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의 아시아 문화탐험]
골든 트라이앵글의 아카족
조상과 신과 사람이 함께 맞는 새해 '가텅파으'
타이 북부와 미얀마, 라오스의 국경이 접한 산악지대엔 몽고족, 미엔족, 라후족, 아카족 등 많은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골든 트라이앵글, 곧 마약의 재배지로 유명한 이곳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 대부분은 화전을 일구어 벼, 옥수수 따위를 경작하고, 환금 작물로 양귀비를 재배하며 그 중 많은 사람이 아편을 피운다. 이들 소수 민족 중 아카족은 스스로를 '아카'라고 부르며 타이 사람들은 그들을 '코', 라오스인들은 '카코'라고 부르는데, 아카 사람들은 그런 호칭을 싫어한다.
울로아카, 로미아카, 파미아카의 세 부족으로 나뉘어 있는 아카족은 자신들의 문자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신화나 전설을 노래로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이름들, 즉 족보를 전부 외고 있다.
타이 북부에 있는 도시 치앙마이에서 두 시간 정도 산에 오르면 '쎈쯔런' 이라는 울로아카 마을이 있다. 아카족의 전통을 많이 보존하고 있는 몇되지 않은 곳으로, 전통적인 신앙이나 관습을 유지하기 위해 동족이라해도 기독교인 은 이주해오지 못하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쎈쯔런 마을
아카족의 마을 뒷산에는 높다란 그네를 세워놓아 멀리서도 그곳이 아카마을임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또한 마을 입구에는 '로콩'이라는 커다란 문이 있고 그 문 옆에는 '로콩 아다', '로콩 아마'라는 나무 인형(신상) 한 쌍 이 성교하는 자세로 세워져 있다. 아다는 남자 아마는 여자를 의미한다. 이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의 장승과 비슷한 것으로 마을 사람이든 외지 사람이든 문이나 나무 장승을 건드려서는 안된다.
아카족의 신화에 의하면 한때 인간과 신들이 함께 살다가 서로 헤어지게 되면서 인간이 사는 마을과 신이 사는 정글을 구분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문을 세웠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마을 밖에 나갔다 돌아올 때는 꼭 이 문을 거쳐 들어온다.
쎈쯔런에도 로콩이 두 군데 있고 해마다 새로운 로콩을 세우고 의례를 지내는데 여기에는 남자들만이 참석한다. 한 편, 7~8월경에는 그네타기 의식을 치른다. 기다란 나무 네개를 세우고 거기에 외줄을 메고 나무 판자를 걸쳐놓아 그 판자위에 걸터 앉아 그네를 타는데, 마을의 윗어른부터 순서대로 탄다.
지난 12월 나는 이 마을의 신년 의식인 '가텅 파으'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들었다. 가텅 파으는 '모두 함께 새해를'이라는 뜻. 아카족은 자신들의 고유한 달력을 갖고 있는데 양력과는 달리 새해가 11월에서 1월 사이에 시작된다. 또 마을마다 새해가 달라 이들의 의례를 정확하게 알아내기가 쉽지 않아 여러번 이 마을에 들러 확인해야 했다.
새해 물받기와 제사
12월 22일, 아카의 새해 첫날 여섯 시. 내가 묵고 있는 집의 며느리를 따라 정글을 헤치며 계곡으로 내려갔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어서 사방은 캄캄한데 여인들이 대바구니에 호리병 세 개씩을 넣고 명에를 목에 대고 끈을 이마에 둘러 짊어지고 가뿐하게 걸어 내려간다. 가파른 산길을 30분 정도 내려가니 산비탈에 박힌 큰 대나무를 통해 물이 흘러나오는 곳이 보이고, 벌써 30여 명의 아낙네들이 모여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대나무통에 호리병을 대고 물을 받는 여인들이 사진을 찍자 부끄러운듯 얼굴을 돌리며 웃었다. 물을 받아다 신에게 바칠 제물을 만드는데 쓰기 때문에 모두가 이 물을 깃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이 물로 찹쌀밥을 지어 절구통에 넣고 찧어서 떡을 만들고, 닭을 잡아 씻어 새해 의례인 '아필로'를 준비한다. 우리나라에서 새해 차례를 지내는 것처럼 집집마다 아필로를 지내는데 특이한 것은 남녀를 막론하고 집의 최고 연장자가 혼자서 지낸다는 것이다. 아필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이 아필로 신과 조상들을 청해 집안에 있는 '호제'라는 기둥 밑에 물, 멥쌀, 누룩 가 루, 닭 등을 바치고 새해에도 자손을 잘 돌봐달라고 빈다.
새해 이틀째인 23일에 집집이 아버지들이 정글에 나가 나무를 잘라 팽이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준다. 아이들은 마을 공터에서 팽이 싸움을 즐기는데 이 때 팽이 싸움에 이기면 행운이 따르고 팽이가 깨지면 불운하다고 생각한다.
이기는게 중요하므로 정성 들여 팽이를 만드는 것 또한 의례의 하나로 여긴다. 저녁 무렵 마을 젊은이들은 의례용 돼지를 잡을 사람 집에서 밤새 춤 을 추며 지신밟기는 이 틀 동안 계속된다. 젊은 남녀들이 악기를 빌려준 사람의 집을 비롯해 원하는 사람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집 안에서 춤을 추고 대나무 통으로 마루를 꽝꽝 울려준다. 이때 새 해에 운이 좋기를 기대하며 돼지를 잡은 집의 부부는 술 과 떡, 돼지고기 등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대접한다.
