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카라 뜨락
 
 
 
카페 게시글
세상사는 이야기 스크랩 수녀님의 편지. 쌘뽈나우리 아라원 황토소금 / 박시호의 행복편지
카라 추천 0 조회 208 12.02.21 18: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수녀님의 편지

 


 


 

가톨릭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님들이 서울시 장안동에 위치한 <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에서 근무를 하면서 <쌘뽈나우리 상담센터>의 일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는 1988년 서울시에서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에 위탁한 시설로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가출, 비행, 약물중독, 그리고 부모님의 학대와 방임으로 몸과 마음에 상처 받은 아이들을 입소시켜 24시간 함께하는 시설입니다.
 
수녀님들은 밤 9시부터 새벽 2~3시까지 아이들을 찾아다니면서 거리 상담을 시작하였고, 거리에서 데리고 온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돌봄과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상담치료센터 안에 중학교 과정의 대안학교인 <쌘뽈나우리 대안학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중학생들이나 다양한 문제의 학생들이 저희와 함께 지내면서 상담과 24시간 입소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 안의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배우기도 하고 상처를 극복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올해로 22년이 되는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아동, 청소년 가운데 신부님이 된 사람도 있고 자립에 성공한 사람도 있으나, 일부는 아직도 어려운 여건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청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자활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몇 년 전에 ‘쌘뽈나우리’라는 이름의 청소년 자활 공동체 회사를 차렸습니다.

이 회사는 미니어처와 피겨 등을 판매하던 중에 대대로 옹기를 구우며 사시던 60세가 넘으신 어른이 “이제는 내 옹기 기술을 나누면서 살고 싶다” 하시면서 황토 용기에 천일염을 넣어 구워서 저희에게 기술과 아이디어를 기부하셨습니다. 장인의 기술을 기부하셨습니다.
  
사랑으로 뛰어든 황토소금 사업
  
저희는 용기를 내어 KAIST에 계신 교수님께 성분 검사를 의뢰했는데 너무나 좋은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런 분야에 무지한 수녀들이 우리 아이들에 대한 사랑 하나로 뛰어들었습니다.
  
사람도 태어나면 이름이 있듯이 우리 소금에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아라원 황토소금 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라는 바다의 순수 우리말이더라고요. 이름을 짓고 나니 옷을 입혀 주고 싶었습니다.
  
마침 저희 기관에 매주 미술 봉사를 하시던 포장 디자인의 전문가이신 대진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님이 황토색의 포장 디자인도 해 주셨습니다. 이름도 지었고, 옷도 입혔고, 성분도 알았습니다. 이제는 정직하게 좋은 제품을 만들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판로였습니다. 어제는 소금을 팔러 다녀왔습니다.
  
저희 수녀님들과 자활공동체 청소년들이 물건을 한가득 싣고 한강 성당에 가서 소금을 팔아 달라고 외치다 왔습니다.
  
물건을 판다는 것….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 달라고 말을 꺼내기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습니다.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든지 큰 체험을 하였습니다. 
  
“소금 사세요”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너무 쑥스러웠습니다. 제 옆에 선 우리 아이들은 더 쑥스러워했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이렇게 하면 하나도 못 팔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기를 내었습니다.

“소금 사세요!”

이 첫마디를 외치고 나자 제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래! 우리 아이들을 위해 외치자. 다른 부모님들도 자기 자식을 위해 쓸개 빼 놓고 산다고 하지 않는가.

 

“소금 사세요! 자활청소년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번듯한 상점도 아닌 시장 통로에서 좌판에 물건을 놓고 파는 어머니의 심정이었습니다. 저희의 마음을 알아차리신 분들께서 저희 옆에서 함께 외쳐 주셨습니다.
  
많은 분이 기꺼이 지갑을 열어 주셨습니다.
  
  
받기만 하던 우리, 사랑 나누기도 배워
  
어떤 분은 여러 개를 사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제일 비싼 것으로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후부터는 우리 아이들이 힘을 받기 시작하더니 훨씬 커진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소금 사 가세요. 황토에 구운 좋은 소금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팔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흐뭇하고 가슴 벅차게 감사했습니다. 
  
소금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조미료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너무나 컸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돼라.’
  
청소년의 자립을 목적으로 시작한 쌘뽈나우리는 전남 신안산 천일염을 구입하고 수녀원에서 2년간 간수를 빼고 황토 용기에 넣어 황토 가마에서 830℃에서 30시간 이상을 굽고 포장하고 선물박스에 실어서 발송하는 것까지 우리 아이들과 수녀님들이 함께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친구들이 이름을 건 ‘아라원 황토소금’의 수익금 일부는 지금까지 자기들이 다방면으로 받은 기부와 사랑에 대해 나누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정서적·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빈곤, 한부모, 새터민, 다문화 가족 및 장애 환우를 둔 가족을 돕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받기만 했지만 이제 스스로 땀 흘려 벌면서 아주 미약하나마 조금씩 떼어 나누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저희의 숙제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희망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특히 행복편지 가족 여러분이 계시기에 힘과 용기와 자신이 생깁니다.
  
여러분 덕분에 행복합니다.⊙
  
※ 이 내용은 안나 수녀님께서 보내 주신 편지입니다.

