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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상 8장 1-3 사무엘의 아들들
1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1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
누구를 어떻게 삼았는지 그 절차를 제가 가늠 할 수가 없습니다.
사사로 세워 지는 것이 그 투표에 의한 것인지 하나님의 지명에 의한 것인지 어떻게든지 그저 어떤 사사가 세워 졌다.
그리고 그것도 이제 사무엘의 아들 둘 밖에 없는데 큰 아들이 요엘 그리고 둘째는 아비야.
요엘 이라는 말은 여호와는 엘로힘이다.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는 뜻이고 아비야 라고 하는 여호와는 아버지다.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브엘세바에서 사시가 됐다.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 브엘세바는 우리나라 같으면 제주도 아니면 해남같이 이스라엘 땅 최남단에 지방도시라고 할 수가 있겠죠.
근데 그 아들들이 그 아비 사무엘의 그런 자세를 따라 하지 않고 재판을 하되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결국은 재판을 굽게 하고 말았다.
짤막하게 아주 기록 했는데 기록은 이게 3절밖에 되지 않지만 이 사건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까지도 권자에서 물러나고 그 왕으로서의 통치권을 하나님이 사양을 하고 사람 사울 왕에게 왕권이 넘어가게 되는 그런 대 사건이 됐습니다.
그 뭐 요엘과 아비야가 뇌물을 받았으면 뭐 지방에서 얼마나 받았겠어요?
근데 그 받은 것이 화근이 되어 가지고 온 국민들이 그 사사들의 재판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
이래서 이제 국민들은 우리도 그저 세상나라처럼 열방처럼 우리도 왕을 세워야 되겠다.
이런 불평이 일어나게 되고 그런 불평이 일어나게 되면 하나님은 염치가 많은 분이셔서 나는 그래도 계속 도 왕 노릇 하겠다 그렇게 못해요.
그저 인간들이 싫어한다는 눈치가 보이면 그만 기 길로 하나님이 손을 떼는 분이거든요.
자 여러분 우리 사회에 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 입법부에 대한 불신 행정부에 대한 불신이요 팽배해 있습니다.
터질 거 같아요.
여러분은 그걸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볼 때는 나라가 이리 되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을 정도로 전부 다 가진 자들에 대해서 불신풍조가 터질 거같이 그렇게 팽배해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 무쳐져 넘어가는 것 같았는데 저도 그저 기억이 가물가물 해졌는데 최근에 영화가 하나 나온 거예요.
무슨 영환지 아세요?
어떻게 잘 알지 또 이렇게?
나만 모르는 모양이네 보니까.
부러진 화살 하는 얘기가 뭐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고 또 잊어버린 분은 잊어 버릴텐데 그 성균관대 교수 한 분이 입학시험 문제가, 문제가 잘못됐다.
답이 잘못 된 게 아니라.
하고 지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이어서 임용 심사에서 제 임용이 안 되고 탈락을 시켜버렸어요.
그 문제 잘못 된 것은 잘못 된 걸로 지적을 하는 게 맞죠.
그런데 그 나이가 어린 애도 아니고 50이나 된 교수를 학교가 낸 문제가 잘못 됐다.
하는 거 지적 했다 해가지고 그 다음 제 임용에서 탈락이 됐단 말이죠?
근데 그걸 억울하다고 재판에 붙였는데 재판에서 또 그 약한 교수 해직된 교수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힘 있는 학교 편을 들어줘 버렸다.
항소심에 까지 갔는데 항소심에서도 항소심에서는 이제 주심하나하고 부심하나하고 부장판사 하고 셋이 판결 했는데 역시 교사로서의 자질이 안됐다.
하는 걸로 해서 이제 교사 자질 교수 자질을 부정이다 해가지고 학교 측 손을 들어주고 이 사람은 이제 완전 항고하는 거는 해 봐도 헛일이거든요?
일심이심에서 진 사람은 30년에서 항고 재판에서는 다시 재판 하는 게 아니고 그 절차가 잘못 됐는가 살펴 가지고 다시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끝난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이 교수로서는 억을 하다는 거죠.
근데 이제 그 재판관 이야기는 그 교수 자질 알아보려고 그 재판 석상에서 심문을 계속 했는데 그 심문에 판사가 교수의 자질을 심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다고 본 거예요. 교수는.
당신이 판사면 판사지 법리가 맞냐?
그걸 가지고 따져야지 어떤 사람의 당신이 여기에서 만인 앞에서 심문을 해가지고 알아보겠다니.
그거 말이 돼냐?
하고 말을 또 안 해 버렸네.
그랬더니 밉다고 또 했는지 가뜩이나 미움 받아 가지고 제 임용에서 탈락 됐는데 판사가 물으면 또 곱게 대답 할 일이지 이 교수는 나이가 50이고 판사는 38살이야.
그 새파란 교수 판사가 교수를 보고 자질을 시험 하겠다고 나오니까 내가 가정교사냐?
나는 어린애들 가정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전문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서 심문에 응하지 않았더니 괴심 죄가 더 플러스 해가지고 완전히 그저 항소심에서도 탈락이 돼버렸다는 말이죠.
