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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巳夜(계사야) 至良才驛(지양재역) 作家書(작가서)
계사일 밤 양재역에 도착하여 집에 편지를 썼다.
略曰(략왈) 死生禍福(사생화복) 無非命也(무비명야) 亦復奈何(역부내하)但念稚兒滿室家(단념치아만실가) 又屢空死者已矣(우누공사자이의) 不知生者將如何耳(부지생자장여하이) 須體余意無過毁以傷(수체여의무과훼이상) 生惟以奉祭慈幼爲心(생유이봉제자우위심) 且待仲氏生男(차대중씨생남) 取一爲嗣(취일위사) 凡事悉依仲氏(범사실의중씨) 所命切勿違戾可也(소명절물위려가야)
대략 이러하다. 생사화복은 명이 아닌 것이 없고 또한 다시 어찌 하겠는가, 다만 생각하니 집에는 어린아이만 가득하고, 가난하게 죽음으로 그칠지 살지는 알 수 없어 어찌할 수는 없지만 모름지기 내 몸은 생각 하건대 상처로 헐어 지나침이 없으나 오직 생남하여 자애로운 마음으로 제사를 받들어 주거나 또는 중 씨의 생남을 기다렸다가 양자를 한 명 취하여 대를 잇고 무릇 모든 일은 중형에게 의지한다면 명을 끊어도 여한이 없을 뿐이다.
甲午(갑오) 曉入京(효입경)
갑오 새벽에 서울로 들어왔다.
至禁府(지금부) 守門者爭問曰(수문자쟁문왈) 此是某爺之子(차시모야지자)某人邪(모인사) 皆相視咨嗟(개상시자차)
금부에 도착하자 문을 지키는 자 묻기를 이 사람이 모야의 아들 모인 인가. 모두 서로 보며 탄식하였다.
付典獄(부전옥)
전옥에 넘겨졌다.
大臣以某病癘(대신이모병려) 不可入殿庭(불가입전정) 請付典獄故也(청부전옥고야)
대신이 모가 질병으로 전정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전옥으로 넘길 것을 청한 연유다.
三月庚子(삼월경자) 漢陰李相公(한음이상공) 使人問病(사인문병)
3월경자에 한음 이 상공이 사람을 시켜 문병하였다.
送淸心元(송청심원)
청심원을 보냈다.
辛丑(신축) 命解枷拘留(명해가구류)
신축 칼을 쓰는 구류를 풀도록 명했다.
大臣(대신) 以病重(이중병) 啓故也(계고야)
대신이 중병을 아뢰었다.
乙巳(을사) 特(특) 命保放(명보방)
을사 특별히 보석으로 풀려났다.
前一日(전일일) 大司憲李爾瞻啓曰(대사헌이이첨계왈) 罪人柳某(죄인류모) 是故相臣柳某之子(시고상신류모지자) 聞在典獄 病重將死伏(문재전옥병중장사복) 願加賜恩典(원가사은전) 不使死於獄中(불사사어옥중) 光海曰(광해왈) 渠爲柳某之子(거위류모지자) 則予亦聞知矣(즉여역문지의) 但未知渠之爲人(단미지거지위인) 如何耳(여하이) 對曰(대왈) 渠亦守拙安貧(거역수졸안빈) 當初入獄之日당초입옥지일) 都城士子無不歎惜(도성사자무불탄석) 素非見信於人何以如此(소비견신어인하이여차) 判府事沈公喜壽(판부사심공희수) 啓曰(계왈) 聞市井小民(문시정소민) 聞某入獄(문모입옥) 莫不咨嗟涕泣(말불자차체읍) 夫柳某是一介書生(부류모시일개서생) 安有使市民不忘之事(안유사시민불망지사) 而其所以咨嗟涕泣者이기소이자차체읍자) 柳某之父(류모지부) 當(당) 國家危亂之際(국가위란지제) 大有勳勞(대유훈노) 民到于今(민도우금) 受其賜(수기사) 今日之哀(금일지애) 柳某非特哀其無罪(류모비특애기무죄) 亦以不忘其父之恩故也(역이불망기부지은고야) 臣久欲陳達(신구욕진달) 而不敢(이불감) 今爾瞻先發之(금이첨선발지) 實國家之福也(실국가지복야) 判義禁朴承宗(판의금박승종) 及在廷諸臣(급재정제신) 又相繼陳之(우계진지) 光海顧謂(광해고위) 領相李公德馨曰(령상이광덕형왈) 何以處之(하이처지) 對曰(대왈) 臣亦諒其無罪(신역량기무죄) 而不敢達矣(이불감달의) 翌日(익일) 傳曰(전왈) 罪人柳某(죄인류모) 姑爲保放(고위보방) 待其病差後推問(대기병차후추문)
