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릿답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 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영원한 아름다움은 꽃처럼 붉게 타오르다 고귀한 죽음을 맞는 것이다. 인간사 그 숱한 죽음 중에 가장 강렬한 사랑의 죽음은 풍전등화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 홀로 서서 지키다 최후의 칼을 맞는 것이다.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저 붉은 양귀비꽃처럼 허공 위 찬란히 흩어진 한 떨기 의연한 조선의 죽음이 있었으니, 논개 그 이름만 들어도 거룩하다.
오천 년 한반도 역사 중 숱한 애환과 갈증과 몸부림 속에 살다간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을까만, 촉석루 아래엔 중세 진주성 둘레의 임진란 피의 사연 속에 묻힌 기생 논개의 혼령을 모신 의기사(義妓詞)가 고고(孤高)하다.
그 사당 아랜 처녀처럼 수줍은 남강이 함양군 서상면 남덕유(1,614m)에서 발원해 진주, 의령을 거쳐 남지에서 한국의 미강(美江) 낙동강과 만나 남해 너른 품안에 새처럼 날개를 접는다.
이 고결한 여인에 반한 수주 변영로는 비참하고 참혹한 일제 식민치하인 1923년『신생활』4월호에 시「논개」를 발표했다. 한국시의 수사적 기교와 영탄이 단연 돋보이는 이 시는 시의 세 가지 덕목인 음악성, 사상성, 예술성이 기막히게 합쳐진 수작이다.
젊은 기생 논개의 미색을 참으로 황홀하게 드러낸 “양귀비 꽃”, “석류 속 같은 입술”, “아리땁던 그 아미”의 고운 시적 표현은 슬픈 역사의 울음소리, 시 속 시어들의 묘한 울림과 겹쳐 읽는 이로 하여금 아픈 역사의 궤적을 더듬게 한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참 곱고 슬픈 시가「논개」다. 진주성 동쪽 문 앞 큰 돌에 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문 또한 언젠가는 역사의 부침과 비바람 속에 지워져가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시대적 불운에도 먼 훗날까지 후손에게 전해질 논개의 뜻만은 결코 지워질 수 없음을 굳게 안다.
논개 사당 속엔 화가 김은호가 그린 영정이 모셔져 있다. 진주성 순의제단 부조엔 임란 당시 아비규환의 참혹했던 광경이, 성안 6만 백성의 죽음의 항거와 함께 기생 논개의 애린과 비장미 섞인 얼굴 부조상으로 그 날의 참극을 증거하며 새겨져 있다. 수주 역시 비분강개의 떨리는 손길로 시「논개」를 썼으리.
1898년 5월 9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출생한 변영로는 조선 초「화산별곡」의 악장을 남긴 변계량의 후손으로, 이미 13세에 한시를 짓고 16세 영시를 발표해 그의 천재성에 세인들이 놀라기도 했다. 그의『명정(酩酊), 40년』에 보면, 6세 무렵부터 술을 마신 수주는 온갖 기행으로 단연 동시대인을 압도한다. 시인 공초 오상순과 함께 부슬부슬 비 오는 날 한강변에서 마신 술에 대취해 호기가 발동, 두 분이 발가벗은 채 소를 타고 서울 시내로 들어오다 경찰에 저지당한 사건은 그 시절 시인만이 누릴 수 있었던 또 다른 한 편의 멋진 명시였다. 오늘날 각박한 모습과는 달리 당시 사람들은 앞의 사건쯤은 장구한 역사 속 예술가에게 흔히 있는 해학으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는지 모른다.
수주는 일제의 끈질 진 곡필의 협박과 회유를 끝까지 물리쳤다. 시「논개」를 읽는 맛은 무엇보다 석류알 속의 그 야한 균열성이 젊은 기생 논개의 충(忠)과 사(死)에 대한 심리적 갈등과 오버랩 되는 비극적 지점에서 절정에 달한다.
시낭송 시간은 3분이다. 3연 24행으로 된 시「논개」를 듣노라면 어쩌면 붉음 속에 들어 있을 달콤한 신맛 도는 처녀성에 매혹된다. 주제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파’ 음이 시편 전체에 퍼져있는 이 시는,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 속에 뛰어든 의암(義巖)이 눈앞에 보이는 진주성 촉석루에서 낭송되면 좋겠다.
오월 온갖 꽃들이 사방에 만발한 아름다운 진주성 둘레를 배경으로, 임란의 슬픈 눈물을 시낭송으로 닦아주어야 한다. 발 아래 진주 시가지가 그림처럼 펼쳐진 촉석루에 서면 남강 붉은 노을이 차라리 곱고 서럽다. 애틋한 외로움과 비애, 사랑과 눈물의 선율이 오선지 가득 스민 명 음반 시크리트 가든 속 제 8번「CHACONNE」가 4분쯤 배경음이 된다. 꽃고무신과 흰모시천에 푸른 빛 도는 산나리 꽃이 치마 깃에 수놓인 한복을 입고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은, 여성 1인 시낭송가가 시「논개」를 낭송하면 금상첨화다. 진주성 봄 구경온 관광객과 진주 인근 앳된 여학생들이 수백명쯤 소풍이라도 나왔다면 관객으로 더 할 나위없는 분위기다. 고인(故人)은 가도 이렇듯 시는 영원하다.
첫댓글 작년 진주유등축제 다녀온 곳이네요..
삼천포..진주..다녀오셨군요..
남강 장어는 드셨는지요..ㅎㅎ
좋은 데다녀오셨군요. 진주박물관이 아주 인상깊었던 기억납니다. 부럽습니다.
샘! 좋은글과 건강하신 모습 의녀 논개님의 뜻 다시 일깨워주는 모든것 정말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