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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일본은 과달카날의 비행장을 다시찾기 위해 꾸역꾸역 증원부대를 파견합니다.
일차 선발대로 급하게 왔던 900명의 부대가 괴멸적인 타격을 입자
가와구치 소장을 지휘관으로 하는 4000명의 병력을 과달카날 지원부대로 출동시킵니다.
가와구치 소장
하지만 1차 수송작전에서 느린 수송선으로 이동하다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수송선에 의한 중화기와 보급품의 보급은 포기하고,
구축함에 병력과 약간의 보급품을 싣고 하룻밤사이에 급속한 상륙작전을 벌입니다.
일본군 자신들도 일명 ‘생쥐수송작전’이라며 한숨을 쉬는 지경이지요.
중화기 없는 여단 병력에 보급물자도 부족하고, 바다를 지켜야할 구축함들이
수송임무에 쓰이고 있으니 이거참.. 뭐라? 말할수 없는 비효율적인 …
그나마 미군의 소극적인 야간 전투로 밤에는 그나마 주도권을 쥐고 일본군이 뭐라도 실어 나를수 있었지만,
해만 뜨면 핸더슨 비행장의 켁터스 비행대가 200마일 솔로몬 해역을 휘집고 다니고
밤과 낮의 주도권 싸움 또한 치열했습니다.
암튼 예상대로 가와구치 소장의 일본군 5000명이 구축함과 경순양함 쾌속정에 의지해 가까스로
8월 말부터 9월4일날 과달카날에 상륙을 합니다.
한방에 못오고 오밤중에 찔끔 찔끔 오는거죠~
과달카날에 도착한 가와구치 소장
첫번째 명령을 내립니다.
“9월12일 20시에 비행장을 공격한다~~~”
일본군의 장기인 야간을 이용 병력을 중앙과 좌우로 나누어 3방향으로 공격들어가는 작전을 펼칩니다.
한편 미군도 일본군 대병력이 섬에 상륙한걸 눈치채고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원주민 들의 정보를 통해 과달카날 섬 반대쪽 타이부곶에 일본군 병참기지가 들어섰다는 정보를 알아냅니다.
그리고 12일 일본놈들이 비행장을 공격하기도 전에,
미리 메릿 메디슨대대가 병참기지가 있는 타이부곶을 배를 타고가서 급습합니다.
갑작스런 미군의 공격에 타이부곶에 있던 일본군들 그나마 있던 물자까지 다 버리고 도망을 칩니다.
타이곶 기습 전투도
메디슨 대대는 일본군의 물자는 다불태워 버리고 여기저기 입수한 문서에서
상륙부대는 3천명정도이고 현재 비행장 탈환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까지 다 따냅니다.
한편 핸더슨 비행장 방어임무를 맞고 있던 애드슨 대대장은 일본군의 공격이 있음을 알고
방어선을 구축하기로 하고, 비행장 남쪽 능선에 방어선을 펼칩니다.
*에디슨 능선
이 능선에는 그 때까지 병력 배치가 없었던, 방어적으로 빈 곳이었고,
9월 11일 에드슨 대대의 840명 병력은 이 능선에 지급 배치되어 참호를 파고 방어선을 펼칩니다.
. 그날 밤에 일본군이 예상대로 나타나지요. 가와구치 중앙대인 1개 대대가 룽가 강과 능선 사이를 공격해서 해병 1개 중대를 능선 위로 철수하게 하는 전과를 올리자.
일본군은 다음 날의 야간 공격을 위해서 그날 밤은 공격을 중단하고 물러났다,
다음날 저녁, 가와구치 소장의 3,000병력이 박격포등의 지원 아래 에드슨 대대의 방어선에 몰려옵니다. 공격은 해가 지자마자 시작되었습니다.
대대 우측 공격을담당하던 일본군이 능선을 돌파~ 계속 전진을 시도했지만,
미군의 포격지원에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소위 말하는 반자이 돌격을 펼칩니다.
여기저기 난전을 펼치며 일부 일본군 부대가 비행장 근처까지 진출에 성공하지만,
미군의 엄청난 화력지원에 일본군은 바닦을 보이기 시작하며 큰 인명손실만을 남기고
결국 후퇴를 합니다.
이 능선 전투에서 미군은 100명의 전사자를 냈지만 일본은 900명에 가까운 전사자가 났지요.