그래 이 사람이 너무 억울하니까 석궁을 가져와 가지고 부장 판사를 사실은 부장 판사는 최후 책임은 있지만 부장 판사는 심리 하는 게 아니고 주심은 38살짜리 그 이정렬 판사라는
사람이 전부 조사 했는데 조사 할 것도 없는데 심문에 대답 안 하니까.
그래서 이제 괴심 죄로 또 판결문에도 학교에서 괴심 하다고 해가지고 그 제 임용에서 탈락 시킨 거 같다하는 판결문도 나와 있으니까 이게 지금 온 사회 문제가 돼가지고 이 영화가 돼 나왔어요.
그러니까 억울하니까 누가 그 억울한 일을 털어 놨더니 소설가가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을 읽어본 감독이 정진이가 누구야. 감독이.
이 양반이 이제 보고 눈을 떼지 못하고 밤을 세서 단숨에 다 읽어보고 그걸 영화로 만들었는데 영화가 또 대박이 터졌네.
그래가 온 사회가 지금 그걸 못 봐서 지리산에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어떻든 그 영화 보려고 난리가 났단 말 이예요. 이게.
자 여러분 이 민주주의 사회라는 거는 왕정 시대하고는 달라서 다수결이 원칙으로 돼있어요.
어쩔 수 없이.
그러면 항상 다수가 옳으냐?
근데 다수가 항상 옳아요 안 옳아요.
다수가 옳을 수도 있죠?
근데 그 다수가 옳은지 소수가 옳은 지는요 거의 50%, 50%지 그 다수가 항상 옳다는 아무 보장이 없는데 그래도 다수 쪽으로 가야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 이예요.
절대 다수가 절대 다 옳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이 원하는 쪽으로 가야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인데 민주주의라는 것은 절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거 잊지 말아야 되요.
그래서 절대로 다수로 밀어 붙이는 그런 행위는 야만족이나 하는 민주주의지 정말 살아있는 민주 정신 이라는 것은 다수와 함께 소수도 함께 살피는데 그럼 다수는 다수결이란 민주주의가 지켜주지만 소수의 억울함은 누가 지켜 줄 거냐?
다수의 이익을 따라 살면 소수의 억을 한 거 누가 지켜 주냐 할 때 그것을 소수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서 사법부가 있는 거거든요?
소수와 약자의 그 억을 한 걸 보충 해주거나 해소 하려고 사법부가 있는데 사법부에서 엉터리 재판 해버리면 그러면 이제 약한 소수라는 사람들 영원히 억울한 마음을 품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민주주의의 약점 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기 때문에 판사 쯤 되면 첫째 도덕적으로 분별력 이런 것이 아주 완벽하다.
완적은 못하지만 최 고려에 달한 사람을 지성인을 판사로 세워야 되고 사심이 없어야 되고 절대 감정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되고 이익을 따라서 뇌물 받고 재판 하지 않는 사람을 이제 세워야 하는데 그게 사회 기본 통념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이제 법조인들 세계라든지 아니면 그 사법부의 행포에 의해가지고 억울한 일당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요 나는 참 정당한 재판을 받아봐서 나는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이 법치주의가 제대로 실행되는 나라에 태어난 것을 감격하고 감사한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100명에 한 둘 도 잘 없고 모든 재판은 다 항상 진자는 억울하다는 거야.
그래서 진자가 진 자도 재판관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는 가능한가?
이런 것이 이제 사법세계의 제일 큰 아픔이고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숙제죠.
그래서 이거는 뭐 사법부의 모독이다.
해가지고 사법부에서 지금 이를 갈고 있고 또 일반 그 동안에 억울하게 늘 재판 가서 한이 맺혔던 사람들은 그 이명오 교사야 말로 로빈훗이다.
홍길동이다 막 이렇게 하면서 그 영화에 대한 관심이 대게 고조되고 있는 거예요.
저는 어느 편이 옳다고 제가 판단 할만한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걸 판단하면 여기 안 있죠. 제가.
대 법원장 지도하고 앉았죠.
쉽지 않다는 거예요.
절대 어느 한 편 말이 일방적으로 옳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법부가 혹시 그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재판했다 손치자.
그러면 억울하다고 해가지고 부장판사는 실제 심리 한 사람도 아니고 젊은 이정열 판사가 다 심리하고 부장 판사는 그저 대충 봐서 뭐 이렇게 싸인을 하는 정도 이렇게 했는데 그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가지고 와 찾아와 가지고 또 부장판사는 석궁을 맞았다고 주장하고 그 당사자는 쏘지 않았다는 거예요. 또.
그래서 그 화살이 맞아 가지고 부러지도록 A쎄게 맞았는데 나중에는 정금으로 되는 부러지지 않은 화살을 네 놨다는 거죠.
그래 가지고 이게 사회 이슈가 돼가지고 밝그렇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오늘날 국회의원이 제 18대 국회가 역대 가장 최악의 국회고 일도 안하는 국회라는 것도 소문 다 났죠.
