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 한가위
원래 오늘 전례력 상의 날짜로는 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 세 대천사 대축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가 대천사 세 분을 밀어낸 모양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축일을 맞으신 분들께 한가위 기쁨과 함께 축하드립니다. 주님의 천사들이 늘 지켜주시고 용기를 주시기 기도합니다.
한가위는 잘 아시다시피 두 가지를 기억합니다. 첫째로는 가을걷이를 하고 난 만족함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과, 우리에게 생명과 땅 그리고 사람다운 삶의 의미를 물려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여 어떤 형태가 되었던 인생의 깊고 아름다움과 삶의 희로애락 뒤에 나오는 보람을 서로 나누는 날입니다. 음식도 많이 나누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가족·친지 간의 사랑도 많이 나누면서 또다시 인생을 기쁘게 힘을 내어 살아갈 이유를 많이 발견하시는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와 함께 살다가 하느님 곁으로 돌아간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이 영원한 천상잔치에 참여하도록 경건한 마음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축복이라는 말을 가지고 우리 신자분들과 하루를 넉넉한 마음으로 지내기 바랍니다. 축복을 라틴어로 Benedictio라고 합니다. 이 말은 좋다는 뜻의 Bene와 말함, 발설이라는 뜻의 Dictio가 합쳐진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이라는 뜻은 “좋게 말함”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좋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와 모든 피조물을 축복하셨습니다. 이렇게 축복된 인생과 세상은 인간이 “좋게 말함”을 실천할 때 더 많은 결실과 열매로 우리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수고가 이 세상을 늘 축복할 수 있고, 오늘 독서에서 말씀하시듯이 풍성한 결실을 냅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느님의 뜻에 따라 땅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더 큰 축복으로 비를 내려주시고 마침내 낟알을 걷게 해 주십니다. 이런 축복의 삶의 마지막은 영원한 축복으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을 늘 축복으로 살고, 특히 영원한 축복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독서와 복음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오늘 하느님의 축복을 세상에서 실천하는 것을 소명으로 살았던 이 세상에 살던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가 아는 분이건 알지 못하는 분이건 상관없이 하느님께서는 삶을 경건하게 대하고 축복으로 여기며 생명과 사랑을 우리에게 물려주신 모든 분이 영원한 축복의 식탁에 나가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삶의 수고스러움에 지쳐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했던 분들을 위해 자비를 구합시다. 무한한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정성을 굽어보십니다.
그리고 결심합시다. 오늘 하루를 우리가 모두 축복으로 살기로. 특히 우리에게 주어진 가족들을 시작으로 축복을 나누어 마침내 하느님의 축복 안에서 살아가도록 우리의 삶을 통해 노력하고 진심으로 사랑할 것을 결심합시다.
오늘 만월을 구름 사이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언뜻언뜻 보일 달처럼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가끔은 얼굴을 보이시고 가끔은 얼굴을 감추시면서 우리를 정화하시고 강하게 만드시며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 비전동 식구들과 그분들의 가족 친지들을 깊이 축복하는 날이 되기 기도합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묵시 14,13)
[비전동성당]주임신부 정연혁 베드로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