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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계(花王戒)
설총
◘ 핵심 정리
✶갈래 : 설화(창작 설화) - 풍자적, 우화적
✶성격 : 의인체 문학의 효시, 우화
✶주제 : 임금의 마음가짐에 대한 경계
✶의의 : 최초의 창작 설화, 가전체 문학의 모태가 됨.
✶출전 : <삼국사기> 권 46 열전 '설총조'
◘ 창작 배경
어느 여름날 신문왕이 설총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오던 비도 개었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니, 비록 진수성찬과 서글픈 음악이 있으나 고상한 이야기와 멋있는 익살로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대는 기이한 이야기가 있거든 나를 위하여 이야기하여 주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에 설총이 옛날 이야기 하듯이 왕에게 들려 준 이야기가 바로 '화왕계'이다.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쓸쓸한 표정을 짓고 말하기를,
"그대의 우언(寓言)에는 참으로 깊은 뜻이 있으니 청컨대 이를 써 두어 임금 된 자를 경계하는 말로 삼으리라."
하고 설총에게는 높은 벼슬을 주었다.
◘ 작가 : 설총(생몰 연대 모름)
신라 신문왕 때의 한문학자. 고승 원효와 요석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경주 설씨의 시조이다. 신라 십현(十賢) 중의 한 사람으로 한림을 지냈으며, 주로 왕의 자문 역할을 하였다. 당시의 최고 교육 기관인 국학(國學)에서 구경(九經)을 우리말로 가르쳤으며 이두를 집대성하여 경서에 토를 달아 읽는 방법을 창안하였다. 강수, 최치원과 더불어 신라 3대 문장가로 일컬어진다.
✔목적문학으로서의 성격
<화왕계>는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정치 세계를 대자연계의 꽃의 세계에 비유하여 간결하고 쉽게 설명한 우화이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장미와 소박한 할미꽃을 대립시켜 왕의 심중을 시험해 보는 상황 설정을 하고, 백두옹을 작가(설총)의 대리인으로 등장시켜 주제를 밝히는 전개 방식이 다분히 문학적이다. 부귀에 안주하여 요망한 무리들을 가까이하지 말 것을 임금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교훈성과 목적성이 문학적인 구조로 잘 포장이 되어 있는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이해와 감상 1
이 설화에는 모란을 의인화한 '화왕'과 간사하고 아첨하기 좋아하는 신하로 의인화된 '장미', 그리고 소박하고 충직한 신하로 의인화된 할미꽃 '백두옹' 등 세 인물이 등장한다. 화왕은 간신들의 아름답게 꾸민 말에만 귀기울이면서 그들을 가까이하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은 멀리하는 군주의 상징이다. 그리고 장미는 교태와 외형상 아름다움을 내세워 임금에게 아첨하는 간신을 상징하며, 백두옹은 외모는 소박하지만 충직한 신하의 상징이다.
이 설화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인물은 백두옹이다. 설화의 주제 의식이 집약되어 있는 부분이 백두옹의 마지막 대사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입은 베옷은 검소한 차림을 나타낸 것이며, 가죽띠를 둘렀다는 것은 서민이 아님을 뜻한다. 그리고 지팡이를 든 백발이라는 것은 왕의 스승이 될 만한 연륜을 쌓은 원숙한 나이를, 침착한 걸음은 무게 있는 인품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백두옹의 외형은 그가 임금에게 충간을 할 만한 인물임을 암시한 것이다. 백두옹의 말하기 방식의 특징으로는, 다양한 논거를 든 치밀성, 비유에 의한 설득의 용이성, 화왕에 대하여 예의를 갖춘 완곡한 어법 등을 들 수 있다.
◘ 이해와 감상 2
우언적(寓言的)인 단편 산문으로 어느 달 밝은 밤에 이야기하라는 왕의 청을 받고 들려준 이야기이다. 화왕(花王) 모란 앞에 곱게 치장하고 아양을 떠는 미인 장미와 검소하게 차린 장부 백두옹이 나타난다. 그러나 왕은 의리를 존중하고 직신(直臣)을 취하는 뜻에서 장미를 버리고 백두옹을 취한다는 내용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소설적인 기록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문선>에는 '풍왕서'라 하여 수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식물을 의인화하여 사람의 처신을 말함으로써 문학적 표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후대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의인 설화로서 문학적인 가치가 있다.