*에디슨 능선에서 죽은 일본군들
가와구치 소장이하 생존병력은 정글속으로 숨어 다시 섬의 반대편으로 닷새나 걸려 퇴각을 합니다. 보급물자 까지 털린 일본군은 이제부터 공격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상륙부대가 패배 했다는 사실이 일본 대본영에 알려지자, 일본 대본영에서도
남태평양 여기 저기 흩어저 싸우고 있던 일본군을 과달카날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여저기 있는 애들 ~~~다들 과날카날로 모이라고 그래"
덕분에 여기저기서 시달리던 미군과 호주군은 한숨을 돌리게 되지요.
미군역시 과달카날로 꾸역꾸역 병력을 집결시킵니다.
핸더슨 비행장을 난공불락의 요새수준으로 튜닝합니다.
그리고 작전에 소극적인 야전 지휘관들을 싹다 물갈이 하고 유능한 지휘관들로 채워버립니다.
애드슨 능선에서 일본군을 막아낸 애드슨 대대장이 능력을 인정받아 연대장진급되지요
한편 일본은 연이은 2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증원군을 과달카날 북부에 상륙시킵니다.
뭐 그사이 일본군의 구축함은 쉬지않고 왔다리 갔다리를 하구요.
그리고 일본은 10월 20일을 핸더슨 비행장 탈환의 D-Day로 잡고
과달카날에 2만에 가까운 병력을 상륙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미국역시 일본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 과달카날로 올것이라는 걸 알게됩니다
미국 역시 지원 병력을 파견합니다.
양쪽의 수송작전은 수송부대가 오고 있으면 양쪽 함선들이 교란 작전의 일환으로 앞에서 전투를 별려주고, 해상전투에서 이기면 상륙부대가 무사히 상륙하는거고 밀리면
상륙부대는 후퇴하든가 그냥 바다속으로 단체 수장되던가 하는 것이지요.
수많은 해전을 겪으면서 나름 일본도 성공확율이 높자.
10월 10일경 중대 결단을 한번 합니다~~~
“그래 복불복으로 도박한번 하자 대규모 수송선단 띄워서 이번에야 말로 보급 빵빵하게 한번 하자”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는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전함 공고와 하루나로 하여금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하게 합니다..
전함 하루나
10월 14일, 과달카날 근해로 침투한 양 전함은 핸더슨 비행장을 주포로서 한시간 반동안 포격합니다.
갑작스런 포격으로 핸더슨 비행장의 미군 항공대는 절반 가까운 전투기가 파손되는등
인적 물적으로 큰 피해를 당합니다.
그러나 비행장의 엄청난 피해애도 불구하고 미군은 빠른 복구를 통해 활주로 한면을 빠르게 복구합니다.
암튼 공고와 하루나의 포격으로 인해
과달카날 개전이후 처음으로 일본은 수송선단으로 구성돤 재대로된 보급을 처음 받게 됩니다.
그리고 작전계시인 10월 20일전까지
2만의 병력이 도착을 합니다.
그리고 작전을 20일에서 23일로 바꾸어
23일밤 비행장 마루야마 부대는남쪽에서 교란을 위한 나마지 부대는 서쪽으로 나누어 양방향에서 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일본은 과달카날의 미군 병력을 1개사단 1만명 정도로 예측하고
작전을 펼쳤으나, 실제 당시 과달카날의 미군 병력은 2만3천명…
야심차게 치고 나간 양동작전은 이미 미군이 가져다 나온 300여문의 대포 화력에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일본이 힘들게 가지고 온 9대의 전차가 골로 가버리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미군의 방어선을 어느 한부대도 돌파하지 못하지요…
*전멸당한 일본군 전차대~~~
26일 아침 8시 일본은 더 이상의 작전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작전 중지 명령을 내립니다/
피해가 너무 컸고 보급도 없는데다가 열대의 풍토병까지 덮쳐 전투력이 급감하게 되면서 더 이상의 공격작전은 꿈도 못 꾸고 소극적인 방어 태세에만 급급한 전투를 이제부터 벌리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과달카날섬에서의 전투였다면 과달카날 주변을 둘러쌓고 벌어진
해전의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모르지만 정말 피터지게 항공기 날려가며 싸운 산타쿠르즈 해전에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산타쿠르즈 해전
산호해 ,미드웨이가 아무리 치열했다 해도 미국 항모 호넷과 엔터프라이즈가 최후에 하나까지
싸운 해전이 바로 이 과달카날 근처에서 벌어진 과달카날 2차 해전이라고도 불리는 산타쿠르즈 해전입니다.
