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칠전2교 부근
바로 언덕 하나만 올라가면 디즈니 홀은 머큐리 신의 돛을 단 거대한 배처럼 하늘을 배경으
로 반짝였다. 여기 언덕 밑에서 차들이 2번가의 터널 옆을 질주하고,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다니엘이 그 소음의 광기를 가르며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고 질서와 논리와
건전함과 달콤한 위로가 있는 그만의 닫힌 세상으로 들어갔다. 아주 잠깐이지만.
--- 스티브 로페즈, 「솔로이스트」
▶ 산행일시 : 2009년 10월 31일(토), 흐림, 오후에는 비
▶ 산행인원 : 9명
▶ 산행시간 : 11시간 36분(휴식시간 포함, 점심과 이동시간 1시간 2분 제외)
▶ 산행거리 : 도상 17.1㎞(1부 11.8㎞, 2부 5.3㎞)
▶ 교 통 편 : 25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0 : 18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3 : 05 - 홍천군 내면 창촌리(蒼村里) 백성동(栢城洞) 만나산장 입구
05 : 12 - 산행시작
06 : 12 - 문암산(門岩山) 뒤 1,131m봉
07 : 05 - △1,164.7m봉
07 : 36 - 1,120m봉
09 : 05 - 계류 건넘
09 : 44 - 지능선 진입
10 : 46 - 주능선 진입, 980m봉
11 : 50 - 맹현봉(孟峴峰) 옆 1,212m봉
13 : 53 - 칠전2교, 1부 산행종료, 점심식사, 오미재로 이동
14 : 55 - 인제군 상남면 하남2리 오미재, 2부 산행시작
16 : 05 - 대바위산 앞 795m봉
17 : 08 - △784.9m봉
17 : 50 - 인제군 상남면 하남리 대항사 입구, 산행종료
21 : 45 - 동서울 강변역 도착
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문암산 뒤와 맹현봉 옆 산행로
▶ 문암산 뒤 1,131m봉
운두령(雲頭嶺). 해발 1,089m로 남한에서 자동차로 넘나드는 고개 중 함백산 아래 만항재
(1,330m) 다음으로 높다. 항상 운무(雲霧)가 넘나든다는 뜻에서 운두령이라 한다. 오늘밤도
그렇다. 운두령 넘자 안개가 워낙 짙어 버스 헤드라이트 불빛의 가시거리는 5m정도에 불과
하다.
이른 아침 산 위에서 자운천(紫雲川) 주변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또한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은근히 조급하여 졸음이 확 달아난다. 창촌리 백성동 안으로 들어간다. 03시 05분. ‘만
나산장’ 입구에서 멈춘다. 어느새 안개 걷혔다. 하늘에는 열나흘 달이 둥그스름하고 초롱초롱
뭇별 돋았다. 버스 안 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다.
04시 45분 기상. 차가 갈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간다.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걷는다. ‘밭
에 들어가면 절도죄로 고발하겠다’고 층층 밭두렁마다 살벌한 경고문을 세우고도 못미더워
서인지 개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개 짖는 소리가 백성동계곡을 오래도록 울린다. 개는 우리
가 가까워질듯 하면 잠잠하다가도 멀어지자 목청 높인다.
‘석화산’ 등산로 방향표시판을 두 번 지나고 오른쪽 계곡 건너 산기슭으로 접근한다. 헤드
램프 불빛 닿는 데는 다 가파르다. 계곡을 거슬러 오는 게 나을까 계량하였으나 덩굴 숲이 하
도 울창하여 그만 단념하고 사면에 달라붙는다.
잡목 성긴 사면은 잡석지대 지나니 너덜 나온다. 선두 올려다보면 그들의 불빛은 별인 듯하
다. 밭 지키는 개는 여전히 짖어댄다.
