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로스 섬(티티카카2)
정 성 천
이튿날 이른 아침 호텔에서 제공하는 소박한 아침식사를 들고 느긋하게 기다리니 우리를 데리러 사람이 왔다. 호텔의 배려로 매우 편리한 아침시간이 된 것 같다. 낯 선 도시에서 길 찾는 수고를 덜었으니 호텔여주인의 살가운 마음씀씀이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 사람안내로 아르마스 광장에 세워둔 버스를 타고 선착장이 있는 ‘물리에’항구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선착장은 섬 투어를 가려는 관광객들로 이른 아침부터 붐빈다.
물빛 맑은 호수가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넉넉히 담고서 넘실거리고 있었으며 우리나라 가을햇볕처럼 깨끗한 볕살이 싱그러운 수면 위에 가득히 내리고 상쾌한 바람이 만든 물비늘은 윤슬이 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바다처럼 넓은 담수호가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티티카카’호수, 8,372㎢의 넓이로 담수호로는 러시아 바이칼호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호수, 최대수심 280m, 호수면의 해발고도가 3,814m로 선박운송이 가능한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이다. 티베트의 마나사로바호수( 4,556m)가 해발고도가 가장 높지만 크기가 작아 배가 운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티티카카’라는 말은 ‘티티’는 퓨마, ‘카카’는 돌을 지칭하여 ‘퓨마의 바위’ 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허나 요즈음은 이 호수를 양분하고 있는 두 나라, ‘티티’는 페루, ‘카카’는 볼리비아를 의미한다고 가이드가 우스갯소리를 한다.
‘티티카카’호수에는 크고 작은 40여개의 섬들이 있지만 ‘푸노’에서 관광객이 갈 수 있는 섬에는 3개가 있다. ‘푸노’에서 동쪽으로 7km남짓 떨어져 있는 ‘우로스’ 섬, 45km정도 떨어져 있는 ‘따낄레’섬과 60여km 떨어져 있는 ‘아만따니’섬이다. 투어상품으로는 1박2일, 2박3일 등 여러 개의 옵션이 있었지만 ‘우로스’와 ‘따낄레’를 한데 묶어 ‘우로스’에 들렸다가 ‘따낄레’에서 내려 점심을 먹고 섬 일부를 종단하고 돌아오는 당일투어가 우리에게 가장 적당할 것 같았다.
6-70명이 탈 수 있는 유람선이다. 항구를 출발하고 얼마쯤 갔을까? 선상에서 뒤돌아 바라보니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펼쳐져있는 ‘푸노’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높은 곳에서부터 집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마치 우리나라 60년대의 부산풍경을 오륙도에서 바라보는 것 같다. 여기도 높은 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땅의 가치가 점점 더 높아 가는 항구도시인 것 같다.
20분정도 지나니 물 위로 솟아 난 갈대밭이 드문드문 보인다. 갈대밭 사이로 난 수로 같은 물길을 10분정도 더 가서 섬에 도착했다. ‘토토라(totora)’라는 갈대로 만든 떠있는 인공의 섬, ‘우로스’섬 이란다. 원래는 육지에서 약 15km 떨어진 호수 중심부에 있었으나 1986년의 대폭풍우로 섬들이 파괴된 후로 육지에서 7km 떨어진 곳에 새로이 섬을 건설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그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콜라’족의 공격을 피해 ‘우루’ 족들이 호수위에 인공 섬을 만들고 자기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살았으며 인근 육지에 살던 ‘아이마라’족들과 혈연관계를 맺으며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500여 년 전 잉카족의 전성기시대에 잉카족의 공격을 피해 ‘아이마라’족의 일부들이 대규모 이주해오면서 ‘아이마라’족과 융화되는 과정에서 ‘우루’족들은 자연히 그들의 언어를 버리고 ‘아이마라’어를 사용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섬 주민들은 ‘아이마라’ 족의 한 부류인 ‘우루’족이 라고 보면 된다.
‘토토라’ 갈대는 우리나라의 갈대와는 사뭇 다르다. 지금은 농약으로 오염된 우리나라 농촌 연못에서 사라졌지만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수생식물 ‘왕골’과 차라리 닮았다. 말려서 돗자리, 방석, 발도 만들었고 가공하여 고급벽지를 만들었던 ‘왕골’과 흡사하게 생겼다.
