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가 잠든 곳, 몬타뇰라로
1. 헤세가 40년간 정착하며 뭇 걸작을 쏟아낸 몬타뇰라
헤세가 무려 40년간 정착하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의 걸작을 쏟아낸 몬타뇰라로 가기 위해 우선은 취리히로 갔다. 취리히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기차를 타고 루가노로 간 다음, 루가노에 짐을 풀고 버스로 몬타뇰라에 가는 계획이었다. 몬타뇰라는 워낙 작은 마을이라 묵을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몬타뇰라에서 헤세의 정원과 묘지까지 둘러본 후 다시 취리히로 돌아와 헤세에게 '영혼의 멘토'가 되어준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흔적을 둘러볼 계획까지 야무지게 세워두었다. (정여울 책 290쪽)
* "행복이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입니다. 대상이 아니라 재능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서간집] 중 ; 정여울 책 293쪽)
2. 물과 명상
호숫가를 산책하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은 아무리 걸어도 아깝지가 않다. 헤세의 [싯다르타]에서는 '물'을 보며 명상에 잠기는 주인공의 고뇌가 아름답게 그려진다. 물은 마음의 거울이 되어 슬픔에 빠진 싯다르타의 상처 입은 무의식을 비춰준다. 헤세는 명상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서양철학이 '의식의 주체성'을 강조한다면, 그가 빠져들었던 인도의 불교는 '의식 없는 사유', 즉 의식을 밀어낸 저 너머의 사유를 추구했다. 서양철학이 논리적 사유를 강조한다면 동양철학은 직관적 사유를 중시한다고 생각했던 헤세는 명상이야말로 논리적 사유와 직관적 사유를 조화롭게 일치시키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정여울 책 297쪽)
* "모든 것이 마치 평면적이고 이차원인 것처럼 바라보고 묘사하는 것, 이것이 학교와 박식함의 단점 가운데 하나였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중 ; 정여울 책 294쪽)
3. 세렌디피아
세렌디피아(serendipity)의 묘미를 느끼는 순간이다. 뜻하지 않은 즐거움, 의도치 않은 우연의 기쁨을 느끼는 순간. 루가노의 세렌디피티, 그것은 카프카였다. 카프카도 루가노에 방문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알려주는 이 석상을 보자 나는 반가움에 환한 미소를 지울 수 있었다. 카프카 또한 자신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던 헤세의 마음을 알았을까. (정여울 책 298쪽)
* "아, 우리는 이제 다르게 살아야 하고, 다르게 존재해야 한다. 하늘과 나무 아래 더 자주 서 있어야 한다. 더욱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더더욱 아름다움과 위대함의 비밀을 가까이 간직하며 살아가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옛날 음악> 중 ; 정여울 책 299쪽)
4. 내 마음의 거울 헤세
헤세는 내 마음의 거울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헤세를 읽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 자신'이 보이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헤세를 읽으면 '슬픔의 동굴에 차라리 계속 숨이 있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이 보인다. 헤세는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호소하고, 당신이 읽으며, 당신이 사랑하고 또는 비판하는 저 헤세는 당신 자아의 한 모습이라고. 헤세는 당신 마음의 거울이라고. 헤세에게 무언가를 묻고 싶다면 오히려 당신의 마음에 묻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정여울 책 301쪽)
*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모방하고 그들의 동굴을 자신의 얼굴로 여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중 ' 정여울 책 301쪽)
5. 미적 거리
헤세는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내 저서의 선전이나 번역에 아무 흥미도 없습니다. 내가 죽고 50년 후에도 세계의 어딘가에 내 저서에 대한 관심이 남아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 나의 작품 속에서 적당한 것을 뽑아내 자기 것으로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나 잊혀버린다면 그것은 애당초 없어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작품에 '미적 거리'를 두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가 떠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 헤세를 향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은 오히려 더 크고 깊어진 느낌이다.