엎어지다시피 한 자세 일관으로 거친 숨 내쉬어 낙엽이 들썩인다. 펑퍼짐하던 사면이 얼추
능선 모양 갖추고도 가파르다. 키 작은 산죽 숲을 지난다. 1,131m봉. 문암산(門岩山, 1,145m)
올랐을 때 더 가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내내 불망해하던 그 능선과 그 봉우리다. 그때 쩔쩔매
던 문암산 암릉이 단순해 보인다.
3. △1,164.7m봉에서
▶ 맹현봉(孟峴峰) 옆 1,212m봉
1,131m봉을 제대로 파악한 것은 한참 지나서다. 방금 오른 봉우리가 어디인지 몰랐다. 날
훤해도 금방 비 뿌릴 듯 우중충하다. 완만한 사면 쓸며 고도 100m쯤 내렸다가 110m 뻐근하
게 올라 1,145m봉. 내친걸음으로 잔 봉우리 3개 직등하여 △1,164.7m봉. 가시덤불 숲이다.
삼각점은 낡아 ┼자 방위 표시만 보인다.
앞 사람이 가시덤불 숲 다독이기 기다린다. 봉봉 오르내림의 고저가 숨 헐떡이게 심하다.
바윗길 예의 살펴 지나고 거목의 신갈나무 오래도록 사열한다.
지리산 쌍실종주 하자던 날. 거기서 바늘만한 더덕에 손대어 지리산 신령님의 노여움을 샀
다고 한동안 의기소침해 하던 대장님이 드디어 그에 풀려났다고 삼둔 사가리 요란하게 환호
작약한 곳이 1,120m봉 근처다.
1,120m봉은 여섯 갈래 지능선으로 내린다. 괜히 길 저축하는 부지런 떨었다가 긴 트래버스
로 지능선 횡단한다. 소나무 숲 울창한 봉우리 오르고 나이프 리지성 암릉을 지난다. 가을이
지나간 자리는 스산하다. 바람 불어 방향 없이 우수수 흩날리는 낙엽은 우리들의 여정이기도
하다.
떨어질 듯 급사면 내린다. 갈지자 아무리 대자로 그려도 가파르다. 엎어지기보다는 지레 자
빠지기를 일삼는다. 계류. 안현동 훨씬 위다. 물가 바위에 걸터앉아 맹현봉 오를 길 궁리한다.
도로로 올라서서 20m쯤 내려가다 지계곡 너덜에 용감히 덤빈다. 그러나 너덜은 점점 암릉으
로 발달하고 별 수 없어 왼쪽 사면으로 붙는다.
거의 수직사면이다. 자갈에 번번이 밀려 뒷걸음질 잦다. 띄엄띄엄한 잡목은 볼더링 홀더.
박차 오른다. 40분 가까이 순전히 팔운동하여 지능선 잡는다.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모두
아름드리 적송이다. 주능선에 즈음해서는 다시 한바탕 가파른 사면이다. 985m봉 올라서는
너나없이 널브러진다.
산행표지기 보이고 등로는 뚜렷하다. 암릉 길게 우회하고 슬랩 오른다. 산죽지대가 나온다.
바람 세차고 너른 산죽 숲이 물결인양 일렁이어 멀미나게 어지럽다. 그래서인가. 상도 님은
1,172m봉 돌다가 엉뚱한 지능선 누비느라 늦다. 맹현봉 건너다보이는 1,212m봉. 거목인 신
갈나무에 기대어 바람 피한다.
더산 님은 당초의 계획대로 맹현봉 넘고 넙데데한 사면(몇 번이고 강조하였다) 훑다가 남전
동으로 내릴 것을 주장하였으나 그 외 다수는 역불급이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칠전동을 향
한다. 낙엽 지치며 쭉쭉 내리다 수시로 출몰하는 암릉을 좌우사면으로 용케 비킨다. 12시 34
분. 빗방울 떨어지고 낙엽에는 우박내리는 소리가 난다.