지난날 하루는 대사헌 이 이첨이 아뢰기를 “죄인 류모는 상신 류모의 아들로 들으니 전옥에 있었는데 병이 중하여 죽을 것 같으니 은전을 내리시어 옥중에서 죽지 말게끔 하소서.” 하자, 광해군이 “류모의 아들이면 거수라 내 또한 들어서 알고 있다. 다만 그가 거수인지 사람됨이 어떠한지를 알 수가 없을 뿐이다.”하면서, 또 대답하기를 “거수 또한 쓸모 없이 안빈을 지키니 당초 입옥하는 날 도성의 선비들이 탄식하고 애석해 하지 않음이 없었다. 본시 보지 아니하고 사람을 믿음이 어찌 이와 같을 수가 있겠는가?” 판부사 심 희수 공이 아뢰기를 “듣자 하니 시정 소민들이 ‘모인이 입옥함을 듣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음이 없었다’ 하나, 대저 일개 서생을 어찌 잊지 못할 일이 있었겠습니까 만은, 그러나 탄식하며 눈물을 흘린 까닭은 류모의 부친이 당면한 국가의 위난을 끝낸 커다란 공로가 있어, 백성들이 지금에 이르러 그 은덕을 받아 금일의 류모를 애도하는 것이지, 특별히 죄가 없어 애도하는 것이 아니며, 그 부모의 은덕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 오래 전에 말하고자 하였으나 감히 말할 수 없었는데 지금 이 이첨이 먼저 말하니 실로 국가의 복이옵니다.”하였다. 판의금 박 승종과 조정의 여러 신하가 서로 이어 말하자, 광해군이 둘러보며 영상 이 덕형 공에게 “어찌 처리할까”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 또한 그가 죄 없음을 아오나 감히 말할 수가 없었을 뿐입니다.”하였다. 다음날 전교를 내려 죄인 류모는 잠시 보석으로 석방하니, 병의 차도를 기다려 추국하여 문죄할 것이다 하였다.
留獄門外(류옥문외)
옥문 밖에서 머물렀다.
旣出獄(기출옥) 人或勸先生往射㕔李姊家(인혹권선생왕사청이자가) 或他處先生以罪名(혹타처선생이죄명) 猶在不從(유재불종)
이윽고 옥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선생을 사청 이씨 자형 집으로 가게 하였다. 다른 곳은 선생죄명으로는 또 따를 수 없는 곳이었다.
五月(오월)有夢尋舊居詩(유몽심구거시)
5월 꿈에서 옛집을 찾는 시가 있다.
兩地相思日月多(양지상사일월다)
天涯消息問如何(천애소식문여하)
縲絏絆身心不絆(누설반신심불반)
夢隨蝴蝶到南河(몽수호접도남하)
두 땅이 서로 사모하니 일월도 사모하고
하늘 끝의 소식일랑 어찌 물어 볼 건가
포승 줄에 묶인 몸 마음만은 묶이지 않아
호랑나비 따라 닿은 남녘 강은 꿈속이었네
二十六日(이십육일) 仲兄洗馬公卒(중형세마공졸) 于京(우경)
26일 중형 세마 공이 서울에서 돌아가셨다.
洗馬公有孝友至行(세마공유효우지행) 隨先生上京(수선생상경) 晝夜涕泣焦煎(주야체읍초전) 至是病發竟不救(지시병발경불구)
세마공 효성과 우애를 행함이 지극하여 선생을 따라 상경하여 주야로 울며 애태우고 마음 졸여 병을 얻기에 이르러 마침내 구할 수가 없었다.
六月二十二日(유월이십이일) 洗馬公喪車南下(세마공상거남하)是日庭推蒙放(시일정추몽방)
6월22일 세마공 상여가 남으로 내려 가는 날 조정에서 석방하였다.