또 행정부는 한 것 마다 다 터진다는 거라.
에너지 개발한다고 뭐 동력자원부 산업 자원부 다 없애버리고 청와대가 직접 자원 외교 한다고 돌아다니는데 전부 다 펑크 나고 엄청난 동은 갔다 들여 가지고 유전 개발한다 해서 파니까 물만 계속 나오고 기름 한 방울도 안 나오고 이런 것이 계속 터져 나오니까 지금 입법 사법 행정부가 막 불신이 막 터질 거 같아요.
검사는 검찰대로 죄 없는 사람을 둘이나 잡아 놔가지고 생 시달려 가지고 그 한명숙인가 하는 사람은 무죄로 두 번씩이나 나오니까 도대체가 검찰은 뭐하는 것들이냐?
검찰은 사람 잡는 게 검찰이냐?
판사들은 뭐하는 거냐?
이래가지고 온 나라가 이렇게 불편한 심기가 대단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 억울하다면 예수님처럼 억울한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 소크라테스는 또 법이 잘못 된 거 뻔 하죠.
형편없는 법을 갖다 하는데 그래도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 하고 또 사형 선고를 받았네. 또.
우리 이조 역사는 어떻습니까?
이조 역사는 역사 내내 충신들에게 사역 사업을 파도 넘기는 게 이조 역사 아닙니까.
그러니까 인류 역사는 그야말로 그 양심 있는 사람들의 억울한 일이 한 맺힌 일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거예요.
이게 개인이 억울하게 된 것을 누가 신원 하느냐 하면 그 사법부가 해줘야 하는데 사법부가 그렇게 잘못 될 때는 그 사회는 기대할 수 없는 그런 거거든요.
여기 지금 사람이 억울해 가지고 재판에 가면 사필귀정이 도리 줄 알았는데 이 재판장이 뇌
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해버리니까 뭐 억울한 사람은 영원히 억울한 거죠.
그러니까 아마 이판사판은 뒤집어엎어라.
이런 일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듣는 마음을 주옵소서.
이렇게 했는데 그 듣는 마음 레브샤마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피고 원고 말을 다 들어보고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옳은 건지 어느 것이 악이고 어느 것이 선인지 그 선악을 탁 들으면서 분별해서 억울한 재판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이렇게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말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렇게 돼있어요.
여러분 우리도요 나름대로 크던 작던 간에 우리 마음에도 다 재판장이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마다 다 안에 재판장이 들어 앉아 있다니까.
근데 이 재판장들이 대게 함량 미달 재판 장이야.
공평하게 재판하지 않고 항상 이익을 따라서 자기에게 유익한 쪽으로 자기 속에서 판단하는 거예요.
근데 안에 저울을 또 두 개 갖고 있어.
이중 저울을.
자기 거 달아내는 저울 따로 있고 남의 거 다는 저울 따로 있어 가지고 우리 마음에 공정한 재판이 잘 안 이뤄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성경이 재판하는 거가지고 여러 군데 여러 차례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뭐 약자가 항상 옳으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강자는 항상 나쁘고 약자는 항상 옳으냐.
그것도 아닌 거야.
그래서 참 그 십분 공정해야 되는데 성경에 보면 재판하는 곳에도 악이 있고 라는 말이 있습니다.
뭐 어쩔 수가 없겠죠.
그래서 결론은 뭐냐?
결론은 이 땅에서는 온전한 재판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다 타락을 했기 때문에.
판사도 타락한 사람을 원 자제 가지고 만들어 졌기 때문에 판사의 재판이라고 해서 공정하다.
그렇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사법부 전체를 불신하고 그런 사람 아닙니다.
제가 아는 대로 참 좋은 판사도 있었고.
저는 재판을 두 번 받아 봤는데 한번은 이제 죄송합니다.
예수 안 믿을 때 술 먹고 까불다가 무학산 밑에서 체포 돼가지고 즉결 재판에 넘어가가지고 그 구치소에서 하루 밤 잤어요. 그래도요.
그때 이제 말만 한번 삐끗 했으면 이제 5.16 고속 민족도로 제주도에 거기 갈 뻔했는데 그 판사가 참 나를 좋게 봐가지고 제가 좀 좋게 생겼잖아요. ㅎㅎㅎ
그래서 간신히 안 갔죠.
그 뒤에 이제 경기도에 우리 농촌 개발위원들을 실고 머루농장 머루를 지리산 하면 머루다래 그러니까 지리산 머루가 이게 브랜드 가치가 있다.
그래서 머루재배 농장에 견학을 가면서 내가 익숙하지 않으면서 내가 운전을 해가지고 봉고 버스를 마을 사람들 개발위원들 몇 사람들 태워 갔는데 술 먹은 오토바이가 와서 우리 차를 받아 버렸는데 나도 좀 더 민첩했다면 어떻게 잘 피할 수 있었는데 나도 시원챦은데 그 사람 술까지 먹었어요.
근데 타향에 가서 교통사고 내니까 그거 굉장히 억울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모든 초등조서를 자기 동네 사람이 유리하게.
