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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무등산 산행을 갈까 말까 이리저리 재다가 가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4주차 함백산도 가지 못하게 될 사태가 될 운명이기도 하다. 내 마음 간사한지 예전부터 잘알았지만, 못가게 되니 심통이 나고 서석대가 눈에 아른거린다.
홧김에 서방질 한다고 의뭉스럽게(?) 새로운 사람들과 떠나게 된 치악산.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예사인데, 몇 번이나 깨서 잠을 설쳤다.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긴장감이 새벽을 가른다. 사실 이 기분이 나는 좋다.
'그래 노마디즘의 방랑자가 체질이다.'
어느 12월 이른 아침의 소고
새벽을 나설 때의 적막처럼
떠나간 당신은 나의 미련입니다.
어제, 떠있는 달빛을 보고
당신이 다가 온 줄 알았습니다.
떨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맨발로 임에게 달려갔습니다.
심장의 떨림은 사라지지 않고
발걸음은 시린 줄 몰랐습니다.
허탈한 마음 달빛에 가리우고
눈물에 목이 메여 쓰러졌습니다.
끝으로 다가온 아침의 고요.
하지만, 당신은 나의 시작입니다.
잠실운동장역 출발 7시 30분.
이곳 사람들이 준비해준 김밥과 베지밀 우유로 아침의 허기를 달랬다.
떡, 초클릿, 귤 까지 받아드니 종합선물세트(!)를 받아든 유치원 아이가 되어 마냥 즐겁다.
작은 설렘을 뒤로 하고 설친 잠을 보충할양 눈을 부칠까 했는데, 자기 소개 시간이다.
44인승 버스를 처음 띄운 이들에게 역사적인 날. 고생한 노고가 모두에겐 가벼운 흥분의 시간인듯 하다.
이방인에겐 약간은 어설픈 입학식 같은 신고식.
입학식
시작.
삶의 고리에서
힘이 넘쳐 나는 말.
그 안에는 희망도 있고
눈 앞에 펼쳐지는 꿈도 있다.
작은 설렘.
고사리 손을 이끌어
그 시작의 축복을 함께하는
부모의 마음.
가슴을 부푸는 순간
이미 자신은 아이가 된다.
비상의 찰라.
뒤꿈치 세운 먼 발치
해 가린 눈물 속에 비친
나의 모습.
말의 서술이 그다지 필요치 않은 치악산.
겨울 치악산을 만끽하러 찾아온 원주. 플라이 낚시를 즐기던 나에게 강원도는 친숙하다.
태백산맥에서 갈라져나온 차령산맥 남단에 자리잡은 치악산은 가을 단풍으로 인해 적악산으로 불렸으나 상원사 꿩의 전설 (학교 다닐때에는 까치로 배운 기억이 난다.)로 인해 꿩치(雉) 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바뀌어 부르게 되었다. 치악산의 묘미는 14km나 되는 거리에 1000m의 고봉들이 산맥처럼 이어져 있어 그 가치가 높은 산이라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원주, 횡성, 영월의 축이요, 과거로부터 영원산성, 해미산성, 강원감영이 있던 군사적 요충지요, 역사적으로 수 많은 사찰과 사적지들이 개개의 전설과 유래를 가지고 있는 국립공원이다.
산행 시작 아침 10시.
이번 산행은 악소리 나는 종주 코스가 아니라 관음사 곧은치 사거리로 올라 향로봉을 정점으로 보문사로 내려오는 가벼운(?) 코스이다. 비록 비로봉과 치악평전을 만끽하지는 못하지만, 욕심껏 치악의 매력을 통채로 벗기는 것은 체력적인 고난(!) 이 따르겠지.
곧은치, 고둔치 그 지명적 논란이 많아 보인다. 군사가 머물었던 의미의 고둔치가 지역적 지명으로는 훨씬 느낌이 좋다.
사진에서 보는 고둔치 카페 이름처럼...
곧은재 공원지킴터. 날씨는 쌀쌀하지만, 다행히 바람이 없다. 산행하기에 축복받은 날씨인데, 불행히도 이런 날에 상고대를 기대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올해 첫 상고대는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응달 사면에도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빛이 주는 감흥은 가벼운 흥분을 준다. 캘리포니아 버뱅크 출신의 가수 쥬시 뉴튼이 부른 Angel of the morning이 흥얼 거려진다.
나를 아침의 천사라고 불러주세요.....'그래 너 아침의 천사다!!'
계곡은 우유빛으로 얼었지만, 속은 얼어있는 표면과 달리 뜨거운 속내를 감출수 없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속내...숨겨진 속을 감추고 이 계곡물은 바다로 가겠지?
조용히 떠나는 너를 그리며
내가 헤집어 놓고 떠나던 나의 과거에 대한 현재의 업보이려니
살면서 내 곁을 머문 너에게 담담하게 미소 보낼 수 있음이다.
만났던 고리에 서로가 얽혀가고 싶은 마음 모르는 것 아니지만,
나 또한 진한 아쉬움과 우울한 속내를 가지고 있지만,
너 가는 길에 같이 걸을 수 없다면 그 마음 접고 걸어가라.
나 또한 내 길을 걷다 언젠가 만나면 반가워 웃음 질 수 있도록...
너 자리 한 켠 남겨주면 나 행복하리다.
어린 시절 한 이불 속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며 보낸 밤.