새해 사흘째인 24일 새벽에 돼지 잡는 소리가 마을 곳곳에서 들린다. 마을 사람들이 추렴해서 돼지를 잡아 각 부위를 조금씩 잘라 정확하게 나눈다.
이날 아카족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즐기다 가 저녁 식사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치장한다. 특히 젊은 남녀들은 한두 시간씩 정성 들여 치장을 하고 춤판으로 나간다.
밤을 새우며 춤추는 젊은이들
마을 공터에는 모닥불이 훨훨 타고 젊은이들은 그 주위를 돌며 춤을 시작한다. 새벽이 되도록 춤판은 계속되며 여기에 다양한 춤이 등장한다.
이들이 연주하는 악기는 북, 작은 제금, 작은 징 등인데 특이한 것은 '브어청'. 브어청은 지름 15센티미터에 길이 1미터 정도의 마디를 뚫은 통대나무로 여럿이 함께 이것을 치면 그 소리가 웅장하고 박력이 있어서 군무에 아주 알맞은 악기이다.
아카족은 춤과 음악을 즐기는 민족으로 소문나 있다. 이들 은 거의 밤마다 노래와 춤을 즐기는데, 아카족 여인들의 의상과 춤에 관련된 전설이 전해내 려온다. 한 아카족 남자가 정글에 사냥을 나갔다가 알몸의 예쁜 여신령을 만났다. 그는 이 여신령에게 천으로 짠 아카족의 가방을 잘라 치마를 만들어 입혀 마을에 데려갔다. 가족들에게 여신령 과 결혼하겠다고 해 허락을 받고 가족들이 여신령에게 조롱박을 잘라 모자를 만들어 씌우고 닭털로 장식을 해줬 다. 이것이 아카족 여인들의 짧은 치마와 모자의 시초라고 한다. 그런데 숲속의 신령들은 여신령을 데려간 아카족에게 화가 나서 밤마다 아카족 마을을 찾아와 여신령을 데려 가려 했다. 젊은 아카의 남녀들은 이 여신령을 빼앗길까봐 온 밤을 춤추며 여신을 지켰는데 매일 밤을 이렇게 지 킬 수가 없어서 아카문을 만들어 신령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문에 마법을 걸어 놓았다는 이야기다.
아카족은 연애 결혼을 한다. 주로 새해 축제 때 남자들이 이 마을 저 마을 을 돌며 처녀들을 찾아다닌다. 남자들은 전통적인 의상을 곱게 차려 입고 은 장신구를 몸에 걸치고 친척이나 친구의 집에 머물면서 낮에는 집 주인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밤을 기다린다. 밤이 되면 젊은 남녀들이 마을 공터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춤과 노래의 향연을 벌인다.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남자들은 그 주위에 둘러앉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말을 건다. 서로 마음에 들면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해 여자의 아버지를 만나게 해서 남자의 집에서 여자의 집에 은화 몇 닢을 지불할 것인지 의논하고 결혼에 양가가 합의한다. 보통 아카 여자들은 13세에서 24세 사이에 결혼하며 평균 연령은 17세이다. 남자들의 나이는 보통 여자들보다 한 살 많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 부모집 옆에 조그만 집을 짓고 사는데 식사는 신랑 부모집에서 같이 한다. 대가족제이지만 잠자리만은 핵가족식이다.
은장신구를 걸친 여인들
아카족 여인들은 은으로 만든 여러가지 장신구를 늘 걸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은으로 만든 투구 모양의 모자와 여러 형태의 목걸이, 옷에 매단 장식품 등 자기 가족의 전 재산을 자신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셈이다. 이 은 장신구 는 집안의 위신을 나타내므로 외출할 때는 물론 밭에 일하러 나갈 때도 하고 나간다. 이 장신구들은 어머니에게서 딸로 수대를 걸쳐 내려온 것들이 많다. 인도, 중국, 프랑스, 미얀마, 타이 등 여러 나라의 은화들도 중요한 장신구의 역할을 한다. 아카족은 화전을 일구어 벼농사를 짓는 데,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나무나 잡초를 불태우고 밭을 갈아 볍씨를 뿌리고 비를 기다린다. 이런 일들을 거의 여자가 하고 남자들은 집에서 아편을 피우며 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정글의 소수 민족 마을들을 찾아 헤매다닐 때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이른 새벽이나 늦은 저녁 때 정글 속 길가에서 마주친 사람들 대부분이 아카족 여인들이었다.
안방엔 여자 사랑방엔 남자
아카족의 주택은 원두막처럼 아래는 벽이 없이 돼지 같은 가축을 기르는 곳으로 쓰며, 이층 전부는 하나의 방으로 만들어 사람 어깨 높이의 벽으로 나누어 한쪽은 여자의 방 한쪽은 남자의 방으로 하고 각각의 방 앞쪽은 막지 않고 두어 이곳을 거실 혹은 작업실로 쓴다. 손님들 중 남자 손님은 여자 방에, 여자 손님은 남자 방에 주인의 허락 없이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사랑방과 안방과 비슷하다.
아카 마을을 방문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누구나 그들이 권하는 음식물을 손톱만큼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손님에게 항상 음식을, 심지어는 물이라도 대접한다. 이 때 전혀 먹지 않으면 실례 이상의 무례를 범하는게 된다. 그들이 권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먹고 마셔야 그들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