타향 사람이 억울하게.
그래서 구속되게 생겼죠.
그래 제가 구속적부심 신청을 해가지고 구속은 되지 않고 도주우려도 없고 여기 증거 이미 다 확보 했으니까 증거 인멸 할 것도 없다 해서 구속은 안 됐는데 그 뒤에 제가 재판을 받아 봤는데 벌금이 70만원 나왔다는.
70만원 인가.
그래서 제가 다시 변호사를 안사고 제가 저 자신을 스스로 변호했죠.
A4용지에다가 사진을 찍어 붙여 가지고 이것이 과연 내가 잘못이냐?
잘못이라면 그 이상도 내가 벌금을 과태료를 내야 되지만 잘못이 없으면 한 푼도 낼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낼만한 형편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하고 썼는데 다시 그 서류가 접수가 돼가지고 그 검사에게 직접 썼거든요.
담당 검사에게.
그래 썼는데 그걸 받아 가지고 그 아무것도 아닌 거 돈 몇십만원 가지고 재판 다시 하는 거 귀찮을 건데 근데 그걸 읽어보고 납득이 갔든지 재심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리산에서 저 의정부까지 가가지고 재판을 받았는데 벌금 안 내는 걸로 재판이 됐고 그 다음에 단 면허정지 35일은 할 수 없다.
그거는 상대방이 잘잘못을 떠나서 상대방이 진단이 몇 주 이상 나왔기 때문에 이거는 어쩔 수 없다고 해가조고 그것까지 안 하겠다 그건 못해가지고 제가 면허정지 35일은 하고 제가 창원에 가서 교육 한 한나절 받고 넘어 온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뭐 그래도 두 번 재판을 받아 봤는데 그래 그 억울하지 않다.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는 판사가 있었다는 그런 판사가 있는 게 감사하다.
저는 그때는 그렇게 넘어 갔어요.
그러나 수많은 재판 이야기를 들어보면 억울한 사람이 많은 거예요.
특히 큰 사건일수록 억울한 사람이 많아.
그런 경우에 뭐 유전무죄 이런 말이 막 나오는 거죠.
그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재판을 안 받도록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차라리 속고 말고 그냥 이용당하고 말아야지 그걸 가지고 재판 하다가는 원고도 망하고 피고도 망하고 결국은 판검사 변호사 배불려 주고 양쪽 다 거지가 되고 마는 수가 많다는 거예요.
저는 그런 사람을 봤어요.
제가 섬기는 교회의 그 어른은 믿는 분이 아니고 아들만 믿어서 지금 목사가 됐는데 지금 마산에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 목사의 아버지가 20년을 재판했어요.
20년 동안.
산하나 가지고.
근데 20년을 재판할 때 쓴 비용이 산 다 팔아도 감당이 안 돼.
이겼어 마지막에 이겼는데 상처뿐인 영광 이라는 거야.
만신창이 인생이 만신창이 돼버렸어.
그래서 법 좋아 하는 사람은요 반드시 법으로 망합니다.
그런 억울한 것이 있더라는 겁니다.
제가 볼 때도.
하여간 여기 사람이 공의냐 이익이냐.
하는 그 앞에서 아니면 이익이냐 하나님이냐.
일시적인 시험을 잘못 쳐가지고 평생 시험에 헤어나지 못하는 그런 비극들이 많이 있어 왔습니다.
여러분 아시죠.
매 주일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사,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사.
본디오 빌라도가 재판 한번 잘못해가지고 세상 끝날 까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사.
예수님은 좀 다르죠.
왜냐?
예수님은 그렇게 해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우리 죄를 짊어지는 어떤 그런 것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어쩌면
억울한 거는 사실이지만 말 이예요.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런 것도 없는 세상 죄를 짊어진 것도 아니잖아요.
아무 죄도 짊어 진 것도 없이 그냥 죽은 거야.
그냥 악법도 법이다 그러고 죽은 거야.
그 소크라테스만 그러느냐?
우리나라 중동시대 조광조 같은 사람 무슨 죄가 있나요?
바른 말한 죄밖에 없죠.
근데 그건 죽어야 됐다고. 그 당시에.
또 죽게 해 놓고는 중종은 죽을 때까지 후회를 해요.
진정한 충신은 조광조 하나 밖에 없었다는 거야.
공신은 많은데 충신은 없었다.
그런 유명한 중종이 남긴 말 이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억울한 게 다 신원 되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래서 어쩌면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있는 거죠.
그래서 영 억울하면 그 때 가서 이제 보상 될 걸로 보고 땅에서는 그냥 참는 거예요. 참아.
다 마음에 안 들고 속이 상하고 하지만 그 석궁 가지고 나타나면 곤란 하다는 거야.
그래서 대부분은 이제 그렇다 할지라도 석궁은 옳지 않다.
이런 법조계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고 약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은 오죽 억울하면 그렇게 했겠냐?
또 그렇게 하니까 해결이 안 나는 거죠.
