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 성수산 신광사
신광사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기 전에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다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고 하며, ‘성수산’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절의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830년(흥덕왕 5)에 무염국사(無染國師 801~888)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무염국사는 충청남도 보령 성주사(聖住寺)에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일으켜 후학들을 지도했는데, 신광사가 자리한 지역에는 그럴 만한 절이 없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여 절을 지었으며, 절 이름인 ‘신광사’는 곧 항상 새로운 인재가 자라나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 고려시대에 절이 어떠했는가는 기록이 없어 잘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597년의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타서 없어졌다고 하며, 그 뒤 1649년(인조 27)에 천해선사(天海禪師)가 중창했다.
한편 18세기 후기에 지어진 '가람고'에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보이며. '범우고'에도 그 이름이 있어 그 무렵에도 절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서 1848년(헌종 14)에는 현감 조능하(趙能夏)와 운장(雲漳) 스님의 노력으로 중수되었다.
근래에는 1950년의 한국 전쟁 때 잠시 절이 비었다가 1969년에 보수 되었고, 최근 1985년에도 한 차례 보수된 바 있다.
절은 옛 부터 정성을 다하면 신비로운 서기가 내린다고 전해져 수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신광사 입구
신광사 입구의 고목
신광사 전경
신광사 부도탑
절 입구에는 1827년(순조 27)에 세워진 무송긍초(茂松亘初)스님의 부도탑과 1849년(헌종 15)에 세워진 <법당대공덕주 현감조공능하영세불망비>가 있다.
신광사 요사채
신광사 명부전
명부전은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인데, 기둥은 둘레 150㎝의 싸리나무로 세워졌다. 안에는 가운데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 ․ 무독귀왕 및 시왕상 10체, 판관 ․ 녹사 ․ 사자 ․ 인왕 각 2체씩이 배열되어 있다.
신광사 요사채
신광사 수조
신광사 대웅전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 113호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인데, 지붕이 기와가 아닌 ‘너새’라는 돌로 이어진 것이 특이하다. 1848년에 중건되었다.
안에는 석가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 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상과 제석천룡탱화 및 1828년에 현감 조능하가 지은 <신광사법당중건상량문>이 걸려 있다.
대웅전 귀면
귀면(鬼面)의 일종인 '용면문(龍面文)' 3개가 채색되어있다.
대웅전 귀면
귀면(鬼面)의 일종인 '용면문(龍面文)' 3개가 채색되어있다.
대웅전 귀면
귀면(鬼面)의 일종인 '용면문(龍面文)' 3개가 채색되어있다.
신광사 대웅전
신광사 동종
싸리나무 기둥으로 지어진 명부전과 요사채
신광사 산영각
신광사 석등
신광사 명부전내 지장보살상
신광사 시왕상
신광사 시왕상
첫댓글 신광사 구경 잘했습니다
아늑한 느낌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석등이 일품이요 잘 봤읍니다.
구경잘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