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흐름 속에서 교회가 속화되었을 때에는 개혁의 외침과 쇄신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회혁신 운동은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이다. 이 사건 자체는 교회 쇄신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1,500여년 동안 전승, 보존된 그리스도교 신앙을 근본적으로 파괴하였고 하나의 그리스도교 세계를 여러 갈래의 분파로 분열시켰다. 그런데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교회 안에서의 개혁(Reform)과 교회 밖에서의 개혁(Reformation)으로 구분된다. 교회 안에서의 개혁은 가톨릭 종교개혁으로서 가톨릭 교회 쇄신(Catholic Reform) 또는 반동 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이라고 일컬어지고 있고, 교회 밖에서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서 단순히 종교개혁(Reformation)이라고 불리고 있다. 따라서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는개신교의 탄생을 초래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개혁에는 루터의 종교개혁과 이에 따른 유럽 대륙에서의 종교개혁, 즉 츠빈글리의 종교개혁, 재세례파의 급진적 종교개혁, 칼빈의 종교개혁, 그리고 영국의 종교개혁 등이 있다.
2. 역사적 원인
정치적으로 볼 때에 중세 말기에 이르러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서부 유럽 국가들은 중앙집권 체제의 군주제로 발전하여 각 국가는 그리스도교 제국의 전체 이익보다는 자국(自國)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었다. 반대로 독일의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지방 분권화의 정치상황에 놓여 있어 황제는 자신의 직책을 수행하는 데에 지방 제후들에 의해 제한을 받았다. 여기서 중앙집권 체제는 교회를 국가에 예속시키고자 하는 국교회 사상을 초래하여 교권이 약화되는 원인이 되었고 지방분권은 그리스도교의 단일성을 유지하는 데에 장애가 되었다. 경제 및 사회적으로 볼 때에 도시와 지방의 빈부 차이가 심하였다. 도시인의 배금사상은 인간 구원도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여 이는 대사부(大赦符)판매의 길을 쉽게 열어 주었다. 한편 지방에서는 일부의 귀족과 몰락한 기사, 농민들이 가난과 불만 속에서 어떠한 혁명을 기대하고 있었다. 지성적 배경에서는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5∼16세기에 영국, 스페인, 프랑스에 번진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북부 유럽에서 그리스도교 인문주의 또는 성서적 인문주의로 발전하면서 교회개혁을 촉구하였다.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들은 교회생활에 있어서 초대 교회의 제도와 규율을 다시 일으킬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사도시대의 교회로의 복귀를 확신하는 데에 길을 마련하였다. 신학적인 면에서 볼 때에 대사, 구원, 미사 성제, 성사, 교회, 교황의 수위권 등 핵심적 신학문제들이 교회 당국에 의해서 확실하게 정의되지 못하여 신학의 불확실성 시대를 초래하였고, 이는 루터의 신학적 공격과 논쟁을 일으키게 하였다. 또한 14세기의 유럽은 정치적 동요, 전염병, 농민 반란 등의 사회적 불안 속에 있었다. 이는 불행에 허덕이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세속적 관심을 제거하고 영혼이 신과 직접 대면하고자 하는 열망을 일으켰다. 개인의 종교적 체험과 신심을 강조하는 신비주의는 교회의 성사 신학을 비판하므로 반(反)성직자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실천적 신비주의는 `새로운 신심'(Devotio Moderna)이란 운동을 일으켰고, `공동 생활의 형제화'라는 신심단체를 탄생케 하였다. 이 단체의 회원들은 당시의 속화된 교회를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그 개선을 추구하려고 노력하였고 이를 위해 교육에 전념하였다. 뒤에 `공동생활의 형제회'에서 운영한 학교에서 교육받고 배출된 이들 중에 루터, 칼빈, 츠빈글리 등의 종교개혁가들이 들어 있었다. 교회 상황은 14∼15세기에 일어난 일련의 불행한 대사건, 즉 `교황청의 아비뇽 천도'와 `서구의 대이교'는 교회의 영향력을 상실케 하였고 교황권을 약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이러한 교황청의 분규는 `공의회 지상주의'의 운동과 위클리프 및 후스의 이단 운동을 일으켜 교황의 권위는 더욱 떨어졌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교황들은 그들의 시대적 사명인 교회 쇄신과 이슬람교도에 대적하는 서구의 단합을 완수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부 교황은 족벌주의 정책을 감행하였고 자기 중심의 배타심에 물들어 있었다. 특히 개인주의는 교황 취미의 소산인 문화적 업적에 공헌하였지만 베드로 대성전의 재건을 위한 대사부 판매는 종교개혁의 직접 동기가 되었다. 아울러 주교직은 귀족의 독점물이 되었고 이는 정신적 직책보다는 세속적 직업의 인상을 주었다. 따라서 일부 고위 성직사들은 그들의 영신적 사명감을 망각하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였다. 반면에 하급 성직자들은 제대로 신학 교육과 영신도자를 받지 못하였다. 참다운 수도 성소를 갖고 입회한 수도자가 적었고, 수도회 사이에 분열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평신도들의 신심은 너무 외적인 면에 치중하였고 자주 미신과 결부되었으며 이기적이며 물질적 효과에 밀착되어 있었다. 이는 대사부의 판매를 가능케 하였다.