여기 요엘과 아비야가 브엘세바에서 판사가 돼가지고 재판을 뭐 얼마나 큰 사건을 잘못 처리했는지는 모르지만 지방에서 뭐 커봐야 뭐겠습니까.
뭐 큰 거 아닐 텐데 어떻든 그 작은 사건이 하나님을 건드려서 물러나게 만드는 그래서 신정통치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그런 하나의 모티베이션이 됐다는 거죠.
자 8장 4절에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그러니까 세상 나라와 똑같이 하겠다. 이제.
점점 타락해 가는 거죠?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뭐 두 가지죠.
첫째는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상하실까?
하는 거 때문에 기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또 이 동기가 자기 아들 때문에 그렇게 되기 때문에 이중으로 삼중으로 속이 상하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나를 싫어 하는 거야.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저 그 왕위를 양위할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왕 되심을 포기할 그런 뜻을 내 비친 겁니다.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
왕을 섬기는 게 더 얼마나 부담 되는지 그것도 미리 다 알게 하고 세워 주라는 거예요.
10 사무엘이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11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그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다른 나라가 뭐 왕을 세우니까 따라하면 될 지 싶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그 왕을 세워 놓으면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자기 병거를 끌게 하고 말을 어거하게 할 텐데.
그들이 그 병거 앞에 달리게 할 텐데?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 부장을 삼을 것이고 경호대를 삼을 것이고 자기 밭을 갈게 핳 것이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고 자기 병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고 무기를 만들게 하고 또 너희 딸들 갖다 빼앗아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빵 굽는 자를 만들고 막 할 텐데 그거 알기나 하고 왕을 요구 하냐?
그 왕이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또 줄 것인데?
그 왕 섬기는 거 그거 쉽지 않을 텐데.
하는 걸 미리 달 알게 합니다.
15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럼 이제 하나님께 십일조 내고 국가에 왕에 왕실에 또 십일조 내고 십의 이조를 뺏길 텐데.
이런 이야기거든요?
16 그가 또 너희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 양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아이고 괜히 왕을 세웠다 하고 부르짖어 그때 이제 물릴 수도 없어.
돌이 킬 수도 없고.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하시리라
알기나 알고 왕을 세우든지 말든지 해라.
이렇게 이제 사무엘이 단단히 일러 이야기 합니다.
왕 세우는 거 그거 간단한 거 아니다.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21 사무엘이 백성의 모든 말을 듣고 여호와께 고하매
2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나도 몇 일 생각 해봐야 되겠다.
다 돌려보내 버렸습니다.
그때 9장입니다.
9장
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2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소년이라 해서 뭐 초등학교 5학년 그런 게 아니고 한 30세 뭐 40세 쯤 되도 소년 이렇게 말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
그러니까 뭐 고대 사람들이 그쪽 사람이 키가 작지 않거든요.
근데 거기다가 또 어깨 위나 더하면요 딴 사람보다 20센치 이상 25센치쯤 더 큰 거야.
훤칠하게 누가 봐도 아주 탁 눈에 뛸만한 그런 인물 이였습니다.
3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여러분은 그 양이나소나 뭐 나귀나 잃어버리고 찾지 않아 봤죠.
저는 그것도 참 신물 나게 찾으러 다녔어.
그 우리 동네 소중에 우리 집 소가 제일 정력이 좋아요.
에너지가 막 넘쳐 가지고 암손데 그래 암손데.
암손데도 다른 소를 이끌고 산등을 넘어 버려요.
우리는 어느 한 골짜기에 넣어 놨는데 그 습관이 그런 게 있습니다.
꼭 그 아주 프론티어 정신이 있어 가지고 다른 소를 이끌고 앞장을 서가지고 산을 등을 넘어가 버리는 거예요.
근데 어떤 소는 안 따라가고 그 골짜기 안에 머무는데 어떤 소는 요 몇 마리가 따라가 버리는 거여.
꼭 보면 우리 소가 앞장을 서가지고 그래 하는 거야.
내가 욕 되게 먹고 그 소 잊어버리고 옵니다.
집에 오면 소 잊어버리고 왔다고 또 집에서 혼나고 또 찾으러 올라가요.
울면서 소 찾으러 다니고 몇 번 소 찾으러 다녔어.
어떤 때는 밤새도록 못 찾고 있었는데 이틀 사흘 만에 찾으면요 그 소들이 몇 마리가 대게 무덤 있는 근방에 있어요.
상이 이래 등만 타고 가서 무덤 있는데 가서 이제 송아지들을 가운데 탁 몰아 넣고 그리고 암소들이 삥 둘러 머리를 바깥쪽으로 해서 쭉 둘러 가지고 자기 가운데다가 송아지를 지키고 그렇게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때도 소들이 산에서 밤이 왔을 때 무섭다 하는 생각을 갖는 거 같아요.
그래서 새끼들을 보호 하려고 가운데다 모아놓고 자기들은 바깥으로 삥 둘러서 방사형으로 이래 감시 하는 거처럼 그렇게 있습니다.