‘토토라’ 갈대는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생활재료였다. ‘토토라’ 를 뽑아보면 뿌리 쪽 연한 흰색부분(그들은 이것을 ‘츄요’라고 부른다.)은 삶아서 주식으로 먹기도 하고 상처가 나면 얇게 잘라 상처부위를 싸잡아 메면 덧나지 않고 잘 낫는다고 한다. ‘츄요’에는 요오드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항균작용도하고 이것을 많이 먹는 ‘우루’족들에게는 갑상선 종양이 없다고 한다.
2-3m길이의 윗 쪽 녹색 부분은 햇볕에 말려서 단으로 만든 후 여러 개를 겹쳐 이어서 섬을 만든다고 한다. 사람들 특히 관광객들이 많이 밟고 다니기에 떠 있는 이 갈대 섬은 3개월이 지나면 침수되어 물이 베어 나오기에 지금도 수시로 마른 ‘토토라’ 단으로 섬을 보수해야만 섬이 유지된다고 한다. 섬을 만드는 것 외에도 주택과 침대와 온갖 생활도구들을 만들기도 하고 관광객들에게 파는 수공예품을 만들기도 하며 촘촘히 엮어서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배와 아주 유사한 ‘바루사’라는 뗏목 배를 만들어 섬을 오가는 교통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크기가 다양하지만 보통 섬 하나의 넓이가 30m×10m로서 3-4가정들이 모여 생활하기에 2012년까지 만 해도 40여개의 섬들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관광 붐을 타고 90여개의 섬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카피탈’ 이라고 부르는 비교적 넓은 중심 섬이 있고 그 섬을 중심으로 좌우로 섬들이 이어져 있으면 커다란 수로처럼 다소 떨어진 곳에 역시 종대로 섬들이 마주보고 늘어져 있는 형태이다. 중심 섬에는 외부 침입을 감시하는 망루가 있으며, 주민들의 모임장소인 회당, 상점과 식당, 아이들의 학교가 있다. 고등학교까지는 이 곳 ‘우로스’의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에 진학할 때 ‘푸노’의 대학으로 간다고 한다.
원래 ‘우루’족들은 호수의 물고기를 잡아 육지의 감자와 옥수수로 교환해서 생활했으나 지금은 대다수가 관광수익으로 살아가고 있다. 2000년까지만 해도 ‘우로스’ 섬 주민들 모두가 섬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으나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정권을 잡았던 일본계 대통령인 ‘후지모리’ 재임시절 육지에 이들의 주거지를 마련해 주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육지에서 출퇴근 한단다.
가이드의 안내로 한 섬에 상륙했다. 바닥은 짚을 깔아 논 타작마당처럼 아이들이 심한 장난을 치다가 넘어져도 전혀 다칠 염려가 없을 만큼 푹신푹신하다. 붉고 푸른 원색의 옷을 입은 아낙네들이 반갑게 관광객들을 맞이해 준다. 마른 갈대 단으로 된 긴 의자에 관광객들을 앉혀 놓고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섬 주민 아낙네와 아이들이 ‘토토라’로 집과 생활도구들을 만드는 방법을 시연해 보인다. 바닥에는 온갖 장신구와 작은 천으로 된 선물들과 ‘토토라’로 만든 모형 배와 장식품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
그들의 주거공간을 둘러보았다. 벽과 지붕도 그리고 침대까지도 ‘토토라’갈대 단으로 만들었다. 바닥이 온통 마른 갈대 단으로 되어 있어 불 피우는 게 궁금했었는데 가장 쉽고도 소박한 방법이었다. 널따란 돌들을 이어 바닥위에 깔고 그 위에 조그마한 냄비와 같은 솥을 걸어 놓았다. 이곳은 해발 4,000미터 가까이 되는 고지대라 6,7월에는 상당히 추울 텐데 난방은 어떻게 하는지 물었더니 ‘우루’족들은 피가 붉은 색이 아니라 검정색이라서 추위를 타지 않는다고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한다. 불은 취사를 할 때만 피운다고 했다. 지금은 간단한 태양광 발전으로 불도 밝히고 라디오도 듣는다고 한다.
돈을 얼마간 주고 수상택시인 ‘바루사’ 갈대 뗏목도 타 보았다. 마른 갈대 단으로 촘촘히 엮어 만든 배를 2개를 묶어 2층까지 만든 커다란 ‘바루사’배였다. 아낙이 노를 젓고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동원되어 노래를 부르고 돈을 구걸하는 전형적인 관광지의 행태에 기분이 다소 씁쓸해 진다.

첫댓글 자유로은 영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