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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강세미나 22. 07.23(토)
오늘 사도행전 16장. 계속 두 증인했는데 오늘 사도행전 16장 이제 1절에서 오늘 사도행전 16장의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이 디모데는 어머니는 유대인이고 아버지는 헬라인. 이방인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습니다. 디모데가. 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자인데, 바울이 그를 떠나고자할 때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들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 인줄 앎이러라. 여러 성을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이제 이 부흥. 우리가 부흥을 원했습니다. 모든 민족의 열방이 부흥되기를 원하고 이 부흥에 대한 비밀이 여기 있습니다. 4절과 5절에. 왜냐하면 이 믿음이 더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나는 것이 이 영적 부흥을 나타내는데 이 부흥은 어디에서 오는가하면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 규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는 율법의 규례가 아니고 복음의 규례입니다. 이 예루살렘 땅에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율법의 규례를 따라서 이 제사를 지내고 그랬던 그 율법에 능통한 자들. 율법의 종교 지도자들이 이제 가르쳤는데, 이제 사도와 장로들은 이들이 작정한 규례는 복음의 제사장의 직무를 나타냅니다. 율법의 제사장의 직무가 아니고 복음의 제사장. 이 복음의 제사장의 직무가 행해질 때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여러 교회. 이여러 교회는 누구를 이야기합니까? 장로교회, 순복음교회. 이런 교회를 이야기합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이야기합니까? 우리 몸이 교회입니다. 여러 교회라고 하면 지금 여기 있는 여러분들
교회를 이야기합니다. 여러 교회. 무슨 저기 순복음, 장로교회, 무슨 교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의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 증가되어 가는 것입니다. 복음의 공동체가 확장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할렐루야. 그래서 이 복음의 공동체에게 허락한 규례는 이 땅의 교회 땅에 속한 교회의 예배, 교제, 이런 성도들의 교제, 봉사, 헌신. 이것은 구원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것이지 구원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거기다가 장로 하나 주면 목에, 어깨에 폼이나 잡고 있는 것이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주는 양식을 갖고는 안 됩니다. 이 복음의 공동체의 규례는 반드시 영적 예배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과 교통해야 됩니다. 그래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 성령과 교통을 해야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듣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땅의 주는 사람의 지식, 종교 철학, 교리, 신학. 이것을 주어서는 절대 영적 예배가 회복될 수가 없고, 성령과 교통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어디입니까? 지옥에 이르게 됩니다. 미안하지만. 제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왜? 이 땅의 사람의 지식으로 아무리 교훈과 지식을 주어도 예수님은 그들의 교훈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성령의 전이 되라고 합니다. 성령의 전. 성령의 전이 되어야 영적인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알려줍니까? 신학자가 알려줍니까? 종교 지도자가 알려줍니까? no. 성령이 알려줍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깊은 곳도 통찰하시는 그 성령께서 알려줍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 누구든지 너희는 가르칠 필요가 없다. 선생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이지 너희는 다 형제이고 가르칠 필요가 없다. 진리 안에 거한다면 성령이 다 알려준다. 다 가르쳐준다. 여러분들이 선생이 되면 그 때부터는 다 이리로 ☟(지옥) 가는 것입니다. 전부. 엉터리 선생들. 초등학교 선생들.
그렇기 때문에 이 예수그리스도의 지체인 이 몸 된 교회가 믿음이 굳어지고 부흥의 수가 나타나려면 이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 이 규례. 이 영적 예배. 이 성령과 교제가 일어나지 않고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없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도 없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이미 사도행전 2장 43~47절에 사도들에게 오순절 날 성령의 세례가 임하고 나니까 그들에게 복음의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그들의 예배가 예배와 교제에 대한 부분을 나타내는데 이 말씀은 이미 예수님이 다 하셨던 말씀입니다. 43절에 무엇이라고 말하는가하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더라.
