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문학동네(2007)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번 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각자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그들은 때로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 세계다.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웠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모두 다 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 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실망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겁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374쪽
* 이 소설은 어떤 진심, 어떤 연극, 어떤 모험에도 불구하고 광막한 우주 속의 혼자일 수 밖에 없는 한 개인이 한때 그를 그 자신 이상이게 했던 거대한 이야기 또는 거대한 환상에 대해 오랜 애증 끝에 바치는 별사(別辭)이기도 하다. -황종연의 글에서
- 한 인간의 삶을 의미있게 해주던 시대라는 조명이 꺼지고 난 자리에는 뭐가 남는가, 나를 나이게 했던 그 많은 무대장치와 등장인물들을 소거해버리고 나면 뭐가 남는가, (2007년 농담)
-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번 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각자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2007년의 나는 이 부분을 3인칭으로 읽었고,
2009년의 나는 이 부분을 1인칭으로 읽는다.
가을날 오후, 문득 김연수를 찾다가 나는 '내가 변했음'을 비로소 인정하다. 2009년 농담.
첫댓글 그렇지. 나도 올해 도서관에서 김연수의 글을 다시 읽으면서 내가 변했다는 걸 알았지.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그 책에 비추어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확연하게 알 수 있게 되지. 마치 거울 앞에 서서 흰머리를 발견하는 것처럼. 김연수의 소설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 읽어봐.
어렵다....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끝없는 여정이기에 수행의 과제로 삼는걸까? 시시각각 또 다른 나를 만나면서 흠짓흠짓 놀라기도 하니 말이다. 에구구구
책이 막 나왔을 때 선물받았는데 아무렇게나 읽고 싶지 않아 아껴두고 있습니다. 인용해 주신 부분이 가슴에 먹먹하게 와 닿습니다. 조금 뜬금없을 지 모르지만 만화 [온]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다음 달에나 펼쳐볼 책 내용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