백두옹으로 자처하는 인물이 화왕 앞에 나타나서, 그 동안의 생활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충간한 말은 깊이 새겨야 할 뜻을 담고 있다. 서울 밖 한길가에 산다고 하면서 자연의 경치를 말한 데서는 선비의 고결한 품성에 관한 은근한 자부심이 나타나 있다. 즉, 화려한 서울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마음의 바른 도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임금에게 하는 말은 부귀만 누리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원기를 돋우고 독을 제거하는 약이 필요한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 약이야말로 백두옹이 제시해 줄 수 있는 마음의 바른 도리이다.
설총은 이런 구실을 하는 백두옹으로 자처하고 했고, 신문왕은 또 그 점을 인정했다.
◘ 작품 해설
화왕(花王, 꽃 중의 왕이라 하여 모란을 이름)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향기로운 동산에서, 푸른 휘장으로 둘러싸여 보호되었는데, 삼춘가절(三春佳節, 봄 석 달 중의 가장 좋은 때, 즉 3월)을 맞아 예쁜 꽃을 피우니, 온갖 다른 꽃보다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여러 가지 꽃들이 다투어 화왕을 뵈오러 왔다. 깊고 그윽한 골짜기의 맑은 정기를 타고난 탐스러운 꽃들과 양지바른 동산에서 싱그러운 향기를 내며 피어난 꽃들이 앞을 다투어 모여들었다.
문득 한 가인(佳人, 아름다운 여자)이 앞으로 나왔다. 불그레한 얼굴에 옥 같은 치아와 신선하고 탐스러운 청색 나들이 옷을 입고 아장거리는 무희(舞姬)처럼 얌전하게 화왕에게 아뢰었다.
"이 몸은 백설의 모래 사장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가 내릴 때는 목욕하여 몸의 먼지를 씻었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 속에 유유자적(悠悠自適, 속세를 떠나 아무 것에도 얽메이지 않고 조용하고 편안히 제멋대로 생활하는 일)하면서 지냈습니다. 이름은 장미라 하옵니다. 임금님의 높으신 덕을 듣고, 꽃다운 침소에 그윽한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 이 마음을 받아 주옵소서."
이 때,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머리는 백발인 장부 한 사람이 침착한 걸음으로 나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 몸은 서울 밖 한길 옆에 사는 백두옹(白頭翁, 머리가 센 노인, 여기서는 할미꽃)입니다. 아래로는 창망한 들판을 내려다 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 경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살피건대, 좌우에서 보살피는 신하는 고량(膏梁, 고량진미의 준말로, 기름진 고기와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차와 술로 수라상을 받들어 임금님의 식성을 흡족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해 드리고 있사옵니다. 또, 고리짝에 저장해 둔 양약(良藥, 매우 효험이 있는 약)으로 임금님의 원기를 돕고, 금석(金石)의 극약(劇藥, 사람이나 동물에게 위험을 주는 약품)으로써 임금님의 몸에 있는 독을 제거해 드릴 것입니다. 그래서 이르기를, '군자 된 자는 비록 사마(絲麻, 명주실과 삼실)가 있다고 해서 관괴(菅괴, 관과 괴 둘 다 풀 이름으로, 관은 도롱이와 삿갓을, 괴는 돗자리를 짜는 원료)를 버리는 일이 없고,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이러한 뜻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한 신하가 아뢰기를,
"두 사람이 왔는데, 임금님께서는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시켔습니까?"
하니, 화왕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부의 말도 도리가 있기는 하나, 그러나 가인은 얻기 어려우니 이를 어찌할꼬?"
장부가 앞으로 나와,
"신(臣)이 온 것은 임금님의 총명이 모든 사리를 잘 판단하신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뵈오니 그렇지 않으십니다. 무릇 임금 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는 드뭅니다. 그래서 맹자는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고, 풍당(한나라 안릉 사람으로, 어진 인재였으나 벼슬이 낭관에 그쳤음)도 낭관으로 파묻혀 머리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오니 소신인들 어찌하겠습니까?"
