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무서워
최용현(수필가)
아침에 눈을 뜨니 아랫배가 묵직했다. 뱃속에 가스가 꽉 찬 것 같았다. 현관에 있는 신문을 주워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며칠 계속 변비증세가 있더니 사흘째 볼일을 보지 못했다. 식은땀을 흘려가며 10여 분 동안 실랑이를 한 끝에 겨우 성공을 했는데, 이어서 피가 주르륵 쏟아졌다. 변기통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다. 겁이 덜컥 났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확실하게 파악하려면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며 입원을 하란다. 아내가 입원수속을 밟는 동안 복부 초음파검사를 했다. 별 이상이 없는 것 같단다. 오늘 밤에 속을 다 비우고 내일 대장 내시경을 하자면서 몇 가지 약을 주었다. 피도 뽑았다, 피검사 결과는 이틀 후에 나온단다.
점심 때 쯤 다시 화장실을 가니 이번엔 설사가 쏟아졌다. 피도 좀 섞여 나왔다. 병원에서의 첫날 밤, 일찍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4년 전에 대장암으로 죽은 영호 생각이 났다. 증세도 영호와 비슷한 것 같았다. 아랫배가 살살 아프고 변비에다 설사, 그리고 혈변까지.
영호는 대학에서 만난 같은 과 친구였다.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2년 동안 친하게 지냈다. 나는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를 했고 그는 ROTC에 지원했다. 내가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3학년에 복학할 무렵 그는 아직도 장교로 복무하고 있었다.
내가 졸업 후 Y철강 입사시험에 합격하여 영업부에 배치되었을 때, 그는 작년 6월말에 전역하여 우리 회사 자재부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가 같은 회사에 근무하게 된 것은 우연이기도 하지만 둘 다 금속공학과를 나왔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우리의 인연은 또다시 이어졌다.
그에게는 전에 없던 기벽(奇癖)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매일 퇴근길에 지하철역 근처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왜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혼자서 소주를 마시느냐고 물었더니 군대생활 할 때부터 생긴 습관이란다. 뱃속이 비면 늘 속이 아리고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는데 소주를 마시면 신기하게도 통증이 싹 가신다는 것이었다.
내가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했더니 작년에 전역하자마자 병원에 가서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용종만 2개 뗐을 뿐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다보니 어쩌다 한 번씩 만나기는 해도 생각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해가 바뀌고 다시 봄이 왔다. 하루 일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와 서류정리를 하고 있는데 영호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호가 3일 전에 병원에 입원했다는 거였다. 퇴근길에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서니 영호는 링거액을 꽂은 채 잠이 들어있었고 그의 아내가 그 옆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의 아내를 복도로 불러내서 물어보았다. 며칠 동안 계속 혈변을 쏟더란다. 부랴부랴 입원해서 사진을 찍고 검사를 했단다. 어제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대장암 말기란다. 암세포가 대장은 물론 소장, 직장에까지 퍼져서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태란다. 길어야 6개월 아니면 3개월 정도밖에 살지 못한단다. 이럴 수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금방 잠에서 깨어난 영호가 링거액을 꽂은 채 내 손을 잡았다.
“윤섭아, 나 이제 끝났나봐. 근 4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빈속에 소주를 마셨는데, 그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내년 봄에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데 그 집에서 하룻밤만 자고 죽었으면 한이 없겠어. 윤섭이 넌 절대로 술 많이 먹지 마라.”
그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의지가 있어야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하면서 힘을 내라고 말했다. 그는 힘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일 내로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병실을 나왔다.
몇 번 더 그를 찾아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은 입원한 지 석 달이 조금 지나서였다. 그는 완전히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수척해 있었다. 교사인 그의 아내는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미 포기한 듯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영호보다 그의 아내가 더 안쓰러웠다. 나는 오늘밤은 내가 병실을 지키겠다고 말하고 그의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내가 돌아가자 영호가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밤이 무서워!’ 낮에는 사람들이 있고 또 통증이 심하다고 하면 의사가 와서 진통제 주사도 놓아주는데 밤에 모두들 잠들고 나면 혼자 깨어있단다.
“그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어린 시절 골목에서 함께 뛰놀던 동네 친구들 생각도 나고,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는 꿈도 자주 꿔.”
결국 그는 입원한 지 4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고향의 공원묘지에 묻혔다.
그가 간 지 5년이 지났다. 나는 지난봄에 영업과장을 끝으로 Y철강을 그만두고 철강관련 사업체를 차렸다. 회사에서 알게 된 인맥 덕분에 사업은 그럭저럭 잘 되었지만, 그동안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밤늦게까지 술 마시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이 불편했다. 그러더니 결국 혈변을 쏟고….
다음날, 수면으로 대장 내시경을 했다. 결과는 내일 피검사 결과와 함께 나온단다. 입원한 지 이틀째 밤이 되었다. 또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은 영호의 증상과 내 증상이 똑같은 것 같다. 그렇다면 대장암? 남은 시간은 3개월에서 6개월? 밤이 무섭다던 영호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거의 뜬눈으로 병원에서의 두 번째 밤을 보내고, 드디어 검사결과가 나오는 운명의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자꾸만 벽에 걸린 시계에 눈이 갔다. 나도 모르게 의사의 출근시간을 체크하고 있었다. 10시가 가까워오자 담당의사가 우리 병실에 들어왔다. 그 의사가 차트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치질입니다. 치질에는 내치와 외치가 있는데 선생님은 내치입니다. 내치는 속에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가끔 배변 시에 혈관이 터져서 혈변이 나오게 됩니다. 간단한 수술로 깨끗이 없앨 수 있습니다. 2~3일만 입원하면 됩니다.”
