진 흙 위에 주추를 놓는 일이다. 흙과 돌을 섞어 놓는데, 최대한 빈틈이 나지 않도록 놓는다.
<입주>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이 기둥 재목을 마련하고 가공하는 일을 바심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일반 서민의 집에 네모기둥을 원칙으로 하고 둥근 기둥은 쓸 수 없게 했다.
기둥의 굵기는 집의 규모에 따라 사목집, 오목집, 육목집, 칠목집으로 구분된다. 대부분 기둥머리를 기준으로 기둥 굵기가 여섯 치인 육목집을 중심으로 해서 여기에 한 치를 더 넣거나 빼거나 해서 썼다.
<기둥머리 맞춤>
기둥머리에는 지붕의 하중을 담당하는 보, 서까래를 받는 도리가 얹혀진다. 이 보와 도리가 서로 강하게 잘 맞춰져야 집이 비바람에 쏠린다든가 또는 지붕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뒤틀리는 일이 없다.
<벽체 만들기>
기둥에 구멍을 뚫어 인방을 꿰고, 꽂이를 박아 고정시킨다. 이것을 위에서부터 상중하로 보내는데, 상방·중방·하방이라 부른다.
이 뼈대 사이의 터진 부분만을 흙으로 바른 것을 토벽이라 한다. 이 때 상·중·하방 사이에 대나무, 소나무 등의 나뭇가지로 힘살을 박아 넣는다. 힘살이 세워지면 가로로 외를 엮는데, 외는 겨릅이나 반으로 쪼갠 대 또는 싸리나무, 수수깡을 쓴다. 그리고 칡넝쿨 혹은 댕댕이나 새끼를 끊지 않고 연속해서 힘살을 묶어 나간다.
처음 치는 초벽은 흙을 질게 한다. 이 때 지푸라기를 썰어넣어 함께 짓이긴다. 이것이 초벽이다.
재벽은 사래에 쳐낸 흙을 쓰며, 지푸라기는 썰어넣지 않고 짓이겨 바른다. 세 번째 바르는 것을 새벽이라 하는데, 역시 사래에 쳐서 밀가루 풀과 모래를 반씩 섞어 짓이겨 바른다.
<방바닥하기>
방바닥 흙을 바를 때는 10월, 11월에 딴 탱자를 흙과 같이 비벼서 쏟아붓는다. 그러면 방바닥은 탱자 때문에 울퉁불퉁한 모양이 된다. 이것을 대패로 반듯하게 밀어내면 평면이 되는데, 탱자 냄새가 은근히 퍼져나가 방안을 향긋하게 해준다.
<지붕 만들기>
지붕의 모양은 지역에 따라 다소 다른데, 대체로 배집, 우산각집, 학각집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우산각집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지붕의 평면이 네 개의 면으로 구성되어 앞뒤 두 면은 사다리꼴이 되고 좌우면은 삼각형 모양이 된다.
배집은 지붕의 평면이 두 개의 긴 네모꼴로 이루어진 ‘왈’자 모양의 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으며, 간혹 헛간 등 곁채를 배집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학각집은 배집과 우산각집이 합쳐진 모양이다. 외관미가 좋아 기와집에서 많이 쓰였다.
한편 이엉을 얹는 방법은 비늘이엉, 사슬이엉, 흐른이엉 등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사술이엉을 가장 많이 썼다.
사슬이엉은 짚 뿌리 쪽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아 지붕이 매끄럽게 되는 모양이다. 이엉은 볏짚을 나란히 놓고 그 끝이 흩어지지 않도록 한 주먹씩 묶고 엮은 짚을 말한다. 이것을 일정한 크기로 수십 개 만들어 지붕 위에 올려놓고 지붕을 인다.
이엉을 올리고 용마름을 덮으면 이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새끼로 얼개를 친다. 이것을 ‘고삿 맨다’ 하며, 안으로 들어가는 고삿을 속고삿, 밖으로 드러나는 고삿을 겉고삿이라 한다.
-김정덕식 황토집 짓기
건강한 흙을 찾기가 시골에서도 쉽지 않다. 손으로 움켜쥐어 보아 떡고물처럼 보드랍고, 푹신푹신하며, 탄력있는 황토를 만나기가 어렵다.
흙반죽은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모든 밀가루 음식이 그 반죽이 어떠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당 한 구석에 웅덩이를 파놓았다. 그 속에 황토를 집어넣고 물을 넣어가며 포크레인으로 반죽을 했다. 반죽은 손으로 쥐어 보아 쥔 모양대로 나올 정도 되면 그 위에 가마니를 덮어 하룻밤을 숙성시켰다.
반죽해서 곧바로 찍어낸 흙벽돌과 이처럼 하룻밤을 재워둔 후 찍어낸 흙벽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당연히 하룻밤 재워서 찍어낸 벽돌이 더 견고하고 매끈했다.