그러면 우리 지금 여기가 복음의 공동체는 지금 이렇게 하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이 복음의 우리가 복음의 공동체라고 하면 우리 믿는 사람이 모두가 다 떡덩이가 되기 때문에 우리 모든 물건이 다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우리 모든 것이. 재산과 소유. 모든 것이 다 하나가 되기 때문에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눈다는 것은 이것이 나누어져야 열방으로 퍼져나가고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네가 잘 먹고 잘 살아라. 네가 먹고 배불리 살아라.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 야베스의 기도가 지경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그 마음을 갖게 되면 내가 이미 내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에게 주게 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육이 죽고 영이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절대로 육이 살아서는 일이 안 됩니다. 이것을 한 번 해 보십시오. 되는지. 지금 우리 이 공동체가 청년부터 시작해서 지금 노년에 이르기까지 이 성전 이것이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 여기 와서 떡을 떼는 것입니다. 지금. 떡이 되니까 각 처 지금 지방에서 오고 싶어도 지금 못 오고 있습니다. 여기가 비좁고 지금 여기에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몇 군데를 두어도 계속 몰려서 모이는 것이 이것은 극히 정상인 것입니다. 정상 중의 정상인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공동체라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가 있고 이 마지막 때 하나님 내 육이 죽고 영이 살아나기 때문에 모이고 싶어지게 되고 모이게 되고 떡을 나눈다는 것은 이것은 생명의 떡을 나눕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나눕니까? 생명의 떡을 나눕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나누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을 순전한 마음을 갖기 때문에 이 영의 양식을 먹을 뿐만 아니고 이 영의 양식을 먹기 때문에 우리 입에서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신령한 노래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구원을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할 수밖에 더 있습니까? 이것이 복음의 공동체의 규례입니다. 규례. 이것이 영적 예배. 성령과 교통하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29절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좇아왔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보고 날 따르라고 하니까 좇아갔습니다. 그 때만해도 베드로는 아직 성령의 세례를 받지 않을 때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기 전에 예수님을 보니까 쫓아다녔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참 쫓아다녀보니까 예수님이 부자 청년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저 사람이 자기가 볼 때는 굉장히 그래도 그 남을 구제할 줄도 알고 선한 사람인데 저 사람이 천국을 못 가면 우리 같은 자는 어떻게 가. 이렇게 물어볼 때 예수님이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버려버리고 주님을 쫓아다녔는데 우리가 그러면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다 버리고, 배도 버리고, 내 모든 job도 버리고, 다 버리고 갔는데 지금까지 왔는데 베드로가 지금 얻은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얻은 것이 있었으면 이 질문이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 와서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물어봅니까? 안 물어봅니까? 물어보면 저 문 열고 나가십시오. 얻은 것이 없는데 무엇 하러 옵니까, 여기? 얻은 것이 없는데. 베드로야 오순절이 안 되었으니까 얻은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나라의 복음 비밀을 다 이야기하고 공생애 기간에 이야기하는데도 베드로는 그냥 끌려서 다녔지 지금 자기가 먹은 양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생각할 때는 그러면 우리는 얻습니까? 하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큰 축복을 합니까? 너희는 나를 따르는 너희는 나중에 내가 올 때 되면 너희는 영광보좌에 앉는다. 우편 열두 보좌에 앉고 열두 지파를 심판한다. 너희들이. 그렇기 때문에 내 이름을 위하여 집과 형제, 부모, 자식, 전토를 다 버리게 되면 내가 여러 배로 너한테 여러 배로 받게 하고 영생까지 내가 보장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제사장의 규례입니다. 복음의 공동체가 행하는 예배입니다. 복음의 공동체의 교제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은 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전부. 왜냐하면 예수님도 복음의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지금 잘 하고 계십니까? 어떠신 것 같습니까? 왜 목소리가 안 나오십니까? 이제 만약에 예수님이 거꾸로 여러 배를 먼저 주고, 그 다음에 영생도 보장되었고, 그 다음에 확신이 된 다음에 주라고 하면 다 줘버릴 것입니다. 안 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항상 역설적으로 네가 다 버리면 여러 배로 주고 영생을 보장한다니 이것이 내가 육이 죽고 영이 살지 않고는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안 됩니다. 이것이. 여러분들 객기로 하지 마십시오. 객기 부리다가 다 날아갑니다. 이것은 객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부어지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떤 제자 훈련, 어떤 교육, 전도 폭발. 별거 다해도 안 됩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께서 기름을 부어서 내 안에 있는 육을 다 벗기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갈아 입혀야만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되려면 내가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을 통과해야지만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그냥 한 번 해보자. 배팅으로 한 번 해서 요즘 주식도 안 되는데 이것 해서 여러 배를 하면 이것이 더 낫다. 배팅. 이래서 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하면 예수님 하나님의 말씀을 배팅하면 꽝 되어버립니다. 거덜 나 버립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여서 기쁘고 하는 것은 저는 기쁜 것이 이 떡들이 모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떡들이 모이면서 이것이 교제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이제 때가 되면 내 물건을 통용하고 이 모든 것을 나누고 필요를 채우고 다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여러분들에게는 반드시 예수님의 약속대로 여러 배라는 것은 네가 했으니까 천 원 투자했으니까 이천 원 주께.