그럼 뭐 반갑기도 하고 성도 나기도 막 울고 그렇죠. 이제.
얼마나 반가운지 뭐 눈물이 터져 나올듯한데 또 화도 막 나고 그래요.
그런 경험을 하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사울이 지금 당나귀 찾으러 다닌 거 조금 내가 이해를 하죠.
그래 찾으면요 그렇게 밤가울 수가 없어요.
여러분 예수님도 길 잃은 양 한 마리 이야기하잖아요.
찾으니까 막 나와 함께 잔치하자. 그런.
찾아보면 정말 그런 생각이 납니다.
근데 너무 멀리 찾아도 없었다는 거야.
5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하는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6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아주 신령한 분이라는 데요.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아이고 별걸 가지고 또 예언자에게 물으러 간다는 거야.
7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 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 일이 있으니
요즘 같으면 한 돈 십만원 있는 모양입니다.
그 정도 있었데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치게 하겠나이다
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10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11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12 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섰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에 들어오셨나이다
13 당신들이 성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래서 그가 제물을 축사 한 후에 사람들이 먹기 때문에 R 분이 오기 전에 아무도 식사 안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시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제 성을 올라가서 이제 막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 가려고 마주 나올 때 만난 겁니다.
15 사울의 오기 전 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가라사대
1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하시니라
하고 일러 주셨습니다.
18 사울이 성문 가운데 사무엘에게 나아가 가로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컨대 내게 가르치소서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선견자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날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20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
때문에 나 찾는 거 같은데 다 알고 앉았습니다.
뭐 때문에 왔는지 알고 있으니까 뭐 당나귀가 어디 있는 거 훤히 알겠죠?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사울이 이제 너무 놀라 당혹스런 말을 듣고,
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여러분 아시죠.
베냐민 지파가 꼴찌 지파가 됐다는 거.
사사기 끄트머리에 거의 다 죽어 버리고 베냐민 지파가 몇 사람 남도 않았죠.
그렇게 완전히 이즈러진 지파 그 약한 지파에게서 그 한 사람을 또 이렇게 세워서 왕을 세우게 하시는 약한 자에게.
그러면 최소한도 겸손이라도 할 거 아니냐.
여러분 힘 있는 사람에게 뭘 맞기면요 밀고 나가는데 뭐 있을 지몰라도 다치는 사람이 많아.
그래서 지도자는 좀 시원찮아야 되요.
좀 약해야 되.
근데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요 노예근성이 강한 사람 보면 지도자가 나약하면 그거 또 못 봐 줍니다.
너무 막 카리스마를 가지고 막 이리 하는 게 좋은 게 아니라 그래 약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 약한 사람은 덜 다치는 거죠.
그래서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은 모양세야 키가 그리 크지만 너무 약한 지파라.
그리고 또 그 중에서도 이름도 없는 그런 지파 가문의 벌써 사울이 자기 분수를 아는 거죠.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22 사무엘이 사울과 그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수석에 앉게 하였는데
그 새파란 젊은이를 수석에 턱 앉힌 겁니다.
객은 삼십명 가량이었더라
23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그 요리하는 사람이 제일 이제 상석에 앉는 사람이 제일 살찐 부분을 먹는 거죠 이제.
이를 테면 넓적다리.
통닭 닭다리 같은 거 뜯기 좋은 거 이런 거 준비 해 놓고 가져오라.
24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어서 이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여러분 한 상에서 먹었다 하는 건요 그 동격이란 뜻이야 동격.
그래서 일개 그 베냐민 지파의 이름 없는 청년이 그 당시 당대 최고의 경지에 있었던 사무엘과 한 상을 놓고 먹었는데 그것도 상석에 앉아서 먹게 된 겁니다.
25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26 그들이 일찌기 일어날새 동틀 때 즈음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가로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27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으로 우리를 앞서게 하라 사환이 앞서매 또 가로되 너는 이제 잠간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리리라
그래 여러 사람 앞에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조용히 이렇게 하는데 그 뭐 내용이 뭐 은밀하고 뭐 굉장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 사울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쭉 읽어 보면 아시겠습니다만 이렇게 처음에는 사울이 참 사양하고 자기 분수를 헤아리고 겸손하고 이렇게 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그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 권력의 세계 문도 안 들어가 잘 모르겠는데 그 좀 이상한 가 봐요.
제가 아는 대로 제법 괜찮은 사람들인데 정치권에 들어 가면은요 몇 년 안 돼서 완전히 사람이 변해 버려요.
우리가 오늘날 뭐 이렇게 언론에 막 이렇게 지목되는 그런 이상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한 때는 다 정의감이 투철했고 굉장했던 사람들이거든요?
근데 그 판에 가서 뒹굴다 보면 거의 같은 사람 되거나 더 나쁜 사람 되거나 그래 버려요.
그 참 다 알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정치라는 거는요 순수하기 어렵습니다.
목회도 대게 순수하지 않은데 정치라는 게 뭐 순수하기 어려워요.
