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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 주간조선 [2248호] - 2013.03.18.
“가정폭력은 범죄, 국민의식 바꿨다”
한국여성의전화 30년
매 맞는 여성은 오히려 늘고 있어
이지희 인턴기자
“언니는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금은 망자가 된 언니는 형부와 대기업에 다니면서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형부는 결혼 초부터 폭력 성향을 드러냈습니다. 집요하게 언니를 괴롭혔습니다. 애들이 태어나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폭력이 계속되니 언니는 애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피신한 적도 있습니다. 언니는 애들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지만 폭력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혼하고 싶어도 이혼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언니는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지난 3월 12일 ‘한국여성의전화’ 이메일 상담실에 올라온 내용이다. ‘한국여성의전화’(이하 여성의전화) 본부는 서울 은평구 진흥로 16길 8-4에 자리 잡고 있다. ‘여성의전화’ 본부에는 상담전화 라인이 세 개 있다. 이 세 대의 전화로 한 달 평균 3000건의 상담전화가 걸려온다. 1년 평균 3만5000건이 훨씬 웃돈다. 대부분이 남편의 신체적·정서적 폭력을 호소하는 내용들이다. 정서적 폭력에는 욕설이나 협박 외에 생활비와 관련된 것도 포함된다. 생활비를 주지 않거나 생활비를 주고 10원까지 영수증을 첨부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해당한다. 여성의전화는 부산·대구·인천·광주 등에 25개 지부가 있으며 이곳에서도 상담전화를 운영한다.
여성의전화는 오는 6월 11일이 되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1983년 6월 11일 서울 중구청 근처 애플다방 옥탑방을 빌려 ‘여성의전화’가 문을 열었다. ‘매 맞고 사는 아내들을 위해 전화상담하는 곳이 생겼다’고 알려지자 전화가 그야말로 미친 듯 걸려왔다. 1983년 첫해에 전화 한 대로 약 4000건의 상담전화를 받았다. 이 사실은 1983년 이전 한국 사회에서 가정폭력이 얼마나 만연했으며 그동안 쉬쉬하며 은폐되어왔는지를 보여준다.
1983년 이전 한국 사회는 만연한 가정폭력을 ‘남의 집안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어떤 학대를 당해도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 ‘여성의전화’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이화수 박사였다. 이화수 박사는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았다. 이화수 박사가 “가정폭력이 우리도 심각한 데 미국에 가보니 ‘여성의전화’가 있더라”고 말한 것이 단초가 되었다.
여성의전화가 탄생한 것은 시대적 흐름도 맞았다. 1977년에 이화여대에서 한국 최초로 여성학이라는 과목이 개설되었다. 또한 크리스천아카데미에 운영한 주부아카데미에서 수료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 수료생이 뭔가 할 일이 필요하던 시점에 이화수·이계경·이현숙·김희선 4인이 여성의전화 창립 깃발을 들었다. 창립 첫해 운영위원장은 이화수 박사가, 총무는 이계경씨가 맡았다.(이계경씨는 훗날 17대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을, 김희선씨는 16·17대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여성의전화는 이렇게 역사적 첫걸음을 시작했다. 여성인권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1980년대 여성의전화를 이끌며 뿌리를 내리는 데 기여한 인물을 살펴보면 정희경·박인덕(1984년 이사장), 손덕수(1986년 이사장), 김희선·노영희·이현숙(1987년 공동대표), 손덕수·노영희(1989년 공동대표)가 있다.
1980년대 여성의전화가 한 일 중 주목할 만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쉼터’를 만든 일이다. 상담원들은 매 맞는 아내들과의 상담을 통해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데 집을 나가도 몸을 숨길 곳이 없어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87년 3월, 여성의전화는 사무실에 방 한 칸을 마련해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피난처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여성의 사고에는 ‘여자가 한번 결혼하면 시댁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유교의 ‘삼종지도(三從之道)’ 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성폭력 정당방위 사건에 대해 최초로 대응한 것이다. 1988년 변씨 사건이 발생했다. 법원은 변씨가 자신을 강간하려던 가해자의 혀를 잘라 언어장애를 입게 만들었다며 피해자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1심 판결문에는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청년의 혀를 잘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가해자의 범죄를 벌하지 않고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벌하는 전도된 성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성의전화 측은 이 대목에 분노했다. 여성의전화 측은 사건 해결을 위해 거리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재판부를 압박했다. 결국 재판부는 성폭력 정당방위를 인정해 혀를 자른 피해자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고, 가해자는 강간죄로 처벌했다. 성폭력 정당방위를 인정한 최초의 사건인 변씨 사건은 여성차별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로도 제작되었다.
