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7일
요절 11절: “그녀가 대답하되 <주여 아무도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가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정죄하는 분이 아니라 은혜로우신 분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정죄하는 마음 자세의 위험성과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용서와 사랑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주님의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마음에 대한 믿음을 배워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1. 함정 질문 (1-6a)
이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에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어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한 여자를 강제로 데리고 와서
“이 여자를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았다. 모세는 그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가르쳤다(참조, 레위기 20:10). 이 여자를 돌로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법률 전문가인 서기관과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물론 좋은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백성들의 바른 믿음을 수호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독선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과소평가하고 율법을 조금이라도 이기는 사람들을 즉시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사람들을 참을성 있게 대합니다. 하나님은 죄 있는 사람을 즉각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큰 인내심을 가지고 잘못을 깨닫고 고치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빌 때 기꺼이 그들을 용서해 주십니다.
즉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이 범하는 가장 큰 잘못은 자신들의 독선으로 말미암아 남을 빨리 정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잡혀 온 여인은 누구였습니까? 그녀는 독신이었습니까, 약혼자였습니까, 아니면 기혼 여자였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그녀는 젊었습니까, 30대 또는 중년 정도였습니까?
이것도 우리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여자가 그 잘못된 행위를 할 때 바리새인들에게 걸려들었다는 것만 압니다.
그리고 그녀와 관계한 남자는 어디에 있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들이 왜 이 여인을 예수께 데려왔는지 압니다.
이 여자를 데려온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여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율법에서 모세는 우리에게 그런 여자들을 돌로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당신은 이에 대해 뭐라고 하겠습니까?” (4-5)
그들은 그들의 질문으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 “돌로 치면 안 된다”고 대답한다면, 그들은 그가 모세의 가르침에 어긋나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가 거짓 교사라고 소문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로 쳐라!"라고 대답한다면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를 로마에 대한 반란군이라고 고발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대답을 하든, 그들은 예수님을 그들이 놓은 덧으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덫은 그들 자신의 사랑 없음과 악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그 여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자를 정죄함으로 여자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 여인을 도와 이 여인을 죄에서 구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불쌍한 여인을 그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았습니다.
그들은 백성의 도덕심을 보호하고 싶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들의 악한 동기에서 나온 행위는 사람들에게 악한 마음과 행위만 북돋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2. 예수님의 반문(6b-9)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그 여자를 돌로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시고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땅에 무엇을 썼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께서 고발자들에게 자기 자신들을 돌아볼 시간을 주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께 빨리 대답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던진 질문이 예수님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혀 땅에 글을 썼습니다.
이때 질문자들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 여자를 돌로 칠 자격이 있습니까? 내가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어, 내가 십계명 중 하나를 어겼습니까? <너는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 죽이면 안 됩니다.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탐내지 말라.> 나는 살면서 악이나 거짓말이나 거짓을 범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까? 만일 나 자신이 죄를 지으면서도 이 여자를 정죄한다면, 나 자신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너무 교만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여자를 죄인으로, 예수님을 거짓 교사로 정죄하기만을 원했습니다.
이들은 여자의 밖으로 들어난 행실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의 동기도 하나님 앞에서 검토해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과 그 여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여자를 구원하여 행복한 영원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은 그들의 죄를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용서도, 천국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기꺼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죄용서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공주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자기 이마에 자신의 모든 악한 생각을 적혀있다면 모자를 깊이 눌러써서 자신의 죄를 가릴 거라고 말했습니다.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또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의 죄용서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둘씩 그곳을 떠났고, 연장자가 가장 먼저 떠났다.
3. 새 생활 (10-11)
그러면 그 여인도 예수님을 떠나갔습니까?
그녀가 원했다면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만. 하지만 그녀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회개하고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그녀에게 용서와 하나님의 나라를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발하던 사람들이 모두 갔을 때,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그 사람들 다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당신을 돌로 치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당신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가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이 멸시받고 정죄 받던 여인을 품위를 갖추고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는 그녀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시고 그녀에게 완전히 새롭고 축복된 삶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용서하시고 새로운 희망을 주셔서 그 여자를 새 출발 할 수 있게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과 로마서에 8장 1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이 여인은 더 이상 자신의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제 이 여인은 오히려 온 힘을 다해 축복받은 새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어느 정도 죄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죄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매우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의 자녀로 영접하셨으니, 이는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성자인 사람은 죄 많은 과거가 있었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광스러운 미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우리 의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셔서 변화시키셨기 때문입니다.
한 설교자가 새 100유로 지폐를 들고 예배에 참석한 청중에게 이 돈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돈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설교자는 그 돈을 구겨서 청중들에게 그 돈을 보여주고 다시 청중들에게 이 돈을 갖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갖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돈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돈이 마약을 사는 데 사용되었고, 그다음 누군가가 그것을 매춘부에게 지불하는 데 사용했고, 마침내 그돈은 도둑질한 돈이라고 설명하고 그는 청중에게 돈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렂자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돈을 갖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있어 그 돈은 어떻게 생겼는지 또는 어떤데 사용되었던지 중요하지 않고 100 유로는 100유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100유로 지폐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처럼 변함없이 모든 사람을 구히게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과거에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귀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결코 예수님을 보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한 번 길을 잃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찾았습니다. 어떤 죄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은 다 십자가의 예수님 앞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세상 법과 사람들은 우리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 자녀로 따뜻하게 받아들이시기 위해 우리를 위해 당신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확실합니다. 그분이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의 용서와 축복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