저는 그래 정치는 좀 순수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사법부만큼은 최고의 법이니까 약한 자가 다수결로 밀어부치는 세상에서 약한 자가 보호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최후의 보루가 사법분데 그 사법부만큼 이라도 어떻든 간에 약한 자의 억울함을 좀 들어주는 충분히 들어주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 있는 거죠.
여러분 이 성경에도 대체로 그렇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약한 자라고 해서 까닭 없이 두둔하지 마라.
그런 말도 듣습니다. 성경에.
그러나 이 성경 전체 흐름은 그래도 어떻든 간에 약자의 억울한 게 없도록.
약자는 억울한 일이 많으니까.
우리교회도 약한 자가 억울하지 않게.
기본을 그렇게 해야 되요.
여러분 이런 말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게 누구냐?
노무현 대통령 때 대통령이 자기가 자꾸 약하다고 그랬어요.
근데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지금은 사람들이 그 말을 많이 이해합니다.
갑자기 준비도 안 된 사람이 대통령 나서고 언론이 하나도 협력 안하고 되씹고 곱씹으니까 대통령이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여러분 집에 가서 오늘 저녁에 가서 두 가지를 볼 건데 뭘 보시느냐?
아까 이야기 했죠?
신천지 일곱 뿔.
반드시 봐.
그 뿔이 어떻게 나 있는 가 그거 한번 보시고.
그 다음에 뉴스타파라는 뉴스가 나왔어요.
뉴스타파.
그 혹시 뉴스타파 보신 분 손 들어 봐요.
우리교회 성도 수준이 사회의식이 이것 밖에 안 됩니까?
하나밖에 안 봤단 말 이예요 이게?
아직 못 보신 분 티브이를 팔아서 반드시 보도록.
그 방송을 장악하려는 악한 권력자 들이 방송계에서 올곧은 소리 하는 사람을 다 잘랐거든요.
전부 다.
정연주부터 해가지고 그 와이티엔 까지.
바른 말 하는 어떤 기자 PD 싹 다 잘랐는데 내가 볼 때는 잘린 사람들이 더 똑똑한 사람들이야.
더 바른 사람들이고.
저널리즘이 있는 사람들이 잘린 거예요. 오히려.
근데 어째 그걸 어리석은 정치인들이 그걸 자르면 죽나. 그게.
차라리 사형을 하면 몰라도.
여러분 그런 거 잘라 버리면 한이 맺히가 더 떠들 거 아니요.
그 정도도 내다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제 정치를 하는 거야.
그래서 잘린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제가 볼 때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야 전부 다.
그래 이 사람들이 오늘 날 KBS, MBC 뉴스가 얼마나 백성을 조롱 하는 것이냐?
하는 걸 갖다가 만들어 가지고 일주일에 뉴스 한 개 내 보내는 방송국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일주일 내 해가지고 준비해 가지고 컴퓨터 몇 개 놓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데 일주일에 뉴스 한 개정도 만든 거 같아요.
근데 아주 심층 보도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뉴스 한번 나왔는데 하루만엔가 이틀 만엔가 30만인가 클릭 하는 거예요.
뉴스타파 라는 파일을.
그걸 보시게 되면 우리는 오늘 날 KBS, MBC, 뭐 SBS YTN 할 거 없이 전부 다 뉴스가 다 거짓말 들이고 실제 빠진 거 그 빠진 게 진실인데 빠진 걸 갖다 이 사람들이 그 쫒겨난 PD들이 전부 모아 가지고 현장 취재해 가지고 그대로 다 보여 줍니다.
놀래 자빠질 일이라.
어제 이제 두 번째 뉴스가 나왔어요.
한 주일에 한 개쯤 나왔는데 지금 봐서는.
그러니까 프로 레슬러 한 사람이 당신들 방송 그 뉴스타파라는 방송국에다가 후원금을 보낼 테니까 제발 개좌를 공개하라. 하니까
공개를 안한 다니까 난입을 하겠다.
후원금 내기 위해서.
세상에 3년 묵은 5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거 같다.
그래서 우리가 후원금 내고 싶어서 창문을 깨고 난입 하겠다.
해가지고 프로 레슬러가 가서 PD의 목을 조르고 개좌를 델거냐 안 델거냐?
이런 참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는 이제 근데 그런 뉴스 하는 사람이 세 팀이 나왔어요.
뉴스타파 말고도 또 두 팀이 더 있습니다.
그 만큼 힘있는 사람들 언론이든지 법조든지 정치나 입법이나 할 거 없이 힘있는 사람들 전부 이익을 위해서 재판 하는 거야. 전부 다.
사회 정의와 공평한 사회와 투명한 사회를 위해서 재판 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사람들 마음속에 기울어진 재판 석이 있다는 거야. 전부 다.
여기 요엘과 아비야만 그런 게 아니라 전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재판하는 그런 법정을 소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우리 사회가 공평하게 되겠어요.
계속 불평이 앙앙하고 마음에 평강이 없는 거죠.
그래서 뉴스타파하고 신천지 일곱 뿔하고 숙젭니다.
그걸 보고 다음 주일까지 리포터를 내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요 우리사회 대해서 의식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돼.