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 배라고 하니까 몇 배 정도 됩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도. 그런 여러 배가 아니고 everything. 모든 것을 다 준다는 것입니다. 영생까지 다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했습니다. 내가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약속하면 안 믿겠지만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그래야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우리가 된다면 열방은 회복된다? 안 된다? 열방은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뛰어나가서 열방을 가르쳐서 회복되는 것이 아니고 이 안에서 그 역사가 일어나면 성령께서 날마다 수를 더하게 되어 있고 더하다보면 열방이 다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지금 사도들이 이 지금 복음의 규례를 제사장이 규례를 정해 놓으니까 이들이 가서 전할 때마다 성령이 그들의 입을 열어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자들 안에서 세상에 들어보지도 못한 율법 아래에서 제사 행위 하던 이들 안에서 이 진리가 나오니까 들을 때 자기 양식으로 준비된 택함 받은 영의 생명은 다 딸려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다 압니다. 다. 여기 지금 오신 분들은 어떠십니까? 이 모양, 저 모양. 각 모든 지금 이 땅에 있는 땅에 속한 교회 우리가 초등학문에 있을 때 다 다른 지금 동창이 없습니다. 여기에. 거의 다릅니다. A교회, B교회, C교회. 다 이런 데서 이 모양, 저 모양. 열방에서, 해외에도 계시고 이리저리 해서 온 것입니다. 왜 왔습니까? 여러분들이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멋있어서? 생수가 쏟아져 나오니까 이 꼴을 먹고 오는 것입니다. 그것 먹으러 오는 것입니다. 그것 먹으러.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는 어떻게 됩니까? 순전한 음식들, 신령한 음식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여러분 입에서는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있는 지경에 복음이 이 생수가 쏟아져 나가기 시작하면 메마른 땅 그 메마른 땅이 옥토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감춘 열매들이 또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부흥. 할렐루야.
그래서 바울이 영적 예배자. 이 영적 예배자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이 몸짱이 되어서 weight을 들고 해서 몸이 이래서 하나님이 볼 때 멋있다. 그 몸을 받습니까? 아니면 우리를 보아도 몸짱이 아니고 그런데 그 안에 하나님이 거룩한 하나님이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안에 내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하나님 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생명입니다. 그 말씀을 받은 복음의 씨들을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그렇게 제사를 받으면 하나님이 받고 이 말씀이 향기롭다고 받는 것이 아니고 왜 받으십니까? 그 말씀을. 하나님은 우리를 왜 거룩한 산 제사로 왜 받습니까? 왜 받는가하면 그 말씀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말씀이 창세전에 있던 말씀이 완성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자.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인 예배자. 이 영의 생명들이 드리는 예배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언약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말씀을 이루고 성취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말씀을 받은 자를 찾고 그와 함께 교통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지 하나님이 무슨 여러분들 안에 있는 말씀 좀 받고 예배할 때 내 자식들 귀하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의 말씀을 성취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적 예배자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지 않으면 무엇이 안 됩니까? 예수님의 몸이 완성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말씀인데 그 말씀이 온전하게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이신데 예수님은 초림 때는 무엇으로 오십니까? 제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제물로써 상한 몸으로 가셔서 인류를 대속하고 재림에 오실 때는 그분은 만왕의 왕 심판주로 오셔야 되는데 그분의 몸은 상한 몸으로 있습니다. 그 상한 몸이 이 거룩한 성령이 거하는 전들과 연합을 이룰 때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의 권세가 회복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이 다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지 우리가 얼마나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 완성에 우리가 지체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복 중의 복입니다. 우리를. 나는 이것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내가 생각하면 예수님의 지체라는 생각이 잘 안 듭니다. 왜냐하면 좀 거룩하지가 못합니다. 내가. 이렇게 무엇인가 신령해야 되는데 그런 것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아도. 그런데 하나님이 택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버지가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를 택했다고 하는데. 이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택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이것이 참 최고의 영광입니다. 최고의 영광. 믿어지십니까?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 무엇인가? 이 믿음이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 예수님의 말씀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모르고 무슨 구원 받는 자의 수가 날마다, 날마다 나겠습니까? 여러분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돌아보면서 초등학교 때 다녔던 학교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서 무엇을 배웠는가? 무엇을 했나? 그림 공부만 했습니다. 그림 공부만. 그 안의 내용은 모르고 그림 공부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는 늘 곤고한 것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생수가 안 차는 것입니다. 생수가. 이 기름이 차야 넘칩니다. 생수의 강이 터져 나와야 되는데 이것은 안 터집니다. 억지고 쥐어짜도 안 나옵니다. 먹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이 먹은 것 같은데 똥물만 먹었습니다. 생수를 먹어야 되는데. 이제는 여러분들이 이 생수를 먹고 믿음의 말씀을 충만히 채우게 되면 여러분 입에서 성령이 전파하게 합니다. 반드시 전파하게 됩니다.
