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라서 행복하다
한 미 정
아파트 부녀회가 열리는 날이다. 매번 모임 약속은 7시라 정해졌지만 정시에 모이는 법은 거의 드물다. 회원 모두가 주부이다 보니 가족들 저녁을 챙겨야하니, 그날 저녁 모임도 거의 8시가 다 되어서야 회의가 시작이 되었다. 사실 부녀회의 주목적은 아파트 내 중요한 안건을 알리고 함께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자는 취지의 모임이지만, 주민들 간의 침목 도모가 제일 큰 목적이었다. 회의는 간단히 끝났고 준비된 음식과 음료 그리고 아줌마들의 농익은 수다가 맛깔나게 이어져 화기애애한 웃음소리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갑자기 벌컥 문이 열렸다. 시계는 거의 아홉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이구! 딸이 모임이 있어 늦게 오는 바람에 늦었어,” 항상 모임 때마다 손주 챙기느라 늦게 참석 하시는 아주머니다. 그분의 등장으로 화재는 급전환이다.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내 뱉는다.
“요즘 친정엄마는 씽크대 앞에서 과로사 한단다.”
“자식 먹이고 키우고 공부시켜 결혼시켰으면 되었지, 절대로 손주는 봐주지 마라”
“애 봐주다 무릎 아프고 허리 아프면 본인만 서럽다.” 이렇게 기타 등등의 카더라 통신의 조언들로 밤이 무르익는다.
옆의 아주머니가 내 팔을 툭 건드리며 “집의 딸도 임신 중이라며?” “아! 네”
내 대답을 들은 아주머니는 “애 봐주지 마” 라고 조언(?) 하신다. ‘나도 누구처럼 애 봐줘야 하는데’.......
딸이 결혼해 집 가까운 곳에 살다 보니 뱃속 태아부터 시작으로 3년째 육아중이다. 처음 임신 소식을 접했을 땐 물론 그 누구보다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 기쁨을 뒤로하고 잠시, 형언할 수 없는 걱정으로 몸과 마음이 무겁다. 2020년 7월 손자가 태어났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애기라는 작은 존재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세상일이 아름다움만으로 가득 차고 뜻하는 바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으랴, 주말부부로 사는 딸 부부, 사위가 빠진 주 5일 딸과 함께 육아전쟁에 들어갔다. 키가 작고 몸도 갸날픈 딸이 혼자 감당해야 할 육아의 짐을 나눠지어야 하는 나, 암환자 3년차 이었기에 육아와 두 집 살림 건사 하느라 하루하루가 힘에 부치기가 일수였다. 지친 몸으로 씽크대 앞에 설 때면 가끔, 친정엄마는 씽크대 앞에서 과로사 한다던 그들의 말이 떠올라 공감과 함께 피식 쓴 웃음도 흘렸다. ‘몸이 아픈 엄마라도 부실한 딸의 산후도움을 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살아 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부산한 아침, 딸은 손자의 응석과 투정을 뒤로 한 채 바쁘게 출근을 하고 손자의 등원 준비를 마친 할머니는 커피 한잔을 위해 자리에 앉는다. 멀리서 지켜보던 3살 손자가 쪼르르 달려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내 앞에 내민다.
“할머니 커피 써! 그냥은 커피고 우유 넣으면 카페라떼야 할머니 카페라떼 드세요.”
이런 기특한 놈, 언제부턴가 할머니가 먹던 커피에 관심을 보이길래 대충 설명해줬더니 잊지 않고 이렇게 기억하다니 “똑띠” 손자를 번쩍 안아 올리고 엉덩이를 토닥인다.
“수현이는 카페라데 스무 살 되면 먹을 수 있어”한다. 귀여워 미칠 것 같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아침이다.
손주 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식을 낳아 키워 본 엄마들 이라면 만천하가 다 아는 진리이다. 그렇지만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손자는 자식과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주는 존재이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힘이 드는 건 기정사실이다. 조그만 생명체로 세상에 나왔고, 온갖 시련과 풍파를 격으며 성장하는 과정은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다. 조금씩 발전하는, 작은 변화들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즐거운 나날은 그 어떤 쾌감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을 안겨다준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더불어, 시간과 여건 그리고 건강이 허락 된다면 손주 키우는 일은 할머니에게 엔돌핀을 돌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와 다른 할머니들 생각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생각은 손주 돌봄에 찬반 투표가 행하여진다면 앞뒤 생각은 접어 두고 찬성에 한 표 던질 생각이다. 무조건 무조건이야~~노랬말!
어린이집 등원 길에 그네 놀이터에 들러 손자는 그네를 탄다. 때마침 손자가 좋아하는 쓰레기차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손자는 그네에서 내려와 청소 하시는 분들을 향해 “안녕 하세요.” 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손을 흔든다. 아저씨들도 어련히 그랬던 것처럼 손자를 향해 손을 흔든다. 손자는 그 상황, 그 모습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할머니 수현이 스무살되면 쓰레기차 운전 할 수 있어, 그러면 할머니는 수현이 옆에 타!”
‘어쩜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자기가 좋아 하는 쓰레기차 운전석 옆자리에 엄마도, 아
빠도 아닌 할머니를 태워 준다니 감동이다’. 할머니는 오늘 하루도 무수히 많은 꿈을 꾸며 성장하는 이 천진난만한 수현이 스무살을 기대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개구쟁이 3살 손자는 오늘도 할머니에게 신선한 감동과 웃음 한보따리를 선물해 주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