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2014년 12월 27일),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를 시청했습니다.
추억을 상기시키는 90년대 가수들이 출현하여, 노래가 유행했던 시대로 시간여행하듯 프로그램은 진행되었습니다.
그날은, 터보/김현정/SES 추억의 무대를 선사해주었습니다.
( 다음주에는 엄정화/조성모/지누션/쿨/소찬휘/이정현/김건모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참 웃긴건 그들이 그 시대를 다시 재연해줘서 아주 반갑기도 하고 노래가 신나서 즐겁기도 했는데,
제가 울고 있더라구요. 감동받아서요-
옛 기억이 뭐라고, 추억이 뭐라고, 그때를 상기시키면 그리워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는게 신기하더라구요.
기억과 추억에 젖어서 감동을 받는 이유를 매끄럽게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이 잘 안되네요.
8090세대를 체감해보지 못한 90년대말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토토가>와 같은 프로를 통해서 8090세대의 추억을 간접경험 해보게 됩니다.
지금의 추억과 비교해보면 아주 촌스럽기 짝이업지만, 깊이와 감동은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며 비교해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윗 세대, 기성세대들의 추억은 어떠했을까요?
우리가 쉽게 체감 못한 기성세대의 삶과 추억을 영화<국제시장>을 통해서 간접경험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예고편만 보아도,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시대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격동의 5-60년대를 살아왔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영화<국제시장>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발발의 시작으로 <간호사 광부 파독>, <월남전>, <이산가족상봉> 과 같은
시대적 배경으로 격동의 시대에 몸을 던져야 했던 기성세대의 삶을 표현한 영화입니다.
1950년 12월, 함경북도 흥남
불법 개입한 중공군의 전면공세로 흥남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피난길에 오르고,
미군은 흥남철수를 단행하며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극적으로 피난민들을 태우게 됩니다.
덕수(황정민)의 가족들도도 목숨을 걸고 배에 오르게 되나, 덕수가 등에 업고 있던 동생 막순을 놓치게 되고
아버지는 잃어버린 막순을 찾아서 뒤따라 가겠다며
그동안 덕수에게 장남으로서 남은 식구들을 지켜야한다는
큰 책임감을 안겨주고 아버지와 기약없는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덕수는 학업과 구두닦이를 병행하며 가장노릇을 하게 됩니다.
남동생이 대학에 붙으면 등록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독일광부로 파독지원을 해서 독일에서 혹독한 광부생활을 하고,
여동생 시집 보낼 자금 마련을 위해서 월남전에 기술자로 동참하는 등-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버리고
목숨을 걸고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던 기성세대들의 노고를 덕수를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이후 한국의 근대사는 아주 처절했습니다.
국가는 분단되고 국력은 약해져서, 국가에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난국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한국경제발전의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독일에 손을 벌려야 했고 이 대가로 수만명의 광부와 간호사들은 파독을 해야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베트남전으로 많은 사상자를 낳자
미국은 국가보안과 국가의 경제적인 발전을 기여해줄 조건으로, 국군 파병을 요청합니다.
이에 수만명의 국군은 목숨을 걸고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두고 그 시대의 정치적 색채를 비난하고, 기성세대의 희생을 합리화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틀렸다고 맞다고도 단정짓는 것조차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에 초점을 둔 것은 암울하고 불안했던 시대적 배경임에도 찍소리도 못하고,
굶주린 가족들을 위해한푼이라도 벌어들여서 가족을 살리려는 <기성세대들의 노고>였습니다.
언제 어디서 빵빵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했던 그 시대,
불안하고 괴롭고 힘들어도 가족들에게는 절대 약한 마음 조차 내색할 수 없었던 기성세대들이였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엄격할 수 밖에 없었나봐요.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지속될 가능성이 있으니
독해지지 않으면 그 시대를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
여겨서 엄격하고 강하게 키우려했던 마음이 이제서야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참, 아이러니 했던 것은 혹독한 시절임에도 그들에게는 추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천막친 학교에서 글과 산수를 배우고, 어린동생 돌볼 사람이 없어서 동생을 업고 학교에 등교하며,
자그마한 체구에 무거운 구두통을 들고 구두닦이를 하며 생계에 보탬이되고자 했으며,
미군들을 따라 다니면서 초콜렛을 달라며 외치던 시절,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오후에 애국가가 나오면 싸움을 멈추고도 국기의 대한 경례를 하고
경례를 하지 않으면 주의에서 눈치를 받고 마지못해 경례를 하던 그 시절,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대대적인 프로그램이 방영할때 모두가 티비에 앉아서
이산가족들이 상봉을 할때마다 자신의 일인마냥 함께 기뻐하고 눈물을 흘려주었던 그 시절,
온갖 압박과 강요 속에 살아도 힘든 일에 있어서는 함께 극복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예전에 비해 아주 평화적으로 살아가지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세대들은 풍요롭지만 기성세대의 <함께>였던 사람들의 정이 그립기도 합니다.
이처럼 그들의 추억을 통해서, 우리들이 현재 맛보지도 못하는 그리움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이 너무나도 시끄럽고 화려하면 서정적이면서 조용한 옛 것들이 그리운 것 처럼요.
지금 우리 젊은세대들은 불안한 미래에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추억의 습작이 되어서 그리움의 편린으로 꺼내보게 되겠지요?
시간이 그 순간의 고통과 시련을 추억으로 변형시켜 감동을 안겨준다닌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시간이 지나 그 추억을 되돌아보며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고 말하며 웃음지으니까 말이지요.
같이 이 영화를 보는 어머니는 한 장면 한장면 볼때마다
"저땐 저렇게 했다. 저땐 저러고 살았다" 하시며 웃고 울고 하셨지요.
시외버스터미널에 가면 커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 프림 한 스푼 넣어 만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커피가 계속 존재했으면 좋게고,
시장통에 물건을 이만큼 쌓아 올려놓으면 고르는 재미로 물건을 사는 풍경들이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첨단을 달리는 요즘, 물건 하나하나 음식하나하나 가치를 못 느끼니
오히려 옛 것과 아날로그적인 것이 그리워집니다.
옛 것과 아날로그적인 것은 불편해도, 그 속에서 추억을 하나씩 꺼낼볼 수 있고 이야깃 거리가 만들어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