그래서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고 네 입으로 예수가 주라고 시인을 하고 하나님께서 그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 누구입니까? 살리신 이의 영이 예수님을 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살린 것을 네 마음에 믿게 된다면 너 역시도 살리신 이의 영이 너 안에 임해야지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너도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리신 이의 영이 없는데 무엇으로 구원을 받습니까? 안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예수 믿고 구원 받아라. 예수만 믿으면 구원 받는다. 예수 믿는 사람 손 들어보라. 하나, 둘, 셋. 오늘 구원 되었다. 이것이 구원 받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조롱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안에는 예수그리스도가 죽었는데 그분이 오셔서 죽었을 때 그 살리신 이의 영이 즉 그분을 살린 부활의 영이 살린 그 부활의 영이 네 안에 임해야 너도 부활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부활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냥 예수 이름 하나만 팔아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하튼 예수하고 돈하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맘몬 신이 아닙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이 땅에 있는 돈하고 동급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마음으로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아니고 지식이 아니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이 마음에 살리신 이의 영이 임해야 내가 부활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것은 부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지 무엇으로 돌아갑니까? 육신을 가지고는 갈 수 없는 곳이고 내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이 되어야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부활의 생명이 되어야 입으로 예수가 우리의 그 신랑이시고 그분이 만왕의 왕 심판주로 오시는 분인 것을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없이 예수님 안에 있는 영이 우리 안에 없는데 무엇으로 예수를 증거 합니까?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어떻게 삽니까? 증인의 삶을? 지금까지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잘 사셨습니까? 예수의 증인의 삶을 살았으면 예수님은 지금 벌써 오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난 다음에 지금 헛소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성령의 권능이 안 부어졌으니 어떻게 예수의 증인의 삶을 삽니까? 이 땅에 가르치는 초등학문 가지고 예수의 증인의 삶을 증거 했는데. 그러니 이 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래서 성경에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하니. 왜 예수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가하면 예수를 안 믿는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것. 죄의 근원은 예수를 안 믿는 것입니다. 근본 본질은 예수를 안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무슨 재주로 믿습니까? 예수를 믿으려면 예수그리스도를 살리신 이의 영이 내 안에 있어야 예수가 그 부활했다는 것을 증거 하는데 내 안에 살리신 이의 영이 무엇인지, 부활의 영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영이 무엇인지,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예수를 예수가 구원주고, 예수가 심판주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 너와 네 집에 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어떻게 증거 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무슨 예수를 증거 하느냐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그러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닙니다. 집안 꼴이 다 죄와 사망의 법에 다 매어서 집안이 엉망 된 것입니다. 형통하지가 못하고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죄와 사망의 법으로 묶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인 줄 믿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겠느냐.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겠느냐. 전파하는 자가 없는데 어떻게 예수를 믿느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저를 믿지 않는데 무엇을 안 믿습니까? 예수를, 무엇을 안 믿는 것입니까?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예수를 부르는가. 예수님의 무엇을 안 믿습니까?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예수님이 창세전에 감춰진 하나님의 비밀. 이 비밀을 이 땅에 비유로 다 말씀하셨던 그 비유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그 비유를 알려면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는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그것을 풀어주어야만 아는데 성령 곧 내게 진리의 성령에 내게 안 왔으니 어찌 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전해주는 자가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이것을 어디 가서 듣느냐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초등학문 아래에 있는 땅에 속한 교회에서 다 들었으니 무슨 예수를 증거 할 수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모르는데, 하나님나라와 그의 의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무엇을 믿고 무엇을 전파하느냐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십니다. 