3. 루터의 종교개혁
교황 레오 10세는 선임 교황 율리오 2세가 베드로 대성전의 재건을 위해 1507년에 반포한 전대사를 다시 선포하였다. 그리고 모금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대사 설교가 필요하였다. 독일의 신성 로마 제국에서도 대사위원회가 설립되어 설교 지침서가 발간되었고 설교가들이 임명되었다. 이 지침서는 대사에 대한 교리를 약술하였고 반면에 모금 목적을 위해 대사를 과찬하여 상품화함으로써 일반 대중이 그 본래의 의미를 망각하고 남용하도록 오도하였다. 루터가 거주하는 비텐베르크에서는 대사 설교가 허용되지 않았으나 그의 교우들이 이웃 지방에서 활동하던 요한 테첼의 설교를 듣고 대사부를 사오는 광적인 소란에 충격을 받고 대사 남용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일련의 신학명제(95개 조목의 명제)를 작성하여 1517년 10월 31일에 그의 주교와 동료 교수들에게 발송하였다. 이는 후에 출판업자들에 의해 간행되어 세상에 나옴으로써 문제화되었다. 1518년에 이르러 루터의 명제는 신학자들의 반박을 받았고 그는 수도원 참사회에 소환되었으며 로마에서 파견된 카예타노 추기경의 심문을 받았지만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루터는 1518년 11월 9일에 반포된 대사에 대한 교회 입장과 1520년 6월 15일에 공포된 <교회 교서>에 불복하여 1521년 1월 3일에 파문을 받았다. 루터 문제는 이제 정치문제로 번져 1521년의 보름스 국회에서 이단자로 단죄되어 추방령이 내려졌으나 전쟁의 발발로 실현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루터는 반(反)교회적 개혁 저술 활동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널리 전파하였다. 1526년에 이르러 황제는 독일의 종교문제를 정치적으로 타결하기 위해 국회를 열었지만 루터를 지지하던 제후들은 반기를 들어 일어나므로 1529년에 그리스도교계는 양분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수많은 회담과 충돌을 거쳐 루터가 사망한 뒤에 1555년에 아우크스부르크 국회에서 일차적 타결을 보았으나 다시 충돌이 일어나 `30년 전쟁' 끝에 `베스트팔리아 평화회담'에서 종교 분쟁은 최종적으로 일단락 되었다. 1570년에 이르러 독일 북부지방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는 루터교로 개종하였으나 그 외의 유럽지역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4. 유럽 대륙의 종교개혁
스위스에서는 츠빈글리가 자신의 성서관과 루터의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취리히에서 교회설교가로 활동하면서 1519년부터 루터의 개혁 정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1523년에 시의회의 지지를 받아 그의 교회 개혁안을 제시하였는데 여기에는 성당 안에 있는 성화상의 제거, 수도원의 폐쇄, 국가의 교회 성직록 관리, 국가 혼인 제동의 신설, 교회 전례와 강복의 폐지 등이 있었다. 이에 대해 1524년에 12명의 성주들이 가톨릭 동맹을 맺고 항의하여 취리히 시의회는 일단 개혁운동을 정지하였으나 11525년부터 츠빈글리는 개혁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신·구교의 종교전쟁(카펠리전쟁)이 일어나 1531년에 츠빈글리는 전사하였고, 취리히와 남부 독일에 미치던 영향력도 점차로 약화되어 갔으며 칼빈파로 흡수되었다. 한편 1524년에 츠빈글리가 가톨릭 동맹에 굴복하자 그의 일부 과격한 추종자들은 반발하였다. 그들은 `신앙에 의한 의화'라는 개혁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자유롭게 신상을 받을 수 있는 성인이 되어야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유아의 세례를 금지하고 성인(成人)의 재세례를 주장하였다. 1525년에 취리히 시의회는 재세례파의 집회를 금지하고 이들을 박해, 추방하였다. 추방된 재세례파는 서북부 독일과 네덜란드로 자리를 옮겨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교회와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1535년에 뮌스터에서 지도자들이 처형됨으로써 재세례파가 건설하려는 그리스도 왕국은 중지부를 찍었다. 제네바에서는 1534년 초에 프로테스탄트로 전향하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론으로 《기독교 강요》(1536)를 저술한 칼빈이 시의회의 지지를 받고 종교개혁에 착수하였다. 그의 과격한 신자생활의 혁신은 시민들의 반발을 받았으나 칼빈은 가혹한 처벌로 대응하므로 1555년에 이르러 모든 저항은 제거되었고, 제네바는 개혁교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칼빈의 사상은 프랑스에 들어가 `갈리아 신앙 고백서'가 작성되었고 여기에 정치적 개입으로 위그노전쟁(1562∼1598년0이 발발하여 이는 `낭트 칙령'으로 칼빈파는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네덜란드에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칼빈교는 성장하여 북부지방에서는 국교가 되어 개혁교회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영국과 스콜틀랜드에도 들어왔다. 당시에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한 네덜란드와 영국은 식민지 건설과 함께 칼빈 사상을 해외에 쉽게 확대할 수 있었다.
