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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의 포도밭(In the Vineyard of the Text)》
『텍스트의 포도밭』, 이반 일리치, 정영목 옮김, 현암사, 2016.07.25.
(원제 In the Vineyard of the Text: A Commentary to Hugh's Didascalicon, 1993년)
성경에서 포도는 은혜와 축복의 상징이다. 저주와 심판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긍정적 의미가 더 크다. 당분이 많아 피로회복에 좋고 비타민도 풍부하다. 포도만큼 다양한 식품으로 가공해서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과일은 흔치 않다. 이반 일리치의 『텍스트의 포도밭』을 보는 순간 사제 서품까지 받았던 그의 이력이 떠올랐다. 그리고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의 양피지 냄새가 났다. 정갈한 표지에 제목과 어우러진 포도 넝쿨이 책 전체를 감싸고 있어 와인을 마시기 전에 향을 음미하듯 책장을 펼치기 전에 전희를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할까.
이반 일리치는 학교가 교육을 망친다며 『학교 없는 사회』를 주장했고,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사실을 폭로했으며, 전문가가 무능력자를 만드는 『전문가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던 사상가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까지 번역한 박홍규는 휴대폰을 버리고 실제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그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때때로 바보가 된다. 교육은 교사가, 질병은 의사가, 옳고 그름은 판사가 결정할 수 있을까. 과격하리만치 파격적인 주장들이지만 이반 일리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외눈박이 나라에서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바보다.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 중세의 포도밭으로 이끄는 이반 일리치의 생각은 무엇일까.
이 책은 12세기 수도사 후고의 『디다스칼리콘』에 대한 서평이다. ‘읽기’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과 통찰을 담고 있다. 인쇄술은 유발하리리가 지적한,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중요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보다 오히려 큰 문명사적 전환이 아니었을까. 책의 보급은 지식의 대중화를 의미한다. 인쇄술로 인한 지식의 대중화는 하느님의 말씀과 지식을 독점했던 귀족과 사제 계급에 대한 신비와 환상을 깨뜨린 사건이었다. 종교개혁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신교를 탄생시킨 인쇄술은 인류사회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촉매제였다.
페이지와 책의 형태를 이렇게 다시 만드는 것이 읽기의 행동학과 의미론에, 따라서 사고에 미친 영향은 인쇄의 영향보다 근본적이다. 12세기 또는 13세기의 페이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절차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는데, 인쇄의 주된 결과는 이 절차를 기계화한 것이었다.
1240년에 이르자 책은 기본적인 면에서 후고가 바라보던 책보다는 우리가 오늘날 당연시하는 물체에 훨씬 가까워졌다. - 174쪽
12세기 말에 이르면 책은 우리 시대까지 유지되는 상징성을 띠게 된다. 책은 전례 없는 종류의 물체, 눈에 보이지만 만질 수는 없는 물체, 앞으로 내가 책 중심적 텍스트라고 부르는 것의 상징이 된다. 알파벳의 오랜 사회사에서 이런 발전의 영향에 비견될 만한 것은 오직 두 가지 사건밖에 없다. 하나는 완전한 표음문자의 도입인데, 이것은 기원전 400년경 일어난 일로 이로써 그리스어는 말하는 사람이 되새겨볼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또 하나는 15세기 인쇄술의 확산으로, 이로써 텍스트는 문학적이고 과학적인 새로운 세계관의 강력한 틀이 되었다.
테크닉이 의도한 도구적 영향보다는 그 상징적 영향에 관심이 있고, 또 알파벳 테크놀로지를 연구하는 테크놀로지 역사가라면 1150년경 텍스트를 하나의 물체로 만든 수공업적 테크닉과 이 물체를 스탬프로 찍어내게 되는 1460년경의 기계적 테크닉을 신중하게 구별해야 한다. - 176쪽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물적 대상으로 ‘책’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13세기 성경은 무게가 대개 5킬로그램에 가까웠다. 양피지는 글을 보존하는 도구였을 뿐이다. 그러다가 1100년경 스페인의 사트비아에 유럽 최초의 종이 공장이 세워졌고, 드디어 ‘휴대용 책’이 탄생한다. 이반일리치가 주목한 한 것은 책이 ‘고정된 물체’에서 ‘이동 가능한 물체’로의 전환이다. 받침대 위에 펼치는 것이 아니라 손에 쥐는 책이 탄생하기 위해 ‘문자 크기와 페이지 무게의 감소, 새로운 생략형 표현’ 뿐만 아니라 종잇장을 꿰매는 방법과 유연한 표지가 필요했다.