내가 전하는 하나님나라의 비밀 이 복음은 나를 따르는 너희에게만 허락되었다. 저들에게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게 했다. 행여나 보고 듣고 죄 사함을 받을까봐.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마가복음 4장 11~12절에 그렇게 예수님이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면 분명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자가 있고 듣지 못할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복음을 들었습니까? 믿어집니까? 그러면 여러분 입에서 전파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전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그 직무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예수님도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아들을 독생자로 이 땅에 보내버린 것입니다. 왜? 이 새 언약의 천국복음을 전하라고.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셔서 이것을 전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왕 같은 대제사장으로 오셨는데 그분의 지체는 그분이 전한 좋은 소식을 또 전해야 됩니다. 온 땅에. 그러면 전하려면 이 천국복음을 전파하려면 그들 역시도 왕 같은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 땅에 전해져야 이 어두움 가운데 일어나 빛을 발하는 빛의 아들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때가 된 것입니다. 때가.
그러므로 그 예수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은 들음에서 나는데 무엇을 듣는가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예수님이 보낸 진리의 성령. 이 진리의 성령이 오셔야지만 예수님이 전한 말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전한 말씀 안에는 장래에 일어날 모든 그리스도의 계시가 다 재림의 계시가 다 증거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복음서를 열면 예수님의 재림하는 때까지 다 증거 되어 있습니다. 다 이야기하셨습니다. 아는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아는 것도 없는데 또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합니다. 무엇을 믿느냐고 하면 그냥 예수니까 믿습니다. 너도 믿고, 나도 믿고. 어디 교회 다닙니까? 이런 교회 다녀야지 안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말씀은 없습니다. 진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았습니다. 지금은 이제 이 말씀이 이제 쏟아져서 나오기 시작하고, 열방으로 이제 퍼지기 시작하고, 열방에서도 지금 듣는 자가 생기고, 그곳에서도 전파가 되고, 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왜? 이 말씀이 온 땅에 전파가 되어야 생명나무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고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이미 이 복음의 소리는 온 땅에 퍼졌고 이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 하였느니라. 이 말씀이 온 땅에 퍼졌고 이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 천국의 말씀 이 비밀한 복음들을 다 증거 했을 때 온 땅에 이미 다 퍼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소리입니까? 예수님이 유대 땅에 오셔서 이천 년 전에 오셔서 전했는데, 지금은 이 늦은 비로 해서 지금 열리는 것이지 이것이 이천 년 지금까지 이 복음이 초석으로 바울 등을 통해서 이른 비 때 이렇게 역사가 일어났고 그 안에 없어졌는데 그러면 언제 이것이 퍼졌다는 것입니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 이야기는 이 말씀이 땅 끝까지 퍼진 것은 언제 퍼졌는가하면 에덴동산에서부터 퍼졌습니다. 에덴동산의 생명수의 강이 퍼져서 온 땅에 퍼졌을 때 이미 이 땅은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채워졌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아브라함에게 오셔서 성찬을 통해서 이 말씀의 약속의 씨를 갖다가 정해주시고 예수님이 이제 당신이 초림에 오셨을 때 이 비밀한 복음들을 다 증거 했는데, 그 때는 증거 했어도 예수님은 비유로 증거 했기 때문에 들을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오순절 날 이른 비 성령이 오셔서 이 말씀을 온 땅에 증거 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천 년 동안 잠잠하다가 늦은 비 때 이제 나타나서 증거 될 때 지금 나타난 것이 아니고 이미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도 이 말씀은 온 땅에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영적세계와 물질세계를 다 채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왜? 그 말씀 안에 약속이 있기 때문에 약속의 말씀대로 영적세계도 움직이고 있었고 물질세계도 움직이고 있었고, 예수님은 때를 따라 오셔서 그것을 증거 해 준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처음과 끝이 동일하신 것입니다. 참 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만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머무는 것이고, 이것이 들린다는 것은 우리는 창세전에 있는 생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입니다. 참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이 땅이 주는 그런 조잡한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영생하는 그 생명수를 공급 받고 천국의 그 기쁨을 미리 이 땅에서 육을 가지고 맛을 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셔야 됩니다. 최고의 기쁨이고, 최고의 영광이고, 최고의 축복입니다. 축복.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도 이 말씀이 들린다는 것이.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 8~19절에 이렇게 증거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구원의 여정. 