供略曰(공략왈) 臣雖微賤(신수미천) 世受國恩(세수국은) 向國之心(향국지심) 與凡人不同(여범인부동) 况臣父常時敎誨(황신부상시교회) 不出忠孝二字(불출충효이자) 至於臨死(지어임사) 作詩以戒之(작시이계지) 臣佩服遺言(신폐복유언) 庶幾無失父志(서기무실부지) 如使有一毫㐫悖之念(여사유일호흉패지념) 則死何顔復見兦父乎(즉사하안부견망부호) 但臣不幸叨參嵬科(당신불행도참외과) 使此賊知有臣名(사차적지유신명) 而一朝出於㐫口(이일조출어흉구) 上凂朝廷下辱兦父(상매조정하욕망부) 此實寃痛無涯(차실원통무애) 求死不得云(구사부득운) 云(운) 傳曰(전왈) 柳某聞是故相柳某之子(류모문시고상류모지자) 其人有功於先朝(기인유공어선조) 子不忍殺其子(자불인살기자) 特赦之(특사지) 以慰其父之靈(이위기부지영)
공초함을 대략 말하자면 “신 비록 미천하오나 대대로 국은을 받은 지라 나라를 향한 마음 다른 사람과는 같지않으며 하물며 신의 부친은 상시 교회 하시기를 충효 두 자가 아니면 나가지 말라 하셨으며 죽음에 임하여 시를 지어 경계하셨고 신에게 폐복할 것을 유언하셨습니다. 헤아려 바라기는 부모의 뜻을 잃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만약 한 터럭의 어그러진 생각이 있다면 죽어서 어찌 망부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겠나이까. 다만 신 불행하게도 외람되이 높고 높은 과거를 보아 이로 하여금 적이 신의 이름이 있음을 알고 그리고 하루아침에 흉악한 입에서 나오니 위로는 조정을 더럽히고 아래로는 망부를 욕보였으니 이는 실로 원통함은 끝이 없고 죽어서도 구제받을 수 없사옵니다 라고 하였다. 전교를 내리며 말하기를 류모는 들으니 재상 류모의 아들로 그 선조가 조정에 공이 있어 내 차마 그 자식을 죽이지 못하고 특별히 사면하여 그 영령을 위로 함이라.” 하였다.
二十四日(이십사일) 發行追及(발행추급) 洗馬公喪車(세마공상여) 于忠州水回村(우충주수회촌)
24일 출발해 따라가 세마공 상여를 충주 수회촌에서 만났다.
○七月到家(칠월도가)
7월 집에 도착하였다.
○九月葬洗馬公(구월장세마공)
9월 세마공 장사를 치렀다.
先生痛仲兄之歿(선생통중형지몰) 每對人語(매대인어) 及必稱吾罪(급필칭어죄) 三年之內不食肉聽樂不與人宴飮(삼년지내불식육청락불여인사음) 略如 古人心喪之制(략여고인심상지제)
선생 중형이 돌아가신 고통을 사람을 대할 때마다 말하기를 “내 죄라” 말씀하시고 삼 년 동안 육식을 먹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과 함께 술자리도 하지 않았으니 대략 옛사람들의 상례를 치르는 마음이었다.
作壬子錄(작임자록)
임자록을 저술하였다.
記被逮顚末(기피체전말)
체포된 전말을 기록하였다.
冬挈家移寓於玉淵精舍(동설가이우어옥연정사)
겨울 가족을 이끌고 옥연정사로 이사하여 머물렀다.
○書(서) 靜坐終日易(정좌종일이) 操存一刻難(조존일각란) 十字掲之座隅
정좌종일이 조존일각란이라는 열 자를 써서 자리 옆에 걸어놓으셨다.
每夜鷄鳴(매야계명) 而起整衣冠危坐(이기정의관위좌) 誦昔賢箴銘(송석현잠명) 訖還臥向明而起傍人不覺也(흘환와향명이기방인불각야)
매일 밤 닭이 울면 일어나 의관을 갖추시고 준엄하게 앉으셔서 옛 선현들의 잠명송을 암송하시며 밝은 곳을 돌아 눕거나 곁에 사람이 일어나도 알지 못했다.
○所居村南(소거촌남) 有峯聳拔(유봉용발) 寄秀峯下(기수봉하) 有巖臨江(유암임강) 壁立千仞(벽입천인) 俗名秀巖(속명수암) 先生以修改秀(선생이수개수) 因自號焉(인자호언)
살고 있는 마을 남쪽에 빼어나게 솟아있는 봉이 있고 기이하고 수려한 봉 아래는 강에 맞닿은 바위가 있으며 천길 높이 절벽이 서있는데 속칭 수암이라 선생이 수를 수로 고쳐 자 호로 삼으셨다.
四十一年癸丑(先生三十二歲) 九月(구월) 哭金廣麓(곡김광록)
41년 계축(선생32세) 9월 김 광록 공이 돌아가셨다.
先生與金公契誼岳(선생여김공계의심독) 有祭文(유제문) 又撰遺事(우찬유사)
선생과 김공은 독실하게 정분을 맺으셨으며 제문이 있고 또 유사를 찬하셨다.
