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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블랙홀이 부딪치는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시뮬레이션하였다. <출처: LIGO Caltech>
2016년 2월 11일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는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지구로부터 약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태양 질량의 29배와 36배인 블랙홀 두 개로 이뤄진 쌍성이 충돌하였고, 그 과정에서 태양의 3배 가까운 질량의 에너지가 수분의 1초 사이에 방출되었다. 블랙홀 주변의 시공간이 찌그러지고 그 여파는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이 중력파는 세계협정시(UTC) 2015년 9월 14일 오전 9시 51분 지구를 통과하면서 LIGO의 측정 장치에 그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간접적인 관측이기는 하지만 중력파의 존재는 1974년에 조셉 테일러와 러셀 헐스에 의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중성자별 주변을 도는 펄서의 자전주기와 펄스 방출주기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펄서 궤도의 축소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예측한 중력파에 의한 에너지 방출과 일치함을 보였다. 테일러와 헐스는 이 업적으로 199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40년 전에 이미 그 존재가 확인됐던 중력파에 대한 직접적인 관측이 2016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LIGO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15개국, 90개 이상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1000명 이상의 과학자가 참여한 프로젝트다. 이 연구 수행을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연구비가 투입되었다. 중력파 관측을 위해 이렇게 막대한 인력과 지원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중력파 측정을 위해서는 만큼 작은 흔들림을 감지하는 정밀한 측정장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흔들림은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에서 수소 원자 크기보다 작은 길이의 차이에 불과하다.
중력장 측정에 필요한 정밀도를 얘기하기 전에 우리 주변의 길이 측정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요즘은 병원이나 체력단련실에 가면 키와 몸무게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신장체중측정기를 흔히 볼 수 있다. 보통 키를 잰 결과가 0.1센티미터 단위로 나오지만, 허리를 펴고 숨을 들이쉰 채로 재면 0.5센티미터 정도는 쉽게 바뀌기도 한다. 키가 170센티미터인 사람의 키를 잰다고 하면 아무리 정확히 잰다고 해도 신장측정기의 정밀도는 기껏해야 30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중력파 측정에 필요한 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값이다. 그렇다면 자의 정밀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길이 측정의 오차는 자의 눈금에 달려있다. 사과를 반쪽으로 자른 후, 지름을 측정한다고 해보자. 0.1센티미터 단위로 눈금이 표시된 자를 이용해 한쪽에 ‘0’ 점을 잘 맞춘 후, 반대편 눈금을 읽으려고 하는데 하필이면 15.3센티미터와 15.4센티미터 사이에 걸쳐있다. 이럴 때 사과의 지름은 보는 사람에 따라 15.3센티미터, 15.4센티미터, 또는 15.35센티미터로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측정 결과들은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더 정밀한 측정도 하지 않았으면서 15.3323센티미터라고 주장한다면 15.3 이하의 숫자 “323”에 대해서는 신뢰를 얻기 힘들다. 눈금의 간격이 0.1센티미터이기 때문에 그 이하의 정확성을 주장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측정의 오차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려면 자의 눈금을 촘촘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우선 눈금선의 두께가 너무 가늘거나 눈금선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으면 맨눈으로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눈금 간격이 겹치지 않도록 어미자와 아들자를 이용해 정밀하게 눈금을 구분한 버니어 캘리퍼스는 0.05밀리미터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0.05밀리미터는 사람 머리카락 두께와 비슷한 길이로 맨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맨눈의 한계는 현미경을 이용하면 넘을 수 있다. 현미경의 대물렌즈에 10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눈금을 새겨 넣으면 박테리아나 세포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미경을 사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가시광선 영역의 빛의 파장보다 작은 0.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길이는 광학현미경으로는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맨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가시광선 파장의 길이 0.5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눈금으로 자를 만들어 사람의 키를 측정한다 해도 그 정밀도는 1백만 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중력파를 관측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미흡한 정밀도다.