5. 영국의 종교개혁
헨리 8세(1509∼1547)는 본래 루터의 종교개혁에 반대하면서 칠성사(七聖事)를 옹호하는 입장을 밝혔을 때에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신앙의 수호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그런데 이미 교황 율리오 2세에게 관면을 받고 과부가된 형수인 아라곤의 가타리나와 결혼하였지만, 뒷날 앤 볼랜과의 사랑에 빠져 이혼하기 위해 관면의 무효성을 주장하였다. 결국 교황 글레멘스 7세와의 이혼문제에 대한 절충이 결렬되자 헨리 8세는 단독으로 이혼을 추진하여 의회로 하여금 영국 왕의 영국교회에 수위권을 인정하도록 조치하였고, 영국 성직자들에게 이러한 수위권에 굴복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로써 영국교회는 가톨릭 교회와 분리되었다. 1533년부터 로마 교회에 충실한 성직자와 수도자에 대해박해를 가하였고 수도원을 폐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루터나 칼빈의 종교개혁에 동조하지 않고 `6개 신앙 조항'을 공포하여 가톨릭 교회의 교리와 실천을 준수하였다. 헨리 8세를 계승한 에드워드 6세(1547∼1553)는 10세의 어린 왕이었기 때문에 외삼촌 에드워드 세이모어(Edward Seymour)가 섭정을 하면서 칼빈 사상을 영국 교회에 도입하여 교회개혁에 착수하였다. 1547년에 가톨릭 교회의 칠성사가 거부되고 `6개 신앙 조항'이 파기되었다. 1548년에는 성직자의 독신제가 폐지되었고, 1553년에는 영국 교회의 `42개 신앙조항'이 반포되었다. 이제 영국의 성공회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에드워드 6세가 1553년에 사망한 뒤에 가타리나의 소생인 메리가 왕위에 올랐다. 메리는 매우 환상적 가톨릭 신자였다. 그가 등극하게 된 것은 에드워드 6세 치하에서 자행된 섭정 독재정치를 종식하고 전통적 튜더(Tudor)왕가의 계승을 의회와 국민이 갈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리는 이를 오해하여 국민이 여왕의 가톨릭 신앙을 좋아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더욱이 그는 1554년에 스페인의 국왕 필리페 2세와 결혼함으로써 영국의 민족적 자존심과 국가의 명예를 손상시켜 의회와 국민의 강력한 반대를 받아 점차로 국민의 신망을 잃었다. 그래서 메리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잔인한 보복행위를 감행하였다. 아울러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을 화형에 처하면서 개신교도들을 박해하였다. 결국 1558년에 메리는 사망하였고, 이로써 영국에서의 가톨릭 부활의 희망은 사라지고 오히려 프로테스탄트가 견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메리를 계승한 엘리자베드 1세(1558∼1603)는 볼랜의 딸이다. 그는 그의 어머니와 헨리 8세의 결혼을 단죄한 이유로 로마 교황청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지만 가톨릭 신앙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박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자베드의 치하에서 영국교회는 가톨릭 교회와 결별하고, 새로운 영국 성공회의 교계제도를 설정하였다.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박해는 교황 비오 5세가 1570년에 엘리자베드 여왕을 파문하였을 때에 심각하게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제 영국 성공회는 대륙의 어느 개신교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대륙의 개신교도가 박해로 피난하게 될 때에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Ⅱ. 한국교회 개혁
1. 한국교회 개혁의 방안
‘첫 것과 둘째 것의 차이는?’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1 - 18)
첫 것은 바로 모세의 율법이 내려온 때부터 드렸던 속죄 제사를 의미하며, 둘째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드리신 속죄 제사를 의미한다. 그 차이는 바로 완성도의 차이이다. 구약 시대 때 속죄 제사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드릴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죄 사함의 길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드리신 속죄 제사는 말 그대로 '영원한' 즉 다시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거나 드릴 필요가 없도록 완성시킨 죄 사함의 길인 것이다.