성도들마저 잠들어 버리면요 누가 이 사회를 지키겠습니까.
이탄까지 나왔는데 한 번쯤은 꼭 봐둘만 합니다.
그들이 다 옳다는 건 아닙니다.
나는 생각할 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그 밑에 그 풋노트를 달기를 제발 당신도 변질 되지 말고 초심을 지키시오.
그런 따끔한 소리를 써 놨어요.
그 무슨 말이냐?
이런 사람들이 막 또 숨겨진 걸 까발리면요 또 힘있는 사람들이 돈 가져와서 제발 까발리지 말아 달라고 또 뒤로 주머니에 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그럼 또 변질 하는 거야 또.
그래서 국민들이 듣는 사람들이 깨어 있어서 잘 지켜봐야 되요.
언론인들의 횡포가.
제가 그랬죠.
3대 사기꾼 있는데 여러분 좀도둑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고 뭐 훌치기 날치기 소매치기 이런 거는 큰 도둑이 아닙니다.
그거는 조그만 한 것들이고 제일 큰 사기꾼은 정치 사기꾼.
그 다음에 언론 사기꾼.
그거보다 더 무서운 게 영혼을 가지고 사기 치는 종교 사기꾼들.
깊이 생각 해봐야 돼.
지난 수요일에 어떤 분이 특별히 좀 만나자고 제가 해서 6시 전에 교회 와서 한번 만났는데요.
매주 매 설교마다 목회자가 700명이 있는 교회에서 계속 헌금을 하라고 그리하고 헌금할 구실을 계속 만들고 항목을 만들고 그리고 또 매월 초하룬가 2월 지난 수요일이 2월 초하루죠.
2월 초하루에 월삭 헌금이 또 있데.
별걸 다 만들어 가지고 또.
그래 가지고 막 짜 내는데 한 사람이 자기가 가는 한 해에 700만 원쯤 헌금을 한 거 같답니다.
어떻게 짜니까 안 바칠 수가 없데요.
근데 그렇게 엉터리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교인들이 다 거기 쩔어 젖어 가지고 옳은지 그른지 분별도 못하고 그냥 그대로 말 못한 체 끙끙 앓으면서고 세상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갖다가 교회 오니까 내가 두 짐 세 짐을 더 주리라 해가지고.
그래서 견디다 못해 가지고 한번 전화가 왔더라고.
전화 온 걸 갖다가 그리 하는 거 옳지 않은 거 같다.
그랬더니 전화로 다 말씀 못 드린다고 찾아왔어요.
매 주간 축복 받는 얘기하고 그 다음 헌금 얘기.
그거 밖에 없대.
1년 내 설교가 축복받는 얘기하고 헌금 얘기 그거 밖에 없다는 거야.
그래서 거기 20년 다녔는데 성경은 한 권도 모르겠고.
그래서 이 교회를 그래도 더 다녀야 되는지.
그렇게 묻는 분이 있었어요.
그 앞 번에 또 한 분이 수요일에 또 만나자 해가지고 만났는데 교인이 몇 천 명 되는데 회계가 십 몇 년 이십년인가 뭐 한 사람만 하고 아무도 모르고 교회 제정은 공개가 되지 않는다.
이거를 보고 있어야 되는지 튀어 나와야 되는지.
튀어 나가는 거는 직무 유기가 아닌지.
그걸 상담하려고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노 목사님이 개혁을 하면 안 됩니까?
이거 보시오 나도 개혁 못하고 죽을 지경인데.
지금 마르틴 루터가 500명이와도 개혁이 안 되는 세상이죠. 지금은.
다 교회가 제 멋대로 교회기 때문에 누가 무슨 말해도 되는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썩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썩어도요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단 사이비들이 그런 다 파송을 해가지고 교회가 썩은걸 전부 다 자료를 수집해 가지고 그걸 다 자기들이 써 먹고 있습니다.
얼마나 오늘날 교회가 잘못 돼가고 있는지 깊이 한번 생각을 해봐요.
그래서 이 또 사법부는 썩어도 교회만큼은 최후의 양심의 보루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교회가 더 사회보다 더 타락해 가는 걸 볼 때 두려운 거죠.
여러분 두렵지 않습니까?
10장은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어떤 때는 보면 빛과 소금이여야 할 교회가 세상보다 더 타락하고 부패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위해서 재판을 굽게 하는 일이 끝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정치하는 사람들이 권력 있는 사람들이 혹시 잘못한다 할지라도 국회라도 와서 지켜야겠고 국회가 잘못될 때 사법부라도 지켜야 되는데 사법부마저 잘못 되거나 또 입법 사법 행정이 다 잘못되어도 언론이 깨어 있어야 되는데 언론이 더 잘못되고 언론 역시 가진 자 편에 서버리고 교회라도 깨어 있어야 되는데 교회마저 잘못 되면 희망이 없는 거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러한 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깨어서 우리 사회에서 바른 목소리를 내고 바른 길을 제시해서 국민들 깨우는 정말 깨어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