금속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인 15세기 무렵까지 읽고 쓸 수 있는 서유럽 남성의 비율은 5~10%로 알려져 있다.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로 된 성경을 가진 사람은 이단으로 몰려 화형 당하던 시대였다. 이반 일리치는 지식을 독점했던 엘리트 계층이 무너진 이 시기보다 300년 쯤 앞선 12세기를 주목한다. 일리치의 표현에 따르면 ‘수사식 읽기’의 시대에서 ‘학자식 읽기’의 시대로의 전환이다. 15세기 인쇄술의 보급은 12세기에 필사자들이 일으킨 변화를 기계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12세기에 벌어진 중요한 변화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일리치는 두 가지로 요약한다. 하나는 텍스트가 양피지에서 벗어나 페이지로 독립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알파벳이 라틴어에서 벗어나 라틴어 이외의 언어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책의 기원은 15세기 아니라 12세기에 이미 그 형태를 갖추어 ‘읽기의 행동학과 의미론에, 따라서 사고에 미친 영향은 인쇄의 영향보다 근본적’이었다.
텍스트의 포도밭을 거닐며 달콤하지만 신맛 나는 이반 일리치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희미한 촛볼 앞에서 구술한 책을 베끼는 서기들의 모습, 중얼거리며 시끄럽게 각자 텍스틀 옮기는 소란스런 필사실, 수도원 담장너머로 기울어지는 석양 …… 오로지 읽고 쓰기만 했던 그 시절이 오히려 더 행복했던 건 아닐까. 수도원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단순하지 못한 삶에 대한 반성이다. 늦은 저녁, 이반 일리치식 딴지 걸기가 없는 텍스트의 포도밭을 나선다.
서기들은 보통 다른 사람이 구술한 책을 베꼈다. 원본을 앞에 두고 혼자 있을 때는 소리 내어 읽고, 청각 기억에 남아 있는 만큼을 글로 옮겼다. 초기 수도원의 필사실은 시끄러운 곳이었다. 그러다가 7세기 아일랜드에서 개척한 새로운 테크닉이 대륙에 이르렀다. 단어들 사이에 여백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이 테크닉이 널리 퍼지면서 수도원의 필사실이 조용해졌다. -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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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시피트incipit : (중세의 사본 등의) 모두(冒頭), 모두의 말
엑스플리시트éxplicit : 글[옛 인쇄물]의 마지막 단어
아욱토리타스auctoritas : 권위, 전거, 보증, 책임, 확실한 출처
데 스투디오 레젠디de studio legendi ; 읽기 공부에 관하여
디스키플리나Disciplina : 배움, 가르침, 수련, 학문, 학과
루멘Lumen : 빛
아미치티아Amicitia : 우정
아르테스artes : 예술, 기예, 학문
코지타티오cogitatio : 생각, 심사숙고
메디타티오meditatio : 묵상
딕타티오dictatio : 구술
일루미나티오illuminatio vs. 일루스트라티오illustratio : 채식(彩飾)과 삽화
수련의 시작은 겸손이다. …… 겸손이 읽는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특히 중요한 교훈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어떤 지식이나 글도 경멸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어떤 사람에게 배우든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스스로 배움을 얻었을 때 다른 사람을 없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 32쪽
읽는 사람은 모든 관심과 욕망을 지혜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 망명자가 된 사람이며, 이런 식으로 지혜는 그가 바라고 기다리던 고향이 된다. - 33쪽
중세인들에게 개인은 그 말의 기원인 라틴어 페르소나, 즉 가면에서 파생되어 직책, 기능, 역할 등 다양한 뜻을 가졌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말은 유일무이한 인격, 체격, 영혼을 가진 본질적인 개체로 여겨진다. - 42쪽