벽돌이 잘 마르게 하기 위해 3일에 한 번씩은 뒤집어주었다. 벽돌의 네 면이 골고루 위로 올라오도록 했다.
지붕을 하려면 서까래가 있어야 했는데, 쓸만한 소나무를 구했다.
흙벽을 쌓기 위해서는 기초를 잘 다져야 한다. 기초는 터를 닦아서 집의 크기를 정한 후 다진다. 기초는 지하 1미터 정도 깊이에 폭 70센티미터를 파고 진흙과 돌을 섞어 반죽한 것을 넣는다. 이 때 굳히면서 터져 나가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기초 쌓는 일이 중요하므로 반드시 다지면서 해야 한다.
기초를 지면까지 쌓아올린 다음에는 굵은 돌을 놓고, 침수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평형이 되게 다진다. 그 위에 비닐을 깐 후 흙벽돌을 쌓기 시작한다. 이 때 비닐을 먼저 까는 이유는 흙이 물에 약해 침수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흙벽돌을 쌓을 때는 매지를 넣는다. 매지는 체로 친 흙을 반죽하여 벽돌과 벽돌 사이에 채우는 것을 말한다.
흙벽돌을 쌓다가 문이 날 곳에 짜 온 문짝을 올려 놓는다. 문짝은 수평이 잘 맞도록 문짝 양쪽에 버팀목으로 잡아둔다. 그리고 문짝을 놓을 때는 위쪽으로 2센티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그 위에 폭 9센티미터 정도의 나무를 끼워놓는다. 이것은 문이 위에 쌓을 흙벽돌 무게에 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문짝과 나무 사이의 간격은 지붕을 얹고 벽을 칠 때 함께 흙으로 채우게 된다.
흙벽돌을 다 쌓으면 높이 3미터 정도의 평구자로 사방의 수평을 맞춘 다음 들보를 두 개 올린다. 이 들보는 지붕에 오르는 흙과 서까래를 이길 수 있는 힘받이가 된다.
대들보를 놓고 규격을 맞추어 양쪽으로 서까래를 놓았다. 이 나무들은 모두 소나무로, 껍질을 벗겨둔 채 놓아두었다 쓴다.
상량이란 종도리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상량에 글을 적을 때는 양쪽 끝 글씨인 ‘용’자와 ‘구’자가 서로 마주보게 써야 한다. ‘용’자 다음에는 ‘올해’를 뜻하는 ‘태세’를 쓰고 상량하는 날을 적는다. 그리고 자리를 잡아서 ‘상량’을 한다는 의미로 ‘성조상량’을 쓰고, 그 상량이 어떤 이치대로 올려지기를 기원하는지 그 마음을 적으면 된다.
<구들 놓기>
불을 때는 아궁이는 부엌보다 한 단 낮게 만든다. 아궁이에서 방안까지 길게 파고 들어가는 길을 불목이라고 한다. 불목은 아궁이보다 한 자 정도 깊게 파서 만들고, 그 끝에 가서는 불이 옆으로 퍼질 수 있도록 가로로 길을 만든다. 즉, 각각의 불목의 끝은 이 가로 길에 닿게 만든다.
이 가로 홈은 불목보다 깊이 판다. 굴뚝을 통해 찬바람이 내려와도 불목을 통해 들어온 따뜻한 기온보다 아래에 깔려서 온기를 지속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구들로 놓는 돌은 수성암을 쓴다. 요즘에는 슬레이트를 벽돌로 괴어 받치고 그 위에 시멘트 모르타르를 올려서 방구들을 놓기도 한다.
옛날에는 구들을 놓기 전, 바닥을 다질 때 소금 두서너 가마를 흙에 묻고 구들을 놓았다고 한다. 특히 절방을 지을 때는 대부분 이 방법을 썼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번 불을 때면 그 온기가 한 달이 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혹은 소금 대신 숯을 묻기도 했다고 한다. 역시 자장이 강한 일류 집터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합총서에 나온 방법으로 서까래 깎을 때 나온 소나무 껍질을 빻아서 채로 거르면 가루가 된다. 이 가루에 맥반석, 흙을 넣어 반죽해서 깔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두면 색도 예쁘려니와 바닥이 갈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굴뚝 바로 밑부분에 항아리를 묻어놓는다. 이것은 굴뚝을 통해 다 나가지 못한 증기가 흘러 떨어져 고이도록 놓아둔 것이다. 이렇게 고인 물을 목초액이라 한다. 이 목초액을 떠내기 위해 굴뚝 밑 쪽으로 구멍을 낸다.
<벽치기>
흙벽돌을 쌓아올린 상태로 놓아두면 벽돌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 벽이 된다. 그러나 방한을 위해서는 흙벽돌 위에 엷게 벽을 다시 발라주어야 한다. 이것을 벽치기라고 한다.
벽치기 흙은 고운 흙을 갠 물에 모래를 반 이상 되게 넣어 버무려서 쓴다. 모래를 넣어 쓰는 이유는 벽이 갈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벽을 칠할 때는 흘러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반죽해서 바르면 된다.
