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쳐 모여의 신(新)풍토
自旺招溫人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체육 선생님이 가끔 우리에게 “헤쳐 모여!” 하고 호령하시던 기억이 새롭다. 아마도 체육 시간에 A팀, B팀으로 나누어 경기를 하려고 했을 때 이미 정해진 자기 팀을 찾아가라고 “헤쳐 모여”를 명하셨던 것 같다. 군대 생활을 했을 때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떤 문인이 이런 이야기를 전해 주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일이 있다. 어느 신문사의 문예창작 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창작반의 강사가 수강생들을 중심으로 동인 그룹을 만들어 1년에 한 차례씩 문학동인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간(세월)이 지나면서 순탄하던 그 동인 그룹이 갑자기 내부에 분란이 일어나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그 동인반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그 강사가 갑자기 “헤쳐 모여”를 명령하더라는 것이다. 뜻이 다른 사람은 차제에 빠지라고 하고, 나머지 멤버들 중심으로 새 동인 그룹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뜻이었다고 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모여 단체 생활을 하는 곳에는 언제 어디서나 “헤쳐 모여”의 일들이 있게 되는 것 같다. 단 그 “헤쳐 모여”에도 전자(학교, 군대)처럼 비교적 단순한 헤쳐 모여가 있는가 하면, 후자(문학 단체)처럼 복잡한 헤쳐 모여가 있을 수 있다. 전자는 그 구성인자들이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후자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이, 헤쳐 모여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 각자가 어디로 가야(모여야) 할지가 미리 정해져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명령이나 지시를 받은 본인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몫인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전자는 단순히 몸이 기계적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후자는 몸만의 문제를 떠나 마음(머리)의 움직임이 선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 헤쳐 모여의 과정이 비교적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이런 헤쳐 모여의 움직임이 매우 활발해지고 있는 것 같다. 프로야구계에서, 그리고 정치권에서 이 헤쳐 모여의 활성화가 가시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야구 지도(감독)의 지각 변동이 심해지면서 그에 따른 실무 코치들의 헤쳐 모이는 현상 역시 활발해지고 있다. 전에 없던 현상이라는 말까지 들려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화의 새 사령탑으로 김응룡 감독이 영입되자 해태맨(man) 이종범을 위시로 한 Kia의 사람들이 그곳으로 헤쳐 모이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또 넥센 전(前) 감독의 후임으로 어느 젊은 코치가 예상외로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출신 고교의 학맥에 따라 Kia의 이강철 투수 코치가 넥센의 수석 코치로 헤쳐 모이는 일까지 일어났다.
넥센의 김시진 감독이 문책성 경질을 당한 뒤 롯데 양승호 전 감독의 그 옛 자리로 영입되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일까지 일어났는데, 앞으로 이에 따른 헤쳐 모여 현상이 또 어디까지 번져 나갈지 궁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헤쳐 모여의 현상에 대해 야구팬들이나 일반인들이 그리 놀라거나 비난거리로 삼지는 않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쇼트 트랙의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했다고 해서 다소 서운한 감정은 있지만 크게 비난하지는 않는 이치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스포츠는 몸의 운동이고 선수들은 그 기량을 발휘할 마땅한 처소를 찾으면 자연스레 이동하는(헤쳐 모이는) 게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는 분위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정치권은 어떤가? 정치인들의 헤쳐 모여 현상도 단순한 몸의 운동인 스포츠와 같이 취급해 버릴 수 있을까? 역시 의문 부호가 찍히지 않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수한 이동을 하는 철새 정치인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이동, 곧 헤쳐 모이는 실상을 다수 접하게 되었다.
어느 정치인은 소위 여당의 무슨 친(親)X 모임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가 거기를 벗어난 뒤 상당 기간을 보내고 나서 이번 대선 정국에 다시 친(親)X 모임으로 돌아와 점잖은 얼굴로 큰소리를 치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혀 시청자들에게 불쾌감까지 안겨주고 있다. 어느 누구는 야당의 상징으로 처신해 왔는데 이번 대선 정국에 갑자기 여당 후보의 품안으로 안겨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정당을 수차례 옮긴 챔피언 감이라는 누구는 또 제3당이라 자처하는 정당의 대표로 등극한 뒤 갑자기 여당과 합당을 하는 일을 벌여 그 지역 유권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소위 진보야당을 둘로 깨고 헤쳐 모여를 선언한 뒤 그 각개의 소 분당들을 배경으로 대선 후보들로 진출한 염치없는 여성 정치인들도 있다. 과연 이들은 마음의 정치인인가, 아니면 몸만의 정치인인가? *
-<교회연합신문> 제915호(2012. 11. 18), [-토요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