현미경 대물렌즈의 눈금을 이용한 측정 <출처: Ron Pastoring at wikimedia.org>
자에 눈금을 그어 길이를 측정하는 것은 미터 원기를 길이의 표준으로 정하는 방식에 대응된다. 길이를 재기 위해 눈금의 표준을 사용하는 것이다. 한편 앞선 글 [킬로그램 원기는 다이어트 중]에서 빛의 속력이 일정하다는 것에 근거해 길이의 표준을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로 정의한다고 했다. 길이의 표준이 막대나 자의 눈금이 아니라 빛이 움직인 거리로 정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빛이 움직인 거리를 측정하기란 쉽지 않다. 빛의 속력은 일상적으로 다루기에는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길이의 표준을 정하면서 우리는 빛의 속력이 일정하다는 점을 이용했다. 그리고 빛은 파동의 성질을 갖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은 400~700나노미터의 파장을 갖지만, 700나노미터 이상의 파장 영역은 적외선, 센티미터~수백 미터까지는 라디오파 영역에 속한다. 반대로 400나노미터보다 짧은 영역은 자외선, 그보다 더 짧은 나노미터 이하는 X-선, 그 이하는 감마선 영역에 속한다. 이론적으로 빛은 모든 길이의 파장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빛의 이런 특성을 측정에 이용할 수는 없을까?
앞선 글 [소리는 파동의 겹침]에서 파동의 특징은 주기성임을 얘기했다. 파동은 공간에 퍼진 모양이나 시간에 따른 진동 모두 주기적으로 이루어진다. 파동의 주기성을 자의 눈금에 대응해서 생각하면 빛을 자로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빛을 자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은 미국의 앨버트 마이켈슨이다. 마이켈슨의 간섭계로 알려진 이 장치에서는 광원에서 나온 광선이 빔 가르개(beam splitter)를 지나면서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도록 고안되었는데, 광선이 갈라지면서 지나는 두 경로의 거리가 서로 다르거나, 서로 다른 물질을 지나면서 굴절률의 차이가 생기면 빛 파동의 위상차가 발생하여 간섭무늬에 변화가 생긴다.
예를 들어, 간섭계의 경로나 굴절률 차이가 정확히 180도의 위상차를 만든다면 상쇄간섭 상태가 되어 빛은 밝기가 ‘0’이 된다. 만일 두 경로 중 한쪽의 거울이 움직여 위상차에 변화가 생기면 상쇄간섭에서 벗어나 빛의 밝기가 커진다. 이 밝기 변화를 측정하여 위상차 각도를 구하면, 거울이 움직인 거리를 빛의 파장과 위상차에 비례하는 거리로 환산할 수 있다. 마이켈슨 간섭계의 원리를 적용하면 길이 측정의 정밀도는 빛의 파장과 거울 사이의 거리에 따라 얼마든지 높게 만들 수 있다. LIGO 중력파관측소에서 높은 정밀도의 측정을 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마이켈슨 간섭계의 원리를 이용한 측정장치다.
파동의 주기성은 공간에 퍼진 모양 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른 진동에도 있다. 따라서 빛의 파동성을 이용하면, 공간상의 길이 측정 뿐 아니라 시간적 간격의 측정도 가능하다. 공간적인 위상차가 있는 파동이 섞일 때 상쇄-보강 간섭을 일으키듯, 주파수가 다른 두 파동이 섞이면 맥놀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440 Hz와 441 Hz의 소리를 내는 소리굽쇠를 동시에 두드리면, 두 파동의 간섭에 의해 1초에 한 번 진동하는 1 Hz의 소리가 난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일정한 진동수의 파동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파동의 진동수를 쉽게 측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악기를 조율할 때, 아무런 기준 주파수 없이 440, 441, 442, 443 Hz 진동수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440 Hz의 소리를 기준으로 정하면 440, 441, 442, 443 Hz 진동수를 구분하는 대신에 0, 1, 2, 3 Hz를 구분하는 일이 되어 상대적인 진동수의 차이를 쉽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맥놀이의 원리는 단순히 진동수를 측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체의 속력이나 잡음을 제거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인다.