1990년 들어서 여성의전화는 활동 반경을 넓히며 가정폭력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1991년 2월, 임신 4개월이던 남씨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던 중 남편을 목졸라 살해했다. 남씨의 장은 파열되었고 뱃속의 태아는 유산되었다. 남씨는 남편 살해혐의로 구속되었다. 여성의전화는 즉각 구명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여성의전화 측은 성명을 통해 “아내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은 아내폭력의 반복성과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무관심, 지원 부재 등이 부른 극단적 결과이며 충분히 예견 가능한 결과였다”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6개월에 걸친 구명운동의 결과 남씨는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여성의전화 측의 구명운동이 없었으면 이마저도 꿈도 꾸지 못했던 결과였다. 이후 여성의전화는 지속적으로 아내폭력에 대한 국가정책과 정당방위에 대한 남성중심적 법률 해석을 비판해왔다. 1991년 김부남씨 구명운동 또한 여성의전화 활동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다. 김부남씨는 아홉 살 때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찾아가 21년 만에 보복살해해 충격을 주었다.
이같은 여성의전화의 노력이 쌓여 1993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어 1997년에는 ‘가정폭력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가정폭력 방지에 있어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 ‘집안일’로 여겨져온 가정폭력에 대해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여성의전화는 여러 활동가들을 배출했다. 이 중 주목을 끄는 활동가들은 한우섭·신혜수·박인혜·김지선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중 여성의전화에 가장 먼저 뛰어든 인물은 한우섭씨. 1983년 여성의전화가 창립될 때부터 참여한 한우섭씨는 오랫동안 전화 상담원을 하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1990년 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을 거쳐 공동대표를 세 차례나 역임했다. 여성의전화 역사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산증인이다. 공동대표를 세 차례나 역임한 박인혜씨는 지역운동을 통해 본부에서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이다. 박씨는 1990년 인천 여성의전화 설립을 주도하면서 지역 여성인권운동을 벌여왔다. 김지선씨는 서울여성의전화 공동대표를 맡았다. 김지선씨는 여성의전화 서울 강서·양천지회를 설립하면서 여성의전화와 인연을 맺었다. 신혜수씨는 1995년 회장, 2000년 공동대표를 맡았다.
여성의전화를 키운 4인의 활동가는 한때 남편으로 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우섭씨는 17대 국회의원과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박계동씨의 부인이다. 박인혜씨는 17대 열린우리당 의원을 지낸 이호웅씨의 부인이다. 김지선씨는 역시 17대 민주노동당 의원을 지낸 노회찬씨의 부인. 김지선씨는 최근 노원병 재보궐 선거로 또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노원병구에서 19대 의원에 당선된 남편(노회찬)이 의원직을 상실하자 진보정의당은 김씨를 후보로 공천했다. 현재 김씨는 남편과 함께 지역구를 누비고 있는 중이다. 현재 UN 산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 위원인 신혜수씨의 남편은 탈북자인권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서경석 목사다.
박인혜씨는 여성의전화 30주년 소감과 관련, “우리 사회에 여전히 여성인권문제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성의전화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여성의전화는 본부를 포함해 25개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화상담은 여성의전화만 하지는 않는다. 야간의 경우 ‘여성긴급전화 1366’이 있다. 전화를 받은 상담원이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하면 경찰에 전화를 하고 경찰이 출동해 피해 여성을 2~3일 보호시설에서 보호해준다.
