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三剛 중 한 사람이며, 조선 중기의 문신(154-1620) 학자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도가(道 可), 호는 한강(寒 岡) · 사양병수(泗 陽 病 叟), 시호는 문목(文 穆), 본관은 청주(淸 州)이다. 감찰(監 察) 정응상(鄭 應 祥)의 손자, 김굉필(金 宏 弼)의 외증손, 부사맹(副司猛) 정사중(鄭思中)의 아들이며, 좌찬성 정곤수(鄭崑壽)의 아우이다. 성주이씨(星州李氏)와 혼인한 인연으로 성주에 정착하였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 일컬어졌다. 7세 때 『논어』와 『대학』을 배워 대의를 통하였으며, 12세 때 종 이모부이며 조식(曺植)의 고제자였던 오건(吳健)이 성주향교의 교수로 부임하자 그 문하생이되어 『주역』 등을 배웠다.
1563년에 이황(李滉), 조식(曺植), 성운(成運)에게서 성리학을 배우고 그 이듬해 상경하여 과장(科場)까지 갔다가 시험에 응하지 않고 귀향하였다. 그 뒤로는 과거를 단념하고 구도의 일념으로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관직으로는 1573년에 김우옹(金宇顒)의 추천으로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계속하여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사임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경학을 비롯하여 산수 병진 의학 풍수에 정통하였으며 특히 예학에 뛰어났다. 많은 제자를 배출했고 당대의 명문장가로서 글씨도 잘 썼다. 인조반정(1623)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