‘이 시대의 종교개혁!’
"원죄는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았지만, 날마다 짓는 죄는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죄를 짓지 않습니까?"
"죄가 좀 있어도 예수님을 믿으니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교인들이 위와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하나 하나 살펴보면, 복음과 거리가 멀고, 구원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신앙이 성경과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찬송을 부를 때는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하면서도 "오늘 지은 죄를 용서해주소서!"하며 다른 속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혹 어떤 사람은 '성경에 회개하라고 되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와 한국 교회의 '회개 기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점이 바로 한국 교회가 개혁되어야 할 가장 큰 부분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부인케 하는 사단의 작품들... ’
한국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름을 가진 구원자가 많이 있다. '문선명, 박태선, 정명석, 안상홍...' 등 한국 내에서만 해도 40명이 넘는다. 저마다 재림주며, 구원자로 숱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데, 거기에 미혹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분명히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고 강조하셨다. 그러나 사단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다른 구원자와 다른 구원의 방법 등을 만들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케하기 위한 사단의 교묘한 작품인 것이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치고 누가 그리스도를 부인한다고 말하겠는가? 하지만 사단은 교묘하게도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지도 모르게 부인시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다.
‘개혁! '다 이루신 하나님'을 믿는 것! ’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창 2:1)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다 이루신 이유는 어떤 누구도 한 가지라도 우리를 위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도 우리를 위해 뭘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위해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단은 아담과 하와에게 그 사실을 부인시키려고 했고, 결국 성공했다. 그들 마음에 그 자신도 자신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하나님과 동등되고자 하는 사단의 교만인 것이다.
"다 이루었다."(요 19:31)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의 죄를 씻는 일을 다 이루셨다. 죄 사함은 예수님의 공로로 끝난 것인데 사단은 또 그 사실을 부인시키고자 면죄부, 고해 성사, 회개 기도 ... 등을 만들었다. 그렇게 인간의 행위가 들어간 사단의 덫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당하고 있는가! 기독교 역사의 굽이마다 일어났던 타락은 '오직 그리스도만으로'에서 '인간의 행위도'를 포함시킴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개혁 또한 과거와 다름없이 인간의 의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다 이루신 하나님의 의'만을 의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2. 한국 교회 개혁의 실체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예수님은 2,000년 전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온 유대인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면서 그들 신앙의 개혁을 부르짖으셨다. 당시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리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그들이 배우고 행하고 있던 신앙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 7:21) 하시면서 형식적인 그들의 신앙이 개혁되지 않으면 믿음의 궁극적인 목표인 천국조차 갈 수 없다는 경고를 하신 것이다.