새롭고 산 길인 구원의 여정을 가기 위해서는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을 통과해야지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는 그 여정의. 길이. 그래서 누구든지 철학이나 그들의 헛된 속임수, 노략 이런 것들을 너희들이 분명히 주의해야 되고 이런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는 것이니까 이것을 먹으면 너희들이 다 지옥 간다. 지옥 가니까 이것은 거짓이니까 너희 노략하는 것이다. 사단들이. 절대로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니니까 이 초등학문을 다 버려라. 다 묵은 곡식을 다 버리고 새 곡식으로 채워라. 그 때부터 너희들에게는 할례가 임하기 시작하는데 그 때부터 할례가 유월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너희들한테. 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에게 유월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천 년 후에 지금 우리도 이 새 곡식으로 갈아입는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이제 우리가 갖고 있던 것들을 다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례가 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할례가. 육적인 몸을 다 벗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벗어야 즉 육적인 몸을 다 벗어야 그리스도의 할례가 임해져야 되고 임하고 나야 우리가 어떤 자가 되는가하면 예수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하나님의 역사 그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도 그 부활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활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 여정을 지나야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무엇이 걸립니까? 이 땅에 이 진리의 성령이 오기 전에는 초등학문에 다 우리가 매이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초등학문에 매어서 다 왔던 사람입니다. 바울도. 처음부터 이 하늘나라의 비밀을 성령이 와서 부을 때 알아듣습니까? 못 알아듣습니다. 저도 해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수 있게 훈련과 이런 그 연단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그 어떤 때가 되어야 진리의 성령이 부어주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여정을 오는 것입니다. 여정을. 그래서 그 여정 가운데 왔을 때 어떻게 됩니까? 우리 안에 있었던 그 의문의 증서. 우리가 모든 성경이 다 의문의 증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복음이 나오니까 이 의문의 증서가 다 드러나 버렸습니다. 이제는 의문의 증서가 아닙니다. 빛의 아들이 되고 우리에게는 의문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이 벗겨진다는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육이 다 벗겨졌다. 내 안에 있는 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 육이 육 안에 거하면 이 땅의 먹고 마시고, 절기, 월삭, 이런 어떤 행위, 종교적인 행위. 이런 것들에 좇아가는데 이것은 장래의 그림자이지 이것이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그리스도의 지체, 몸이기 때문에 이 머리에서 주는 이 생명수를 공급 받아야지만 하나님이 너희를 자라게 하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연합을 성령 안에서 한 몸으로 연합을 이루어주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냥 이렇구나. 버려버리고.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여정 가운데서 우리가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깨달아진다는 것은 우리가 입고 있던 육적인 것을 하나하나 벗어가는 것입니다. 깨달아지는 것은 내가 그 묵은 곡식 아래에 있었던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성령이 내게 찾아오기 전까지는 내 정체성을 모를 때는 내가 죄 가운데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영의 생명이면 나에게 하나님이 정한 때에 진리의 성령이 와서 터치하기 시작하면 내가 그 때부터 이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좇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좇아가게 합니까? 성령이 나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간다고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참 바울은 내가 바울 복음서는 율법과 복음의 본질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지만 바울은 정말 내가 복음서를 이렇게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는 것은 바울은 죄와 사망에서 영생이라는 그 과정을 분명히 깨달은 자고 자기가 사망으로 갈 자였는데 영생으로 해 주신 그 은혜가 넘쳐버렸던 자입니다. 그것을 분명히 아는 자입니다. 자기는 사망으로 가고 있었던 그를 성령이 자기를 영생으로 끌고 가는 이 과정을 그는 분명히 알았던 자입니다. 그래서 그가 증거 한 복음서는 다 그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영생의 맛을 본 자입니다. 그래서 그의 증거들은 다 그런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21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 이야기는 내가 아직 율법 아래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어 있다면 내 육체는 부활의 생명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에 묶여버렸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해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내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지금 그리스도의 영이 임했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복음의 씨로 이제 알게 되었는데 다시 죄로 나타난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를 짓게 하는 자냐?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는 자다. 