후고는 학생들에게 학식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읽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ㄷ르의 말을 구하고 마치 거울을 얼굴 앞에 두듯이 그들의 말을 늘 정신의 눈앞에 두려고 열심히 노력하라”라고 촉구한다. - 43쪽
역사는 이루어진 일들의 이야기로, 우리는 그것을 자구적 의미로 본다. 알레고리는 이루어진 것을 통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떤 다른 것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비유는 이루어진 것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 77쪽
배움의 시작[principium doctrinae]은 읽기에 있지만, 그 절정은 묵상에 있다. - 81쪽
후고의 묵상은 집중적인 읽기 활동이지, 수동적이고 정적주의적인 태도로 감정에 빠져도는 것이 아니다. - 83쪽
후고는 읽을 때 수확을 한다. 행들로부터 열매를 딴다. 그는 파지나pagina, 즉 페이지라는 말이 함께 나란히 놓인 포도밭 이랑들을 가리킬 수 있다는 점에 플리니우스가 이미 주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페이지의 행은 포도를 지탱하는 포도 시렁의 줄이었다. - 86쪽
입을 사용한 활동은 읽기 행위를 지배했을 뿐 아니라 눈의 임무를 결정하기도 했다. 영어 단어 ‘to read’의 어근은 ‘조언하다’, ‘알아듣다’, ‘읽고 해석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라틴어 레제레는 신체활동에서 나왔다. 레제레에는 ‘따기’, ‘꾸리기’, ‘거두기’, ‘모으기’라는 뜻이 있다. 모아놓은 가지나 잔가지를 가리키는 라틴어 단어는 레제레에서 파생되었다. - 88쪽
“알지 못하는 것은 약함에서 나오지만, 앎에 대한 경멸은 사악한 의지에서 나온다.” - 118쪽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중요한 두 가지는 양심과 평판이다. 양심은 너를 위한 것이고, 평판은 네 이웃을 위한 것이다. 양심을 믿고 평판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잔인하다. …… 모든 사람 앞에서 너 자신을 네가 한 일의 모범으로 보여주어라.” - 126쪽
서기들은 보통 다른 사람이 구술한 책을 베꼈다. 원본을 앞에 두고 혼자 있을 때는 소리 내어 읽고, 청각 기억에 남아 있는 만큼을 글로 옮겼다. 초기 수도원의 필사실은 시끄러운 곳이었다. 그러다가 7세기 아일랜드에서 개척한 새로운 테크닉이 대륙에 이르렀다. 단어들 사이에 여백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이 테크닉이 널리 퍼지면서 수도원의 필사실이 조용해졌다. - 137쪽
말의 기록에서 생각의 기록으로, 지혜의 기록에서 지식의 기록으로, 지혜의 기록에서 지식의 기록으로, 과거에서 물려받은 전거典據의 전달에서 바로 이용할 수 있는 ‘지식’ ― 잘 만든 말이다 ― 의 저장으로 변화해간 것은 물론 12세기의 새로운 정신 상태와 경제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151쪽
이제는 저자가 오르디나티오(ordinatio, 배치의 질서)를 제공하는 일을 떠맡는다. 저자 자신이 주제를 고르고, 부분들을 다루는 연속체 안에 자신의 질서를 집어넣는다. 눈에 보이는 페이지는 이제 말의 기록이 아니라, 생각을 거친 주장의 시각적 표현이다. - 154쪽
페이지와 책의 형태를 이렇게 다시 만드는 것이 읽기의 행동학과 의미론에, 따라서 사고에 미친 영향은 인쇄의 영향보다 근본적이다. 12세기 또는 13세기의 페이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절차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는데, 인쇄의 주된 결과는 이 절차를 기계화한 것이었다.
1240년에 이르자 책은 기본적인 면에서 후고가 바라보던 책보다는 우리가 오늘날 당연시하는 물체에 훨씬 가까워졌다. - 174쪽
12세기 말에 이르면 책은 우리 시대까지 유지되는 상징성을 띠게 된다. 책은 전례 없는 종류의 물체, 눈에 보이지만 만질 수는 없는 물체, 앞으로 내가 책 중심적 텍스트라고 부르는 것의 상징이 된다. 알파벳의 오랜 사회사에서 이런 발전의 영향에 비견될 만한 것은 오직 두 가지 사건밖에 없다. 하나는 완전한 표음문자의 도입인데, 이것은 기원전 400년경 일어난 일로 이로써 그리스어는 말하는 사람이 되새겨볼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또 하나는 15세기 인쇄술의 확산으로, 이로써 텍스트는 문학적이고 과학적인 새로운 세계관의 강력한 틀이 되었다.