四十二年甲寅(先生三十三歲) 三月(삼월) 李進士享南(이진사형남) 來訪(래방)
42년갑인(선생33세) 3월 이형남 진사께서 내방 하였다.
引坐雙松臺(인좌쌍송대) 李公歎曰(이공탄왈) 美哉江山以君居(미재강산이군거) 此可謂兩美相合(차가위양미상합)
쌍송대에 앉아 이공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아름답구나 그대가 살고 있는 강산은 두 가지 아름다움을 서로 합친 듯하구나!” 하셨다.
四月(사월) 謁屛山書院尊德祠(알병산서원존덕사)
4월 병산 서원의 존덕사를 배알하였다.
院在河隈上流五里許(원재하회상류오리허) 時士林(시사림) 將奉安文忠公位版祭(장봉안문충공위판제) 訪金公允思以書要先生與偕(방김공윤사이서요선생여해) 先生辭待奉安後(선생사대봉안후) 二日往謁(이일왕알)
원은 하회 상류 오리가량에 있는데 이때 사림에서 문충공 위판을 봉안코져 김 윤사공이 방문하여 선생에게 글을 요청하고 함께 하고자 하였으나 선생 사양하고 봉안 후 이틀을 기다려 가서 배알 하였다.
與金鶴陰念祖會松林(여김학음염조회송림)
김 학음과 송림에서 염조회를 열었다.
論朞三百(론기삼백) 璿璣玉衡註講心經(선기옥형주강심경)
선기옥형주강심경의 삼백 돌을 맞아 논강하셨다.
遊鄕校(유향교)
향교를 유세 하셨다.
與張敬堂興孝夜論心經(여장경당흥효론심경) 及理氣說(급이기설)
장경당 흥효야론심경과 이기설을 유세하셨다.
往川城道(왕천성도)榮川拜金栢巖玏(영천배김백암륵)
천성 가는 길에 영주에 있는 김 백 암륵을 배알하였다.
○六月有自警說
6월 자경설이 있었다.
曰(왈) 人之害德莫過於諂(인지해덕막과어첨) 所謂諂者不必趨走(소위첨자불필추주) 拜跪於上之人(배궤어상지인) 以求其悅已(이구기열이) 然後方可謂之諂(연후방가위지첨) 凡愚儕輩(범우제배) 或己下之人(혹기하지인) 至於奴隷之賤(지어노례지천) 往徃强爲非所欲之(왕왕강위비소욕지) 言以曲循其意(언이곡순기의) 或彼有難從之(혹피유난종지) 請不能直言(청불능직언) 以拒之者(이거지자) 皆諂之類也(개첨지류야) 余有此病(여유차병) 酒後尤甚(주후우심) 書此以自警云(서차이자경운)
사람의 해덕은 아첨에 지나지 않으나 아첨하는 자를 꼭 추주 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윗사람에게 절하고 꿇어앉음은 복종함을 구할 뿐 그런 후 아첨한다고 말할 수 있다. 대체로 어리석은 동배들이 혹 자기 아래 사람을 노예의 천함에 이르러 이따금 강제로 그렇게 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나 말을 함에 뜻을 돌려 왜곡하고 혹 저들에게 따름에 어려움이 있자 정직하게 말하지 말 것을 청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자 모두 아첨하는 류이다. 내 이병이 있으니 취한 후에 더욱 심하여 이를 글로써 스스로 경계함이다.
九月(구월) 約金忘言榮祖金溪巖(약김망언영조김계암) 遊淸凉山(유청량산)
9월 김 망언, 영조 김 계암과 청량산을 유람하기로 약속하였다.
有遊山日錄(유유산일록)
유산일록이 있다.
十月(시월) 與金忘言金溪巖全正宇(여김망언김계암저정우) 會于屛山書院(회우병산서원)
10월 김망언 김계암 전정우와 함께 병산서원에서 만났다.
泛舟屛巖下(범주병암하)
병암 아래 배를 띄웠다.
還河隈(환하회)與堂兄敎授公襑(여당형교수공심) 及全正宇 (급전정우) 泛舟秋月潭(범주추월담)
하회로 돌아와 종형인 교수 심공 그리고 전정우와 함께 추월담에 배를 띄웠다.
是夜月色甚明(시야월색심명) 水天交輝(수천교휘) 縱舟所如至(종주소여지) 夜三㪅乃罷(야삼경내파)
이 밤 월 색은 심히 밝아 물과 하늘은 빛으로 뒤섞이고 배는 가고 십은 곳 마음대로 하니 밤 삼경을 지나 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