10월 16일 침몰직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항모 엔터프라이즈호가 한달만의 수리를 마치고 과달카날의 지원을 위해 진주만을 출발합니다.
이시간 야마모토 이소로쿠
“저번에는 실패 했지만 이번에야 말로 미국항모부대를 다 때려부순다!”
하고 항모 기동부대를 출발시키니~~~
이 항모부대는 쇼가쿠,즈이카쿠에 경항모 츠이호, 준요등 총 4대의 항모를 끌어 모읍니다.
그리고 다시 나구모를 주력함대로 해서
곤도노부다케 중장의 전진 부대, (준요 경항모가 배치)
곤도 노부다케 중장
곤도 노부다케 휘하의 경항모 즈이호
아베히로아키 소장의 전위 부대로 편성을 합니다.
그리고 나구모 본인은 쇼호가쿠를 기함으로 합니다
*쇼카쿠, 즈이카구 산호해해전으로 미드웨이 공격에 빠져서 피해가 없던 놈들이죠~
이에 맞서는 미군은
토마스 킹케이드 제독 지휘하의 호넷과 엔터프라이즈가 있었고
토마스 킹케이드 제독
킹케이드는 두 항모를 각기 중심으로 19km 거리를 두고 각각의 독립 기동 함대를 운항하였습니다.
전함 사우스 다코다와 6척의 중 순양함, 14척의 구축함들이 호위함대로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일본 함대의 출동은 무선 감청 기술이 뛰어 난 미군에게 이미 탐지되어 있었습니다.
10월 25일 하루 동안 킹케이드 함대는 일본 항모 부대를 찾아 산타 크루즈 섬 북방 해역을 수색 항해하였습니다.
10월 26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레이더가 장착된 미 해군 카타리나 비행정이 밤바다를 항진하던 일본 기동함대 즈이카쿠를 발견하다 못해 폭탄도 한발 떨굽니다.
뭐 물론 여러분의 예상대로 폭탄은 빗나가지만. 소심한 나구모가 화들짝 놀라 북쪽으로 함대의
오던방향으로 돌려버립니다.
미군 카타리나를 보기는 봤지만 역시 이번에도 나구모 미국함대가 어디?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합니다.
놀라서 도망가던 나구모 도망가다 보니 너무 많이 도망온듯
“아까 오던길로 다시!!”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길에 반대쪽에 킹케이드 제독의 함대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10월 26일 새벽
새벽에 산타 크루즈 섬에 기지를 두고 초계중이던 PBY 비행정이 미 기동 함대에서 657km 떨어진 곳에서 항해하던 일본 기동 함대를 발견하였고,
뒤이어서 앞에서 항진하던 전위 부대도 발견합니다만 이 거리는 미국 함재기들의 출격 가능 거리 밖이었습니다.
결국 함대 전이 가능한 200해리 안쪽으로 들어오자. 미국이 먼저 정찰 겸 공격을 목적으로
먼저 출격하나 이놈에 비행기들이 엉뚱 한데서 해매다 일본 함대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미군의 정찰기가 다시한번 나구모 함대를 발견한 순간에
일본 소호카구에서 출격한 정찰기도 미기동 함대를 발견합니다.
*일항모 쇼호카쿠
서로간에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적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자 마자
“저쪽에서 먼저 비행기 날리기 전 우리가 먼저 날려야 한다~~~”
누가 누가 먼저 함재기 띄우기를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빨리 일본놈들이 함재기먼저 띄우기에 성공합니다만,
여기서 또 한번
첫줄의 재로기가 즈이호 갑판에서 떠오르는 순간
정찰 목적으로 돌아다니던 미군 돈트레스 (파니 스트롱 소위기와 찰스 어윈 소위기)2기가
즈이호를 발견
급강하 폭격으로 즈이호 갑판 뒷쪽 구멍을 내버립니다~~~
한마디로 뜰수는 있는데, 내릴수 없는 반병신 항모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일본 경함모 즈이호 아웃!