* "세상으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두는 사람은 산골짜기에 앉아 자기 그림자의 행로를 관찰하고 각자 제 나름의 궤도에 따라 돌아가는 해와 달의 한결같이 고요한 리듬을 경청하면서 영혼을 흠뻑 빼앗긴다. 가련한 서양인, 우리 독일인들은 시간을 한 시간당 경우 동전 한 개의 가치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단위로 잘게 쪼개버렸다." (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 중 ; 정여울 책 304쪽)
6. 은밀한 기쁨
헤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 작품들 중 몇몇이 인정받지 못하거나 혹평을 받으면 오히려 '은밀한 기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작품 중 몇몇이 혹평을 받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헤세 스스로에게는 은밀한 자랑, 숨은 기쁨이었다고. 헤세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은 '나만의 정원'이지 모두가 산책할 수 있는 공공의 정원은 아니라고. 그는 가슴에 묻어두고 싶은 그 소수의 작품들을 자기만의 정원처럼 홀로 산책하고 싶어 했다. (정여울 책 309쪽)
* "해나 바다나 바람과 같은 하얀 것, 정처 없는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누이들이며 천사이기 때문에." (헤르만 헤세의 <흰 구름> 중 ; 정여울 책 307쪽)
7. 치유의 공간
독일에서 '조국의 전쟁'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출판을 금지당한 헤세는 힘겨운 방황 끝에 스위스 몬타뇰라에 정착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정원 가꾸기'에도 재능을 발휘한다. 정원은 그에게 '세상으로부터의 피난처'이자 '이야기의 에너지'를 선물하는 치유의 공간이었다. 그가 사교 클럽에 출몰하면서 '더 유명한 작가'가 되는 데 시간을 쏟았다면 우리는 [데미안]이나 [싯다르타] 같은 명작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여울 책 312쪽)
* "꽃잎 한 장이나 길 위의 벌레 한 마리가 도서관의 모든 책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중 ; 정여울 책 312쪽)
8. 은둔하는 삶
사실 헤세가 엄청난 분량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정원 가꾸기'의 명수였다는 점, 그리고 온갖 명소에서 강연 요청이 와도 대부분은 시골 마을 몬타뇰라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은둔의 길을 택했다는 점이다.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처럼 '세속의 이야기'에 맹렬한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조용히 '은든하는 삶'을 선택했다. (정여울 책 315쪽)
*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단 한마리의, 자기자신의 새가 있다." (헤르만 헤세의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중 ; 정여울 책 315쪽)
9. 책과 자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헤세는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책과 자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그의 수채화에는 미디어의 광기에 때 묻지 않는 해맑은 영혼이 스며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은 다 작가들의 책에서 나왔다'고 공언했던 그의 보물 창고는 언제나 동서양의 다양한 문학작품이었다. 그는 공자부터 이태백, 붓다부터 도스토옙스키와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고전과 시간을 종횡무진 참독했다. 프로이트와 융이 새로운 연구 업적을 쏟아내고, 토마스 만과 프란츠 카프카가 신작을 쏟아내던 시절이었다. 헤세는 몬타뇰라에서 그저 '은둔'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자신을 감시하지 못하는 곳에서 더 넓고 더 깊은 세상을 보았다. (정여울 책 316쪽)
* 공자부터 이태백, 붓다부터 도스토옙스키와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고전과 시간을 종횡무진 참독한 헤세!
10.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 자기 길을 걷는 사람
헤르만 헤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재'의 정의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으로 규정했다. 천재란 사랑할 줄 아는 힘이고, 온몸을 바치고 싶다고 갈망하는 마음이라고. 그에게 천재와 영웅은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 자기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영웅이 된다. 헤세는 말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정말로 행하면서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영웅이라고. (정여울 책 319쪽)
* "인간을 사랑할 것, 약한 인간도 쓸모가 없는 인간도 사랑할 것, 그리고 그들을 재판하지 말 것." (헤르만 헤세의 [서간집] 중 ; 정여울 책 3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