우리는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는 생명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 율법으로 돌아간다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의롭게 되었는데 어떻게 율법으로 돌아가는가?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에서 영생으로 갔는데, 영생보다 사망이 좋아 그러면서 영생을 놓고 사망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복음의 씨로 택했는데 내가 다시 아니야, 나는 율법으로 모세오경으로 돌아가야 돼. 그러면 예수님이 너를 다시 죄인으로 만드는 그런 분이냐는 것입니다. 너희를 죄인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결코 너희를 죄를 짓게 할 수 없다.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게 되면 우리는 이미 의인으로 세워져버리기 때문에 죄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우리가 헐었던 내가 묵은 곡식을 다 버렸는데 버렸던 것을 다시 먹는다?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이 땅이 진리를 모르면 다시 백 투 더 예루살렘.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자. 모세오경. 이 자체를 지금 사도 바울이 말한 갈라디아서 2장 17절, 18절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다시 우리를 죄 짓게 하는 분으로 만드는 이런 죄악을 짓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지금 패역한 일을 하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저 예루살렘입니다. 이스라엘.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절대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다시 묵은 곡식으로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초등학문 아래로 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다. 율법에 능통한 자였는데 율법을 향하여 죽었는데 자기가 죽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할례가 임해져버렸습니다. 자기가 종교교리를 좇았었는데 그래서 그 바리새인이 주는 그 학파에서 열심을 내서 율법에 능통한 자가 되었는데 이 성령이 와서 자기를 인을 쳐버리니까 율법을 향해서 죽어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향해서, 복음을 향해서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이 이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나도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유월절을 맞이했다. 나 자신도 내 안에 십자가. 예수님과 함께 못이 박혔다는 것은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것입니다. 못이 박혔으니까 나도 유월절을 통과하면서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라는 것은 말씀.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무교병. 내가 이제는 유교병을 먹는 것이 아니고 무교병으로 먹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영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산다는 것은 그 말씀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이렇게 내가 육신은 아직 내 육신은 죽지 않았지만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이라는 것은 성령의 전이 되었다. 예수그리스도도 성령의 전이요 우리도 성령의 전. 예수님이 붓는 생명수의 생수가 내 안에도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가는 그런 성령의 전이 되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만약에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율법이 복음의 완성을 이룬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헛되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9장 22~25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제자들이 있는데 지금 제자들이 무슨 이야기하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저 장로들하고 제사장들 때문에 저들이 나를 버린다. 버린 돌이 되어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죽이지만 내가 삼일 만에 내가 살아나겠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다.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내 자신의 육신을 다 버려버리고 죽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너희가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내가 가는 길은 지금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을 통과해야 되는데 나를 따라 오려면 너희도 이 통과를 해야 내가 삼일 만에 부활했듯이 너희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기의 육신을 위해서 살고자하면 사망에 이르지만 자기 육신이 죽고 영이 살아나면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것이 너희가 모든 것을 버리게 되면 여러 배로 받을 뿐만 아니고 영생을 상속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조금만 더 쉽게 이야기해 주시지 어렵게 이야기하셔서. 그러니까 제가 또 할 이야기가 있죠. 전할 말이 있죠.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생명나무이신 그분이 그 십자가를 지고 가야 가지와 실과가 열매 맺혀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는 것은 결국 내 육이 죽고 영이 살아야지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육이 죽어야 영이 사는 것을 압니다. 육이 죽어야 무교절 날 영이 살아나서 또 초실절 날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는 부활의 완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그렇게 가야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시겠습니까? 할렐루야.