현재스코아 일본:3 미국;2
한편 전진부대의 곤도노부다케 중장
아베히로아키 소장의 전위 부대에게 전속력으로 미함대를 향해 돌진명령을 내립니다.
곤도노부스케도 경함모 준요를 무려 32노트의 속력으로 전속전진하며,
급속으로 미군함대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놈들 운이 억세게도 좋았는지,
7시40분
미군애들보다 먼저 소호가쿠 24대, 즈이카쿠. 16대, 즈이호 9대의 함재기를 먼저 띄워올립니다.
즈이카쿠 비헹대장 무라다 대위를 대장으로 1차 공격대가 날라오르고
2차공격대로 소호카쿠의 세키소좌가 지휘하는 44대가 날라 오릅니다.
그리고 소심 나구모이번에도 역시 항모 주변으로 호위 전투기 쫙 띄워 놓지요
이번에는 결코 두번 다시 당하지 않으리~~~~
이전에는 공격대가 출동하면 먼저 이륙한 전투기들은 공중에서 선회하면서 모든 공격대들이 다 이륙하기를 기다렸다
뭉처 갔는데 이번에는 그냥 날아로는데로 그냥 바로 바로 날려보내버립니다.
선빵의 중요성을 나구모가 터득한거지요.~~
이에 맞서는 미군은 일본보다 20분 늦은
8시에 항모 호넷에서 15대의 돈트레스 폭격기, 뇌격기 6대, 와일드켓 8대를 띄웁니다.
그리고 8시10분
엔터프라이즈 비행대 18기의 함재기로 편성된 두 번째 공격대가 목표를 향해 발진,
다시 8시20분
3번째 공격대인 호넷의 항공대 24기가 출격을 완료합니다.
그리고 10분후인
8시40분 양쪽의 항공대는 가시 거리에서 서로 스쳐 지나가게 됩니다~~~
이순간 즈이호에서 출동한 9대의 제로기들이 태양을 등지고
엔터프라이즈에서 출발한 공격대를 공격합니다.
비록 제로기4대가 격추되지만
애초 18대가 출발한 엔터프라이즈의 공격대는
와일드켓 3대 어벤저 뇌격기2대가 격추되고 돈트레스3대가 파손되어
반쪽자리 공격대가 됩니다.
하지만 가장먼저 출발한 호넷의 비행대는 8시50분 적의 전위함대를 발견한후
전위함대에 항모가 없다는걸 알고 전위부대는 패쓰~~한후
뒤따라올 항모부대를 찾기시작합니다.
그리고 9시27분 일본항모 소호카쿠를 발견합니다 호넷의 급강하 폭격대는 한차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급강하 폭격을 시작 4대의 돈트레스가 격추당했지만 11대는 착실하게 폭탄을 떨굽니다.
그중 한발이 갑판을 뚫고 들어가 내부에서 폭발하면서 소호카쿠에 치명타를 날립니다.
현재 스코아 일본:2 미국:2
자 한편 미군 함대는 출격한 비행대로부터 일본 공격대가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일본 공격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떄 엔터프라이즈호는 운좋게도 열대성 스콜 속으로 들어가 일본군공격대의 눈을 피합니다
머 ~결국 엔터프라이즈호로갈 일본놈들까지 호넷으로 달려드니 호넷만 죽어나게 된거지요~~
호넷의 레이더에 일본군 전투기들이 보인 시점에 거리 65k 지점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호넷의 문제는 호위를 해야할 와일드켓들이 항모 지근거기라 아닌 정찰을 목적으로 초계 비행하며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는 겁니다.
통신오류와 레이더 관제사들의 미숙으로 항모 주변에 있던 와일드켓을 빨리 불러 모았어야 하나
일본 공격대가 공격을 시작할 무렵 항모에는 몇대의 와일드켓이 전부 다였습니다.
일본의 1차 공격대가 들이 닥쳤고, 그나마 몇대 있던 와일드켓들이 방어에 나서고
호넷과 주변 함에서 대공포화를 쏟아 부었지만 36대의 일본군 전투기들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9시를 넘어선 시간 드디어 일본군의 철갑탄 한방이 호넷의 갑판을 뚫고 터집니다.