그런 예수님을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매우 못마땅히 여겼고, 결국 목이 곧은 그들은 부패된 자신들의 신앙을 고치는 대신 개혁자를 처단하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개혁을 받아들임으로 초대교회가 탄생되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음을 분명히 경고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이 세우는 교회는 거짓 교회인데, 예수님은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로 구분지으셨다. 즉, 나무의 비유를 통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지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구별할 수 있는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마 7:16,17)
그 기준의 핵심은 열매이다.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열리고, 배나무에서는 배가 열린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식물의 속성을 통해 정확히 가르쳐주신 것이다. 곧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형식적이고 인위적인 그들의 나쁜 열매를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들어 그들의 외식된 신앙을 지적하셨다.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마 6:2)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마 6:5)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마 6:16)
구제, 기도, 금식... 당시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신앙의 열매들을 예수님은 하나같이 나쁜 열매로 보셨다. 그 모든 열매의 공통점은 '하나님께 보이려고'가 아닌 '사람에게 보이려고'였다. 예수님은 단순히 열매를 잘 맺어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시다. 열매를 통해 그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나쁜 나무인 그들의 모습을 바꾸려고 하신 것이다.
‘ 나쁜 열매를 맺고 있는 한국 교회들 ’
그렇다면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은 좋은 나무인가 나쁜 나무인가? 역시 그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한국의 교회들은 대부분 나쁜 열매를 맺고 있다.
1) 교회 세습제
서울의 충현교회, 광림교회, 성민교회, 서울중앙침례교회, 구로중앙교회, 도림교회 등과 인천의 주안교회, 대구의 서문교회, 부천의 기둥교회 등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들이라 할 수 있는 대형교회들에서 '교회 세습'이 일반화되고 있다. 한국 교회의 내노라 하는 목회자들 중 상당수가 목회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 아버지 없는 신학생은 팔불출'이란 말이 신학교 안에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교회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참으로 기가 막힌 현실이다. 그것은 마치 김일성이 북한을 자기 소유로 여겨 김정일에게 물려주는 것과 같은 것으로 스스로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목회자의 소유가 되어 있는 거짓 교회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반드시 신앙의 지도자는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 6:14)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삼상 16:1)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7)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요 1:6)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모세, 기드온, 다윗, 에스겔, 요한, 바울 등 한결같이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세우셨다. 그러므로 세습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권한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결국 세습제를 허용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나쁜 나무요, 거짓 교회인 것이다.
2) 직업 목사 양성소, 신학교
"목회자 과잉배출 한국교회 위기초래"
"신학대 정원 조절·정년 단축 시급 … 범교단차원 대책 강조"
"고신 목회자 수급 문제 세미나, 교회 질 저하 등 문제점 지적"
오래 전부터 목회자 수급 불균형이 한국교회의 상당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 열린 '한국교회 수급조절 세미나'에서는“한국교회의 무분별한 목회자 양산으로 목회자의 질이 저하되고 목회자 수급의 균형도 깨어져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 총신대 교수는“예장 합동교단의 경우 지난 한해 교회를 담임하지 않는 목사의 수가 4,350명으로 전체 목사의 44.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교회의 전체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목회자 실업율이 일반 실업율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왜 하나님의 종이란 목회자가 이렇게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는가? 사실 교회의 영적 상태는 목회자의 영적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아무나 목회자가 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이 세운 종이어야 되는데, 한국 교회에서 목회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실력(?)에 치중하고 있다. 실례를 들어보면, 아래는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신입생들을 받기 위한 모집 요강에 나온 응시 자격이다.
