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
찬양에 능력이 따르는 이유는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을 들으시고 받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찬양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찬송 중에 거하신다’라는 구절은 다음 두 가지로 번역되어 있다.
1. 하나님께서 찬송을 처소로 삼으셔서 거주하신다(inhabit, dwell).
2. 하나님께서 찬송을 보좌로 삼으셔서 왕으로 앉아 계신다(enthrone).
우리는 찬양을 음악이나 예술이나 문화나 종교 행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께 찬양은 그분의 집이요 보좌이다. 찬양은 그분의 성전이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throne)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dwell) 곳이라(겔 43:7 앞 부분).”
시편 22편은 다윗의 예언적인 시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는 모습을 다윗 자신의 고난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다윗은 위에 기록한 ‘찬송에 거하시는 주’를 기록하기 바로 전까지도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 같이 느껴지고,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져서 괴로워 하고 있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시 22:1~2)”
이처럼 낙심하고 있던 다윗은 갑자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그분의 거룩하심을 체험한다.
어떻게? 바로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찬양의 참된 능력은 하나님의 처소와 보좌에 이르러서 그분의 거룩하심을 맛보는 것이다.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그 외에 모든 다른 이적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찬양은 세상 노래나 다른 종교에서의 형식적 절차와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찬송 중에 거주하시고 보좌에 앉으셨다는 것은 단지 비유가 아니라 어제, 오늘, 그리고 영원히 진행 중인 영적 실체요 현실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보좌는 인간의 왕의 것과 달라서 왕궁 깊은 곳에 고정되어 있는 ‘의자’가 아니라,
무소부재(無所不在)하게 모든 장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의 마차(그룹 천사들이 떠받는)와도 같다!
그렇기에 진정한 찬양이 드려지는 곳에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신 채로 직접 임재하실 수 있다.
선지자 에스겔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겔 1:26).”
이처럼 찬양은 우리를 하나님의 보좌에 데려가기도 하고, 하나님의 보좌를 우리에게 모시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