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 임시정부의 뿌리
독립의 혈맥 — 상하이 임시정부의 터전이 된 미주의 피땀
1919년, 3·1운동의 함성이 태평양을 건너 전해졌을 때, 송종익은 대한인국민회의 재무관으로서 모금 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그가 그해 모금한 금액은 6,000달러. 결코 적지 않은 이 돈은 훗날 바다를 건너, 상하이 보창로에 마련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최초의 청사를 짓는 핵심 자금이 되었다.
이 모금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그는 남에게 기부를 독려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265달러라는 거액을 내놓았다. 솔선수범(率先垂範) —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이 원칙은 그가 평생 지켜온 흥사단의 정신, 무실역행 그 자체였다.
그의 헌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36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건축위원을 맡았고, 1941년에는 재미한인사회 최대의 연합단체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임시정부 후원과 외교 업무를 총괄했으며, 미 육군부와 협조한 '한인국방경위대'에도 참가했다. 1943년에는 주미외교위원부 외교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광복이 찾아온 1945~1946년, 그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단 제1진으로 조국 땅을 밟는다. 자주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힘썼고, 이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흥사단 부흥운동을 주도했다.
1919년 상하이의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린 것은 결국 미주 동포들의 피와 땀이었다. 그리고 그 자금의 흐름 한가운데, 언제나 송종익이 있었다.
남에게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265달러를 내놓았던 솔선수범, 오늘 우리 조직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까요?
참고 슬라이드: 3, 9, 10장 (1919년 모금과 임정 청사, 1936~1946년 활동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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