그렇게 가려면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거해야 되고 우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어야 되고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가 없고,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만약에 계신다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살게 된다. 왜냐하면 이 영은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은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씨. 말씀이 어떻게 죄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성령으로 오셨고 영으로 오셨는데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영으로 오셨습니다. 영으로. 예수님이 영으로 안 오시고 그냥 마리아 몸에서 태어났다면 예수님도 죄인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영으로 오셨기 때문에 거룩한 영으로 임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우리는 영으로 왔습니까? 육신으로 왔습니까? 진리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임했을 때 영으로 임하게 되니까 여러분의 육신이 성육신이 되고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
그러니 참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이 말씀을 듣고 이곳에서 지금 예배하고 함께 교제하고 떡을 떼고 기뻐서 또 하나님 마지막 사명도 함께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이 기쁩니까? 우리가 이제 하나님 사명하면 큰 부자도 되고, 이제 여러 배니까 여기서 100평짜리 얻고, 벤츠 이런 것 타십시오. 다 하고, 그것도 기쁘지만 그것보다 우리가 내 안에 있는 영이 살아나서 주님 오실 때 휴거될 수 있는 몸으로 변화되어 가는 그 성전이 된다는 것. 그래서 기쁜 것입니다. 이 모든 가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 안에 우리가 여정 안에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 이제 요셉의 단과 이 노아에게 하나님이 임했던 그래서 결국은 우리에게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이런 훈련과 이런 과정을 겪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과정은 우리를 부활생명으로 만들기 위한 그것이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자기가 죽지 않고 자기 생각이 많으면 방주, 무슨 장사를 하니, 뭐 어쩌니. 이것은 영의 생명, 부활의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냥 복음만 가서 전하면 되지. 예수만 믿으면 되지. 이런 전부 다 이 땅의 초등학문 아래에서 배웠던 그 육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입에서 말이 나가는 것입니다. 영의 생명이라면 마지막 때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그 비밀을 알게 되면 내가 어떻게 됩니까?
화목직책의 사명을 받는 하늘의 대사의 권세가 임해집니다. 방주는 아무나 예비합니까? 고센 땅은 아무나 예비합니까? 성경에 읽어보십시오. 방주를 세상에 그 많은 사람 중에 노아를 통해서 예비하게 하지 아무나 개나 소나 불러서 방주 예비합니까? 애굽 시대 바로 왕이 사는 그 시대에 애굽의 바로 왕이 사는데 요셉을 그렇게 감방에 넣어서 고난을 통해서 세워서 그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을 통과시켜서 그 부활의 영체가 되어서 그에게 주는 비밀, 하나님이 주는 비밀을 담아서 그 피난처 고센 땅과 이 열방을 회복하는 비밀을 요셉을 통해서 하는 것이지 누구를 통해서 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이 마지막 때 열방을 지금 회복하려면 이 기름부음 받은 자를 통해서 하는 것이지 누구를 통해서 하겠습니까? 그것은 성경이 증거 하는 것이고 마지막 추수에 대한 비밀을 하나님이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라고 지금 예수님이 이야기하시고 이 천국복음을 주신 것도 그 복음 안의 핵심이 바로 이 영원한 복음 속에 아들과 종과 시민을 추수하는 그 비밀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추수하는가를 알려준 것입니다. 시기와 때를 다 알려주고, 열매를 알려주고, 정체성을 다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어떻게 이것이 마지막 때 복음의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것이며, 복음의 제사장 되었다고 해서 그냥 예배하고 저도 그냥 여기서 여기 왔을 때 제사장 복 멋있는 것 맞춰서 입고 앉아서 할렐루야 하고 종 같은 것 띵띵 치고, 물도 뿌리고. 그런 것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내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자유하고. 기쁘고. 기쁘십니까? 요즘에 짠짠짠도 하고 난리 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알면 손가락질할 텐데 괜찮습니다. 손가락질하는 것. 아버지만 괜찮다고 하면 괜찮습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하시고 이제 참으로 최고의 빛의 아들들이 일어나는 여호와의 영광이 빛의 아들들에게 머무는 시간대가 왔습니다. 그 시간대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빛이 증거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강권적으로 역사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지금 강권적으로 역사하고 계시는데 세상에 밖에 있는 자들은 모릅니다. 몰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손가락질할 수 있고 헛되다 할 수 있지만 헛되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이루시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됩니까? 열방이 전부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사명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다 임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지막 이 사명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 사명에 주역들이 되시고 너와 네 가정에 구원을 이루는 이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여러분의 가정에 부어낼 때 너와 네 집에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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