그리고 2탄 3탄의 명중탄이 호넷의 갑판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호넷의 대공포화망에 이미 비행기능이 마비된
사토오 병조장의 급강하 폭격기는 호넷의 연돌에 돌격하여 자폭합니다
자폭돌격으로 7명의 전사자를 발생시키고 불붙은 항공유를 호넷의 통신 데크에 뿌려 화재를 발생시킵니다.
호넷에 돌격하는 사토오 병조기와 폭발 순간
그리고 뒤이어 달려든 20기의뇌격기들이 양쪽으로 나누어
엄청난 포화속에서 어뢰를 떨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두발이 명중하며 호넷의 엔진을 정지시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함상폭격기 한대가 낮게 날아와
호넷의 측면을 그대로 들이받았는데, 하필 항공유탱크 부분을 들이받아,대화재를 일으키며
호넷은 기동 불능상태가 됩니다.
표류하는 호넷
현재스코어 다시 일본2: 미국:1
이 첫번째 공격에서 33기의 일본 함재기와 6기의 미군기가 격추되었고. 전사자 중에 공격대장이며 진주만 공격의 베테랑 무라다 소좌도 있었습니다.
급하게 주변에 있던 구축함들까지 동원에 급하게 화재 진압을 하던 호넷~~~
가까스로 10시경 화재 진압을 한후 순양함에 로프를 연결하려는 순간
흐어어어엉~~~ 일본의 2차 공격대가 엔터프라이즈호에 날라옵니다.
스콜속에 숨어있던 엔터프라이즈호는 호넷의 함재기와 정찰기를 수용하다,
2차 공격대를 보고 호넷의 함재기 수용을 중지하고 급히 전투기를 날려보냅니다.
결국 호넷의 함재기들은 연료부족으로 바다로 떨어졌고
구축함들이 달려들어 파일럿 구조작전을 펼치지요.
2차 공격대는 이미 함기능이 정지한 호넷은 신경끄고
엔터프라이즈를 향해 폭격기들이 개떄처럼 달려듭니다.
역시 와일드켓과 대공포화가 작렬하지만
그 포화망을 뚫고 달려든 2기의 폭격기에 의해 2발의 명중탄을 맞으며 앞쪽 엘리베이터가 작동불능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19기의 2차 공격대중 살아돌아간 기체는 7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격 당하는 엔터프라이즈호 우현에 어뢰 피격순간~~
그리고 마지마 항모 즈이카쿠에서 날라오른 16기의 뇌격기가 양쪽으로 나누어
엔터프라이즈와 전함 사우스다코타 등에 어뢰 공격을 가하지만 무위로 끝나고,
미군의 대공포화속에 9대의 뇌격기만 살아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정신차린 엔터프라이즈호 급 화재 진압하고 그래도 피폭 지점이 앞쪽 엘리베이터라
엔터프라이즈호의 회피기동으로 미끄러진 와일드켓
다시 항공기를 수용하려는 찰라
아~~ 이번에는 곤도 중장의 전방함대에 있던 경항모 준요에 있던 함재기들이
또 한번 들이닥칩니다.
11시21분 엔터프라이즈를 덥친 준요공격대 엔터프라이즈는 피격을 피했으나
전함 사우스 다코타가 4발을 맞습니다.
거기다 조타 장교가 키를 잘못 돌리는 바람에 사우스다코타와 엔터프라이즈가 충돌일보 직전까지 갑니다.
마찬가지로
준요의 공격대역시 19대중 11대가 격추를 당하는 피해를 입습니다.
이때 기동함대 사령관 킹케이드 제독은 호넷은 이미 어렵다고 판단
엔터프라이즈도 더 이상 항모로서의 기능으로서는 정지했다보고
후퇴를 지시합니다. 한마디로 미기동함대가 도망치기 시작한거지요~
최종 스코어 일본;2 미국:0 ~~~~일본WIN
자 그시간 미군의 피해를 입지않은 일본항모 ,즈이카쿠와 준요…
생존한 전투기들을 수납하고 다시 한번 출동을 준비합니다만,
나구모 제독 항모2대를 박살냈다는 승리의 기쁨도 잠시….
문제는 너무많은 함재기가 떨어졌고, 그나마 돌아온 전투기들 역시 망신창이 상태였습니다.
항공모함 승무원들도 살아 돌아온게 놀랐다고 하는 수준이었으니, 파이럿들의 상태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오후가 되자 곤도의 전방부대와 아베의 전위부대는 마지막 미해군 함대가 있던 해상으로 출동합니다.