테크닉이 의도한 도구적 영향보다는 그 상징적 영향에 관심이 있고, 또 알파벳 테크놀로지를 연구하는 테크놀로지 역사가라면 1150년경 텍스트를 하나의 물체로 만든 수공업적 테크닉과 이 물체를 스탬프로 찍어내게 되는 1460년경의 기계적 테크닉을 신중하게 구별해야 한다. - 176쪽
<텍스트의 포도밭> - 이반 일리치(정영목 옮김, 현암사)
'읽기에 관한 대담하고 근원적인 통찰'이란 부제가 붙은, 1993년 원작이고 이 한글 번역판은 2016년 7월에 나왔다. 저자는 철학자이며 성직자이자 역사학자로, 그는 12세기의 수도자인 성 빅토르 수도원(혹은 학파)의 후고의 '디다스칼리콘'(그리스 어로 공부 혹은 학습의 의미)이라는 책을 해설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이 책을 완성했다. '디다스칼리콘'은 1128년 경에 쓰였으며 읽기 기술에 관한 최초의 책으로 불린다. 이 책의 원제는 'In the Vineyard of the Text: A Commentary to Hugh's Didascalicon'이다.
책 중심의 책 읽기 역사는 12세기에 시작된다. 텍스트 자체가 양피지의 페이지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알파벳은 라틴어 이외의 언어를 기록하면서 오늘날의 책의 탄생을 예고한다. 수사들의 중얼거리며 읽는 방식에서 학자들의 음독 방식으로의 변화, 즉 '학자식 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1세기 들어 은유로서의 읽기는 다시 다양한 디바이스 제작 기술에 의해 무너지는 경향을 보인다. 책 중심의 읽기의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아직은 책과의 통합이나 융합이 가능하지만 언제 어느 때에 완전한 전자 기술 기반의 읽기가 중심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의 강연 원고 7개를 모은 이 책은 알파벳을 이용한 테크놀로지의 역사 연구에서 시작하여 결국은 마음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후고는 읽기를 존재론적인 치료 테크닉으로 인식하고 해석을 시도한다. 읽기가 계발하는 덕목을 최고 중심 쟁점으로 정하여 육체, 정신, 마음의 눈으로 텍스트를 통한 지혜를 탐색한다. 양피지에 적힌 글(책)로 텍스트를 만났지만 이내 읽기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이루어낸 셈이다.
'디다스칼리콘'은 읽기의 초보자를 위한 책이다. 1~3장은 일곱 가지 자유 학문에 대한, 4~6장은 성경 읽기에 대한 내용이다. 후고는 고대 이후 무시되었던 기억 훈련 기술을 복원시킨다. 독서를 3단계로 구분하면, 이루어진 일들의 이야기이며 자구적 의미로 볼 수 있는 '역사', 이루어진 것을 통하여 과거와 현재 및 미래의 어떤 다른 것을 의미하는 '알레고리', 이루어진 것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의 의미를 말하는 '비유'로 나눌 수 있다.
읽기는 개인을 완성을 도우며, 누구든 배움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후고는 말한다. 고대에는 '묘기'여겨진 소리 내지 않고 읽는 방법의 최초의 공식적 및 명시적인 진술이 후고에 의해 이루어진다. 문명의 책장이 수사의 페이지에서 학자의 페이지로 넘어간다. 학자들은 직업적 과제로 읽기를 받아들인다. 후고 이전의 책은 저자의 말이나 구술의 기록이었으나, 후고 이후에는 점차 저자의 생각 저장소로 여겨진다. '수사'의 방식이 아닌, '학자'의 방식으로 읽고 쓰기가 행해진다.
경전이나 주석에 머무르던 텍스트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시각적 패턴이 사용된다. 12세기 중반에는 알파벳순의 색인, 도서 목록, 용어 색인 등이 탄생하여 읽기의 효과를 돕는 동시에 더욱 발전시킨다. 양피지의 페이지에서 책 중심의 텍스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학자의 정신은 규정된다. 텍스트는 이제 책과 구별되는 어떤 것으로 볼 수 있는 정도다. 문자 또한 라틴어의 전통적 속박에서 벗어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에서 기쁨을 찾아라."
"어떤 가르침도 낮추어 보지 마라."
"과시를 목적으로 지식을 쌓지 말고, 노력을 통해 지혜를 구하라."
"신중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가장 잘 나아간다. 큰 도약은 곤두박질치고 만다. 서두르지 않으면 지혜에 더 빨리 이를 것이다."
"무지 때문인지 마음이 없어서인지 적당한 공부 방법을 고수하지 못하며,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책은 음식이다. 공부를 통해 부수고 씹어서 양분을 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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