<가마솥 걸기>
가마솥을 걸고 불을 때면 가마솥 밑부분에 검댕이 달라붙는다. 그 검댕을 긁어서 면으로 된 천에 묻혀 들기름이나 피마자유를 한두 방울 떨어뜨려 솥이 뜨겁게 달구어졌을 때 문지른 다음 마른 수건으로 다시 닦아주면 반질반질 까맣게 윤이 난다.
이렇게 길들여진 가마솥으로 밥을 하면 차지고 맛도 좋다. 특히 밑에 검정콩이라도 넣어 함께 밥을 지으면 그 밥맛이 어찌나 좋은지 모른다.
<뒷간 만들기>
토양미생물 연구가 조언대로 톱밥에 미생물 발효제를 섞어서 뒷간에 놓아두고 용변을 본 다음에 그것을 한 바가지씩 퍼서 부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고약한 냄새도 나지 않고, 발효도 신속하게 되어서 훌륭한 퇴비가 된다. 위생적인 뒷간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황토집 아이
며느리는 결혼하고서도 얼굴의 여드름이 가시지 않고 손발이 냉한 것이 음성 체질이었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까닭도 없이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며느리가 단식에 성공할 수 있도록 이미 3일 정도 그 준비 과정에 들어간 상태였다. 첫 번째 날은 평소 식사의 절반으로, 두 번째 날은 3분의 1로, 세 번째 날은 가벼운 죽 한끼로 예비 단식을 했다.
그리고 맨 처음 한 일은 관장이었다. 숙변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단식을 하는 동안에는 생수만 마셨다. 그러면서 하루에 30분 이상씩 가볍게 등산을 했다. 그 단식은 1주일 동안 지속되었다.
집에 와서는 생수 대신 지장수를 마셨다. 그리고 1주일 동안 미음을 묽게 끓여서 하루에 두 번씩 먹었다. 다시 밥을 먹게 되었을 때부터는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식습관을 바꾸었다.
두어 달이 지나니 며느리 얼굴에 변화가 왔다. 여드름도 없어지고 피부가 눈에 띄게 매끈해졌다. 그러더니 손발 찬 것도 사라졌다.
마침내 임신이 되었다. 그 때부터 며느리 옆에 붙어서 태교를 시켰다. 그리고 함께 풍욕을 하기도 했다.
그토록 손자 곁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혹시 아이에게 우유를 먹일까 싶어 감시하느라고 그랬던 것이다. 그렇다고 울음소리 그치자마자 제 엄마 젖을 먹이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젖을 먹이기 시작한 건 태어난 지 3일이 지나서였다. 그 때까지 아이가 먹은 건 감잎차와 끓인 물이 전부였다. 이처럼 아이를 3일이나 굶기자 제 부모도 불안해서 어쩌지 못하였다.
아이가 3일 동안 물만 먹으면서도 새까만 태변을 누었다. 바로 이렇게 해야 아이가 일생 동안 병이 없는 법이다.
한편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그대로 발가벗긴 채로 내버려두었다. 병원에서는 씻기고 나서 보드라운 천으로 감싸놓으려 했지만 내가 다 걷어내 버렸다. 그렇게 아이를 두 시간 정도 발가벗긴 채로 버둥거리게 놔두었다. 그것은 아이가 모관운동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모관운동은 어른들을 위한 건강요법의 하나이다. 모관운동이란 누워서 손과 발을 곧게 펴서 수직으로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운동이다. 이 때 발바닥은 되도록 수평으로 해야 하며, 하루에 아침저녁 두 번씩 하되 한 번에 1~2분 정도 한다.
다리를 똑바로 들기가 어려운 사람은 먼저 다리를 80~90도 쯤 벌리고 그대로 위로 들어올린다. 최대한 올려진 위치에서 힘을 주어 다리를 곧게 펴고 서서히 똑바로 들어올리는 연습을 하면 된다. 이 때 두 손, 두 발의 간격은 어깨 넓이 정도면 된다. 모관운동이 끝나면 그대로 발을 수직으로 들어올려 ‘마’ 자를 써보는 연습을 하면 좋다.
모관운동으로 인해 동맥혈이 신체의 각 기관에 흡수되므로 전신의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준다. 또 울혈을 제거해주므로 순환 계통의 병을 예방해준다. 뿐만 아니라 기생충이나 세균류가 침입하기 쉬운 손발의 피부 기능을 활발하게 함으로써 그것들을 막아준다.
-이 시대에 황토집을 가능한가
현재로서는 주택 전체를 황토집으로 짓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에 차선의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은 황토집으로 짓되 외벽을 시멘트로 하고, 내벽을 황토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시 환경에서 황토집이 낯설수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 방법이다.
혹은 집의 일부 공간만을 황토로 짓는 방법도 있다. 이 때는 안방만 황토로 하는 것이 무난한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