미 항모 2대가 나가 떨어졌으니 함대포격전이라도 벌려 최후의 승기를 잡으려고 합니다.
일본 역시 대파된 즈이호와 쇼호카구를 전장에서 이탈 시킵니다.
이제 미 함대와의 해전은 곤도 부대 소속이었던 제 2 항공전대 사령관 가쿠다 가쿠지 소장이 지휘하게 되었고 즈이카쿠도 그의 지휘하에 들어가게됩니다.
지휘권을 넘겨 받은 카구 가쿠치 소장
가쿠다소장 지휘하에 있는 두 척의 항모는 얼마 되지 않은 함재기들을 무장시켜 3차 공격이며 마지막 공격을 위한 출격 준비를 합니다.
이들은 시간의 급박함을 알기에 미군이 아침 공격에 했던 것처럼 준비가 된 함재기부터 출격시킵니다.
이시각 동력을 상실한 호넷을 예인하던
중순양함 노섬프톤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5 노트의 느린 속도로 호넷을 예인하기 시작합니다. 호넷의 기관병들은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호넷의 동력을 어느 정도 살려낼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순간 준요에서 날라온 공격대의 뇌격기 7대가 어뢰를 발사합니다.
사실상 정지상태의 항모 도리없이 호넷…. 6대의 어뢰를 맞고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결국 호넷에 대한 퇴함 명령이 내려졌고… 또한번 날라온 일본의 공격대에 일격을 당하지요…
호넷에 결국 자침 명령이 떨어져 미군 구축함2대가 호넷에 어뢰를 발사하지만
그래도 호넷…. 침몰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일본놈들이 이 호넷이 두리틀 공격대의 모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포해서 가지고 갈 생각하지 합니다만, 결국 항해불능상태에서 나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구축함 마키구모와 아키구모가 어뢰 4발을 발사하여 호넷의 숨통을 끊으려 했으나 호넷은 끈질기게 침몰을 거절합니다.
. 호넷은 그 날을 넘기고 다음날인 10월 27일 자정을 넘겨서야 침몰하였습니다.
이미 철수한 미군함대를 따라 추격전을 펼치고자 했던 나구모, 그러나 함대의 연료부족과
미군의 야간 기습에 두려움을 느낀 나구모 결국 출발지인 트랙섬으로 철수를 합니다.
이것으로 산타쿠르즈 해전은 종료되었고,
사실상 항모 호넷이 격침당하고 엔터프라이즈호애 기동전함 사우스 다코타가 대파되고
함재기 175기중 81대를 잃은 미군의 패배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항모2대가 대파되고, 203대의 함재기중 99대가 격추된 일본군…
항공전력이 반으로 급감합니다만 더 큰 문제는 손실의 복구시간과 숙련된 조종사의 손실이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산호해나 미드웨이에 잃은 조종사들의 숫자도 크지만, 이 산타쿠르즈 해전에서
베테랑 조종사들의 숫자가 급감합니다.
진주만 공격대에 참전했던 780명의 승무원중, 산타쿠르즈 해전이후 생존자가 370명이니…
산타 크루즈 해전 후 숙련 된 항공 승무원의 극심한 부족으로 일본 항모 즈이카쿠와 즈이호는 일본으로 귀항하여
1943년 여름에 트럭 섬으로 복귀할 때까지 승무원 충원과 훈련에 몰두하여야 했습니다.
덕분에 일본의 운명이 걸리다시피 했었던 과달카날 전투에서의 일본 항모 부대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속수무책 과달카날로 증원되는 미해병대와 미육군의 수송대에 아무런 작전을 펼칠수가 없게되지요.
이제부터 본진자원 하나로 싸워야 하는 일본과 전맵에 멀티뛰고 맵핵키고 싸우는 미국과의
어마무시한 격차가 이제부터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대파당한 엔터프라이즈 는 칼레도니아로 들어가 2주간의 응급처치후 다시 원대복귀합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에섹스급의 항모들이 두달에 한대씩 쏟아저 나올 준비를 하지요.
전사가 에릭 하멜은 이 산타 크루즈 해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산타 크루즈 해전은 일본 해군의 승리였다.