하늘재 님 향도로 절벽 가까스로 내리는데 방향착오란다. 엉금엉금 되올라 지능선 갈아탔
으나 얼마 견디지 못하고 절벽에 막힌다. 왼쪽 사면 비스듬히 더듬거려 간신히 깊은 협곡으로
떨어지고 그 협곡도 몇 발자국 못가서 절벽이다.
대 트래버스 한다. 방금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데도 오금저리다.
완만한 지능선 유지하여 내린천 건너는 칠전2교 앞이다. 다리 아래가 점심자리 펴기 알맞
았으나 김기사님이 비 가리고 바람 가릴 명당을 보아두었다. 미산계곡 축제장 무대다. 둘러앉
아 버너로 만두 넣은 라면 끓여 속 덮인다.
4. 생둔(살둔)으로 가는 계류
5. 생둔(살둔)으로 가는 계류
6. 맹현봉 가는 길
7. 맹현봉
8. 맹현봉 가는 길
9. 맹현봉 가기 전 1,212m봉
10. 2부 산행로
▶ 대바위산 앞 795m봉
2부 산행을 강행할 것인가. 저렇듯 비바람 몰아치는데…. 대장님의 의지는 확고하다. ‘나를
따르라’다. 오미재로 간다. 오미재 고갯마루에는 현리지구 전투전적비가 있다. 드물게 보는
참담한 패배를 기록한 비다.
‘… 그러나 1951년 5월 16일부터 북한군 제5군단과 중공군 제12군이 우리 육군 제3군단과
미군 제10군단에 대공세를 취하여 후방의 요지인 오미재고개를 차단하였다. 아군은 22일까
지 완강한 방어를 시도하였으나 지형과 기상의 악조건으로 인접부대간의 협조가 단절되어
끝내 크나큰 희생만을 치루고 후퇴함으로써 종심 50㎞의 돌파구를 허용하고 말았다. 이 전투
의 패배를 교훈으로 삼고 당시 이름없이 몸 바친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고자 육군 제2307부
대가 1985년 6월 25일에 이 전적비를 세웠다.’
우리 일행 중 일부라도 제정신이 든 건 다행한 일이다. 4명이 2부 산행을 포기한다. 차에 내
려 아까 복장 그대로 교통호 넘고 참호 지나려 했으나 빗줄기가 굵고 차가워 우장 갖춘다. 우
비에 달린 모자까지 꼭꼭 여민다. 사정없이 귓전 때리는 빗소리가 듣기 좋다.
군인들이 초소 드나드는 길을 따르다 송전탑 지나 야트막한 봉우리 넘고는 한적한 산길이
다. 최백호가 아니더라도 이 나이에 무슨 낭만이 있을까. 가을비 추적 느껴 한층 침잠한다. 산
행은 확실히 이런 날이 제격이다.
755.4m봉 넘어서는 모자 벗어 뒤로 젖힌다. 상쾌하다. 바람은 산정의 안개를 한사코 쓸려
고 하지만 마침내 지치고 만다.
795m봉에서 지능선 잘못 잡아 잠시 주춤하다가 대바위산 분기봉 사면을 길게 트래버스 한
다. 그러고도 야트막한 봉우리 4개 넘는다. △784.9m봉에서는 무성한 덤불숲 뒤져 삼각점 찾
아낸다. 현리 315, 2005 재설. 암릉과 암봉을 직등한다.
간벌구간이 나온다. 베어 아무렇게 버린 나무를 피하느라 아주 애 먹는다. 비에 젖은 나뭇
가지 밟다가는 여지없이 미끄러진다. 산을 다 내리도록 그런다. 먼데 바라보다 등로 살피면
더욱 캄캄하여 아무쪼록 등로에 두 눈 꼭 박는다.
산기슭 빈집 돌아내리니 하남교와 대항사 중간 쯤.
10. 칠전동 부근
11. 낙엽송 숲
12. 낙엽송 숲
13. 하산 중
14. 등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