 

 

 

 

주민등록도 없던 노숙아, 사장 되다

 

자활 공동체 기업 '쌘뽈나우리' 운영하는 최종호씨

아동상담치료센터 입소 후 '엄마' 수녀가 권하는 일하며 자립에 대한 자심감 키워

주말마다 성당 돌며 좌판…

 

아버지는 막일을 했다. 이삿짐 날라서 번 일당을 들고 서울역 쪽방촌을 터벅터벅 걸어오곤 했다. 아버지가 숨졌을 때 그는 일곱 살이었다.

혼자 남은 어머니가 빚쟁이를 피해 달아났다. 또래들이 초등학교에 갈 때 그는 남대문시장 옷공장에서 실밥을 뜯었다. 옷공장·오락실에서 새우잠을 잤다.

아홉살부터 열한 살까지 그는 광양 친척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서울에서 돈 버는 누나에게 드문드문 장거리 전화를 걸었다. 누나 목소리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누나가 뺑소니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몹시 앓았다.

가출했다. 친척이 하루 몇백원씩 주는 용돈을 모아 2만원이 됐을 때 기차표를 샀다. 서울역 쪽방촌에 돌아와 어머니를 수소문했다. 어머니는 외대역 뒤 반지하 방에 시각장애인 의붓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의붓아버지는 지하철에서 손톱깎이를 팔았다. 1년 반 뒤 어머니가 또 달아났다.

그는 먹을 것을 훔쳐 경찰서에 불려갔다가 서울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에 인계됐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수녀 9명이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다. 형사는 수녀들에게 "얘는 주민등록도 없다"고 했다. 2000년 겨울이었다.

 

▲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성당에서 자활 공동체 기업‘쎈뽈나우리’의 최종호 대표(오른쪽 두번째)와 김보애 수녀(세번째)가 동료들과 함께 자체 개발한 황토 소금을 판매하고 있다. / 이태경 기자

 

 

10년이 흐른 지금, 최종호(23)씨는 심리치료 도구를 판매하는 연 매출 3억원의 자활 공동체 기업 '쌘뽈나우리'의 사장이 됐다. 작년 말엔 구운 소금 판매로 사업을 확장했다. 최씨는 "전부 엄마(센터장 김보애 수녀) 덕분"이라고 했다.

센터에 오기 전 몇달간 최씨는 어린 노숙자였다. 들어와서도 첫 1년은 툭 하면 가출했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최씨에게 김 수녀는 꾸준히 '일'을 맡겼다. 꿩 우리 관리, 운동장 청소를 시켰다. 잘하면 아낌없이 칭찬했다. 그는 "칭찬받으면서 조금씩 내가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김 수녀 앞에서 많이 울었다. 마음껏 울 수 있는 사람이 생기자 사는 게 덜 무서웠다. 2006년 최씨는 검정고시를 거쳐 국제대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 김 수녀가 "플래카드 걸자"고 흥분했다.

김 수녀는 그해 쌘뽈나우리를 설립했다. 김 수녀는 "제 몫 하는 성인이 되려면 18~27세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데 나라의 보호는 18세에 끝난다"고 했다. 수녀들이 애써 취직시켜도 아이들은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번번이 그만뒀다. '○○가 노숙하더라' '교도소에 갔다'는 소식도 들렸다. 김 수녀는 "그런 날은 가슴이 아파 밤새 못 잤다"고 했다.

김 수녀는 자립 대책으로 쌘뽈나우리를 세웠다. 최씨가 대표가 됐다. 회사 수익에 수녀회 기금을 보태 1억35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102㎡·31평)를 얻었다.

최씨를 포함해 20~36살 청년 11명이 이 집에 함께 살며 쌘뽈나우리에서 일한다. 회사 수익으로 학비와 공동 생활비를 대고, 월급(110만~350만원)은 김 수녀가 청년들 이름으로 적금 붓는다.

작년 말 경기도 여주의 옹기 장인이 옹기에 소금 굽는 기법을 '재능 기부' 해주었다. 카이스트 분석결과 미네랄이 풍부했다. 대진대 미대 교수가 무료로 판매 용기를 디자인해줬다.

이들은 주말마다 성당을 돌며 소금 좌판을 편다. 김 수녀가 앞장서서 "소금 사세요!"를 외친다. 수익금 일부는 더 불우한 계층에 기부한다. 김 수녀는 "받지만 말고 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최씨가 센터에 들어온 뒤, 최씨의 어머니는 간간이 연락을 해왔다. 그녀는 2007년 여름 의정부 골목길에서 쓰러졌다. 암 말기였다. 119 대원들이 최씨에게 연락했다. 서울 성가복지병원으로 옮기는 구급차 속에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울었다.

일주일 뒤 새벽 2시 어머니는 혼자 숨졌다. 김 수녀와 최씨가 갔을 때 그녀는 아직 따뜻했다. 김 수녀가 말했다. "틀림없이 네 말을 들으실 수 있을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꼭 해라." 최씨가 떨리는 입술을 뗐다. "엄마, 다 털어버리고 천국에 가. 누나 만나면 꼭 '미안하다'고 해."

지난 일요일(2월 28일) 역삼동성당에서 소금을 팔던 최씨는 "돈 많이 버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자동차 좋아하는 동생을 정비학원에 보내주고 싶어요. 요리 잘하는 형한테 빵집도 내주고 싶어요. 다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그걸 이루게 도울 거예요."

 

/ 조선 2010.03.05

 

 

 

 

 

 

 

 

 

 

일반 인터넷 판매싸이트보다 정보가 너무 없네요.^^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