① 고등학교 졸업자 및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②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한 자
③ 법령에 의하여 고등학교 졸업자와 동등 이상의 자격이 인정된 자
④ 위 항에 해당된 자로서 세례를 받고 당회장의 추천을 받은 자
일반 대학의 신입생 모집 요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네 번째 항목이 추가된 것인데, 그것도 세례와 추천 정도로 가볍게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과정이 너무나 세상적이며, 어느 정도의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심각한 것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영적 상태를 살피는 일은 조건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골 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딤전 1:1)
하나님이 쓰신 바울은 늘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졌음을 누차 강조하고 있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신학교의 학생 모집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입학 동기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보면 "일반 대학에 들어갈 점수가 모자라서" "목사인 아버지의 강요에 못이겨" "그냥 오고 싶어서" 등의 어처구니 없는 답변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 교회 교인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종"이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신학교의 교과 과정에 있다. 목회자 전담 양성과인 신학과의 학점 이수 과정을 보면, 100여개의 과목이 있는데 그 중 직접적으로 신앙과 관계된 것은 불과 10여개의 과목 뿐이었다. 헬라어, 히브리어, 신구약배경사, 교회사, 교의학개론, 설교학, 헌법, 설교실습, 계약신학, 교회행정, 선교신학, 비교종교학, 교리사, 구약사, 변증학... 대부분이 신앙에는 별 관계가 없는 내용들이다. 거기다가 영어 및 수학 등 일반 교양과목도 추가되니 실제 신학교에서 신앙을 배우거나 키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은 한 분야의 학자로 만들기에는 적합할지언정 교회를 믿음으로 이끌어야 되는 목회자로 만들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렇게 신앙과 거리가 먼 분위기 속에 있어서 그런지 신학생들 상당수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으며, 나이트클럽에도 종종 가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신학생들의 신앙 상태는 일반 교인들보다 더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죽했으면 그런 신학생들에 대해 "1학년 때는 목사, 2학년이 되면 장로, 3학년이 되면 집사, 4학년이 되면 평신도, 졸업하면 타락"이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나왔겠는가! 그렇기에 나름대로 소명을 가지고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실망하고 타락하는 순수파(?)들도 많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신학교의 하나님의 종이 되는 입문과 훈련 과정이 성경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로 인해 참된 하나님의 종보다는, 목사란 하나의 직업인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와 직업인으로서의 목회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실제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께 쓰임받았던 종들을 보라!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바울이 어떠한 과정을 통과했고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는가? 그들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장 중요했고, 말씀의 인도만을 받았다. 말씀이 없는 마음을 타락된 마음으로 여겼기에 하나님의 종들마다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을 세우는 일에 주력했다.
종교개혁을 한 마르틴 루터가 가장 중요시 여기고 행한 일은 평신도들도 성경을 쉽게 대할 수 있도록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일이다. 요한웨슬레는 성경 외에는 다른 교리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고, 디엘무디 역시 성경 하나만으로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이루었다. 특히 5만번 이상 기도응답 받은,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죠지뮬러는 성경을 100번 이상 통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종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필요한데, 현재 한국의 신학교는 오히려 말씀을 멀리하게 만든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
위대한 하나님의 종 바울은 매우 유식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그 모든 지혜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인 말씀만을 전했다. 그러나 오늘날 단상에 오르는 한국의 수많은 설교자들의 입에서는 심오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온갖 세상 지혜와 정보들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한국 교회의 수많은 교인들이 세상 일에는 밝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너무나 어둡다. 마치 "...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는 말씀처럼, 말씀에 갈한 교인들이 많은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이런 부분을 견딜 수 없어 한다. 하지만 직업인으로서의 목회자는 교인들의 개인적인 신앙 상태보다는 교회의 외적 성장에 치우친다. 그로 인해 직분 남용과 헌금 과다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직분 남용을 보면, 신앙과는 상관없이 직분을 주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나이롱집사'가 그 열매이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전 교인의 반 수 이상이 집사란 직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직분을 교인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왕상 13:33,34)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이 세우셔야 되는 제사장을 누구든지 자원하면 보통 백성으로 세운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악이었다. 거짓 제사장들로 인해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릇된 신앙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목회자 양성소인 신학교 역시 이와 다름 없이 목회자들을 무분별하게 양산하고 있다. 그로 인해 목회자 실업율 증가란 희한한 열매와 그 외에 수많은 나쁜 열매가 맺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가장 존귀한 직분이다. 그렇기에 아무나 줄 수도 취할 수도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히 5:4)
3)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쉬워진 부자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는 부분에 대해 질문함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청년은 처음에는 영생을 얻고 싶어 했지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나눠주라."는 말씀 앞에서 결국 등을 돌리고 돌아갔다. 예수님께서 그의 마음을 말씀으로 저울질했을 때 영생보다 재물을 더 귀히 여기는 마음이 드러났다. 청년이 돌아간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은 재물이 많은 부자면 무조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재물과 같은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 돈을 사랑하며"(딤후 3:1,2)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 16:13,14)
돈에 관한 위의 말씀들을 보면, 단순히 돈이 나쁘고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좋아하는 그 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즉, 우리 마음이 돈이나 재물을 좋아하고 밝히는 것은 하나님과 마음이 멀다는 증거이다. 그렇기에 참된 하나님의 종과 교회는 금전 문제에 대해서는 선이 분명하고 깨끗하다. 하지만 반대로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과 상관 없는 거짓 종들과 교회는 금전에 관해서 많은 문제가 있다. 오늘날 금전에 관한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많은 부분에 나쁜 열매가 맺혀져 있다.