“예? 치질이라고요? 히히히 고맙습니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실성한 사람처럼 자꾸 히히거리고 있었다.*
첫댓글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제가 배가 아프고 7 8개월설사를 하고 고생을 한적이 있네요? 지금도 배변은 불규칙적이지만 복부에 자주 쑥뜸을 ...
지금도 그런 증세가 있다면 민간요법보다는 혹시 모르니 큰병원에 가셔서 검진을 받아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하! 대장내시경 검사 3 4년주기로 하고 있습니다. 꾸벅
잘 하시고 계시네요.
대장 내시경 받으려면 맛없는 약 마시고 밤새 장을 비워는 작업이 너무 고통스러워서...ㅎㅎ
나이가 들며 주변에서 세상을 떠나는 지인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합니다.
나고 감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다고 하지만, 속절없이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을
보면 남의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글을 읽으며 아마 나도 같은 경우가 있었지 할 만큼 묘사가 리얼 합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모두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동감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한사람씩 떠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너도 멀지 않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어저께 가 본 해남 대흥사 마당에 서산대사의 오도송의 일부가 붙어있더라구요.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삶이란 한조각의 뜬구름이 일어서는 것이고, 죽음이란 한조각의 뜬구름이 흩어지는 것이다)
히히히 나도 웃게되네요..
죽을것같던 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판명을 받으면 ..그럼그렇치 하며 속으로 웃어본적이 있어 실감이갑니다..
그렇치만 먼저 관리를 잘해야하겠지요..이상한 쪽으로의 꽁트를 처음보게 됐네요..ㅎㅎㅎ
이 콩트는 제목 때문에 낚여서 많이 들어오죠. 중년남자의 앞문 얘긴줄 알고.
중년남자까지는 맞지만, 앞문 얘기가 아니고 뒷문 얘기인데...ㅎㅎㅎ
제목을 바꿀까도 생각해 봤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제목이 없어서리...
내친구가 세번장가를 갔는데, 첫째부인을 유방암으로 사별하고, 셋째부인은 유방암 수술해서 지금 방사선치료받고있고.
남들은 한번으로 끝나는것을, 세번씩간 녀석을 부러워해야할지 측은히 생각해줘야할지.....
산다는게 요지경인것같읍니다.
세번이나 갔으니 일단은 부럽네요.ㅎㅎ
제 친구 부인 중에도 유방암 투병하는 사람이 둘이 있는데, 한 사람은 온몸에 전이가 되어서 작년에 갔고,
한 사람은 항암치료를 하고 괜찮은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인생살이를 고해라고도 하죠.
치질도 겪어보면 쉬운병은아니에요. 수술하고 3일입우너하고나도 아물려면 보름정도는 배변할때 죽을맛이지요.
아, 그렇군요. 그래도 치질은 죽을 병이 아니니까 대장암보다야 낫겠지요.
조금아프고 마는 병은 병도 아니지요
그렇지요.
참 사람 사는게 신기하내요^^
죽고 사는게 정말 중요한 건데 내 마음데로 할수 없다는것이 말입니다...
한치의 앞도 내다 볼수 없는 우리내 인생 왜그리 팍팍하게 살아야하는지.......
남의 죽음 앞에서는 슬픔을 잠시 나누면 되지만 나 자신앞에서는 모두가 두려움이내요.ㅠㅠㅠㅠ
검사 결과가 죽음과 직결이 되지는 않았지만 며칠간의 마음고생은 지옥을 몇번 갔다왔겠지요...
우리내 삶이 그런거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죠.
내 주위에도 아직 50대, 60대인데도 가는 사람이 있어요.
신문에도 가끔 나는 것을 보면 돈 많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귀찮아도 건강검진 잘 받고 의사 시키는 대로 잘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에는 지인들과 어울여 2차3차 과음을 자주하다
지금은 형편도 안좋고 어울리기도 싫고해서... 그러나 혼술에 재미를 내서 매일저녁 마시다보니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만... 전처럼 2차3차 안하는게 그나마... ㅋㅋㅋ
2차 3차를 줄이거나 없앤 것은 아주 잘 하신 일 같습니다.
혼술도 매일에서 이틀에 한번, 사흘에 한번으로 줄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골골하며 오래 살면 뭐합니까, 끝까지 건강하게 살아야지요...ㅎㅎㅎ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제 동기도 몇년 전 대장암으로 55세에 선종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네, 식생활이 서구형으로 바뀌면서 대장암이 엄청 증가했다고 하는군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요. 건강검진을 꼬박꼬박 잘 해야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졸은글잘읽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
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해피엔딩이라 다행입니다.
인생 할당설이라고, 뭐든 과하면 그만큼 빨리 소멸되 일찍 죽는다고 하네요.
우스게 같지만, 먹는거든 일이건, 욕심내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네요.
그런 게 있군요. 인생할당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입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그렇죠. 감사합니다.
읽어면서 모든증상이 나같아서 ^^ 나이가 들면 모든일들이 병과 연결을 짖게되네요~~~
맞습니다. 나이 들면 뭐든 조심해야 한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