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마주한 이별
한 미 정
21개월의 손자, 인생 최초 쓰디쓴 이별과 마주했다. 보내려 안간힘을 쓰는 엄마와 할머니, 손자는 자그마한 궁뎅이를 한껏 뒤로 빼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결코 두 사람과 떨어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다. 21개월 동안 먹었던 젖과 밥 심, 모두를 쏟아 부은 요량으로 두 사람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아파트가 떠나가라고 악 쓰며 눈물로 사생결단이다.
아! 애간장이 다 녹아내린다는 말이 정녕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그냥 우는 것만 도 숨쉬기가 벅찬데, 코로나시국에 마스크를 쓴 채로 울어대는 아이의 얼굴에는 콧물과 눈물, 땀으로 범벅이 되어간다. 이렇게 하늘이 무너진 듯 울어대는 아이를 보내야 하는 우리의 마음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꾸만 약해지고 무너지는 내 마음, 그냥 데리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만 굴뚝같다. 그 마음도 잠시, 이 상황을 설명하는 말의 뜻도 알아 듣지 못하는 손자를 겨우 어르고 달래어 어린이집 선생님께 안겨 주고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울부짖는 손자를 안은 선생님은 엄마와 할머니를 향해 가시라는 눈짓을 보내며 문을 닫아버렸다. 안에서 들리는 손자의 울음소리는 처절하게 내 가슴을 후려친다. 아프다. 지금껏 아팠던 그 어떤 통증과는 사뭇 다른 아픔이 나를 힘들게 한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보지만 쉬이 돌아설 수가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생이별의 아픔을 경험하는 손자, 그 아이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인 나. 오늘, 세 사람은 원치 않은 이별 앞에서 대성통곡 했다.
손자가 뱃속에 있을 때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마스크 대란 속에 출산을 했고, 코로나 환자 숫자가 폭증하는 시기에 힘든 육아를 하게 되었다. 딸과 나는 코로나 감염이 두려워 바깥출입은 거의 하지 않았다. 혹여, 애기가 감염될까 두려워 가족 중 누구도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모든 생필품과 먹거리도 비대면 주문으로 생활해 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손자가 사람들 얼굴을 알기 시작하면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손자는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애비 말고는 모든 사람에게 낯을 가리기 시작했다.
육아전쟁이라 했던가? 손자의 몸무게도 점점 무거워졌고, 그에 비해 몸이 약한 딸과 큰 병을 겪었던 나의 체력은 바람 빠진 풍선 마냥 하루하루 시들하게 방전이 되어갔다. 심한 낯가림으로 낯선 사람만 보면 자지러지는 아이를 안고 달래야 하는 일 또한 너무도 힘에 부쳤다. 몇 달 후면 딸도 복직을 앞두고 있다. 나 혼자서 손자를 감당하기엔 여러 모로 엄두가 나질 않았다. 또한 집 안에만 있는 아이의 사회성 결여가 더 큰 숙제로 다가왔다. 그래서 찾은 방법,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는 힘든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하여야만 했고, 아침 마다 안 간다며 울며 떼쓰는 손자를 달래느라 우리는 진땀을 빼야 만 했다.
시간이 해결하겠지요. 결국 ‘시간만이 답’이라는 말이다. 그럭저럭 두 달이 지나갔지만 이별 적응은 아직도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데, 그래도 두 달 사이 손자는 힘든 성장통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한 뼘씩 자란 듯 어엿해 보인다. 손자는 처음 어린이집 때에는 말하는 것도 짧은 단어에 불과했는데, 이젠 제법 긴 문장을 구사한다. 집에선 애기라는 생각에 맵고 짠 음식을 가려 먹였는데, 지금은 모든 음식들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했던가? 손자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 하고 있건만 내 마음은 왜 이리 허전한가,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겨울바람이 지나간다. 나 아니면 안 되었던 손자의 모든 일상이 나 아니어도 이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원 섭섭’이란 말이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결국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손자보다 할머니인 나였음을 절실하게 느껴진다.
‘어쩌겠어? 그래도 할머니는 어른이니 혼자 마음 추스러야 할 것 같다.’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 가지의 또 다른 이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중에는 아픈 이별도 있을 것이고 슬픈 이별, 홀가분한 이별, 아름다운 이별 등 손자 역시, 아직은 어리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에 있어서 여러 이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별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부디 잘 싸워 견디면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면서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에 건강하고, 아름다운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본다.
할머니를 할머니로 만든 너로 인해, 조금은 서글펐지만 그래도 너를 안고선 참 많이도 웃고, 많이 행복했단다. 앞으로도 너로 인해 더 많이 웃고 더 행복한 시간이 이어 질것도 같다.
나의 손자, 영원한 나의 애기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