첫째로 헌금의 종류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교회를 나가긴 나가야 되는데, 지금은 돈이 없어서 못 나가겠어요. 돈 좀 벌어놓고 나갈께요."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의 일반적인 교회들이 제시하고 있는 헌금의 종류를 보면, 십일조, 월정헌금, 주정헌금, 생일감사헌금, 예배헌금, 부활절헌금, 성서주일헌금, 맥추절헌금, 추수감사절헌금, 교회상납금, 전도헌금, 전도회헌금, 선교헌금, 부흥회헌금, 금요구역헌금, 심방헌금, 건축헌금, 신년헌금, 찬양대헌금, 그리고 각종 회비 등 30여 종류가 된다. 심지어는 '대학 합격 기원 헌금'도 있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놓았다고 하지만, 어떻게든 돈을 모으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서 혹자는 '교회 주식회사'란 말도 사용한다.
문제는 헌금 자체보다, '헌금을 많이 해야 복을 받는다'는 믿음과 전혀 상관 없는 심리가 교인들 속에 흐른다는 것이다. 특히, '감사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바쳐지는 부흥회 헌금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부 부흥사들은 공공연하게 "이번 집회에 복을 받으려면 집회 시간 때마다 감사의 제물을 지참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이런 식으로 헌금을 모집하다 보니 "헌금 액수 = 축복의 크기"라는 이상한 논리가 교회에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중세 카톨릭 때 성행했던 '면죄부 판매'와 다를 바 없다. 그때는 돈이 있어야 죄가 사해졌기에 가난한 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웠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 헌금을 많이 하는 부자는 교회 안에서 인정을 받지만, 반면에 가난한 사람은 신앙 생활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헌금에 대한 명단 공개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예배 때 헌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다. 물론 대형교회는 일일이 이름을 부를 수 없기에 주보에 누가 십일조나 헌금을 했는지를 명시하고 있다. 또 헌금을 거두는 방식도 공개적이다. 헌금 시간이 되면 소위 '잠자리채'라고 불리는 헌금채를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야 더 많은 헌금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런 방식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경고를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 6:4)
한국 교회 상당수의 교회가 하나님의 뜻보다는 물질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기에 헌금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부분에서 금전 문제가 연루되어 있다. 그래서 교단의 총회장이나 대표 선거 때는 수억원이 거래된다고 한다. 항간에는 "장로가 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떠돈다. 실제로 많은 교회에서 교회의 높은 직분은 신앙보다는 재력 있는 사람들이 주로 발탁되고 있다. 돈에 의해 교단과 교회 안에서의 지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재력으로 인해 세워진 직권자들이 중심에 서 있는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운영되겠는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자성하는 목소리는 아래와 같이 높지만 문제는 실질적인 변화가 따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각 교단 노회장과 총회장 선거시 막대한 금품이 오가고 향응이 베풀어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돈으로 교권을 사는 행태가 교회의 쇠퇴를 초래했음을 교회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자행되는 금권선거는 교회를 죽이는 일이고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각 교단은 금권선거를 중단할 것을 촉구 합니다. 금권을 내세워 총회장과 부총회장에 출마한 사람은 반드시 낙선시켜야 하고 이 일에 동조하거나 방조하는 사람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한 기독잡지 사설에서)
또한, 금전 문제는 목회자 인사 이동에도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전임 목회자가 후임 목회자를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들 세계 안에는 "교인 몇 명 이상은 얼마"라는 비공인 교회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임기가 마친 전임 목회자가 후임 목회자를 고를 때 권리금(?)을 톡톡히 낼 수 있는 돈 가진 목회자를 고른다고 한다. "어떤 목회자가 이 교회에 합당한가?"하는 것은 전혀 거론이 안된다. 돈이 있으면 자신이 가고 싶은 교회로 갈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이러니 목회자들이 돈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더 심각한 문제는 예산 운영의 불투명이다. 한 통계 조사에 의하면 연간 한국 교회가 헌금 수입을 통해 확보하는 액수는 약 3조 8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물질이다. 그런데 먼저도 이야기했듯이, 헌금 모집 때는 그렇게 공개적이면서도 헌금을 쓰는 부분에는 불투명하다. 목회자들이 교회의 예산 운영은 성역(聖域)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교인들은 물론이고 교회의 직분자에게도 비밀시 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담임 목회자만 지출 내역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횡령 및 부정 사용 등 끊임없는 잡음이 교회들마다 들려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금전에 관한 한국 교회의 열매 역시 나쁜 열매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 교인들의 상당수가 하나님도 믿지만 부유하게 살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으며 그러한 욕망을 문제로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좋아하는 목회자들은 그러한 욕망을 더욱 부추킨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우니라."(마 19:23)는 말씀들은 한국 교회 대부분의 교인들의 마음 안에는 머물지 못한다. 그렇기에 "물질축복"을 강조하는 서울의 한 교회에 가장 많은 교인들이 모여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재물에 관한 하나님의 경고는 2천년 동안 변함없이 선포되고 있음을 기억하라.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3. 한국교회의 신학적 문제점의 극복을 위한 과제
한국교회는 잘못된 극단적 이원론의 세계관을 버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강조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위에서 분리되어 내세에 가는 곳이 아니라 바로 이 땅위에서 종말론적으로 실현되어가는 과정임을 교회에서 주장해야 한다. 이 세상을 도피하거나 적당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문화의 변혁자로서 사는 크리스천의 삶을 말해야 한다. 제임스 사이어,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서울: IVP, 1986).