그러나 그 승리는 일본이 연합국을 대상으로 최후의 승리를 할 가능성을 빼앗아 간 승리였다.”
진주만 기습의 영웅으로서 칭송을 받다가 미드웨이 해전의 대패로서 일본 해군을 궁지에 넣은 나구모 주이치 해군 중장은 산타 크루즈 해전 뒤에 함대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어 육상근무로 가게됩니다.
과달카날 2차 해전
자 그런데 이때 일본이 마지막 도박을 합니다.
10월에 2만 가까운 핸더슨 비행장 탈환 작전에 나섰다 실패한 일본 과달카날의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포기할수없어 11월에도 증원군을 보냅니다. 역시 마찬가지고 수송과 비행장 공격을 목적으로,
11월 12일밤 일본의 대규모 수송선단이 전함 히에이 기리시마와 ,순양함 호위 받으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을 떠나 과달카날로 향합니다만.
일본 36사단 6천명과 중화기가 있었는데, 이 수송대가 출발한다는 첩보를 역시 미군이 딱딱 입수한겁니다.
전함히에이~ 야마토가건조되기전까진 가장 큰 전함으로 일왕 히로이토가 사랑했던 전함이었답니다.
11월의 과달 카날상륙작전중 항모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재기와 핸더슨 비행장의 비행기들의 공격으로 격침 되지요.
그래서 11월 13일날 과달카날과 플로리다 섬의 좁은 해협에서 양측 함대가 딱 마주치고
엄청난 포격전이 왔다 갔다 합니다.
1차 교전에서 제독 케리헌 소장이 탄 순양함 센프란시스코의 함교가 직통으로 가격당해 케리헌 제독이 전사하고, 미국은 순양함 아틀란타와 구축함을 잃고 일본은 전함 히에이와 구축함 한척을
손실합니다.
교전중에도 수송선단은 항해를 계속합니다
어차피 전투에 도움도 안되는 수송선단인지라 무조건 달립니다만…
전투지역 빠져 나오나 싶었는데, 핸더슨 비행장의 미군기들이
날라들어 수송선단 6척이 침몰합니다만 그래도 잘 바티며
과달카날 섬 앞까지 옵니다.
아 아제 됐다 싶은 순간 ~ 수송선단앞에 미군 함대가 또 가로 막네요.
결국 이 저지선을 뚫으며 일본군이 병력을 상륙시킵니다. 한마디로 무식하게 상륙합니다.
과달카날 상륙작전중인 일본군. 불타고 있는건 수송선으로 미군의 맹폭으로 바다위애서 하역 작업이 불가능하자
그냥 수송을 전속으로 좌초시켜 해안에서 바로 물자를 내렸다고 하니 얼마나 일본군이 극한 상황이었는지를
알수 있는 사진입니다.
그러나
상륙한 인원은 처음 출발할 때 3분에1인 2000명뿐…..
*과달 카날에 좌초된 일본군 수송선
결국 이작전에서 일본은 전함 2척,중순양함1척 과 구축함 3척 수송선 10척이 당합니다.
미군은 경순양함 2척 구축함7척을 잃었습니다만.
이 작전으로 일본군은 더 이상 과달카날에 대규모 지원 병력을 보낼수 없다고 판단
과달카날을 포기하기로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손실이 큰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시점에 과달카날에는 일본군 총 2만8천명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인원이 이제 고립된거에요.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시달리는데다가 이젠 먹을거도 없는건 기본이고
말라리아 등등 질병에 병사들이 죽어 나갑니다.
(그래도 일본군이 구축함을 이용해 뭔가를 보냈습니다만. 턱없이 부족하지요.)
미군은 이런 일본의 필사의 보급을 ‘도쿄 익스프레스’라며 비웃었습니다.
더 이상 비행장을 탈환은 뭐 생각하지도 못하고 ~~ 그나마 좀 남은 과달카날 재해권도 더 이상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런 와중에도 일본 대본영에서는 과달카날에 대한 미련으로 어떤 결정을 못내려주고 있다
그래 12월30일 철수를 결정합니다.
1943년 2월 마지막 수송선이 과달카날을 떠날때까지,
과달카날에서의 미군 손해는 함선 24척, 전사 1,590명, 부상 7,409명.
일본군의 손해는 함정 24척, 항공기 893대와 그 탑승원 2,362명.
