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상급 하드락밴드 아프리카의 보컬리스트 작은새님께서 정득의방 게시판에 멋진 공연후기를 올려주셨다. ‘역시 좋은 공연에는 좋은 후기들이 주렁주렁 열려야 제맛’이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쓰기 시작했다.ㅋ
말을 걸다
어느새 겨울의 입구에 왔다. 주거환경이 취약한 사람들을 염려하게 되는 겨울. 쪽방과 거리, 공원, 공중화장실 등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이 아직 많다. 국격 높다는 이 국가에서 아직 동사하는 사람이 많다. 추위도 추위이지만 내가 일터에서 만나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누군가가 이야기를 나누길 원한다. 가난에는 낭만이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언젠가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자와 빈자 사이의 벽이 점점 두꺼워지고 있는 이 시대에서의 가난이란 인간관계까지 끊어지게 만드는 무서운 놈인 것이다. 관계가 끊어지면 외롭기 마련이다. 누구나, 누군가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은 따뜻한 말이면 더욱 좋다.
공짜 공연
공연 당일, 공연장 위치를 확인해보니 전혀 모르는 곳이다. 지하철은 다니지 않고, 버스노선을 알아봐도 어디에서 탈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심각한 길치인 나로서는 대단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도 만들어낸다고 했던가? 일단 가보자. 나 말고 친구 둘이 함께 있었으니 과감하게 택시를 타고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아무리 ‘일단 좋은 공연이 무료이니 택시비 쯤이야..’라고 생각하려해도 택시비는 택시비..지못ㅠ
어쿠스틱 밴드 소리
월드-퍼커셔니스트라고 불리우고 싶다는 신재승, 연주 중간 중간 수컷의 면모가 드러나는 기타리스트 박태민ㅋ 그리고 삶이 노래이고 싶다는 가수 임정득. 이렇게 딴따라 셋이 모여 함께 놀다가 어쩌다가 시작된 밴드의 이름은 ‘소리’이다. 그리고 이날 게스트 세션으로는 미녀 피아니스트 이지민와 어딘지 수줍어 보이는 베이시스트 박종문이 함께해 공연을 빛내주었다.
소리로 말을 걸다
박태민의 기타연주가 시작된다. 환한 조명 아래 기타 줄은 빛났고 풀어헤친 연주자의 셔츠단추가 근사해보였다. 마침 사진을 찍을 일이 있어 빌려온 DSLR 카메라로 공연사진을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조작법을 익히느라 첫곡은 귓등으로 들어버렸다. 두 번째 연주곡은 MBC무한도전에서 자주 등장해 더 유명해진 곡, 스티비원더Stevie Wonder의 ‘Isn't she lovely’였다. 기타 한 대로 연주되는 이 곡은 마치 관객에게 정말 ‘그녀가 사랑스럽지 않나요?’라고 묻는 듯이 사랑스럽고 발랄하게 들려왔다.
<기타리스트 박태민>
의외는 그 다음 곡에서 임정득이 노래를 부른 순간이었다. 내한공연도 몇 차례 가진 바 있는, 달달한 J팝의 대명사 일본의 어쿠스틱밴드 비더보이스Be the Voice의 Altogether Alone을 그녀의 입에서 들을 수 있다니! 알만 한 사람은 알고 있다. 가난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당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나가는 수많은 현장에서, 자연이 파괴되어가는 현장에서, 시민들이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현장에서 늘 힘찬 목소리로 연대해온 그녀가 투쟁과 저항을 외치지 않고, 심지어는 힘을 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공연 내내 말을 했다. 힘을 빼고 싶다고 한다. 사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힘을 주는 것 보다 빼는 것이 더 어려운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혼자 속으로 ‘그렇지, 이야기는 힘을 빼야해. 잔뜩 힘을 주고 있는 꼰대와는 이야기하기 싫지’. 그리고 조용히, 느리고 무겁지 않은 목소리로 이상은 원곡의 어기여 디여라를 이어갔다. 아마 이 부분이 공연 중 가장 좋았던 곡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보컬 임정득>
북치고 장구치는 신재승의 장구 솔로곡 ‘즉흥’이 시작된다. 나는 ‘국악을 어떻게 즐겁게 들으란 말야?’ 라고 하는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근데 옆 사람은 장구연주에 슬슬 가볍게 박수를 치며 그루브를 탄다. 저게 된단 말야? 이런 저런 생각으로 공연을 보던 차에 곡이 시동을 걸더니 이윽고 폭풍 채질이 시작된다. 객석 중간중간에서 잘한다, 우와와 같은 추임새, 감탄사가 있었는데, 폭풍 채질이 시작되자 공연장은 탄성과 박수로 가득차버렸다.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박수와 추임새로 함께하였고- 어쨌건 내가 본 장구연주곡 중에서 가장 즐겁고 채질이 폭풍스러웠던 장구연주곡이었다.