잘못된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이제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강조되며, 오직 주님의 권위, 말씀의 권위, 성령님의 권위가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나친 목회자의 카리스마와 맹목적 권위를 강조하기 보다는 목회자의 참된 기능과 평신도들의 은사에 맞는 교회의 참여가 요구된다. 이렇게 될 때 한국교회는 오늘날의 문제점들을 극복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지금과 같은 모습의 대형교회를 선호하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대형교회가 참다운 교회의 모습을 되찾고 올바른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감시와 철저한 비판이 필요하다. 이런 사역을 통하여 약화되어 가는 한국교회에 새로운 성령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과거 한국 교회는 개 교회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사랑과 기도 헌신과 봉사를 통하여 교회를 성장시켰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개 교회주의는 기독교의 연합성과 통일성을 간과하여 지나치게 세속적인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이런 잘못된 개 교회주의 사고를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모든 교회는 주님의 교회라는 사고의 실현화가 요구되고 있다. 이런 일을 통하여 한국 교회는 올바른 말씀의 적용과 성령이 하나로 매는 역사를 통하여 새롭고 건전하게 성숙해 질 것이다.
한국교회는 샤마니즘의 요소들을 스스로 버릴 때가 되었다. 과거 경제적 어려운 시대에 기복적 물질의 풍성함에 대한 강조는 사람들이 받아 들였다. 그러나 기복적인 강조는 기독교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한국교회는 성경적인 축복을 바르게 가르켜야 한다.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예배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올바른 신학을 가르켜야 한다. 또 현세 중심적 구원의 축복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참된 축복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어지는 것이지 현세에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완성된 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젠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올바른 목회자 윤리에 대한 의식이 먼저 새롭게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목회자는 신앙과 윤리가 조화를 이루어 타의 모범을 보이며, 지나치게 비 성경적인 권위주의를 탈피해야 하며, 주의 종으로서 청지기 의식을 가지며, 영성 뿐만 아니라 전인격의 수양도 필요하다. 복음 전파에 헌신한 바울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윤리가 무너져 가는 이 시대 속에서 목회자의 윤리의 회복을 위한 성령의 역사를 기대해 본다.
Ⅲ. 느낀점
참 많이 부담스럽고 힘든 레포트였다.
우선 책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고, 읽기란 더 더욱이나 힘들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찾기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의견을 제시하기 보다는 참고자료를 통하여 정리만 하였다.
다음에 내가 ‘한권의 책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라고 수업중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나의 책을 남길 때쯤.. 한국 교회의 개혁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기도 하다.
이번 레포트를 통하여서 한국교회의 개혁의 필요성과 문제점을 더욱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기독교인으로써 하나님을 먼저 안 사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써 개선되어야 할 것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교회의 여러 신학적 문제점은 다양한 한국적 상황에서 형성된 것 같다. 또 현대의 세속적 사상에 의해서 교회가 변질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중세의 로마 카톨릭교회의 전철을 많이 닮아 가는 현상은 한국 교회가 성경에서 점점 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한번 한국교회는 성경의 권위가 실시되며 신학과 목회가 성경으로 검증 받아 참된 교회를 위한 올바른 신학의 모습을 되찾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극복하는 것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