맥놀이를 이용한 측정 장치 중 자동차나 야구공의 속력을 측정하는 데 유용한 스피드건이 있다. 일반적으로 스피드건은 마이크로파를 물체에 발사하고 반사되는 파동의 진동수 변화를 측정하여 물체의 속력을 구한다. 움직이는 물체에서 반사되는 파동에는 도플러 효과가 작용한다. 물체의 운동 방향이 파동의 전파 방향과 같으면, 물체에서 반사되는 파동의 주파수는 그 속력에 비례하여 줄어든다. 하지만 그 물체가 파동의 전파 방향과 반대로 움직인다면, 반사된 파동의 주파수는 속력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예를 들어, 10 GHz 마이크로파를 움직이는 자동차에 발사했을 때, 반사되어 돌아온 마이크로파의 주파수가 (10G+100)Hz라고 하면, 스피드건은 쉽게 주파수가 100 Hz 차이남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물체는 (100 Hz/10 GHz)x(빛의 속력/2) = 1.5 m/s, 즉 시속 5.4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다가오는 것이 된다.
맥놀이는 잡음 제거 기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원리다. 앞서 설명한 맥놀이 현상은 서로 다른 진동수 f1, f2의 파동이 섞일 때 진동수의 차이에 해당하는 (f1-f2)의 파동이 걸러져 나오는 현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진동수의 합 (f1+f2)에 해당하는 파동도 만들어진다. 다만 (f1+f2)의 파동은 더 높은 진동수의 파동이라 실제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 하지만 f1과 f2 진동수의 파동이 섞여서 (f1-f2), (f1+f2) 진동수의 파동을 만드는 원리를 거꾸로 적용하면, 잡음을 줄이는 측정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60Hz 이하의 전기 신호 f1을 그대로 키우려고 하면, 주변의 잡음이 더 크게 증폭된다. 특히 60 Hz의 교류전원에 의한 잡음은 크게 나온다. 따라서 f1의 신호를 증폭시키는 대신, f2=10 kHz의 교류신호를 함께 섞으면 (f2+f1), (f2-f1) 파동 신호로 바뀌어 저주파의 잡음과 상관없이 증폭될 수 있다. 이렇게 증폭된 신호에 다시 f2=10 kHz를 섞으면 증폭된 f1과 (f1+2*f2)의 신호로 분리되어 잡음이 없는 증폭된 f1 신호를 얻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로크인 앰프(Lock-in Amplifier)’라 한다.
중력파 신호를 검출하는 과정에서도 온갖 종류의 잡음에 대한 검증 절차를 갖추고 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에서 수소 원자 크기보다 작은 길이의 흔들림을 잡아내는 실험에서는 건물 내 사람들의 발걸음이나 건물 밖의 바람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 이런 과정에서 맥놀이 원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주변에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의 진동수 영역에서 분리된 영역을 이용한 방법을 찾는다면 측정의 정밀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
자의 눈금을 기준으로 한 측정이나 빛의 간섭을 이용한 측정 모두 한계가 있다. 자의 눈금은 눈금을 긋는 선의 두께를 원자 이하로 줄일 수 없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원자의 크기를 재기 위한 자를 만든다면 자의 눈금을 어떤 것으로 정할지 고민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가시광선 파장 이하의 물체를 직접 관찰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가시광선 파장보다 3천분의 1 이하인 원자의 모양을 정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빛의 간섭을 이용한 측정에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마이켈슨 간섭계의 원리는 주어진 파장의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밀도를 높이려면 더 짧은 파장의 빛을 써야 한다. 그런데 빛의 특성상 가시광선보다 짧은 파장의 빛은 파동의 성질보다 입자의 성질이 커서 파장을 눈금으로 활용하기에 적절하지 않게 된다. 특히 원자 크기 이하를 정확히 볼 때 필요한 감마선은 파장보다는 입자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결과적으로 길이 측정의 한계는 원자의 크기를 측정하는 방법의 문제로 돌아간다. 원자는 핵입자와 전자로 구성되어 있어, 원자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은 핵입자 주변에 있는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과 같다. 결국 길이 측정의 한계는 전자의 위치 측정의 한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측정 대상인 전자 입자와 측정 도구인 빛에 담겨있는 본질적 성질을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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