라고 말씀드렸다. 화왕께서는 마침내,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다."
하고 되풀이하였다.
♣ 구절 풀이
✴백두옹-머리가 센 노인. 여기서는 할미꽃을 말함
✴고량(膏粱)-'고량진미(膏粱珍味)'의 준말로 기름진 고기와 맛있는 음식을 말함
✴수라상-임금의 진짓상을 이르는 말
✴고리짝-옷을 담는 상자의 하나로, 고리나 대오리로 엮어서 만든 큰 상자
✴사마-명주실과 삼실
✴관괴-관과 괴. 둘 다 사초과에 속하는 풀로, 관은 도롱이와 삿갓을 괴는 돗자리를 짜는 원료로 쓰임
✴가인(佳人)-아름다운 여자 ·풍당-한 나라 안릉 사람으로 어진 인재였으나 벼슬이 낭관(郎官)에 그쳤음.
✴이 몸은∼지냈습니다 ; 그 자라는 환경으로 보아 장미과에 속하는 해당화로 보이며, 세파에 물들지 않고 곱게 자랐음을 알 수 있다. 뒤의 '백두옹'과 대조되는 속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베옷을 입고∼둔중한 걸음으로 ; 해당화의 화려함에 비교되는 형상으로 검소한 옷차림과 세상사를 많이 겪은 이력이 드러나 있다.
✴군자된 자는∼않음이 없다 ; <좌전(左傳)>에서 인용한 말로, 최선의 것이 있어도 차선의 것을 버리지 않고 유사시에 대비함을 의미한다.
✴내가 잘못했다 ; 화왕이 외관에 눈이 어두워 본질을 보지 못한 잘못, 즉 옳은 말을 하는 충신을 몰라 본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말이다.
♣ 생각해 봅시다.
1. '금석의 극약'의 문맥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 임금의 실정을 지적하는 신하의 충간(忠諫)을 의미한다.
2. '비록 사마가 있어도 군자된 자는∼않음이 없다.'라는 말을 인용한 궁극적 의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 원래의 의미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나타낸 말로, 잘못을 진언하는 어진 신하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3. 맹자와 풍당을 인용한 화자의 의도를 생각해 보자.
▶ 예로부터 어진 신하들이 임금에게 정직한 말을 하다가 불우한 생애를 살았던 일이 많았다는 의미로 임금이 어진 신하를 몰라 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4. 백두옹을 묘사한 부분 중, '베옷, 가죽띠, 지팡이, 백발, 둔중한 걸음'이 상징하는 바를 생각해 보자.
▶ 베옷 - 벼슬을 하지 않는 선비로 야인(野人),
가죽띠-서민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줌,
지팡이-연륜,
백발-원숙한 경지, 둔중한 걸음-무게 있는 인품
5. 백두옹이 말하는 '극약'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 독약은 임금의 몸에 있는 독을 제게해 주는 약이라 하고 있다. 이 글은 제왕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을 말하고 있음으로 볼 때, '제왕의 가져야할 마음의 바른 도리'라 할 수 있다.
♣ 비교해 봅시다.
1. '화왕계', '화사', '화왕전'을 비교해 보자.
▶ '화왕계'를 '화사'와 '화왕전'과 비교해 보면, 꽃에 인성(人性)을 부여하여 의인화한 수법과 군주를 주인공으로 풍간(諷諫)한 유사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판이하다. 이러한 의인화의 수법은 한유의 '모영전'을 비롯해 당송의 가전과 고려 가전체에 나타난다. '화사'는 꽃을 국가 군신에 비유하고, 중국의 역사를 본떠서 한나라의 흥망 성쇠를 논했다. 당시 정치, 사회상을 비판하고, 제왕의 치국(治國) 사상을 보인 정치 비평 소설이다. 제왕의 흥성에 보좌하는 신하의 충절이 있으면 왕업이 창성하게 된다는 교훈을 나타내고 있다. '화왕전'은 '화사'에 비해 직간접 표현법과 성격 묘사,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흥미 유발 등으로 보아 소설로서 한발 나아간 구조이다. 제왕이 호사 호색에 빠져 충간을 듣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으로 군주의 치국 사상에 경계가 되는 교훈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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