<월드-퍼커셔니스트 신재승>
블루보싸Blue Bossa가 지나가고 드디어 싱어송라이터 임정득의 노래가 나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평온해 보이는 세상을 보라던 ‘직면’. 가난한 이가 자유로운 세상과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을 상상한다는 ‘상상하다’, 자유로운 이 세계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취(取)하다가 결국 취(醉)해버린다는 ‘자유로운 세계’가 이어져 나왔다. 중간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부르다 보니 노래들이 죄다 가난한 사람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입니다.
아마 제가 가난해서 그런가 봅니다.’
이 말에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나왔다. 생태체계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건 이 사회와 나는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고, 해결은 당사자인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지 않는가? 아마 그러한 발상들이 힘을 빼지 않은 결과가 아닐까? 나에게는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언어차원의 기준이 있다. 상대방이 ‘함께 한다’, ‘거든다’는 표현을 쓴다면 우린 협력적인 관계라고 생각할 것이고 ‘위한다’는 표현을 쓴다면 아마도 그와 나 사이에는 어떠한 위계가 형성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해버릴 것이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 중 어떤 부류는 ‘내 삶은 아니지만 힘들어하는 너희들을 위해 내가 이렇게 사서 고생하노라’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나서 하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정득의 멘트가 환영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노래 ‘자유로운 세계’는 켄로치감독의 동명 영화 자유로운 세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그 영화 졸면서 보다가 중간에 꺼버렸고 결국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지난 해 겨울 임정득 첫 번째 콘서트에서 언급했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자유로운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원하는 곳에 갈 수가 있으며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세계는 너무나 자유로워서, 가진 자들이 사람을 해고하고 착취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주노동자들도 자유롭게 사용하고 버립니다.
어쩌고 저쩌고...’
자유로운 세계는 음반에서 가장 기대되는 곡이다. 12월 16일에 첫 번째 앨범이 발매되면 그때 자세히 들어보도록 해야겠다.이번 공연은 음반 발매 전 기대하게 만든 공연이었다.ㅎㅎ
이날 공연에는 배와 관련된 노래가 많았다. 이님들, 배타고 싶은 것일까? 어기여 디여라, 뱃놀이, 뱃놀이 락버젼까지. 마지막 뱃놀이인 뱃놀이 락버젼에서는 임정득이 맨발로 무대아래까지 내려와 흥을 돋구었고, 관객들은 신이 났다. 몇몇은 객석에서 방방 뛰었다(방방 뛴 사람들은 멋있는 사람들이 분명해).
끝곡으로 밥말리Bob Marley의 No woman No cry가 나왔다.
모든 것이 잘 될 것 이라고,
여성들이여 울지 말라고 거듭거듭 말하는
유명한 후렴구를 따라부르고 싶었는데 노래 키가 안 맞아서 그만..ㅎ
마무리
가난한 사람 임정득이 가난한 사람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노래로 말을 건다. 이 겨울, 주거지가 없어 집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생존권을 위해 노숙투쟁 중인 사람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따뜻하게 이 겨울을 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새로 나온다는 음반, 더욱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임정득의 목소리가 실려있기를 기대한다.
+1
글을 다 쓰고 보니 아프리카의 공연도 보고 싶다. 고향 떠나 서울에 자리를 잡을 때 아침마다 나에게 힘을 준 아프리카. 아프리카 공연 본 사람은 모두 아시겠지만 너무 즐겁다. 처음 듣는 사람도 다 방방 뛴다. 문득 생각난 말이 있다.
가을엔 전어, 락공연은 아프리카.
방금 지은 말이다. ㅋㅋㅋㅋ
Link>
정득의 방
정통하드락밴드 아프리카
첫댓글 ㅋㅋ 거의 논문을 써주셨군요....감사합니다.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그리고 나도 아프리카 공연이 보고싶다는....
후기를 넘 길게 써버렸나요 ㅋㅋㅋㅋ
대구 지리를 잘몰라 못간 1인!! 어헝 건데 무료공연이엇군요 ㅋㅋ 전철역만 가까웟서도 가는건데 친절하게도 문자까지 보내주셧는데 정득씨(!) 미앙해용 첫음반 공연할땐 어디던지 가볼참입니다 이왕이면 국채보상공원에서 ㅋㅋ 거긴 제가 걸어갈수 있서요 (넘흐 가난해용 ㅠ.ㅠ)
후기가 음악평론가 수준이시넹 !
과찬, 감사합니다ㅎㅎㅎㅎ
다시 읽다 보니 궁금해집니다 그러므로님! 아프리카로 가는 길좀 갈켜주시죠!! ^^** 뱅기 타고 가야되나요?
요즘은 클릭질로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rockbandafrica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