지난 3월 12일 여성의전화 사무실을 들어섰을 때 1층 회의실에서 강의가 진행 중이었다. 잠시 회의실 안을 들여다보니 2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의 여성이 진지하게 강사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정폭력전문 상담원 교육’을 받고 있는 45기 수강생들이었다. 수강료 30만원을 내고 100시간을 수강하면 수료증을 받는다. 100시간 수업시간표에는 매우 특별한 현장 수업이 있다.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 수요시위에 참가하는 것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취업에 필요하기 때문에 자격증을 따놓으려는 사람부터 다양하다. 송란희 사무처장의 설명을 들어본다. “수강생 중에는 가정폭력의 피해 당사자들도 있다. 이들은 이 과정을 수강하면서 상처를 치유받을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격증을 딴 후 피해자 상담활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이게 가장 큰 보람이다.”
여성의전화 본부는 임대 사무실 여러 곳을 떠돌다 2009년 현재의 자리에 단독 건물을 지어 이사했다. 건축비는 모두 후원자들의 기부로 충당했다. 현관 외벽에는 건물을 짓는 데 후원한 이들의 명단이 걸려 있다. 여성의전화 본부에서는 매일 갖가지 행사가 벌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가정폭력은 과거에 비하면 현격하게 줄어든 것 아니냐?’고 반응한다. 그러나 본부든 지부든 여성의전화에 한번 와보면 이런 선입견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금방 깨닫는다. 2012년 1년 동안 여성의전화는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2012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120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49명으로 조사됐다. 최소 3일에 한 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 살인미수까지 합하면 이틀에 한 명꼴로 여성이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협에 처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가정폭력이 여전히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통계도 있다.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사람은 2011년 7272명이었던 것이 2012년에는 9345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가정폭력으로 한 번 처벌받은 사람이 다시 적발된 경우는 2012년 기준 3095명(32.1%)이었다. 가정폭력 사건 3건 중 1건이 재범이라는 뜻이다. 여성의 이혼 사유 단일항목으로 1위가 수년째 ‘가정폭력’이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설명되는 대목이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성균관대 총여학생회장 출신이다. 대학생 시절 성차별 문제에 눈을 떠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졸업과 동시에 공채로 여성의전화에 들어왔다. 송 처장은 처음 전화상담을 3년간 했다. 송 처장은 “여성의전화에 와서 여성폭력이 머리로만 알던 것과는 달리 훨씬 심각하고 충격적이어서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송 처장의 말을 더 들어보자.
“10년째 일하고 있는데 매일매일 충격의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여기서 일하면서 세상에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폭력에 관한 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송 처장이 말한 ‘충격의 기록 경신’을 몇 가지 보자. ‘아내를 괴롭히기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반려동물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거나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다’ ‘반려동물을 아내가 보는 앞에서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다’ ‘담뱃불로 아내의 몸에 문신을 새긴다’ 등.
이쯤되면 이런 의문을 가질 것이다. 여성폭력은 문화권에 따른 차이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유교문화권 국가인 한국은 세계 각국과 비교해 어떤 수준인가. 송 처장에 따르면 불행하게도 차이가 없다. 여성의전화는 한국·일본·중국·캄보디아·베트남·몽골·필리핀 등이 참여하는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위한 아시아여성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송 처장은 “양상이 다를 뿐 정도는 비슷하다”면서 “유교문화권이나 이슬람문화권 같은 차이는 없다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이슬람문화권에서 여성을 생매장하는 것이나 한국에서 아내의 몸에 강제로 문신을 하는 것이나 뭐가 다르냐는 주장이다. 문화도 역사도 이념도 다르지만 남성들이 폭력을 가하면서 던지는 어법(워딩)도 똑같다고 한다. “집안일이니까 간섭하지 말라” “널,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괴롭힐 거다” “신고해봤자 너만 창피한 거다” 등.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가정폭력을 4대악에 포함해 임기 중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가정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을 경찰서마다 1명씩 배치하기로 했다. 전담경찰관은 가정폭력 사건의 초동 조치부터 가·피해자 조사, 사건 송치까지 전 과정을 책임진다. 여성의전화 30주년을 앞두고 가정폭력 문제는 국가적 이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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