그리고 일본 육군이 투입한 병력 3만 3,600명중에서 전사자 8,200명, 병사자 1만 1,000명으로
미군 측의 3배에 이르는 전사자를 내었습니다.
이 과달카날이 전투이후로 일본의 육군도 더 이상은 공세가 아닌 수세로 변합니다.
이이후 일본 육군은 방어전으로 전환해야했고,
과달카날 사수한다고 도쿄 익스프레스 과정에서 인적 물적 손실을 엄청나게 합니다.
또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너무나 지나치게 전선을 넓게 펼쳤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햇고
어찌됐건 유한한 자원으로 싸워야했던 일본의 국력이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는 겁니다.
지름이 6Km에 불과한 이 작은 섬을 빼앗기 위해 6개월간의 전투에서 가라앉은 미-일 양군의 군함들이 잠들어 있는 과달카날 해협을 오늘날 ‘쇠 바닥 해협’(아이언 보텀 사운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나온 고향과 가족들을 그리며 죽어갔을 과날카날의 우리 조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과달카날 해전으로 수없이 크고 작은 전투와 해전이 있었으나 가장 중요했던 해전 몇개를중심으로 써봤습니다,
다음편은 이제 끝장나기 일보 직전에 일본이 짜내고 짜내서 만든 항모와 전투기로 미군과 제대로된 한판을 벌렸다가
탕진해버린 마리아나 해전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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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방대한 자료에 대한 기가 막힌 요약.
핵심 내용은 다 들어 있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에서 근무 하셨던 것 같음
추석 연휴떄 시간내서 쓰다보니 a4지로 18장 분량이 나오네요~~~ 잡지사는 아니고 한때 신문사에 투신한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너무 잘 읽고 갑니다.
늘 잼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눈에 들어오는 뱅기는 와일드켓이군요~ 와일드켓~ 요놈을 만들어봐야 겠군요~ ㅎㅎㅎ 한대더~~~
다음편부터는 헬켓이야~~ 헬켓이 제로기 킬러 였더구만
@유석민 그럼 헬켓으로 와일드켓이 제대로 나온 킷이 없어요. 헬켓은 브래드나 킷이 다양하니! 글구 형님 전사 보니 헬켓이 성능도 좋았지만 일본애들이 베테랑조종사 부족도 한몪한거 같아요.
역시.... 저희들이야 재미 있게 이렇게 잘 요약된 자료를 보고 좋아 하고 있는데..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좋은 말씀과 칭찬 감사드립니다. 인터넷등으로 돌아다니는걸 편집해서 올리는 수준이라 민망하기도 하네요^^
오늘도 재미지게 잘 읽었습니다~^^ 왠 항모가 저리 많이 등장하는지...^^;;
일본도 나름 항모를 많이 만들긴 했더라구~~ 저시대에 저정도 함대를 운영한거보면 일본놈들 대단해
재미져서 자꾸 빠져드는게... 책하나 쓰시면 유료구입 의사있음..;;;;;
감사합니다.^^ 근데여기저기 돌아 다니는걸 찾아서 편집한거라 책으로 쓰면 큰일 나요^^
덕분에 역사 공부 제대로 하고있습니다.
읽을때마다 일본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심이 반반씩 생기네요.
저 시절에 항모를 십여척씩 소유할수 있었다는거 생각하면 당시일본이 엄창나긴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일본군의 수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때도 그렇지만 일본 참 대단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또 무서운 나라구요
마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는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다는것이 느껴집니다.
칭찬에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 마무리 잘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응원의 말씀 항상 감사합니다.
글 잘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쓰시는데 그냥 보기만 한것이 너무 미안한 마음입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재미 있게 읽어주시고 이렇게 응원의 댓글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게 쓰느라 고생했다.
방대한 내용을 잘 요약했네. 숨돌리지 않고 읽었스.^^
과달카날은 태평양판 스탈린그라드라고 불러도 되겠다.
추석때 쓰다보니 이정도 썼네요~ 2번 잘라서 올리려다 한방에 그냥 올렸습니다. 과달카날에 비행장을 아싸리 일본놈들이 만들지나 말지 다 만들어 놓고 뺏겨가지고는... 일본애들만 진짜 엄청 피를 봤네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리얼리티와! 방대한 참고 자료사진 ! 전사로 손색이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