아름답게 저물어 새 날을 같이 맞고 했지만
이제 너와 그리하며 살 수 있겠는가?
아직 털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거든
그리움 한 켠에 붙여두라
다시 볼 그날에 그리움은 우리의 추억이려니...
소리없이 내리는 비에 마음은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존재감을 알리며 계곡을 가르는 것이 현실이다.
불과 2킬로의 거리이지만, 저질체력의 숨소리는 앞 사람의 배낭짐이 되어 얹혀간다.
그래서 함께하는 동반 산행이 힘이 덜어지는 것이 아닐까?
산행을 마치고 귀가 중에 블로그를 보니 누군가 함께 산행을 했으면 하는 댓글이 달려 있다. 생각이 현실이 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용기이다. (용기를 가장 쉽게 얻는 방법은 슈퍼에서 사발면 용기를 사면 된다고 386 유머를 가볍게 구사하다 구박 받곤 한다.)
이처럼 나도 약간의 쑥스러움을 즐긴 덕(?)에 나도 힘을 덜고 산행하고 있지 아니한가?
얼어붙은 길이 아이젠과 만나서 한여름 얼음 깨먹는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 소리로 등에 흐르는 땀이 잠시 멎는 느낌이 든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나를 쏟아 내고 나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다리 못질해서 얼면
거친 숨소리는 잦아 든다
졸음 찾아온 모습 보일까
눈꺼풀 치켜 부릅뜬다.
식은 열기를 깨워 부르지만,
허공만을 공허하게 맴돈다.
그래! 나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콜드스톤? 31? 그렇게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는가 보다.
힘들어 죽겠다는 여자 아이의 후렴구가 나의 배낭에도 등짐이 되어 걱정이 생겼는지 그 아이의 안전한 산행을 탑 위에 소망했다.
곧은재에 거의 올라온 8부 능선. 하늘이 뚤렸다. 파란 하늘이 가을 하늘 처럼 무척이나 맑고 시원하다.
산을 오르며 하늘이 뚫릴 때 느끼는 희열이 가장 강렬한 것이 바로 겨울산행이다.
겹겹이 입은 등산복의 열기로 막혔던 가슴에 청량감을 준다고나 할까.
곧은치의 하늘. 마치 가을 같다.
주유소
파란 하늘 가득한 가을 주유소
내 마음에 청량감 넣어 준다네.
고개 들어 팔 벌린 깊은 심호흡.
하늘 닿은 포근함 누나 같구나.
구름 없는 담백한 블루 에너지.
눈 감고서 맛보는 짜릿한 전율.
주섬주섬 머리에 챙겨 가야지.
하늘에게 지불한 나의 눈 웃음.
860m. 이제 천미터 고지가 코 앞이다. 이곳에서 비로봉까지는 불과 4.8 km.
우리는 비로봉 반대편인 상원사 방향 향로봉을 향해서 출발.
점심을 먹었던 향로봉 전 공터의 하늘.
뜨거운 양송이 스프로 추위를 달래고 누룽지와 뜨거운 둥글레차의 조합이 그런대로 좋았다. 마무리는 커피.
털복숭이 같은 억새의 따뜻한 질감. 파란 하늘의 입장에서는 쉐타의 잔 털이 목을 간지럽히는 느낌 아닐까?
봄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이 추위에도 꽃 봉오리가 올라온다. 넌 누구니?
봄이 나에게 준 선물
아침에 일어나니 문뜩 창을 열고 싶었다
그 겨울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창.
봄을 거부하는 몸짓도 잠시,
열린 창 틈으로 겨울은 무너졌다.
아!
봄이 전하고 싶었던 희망이여!
온 몸을 휘감는 전율에 난, 감전된 듯
그 자리에서 주저 앉고 말았다.
말없는 침묵 속에서
나의 이끼의 옷을 부끄러움 없이 벗었다.
이 아침.
봄은 나에게
탈고의 선물을 주었다.
그 시간의 허물 밖에서
비로서 난, 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봄의 감동 앞에
내 눈이 뜨거워짐이 행복하다.
이제 봄을 노래할 날이 멀지 않았다.
고라니 발자욱?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은 온통 눈밭이다. 왜 하늘에는 이 눈이 매달려 있지 않은 것이뇨 !
향로봉 직전에 궁형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바로 하산 코스이다.
목적지 향로봉에 도달했다.
스매싱
우거진 숲 가운데
한 점의 빛 튀어 올라
녹음을 뚫는구나!
주위의 함성 속에
무아의 희열들이
과거를 몰아친다.
삭발의 다짐들로
스매싱 꽂아 넣고
정상에 우뚝 서다.
탁구 천재 유승민이 삭발을 하고 우승했을 때 쓴 글인데, 정상에서의 느낌과 희열은 정말 좋다.
원주 시내 전경
아쉽게 치악평전을 펼치지도 못했다. 다음을 기약해야지.
터주대감 고사목. 죽은 나무라 할지라도 자연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존재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하산 길은 미끄러운 눈과 아직 덜 녹은 비탈길로 엉덩방아를 찧는 이들이 속출했다.
보문사. 가운데 있는 것은 보문사 청석탑(靑石塔). 대웅전이 아담하다.
가운데 건물은 명부전(冥府殿)으로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곳으로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전각이다.
신라 경순황 보문암 이었던 작은 암자가 임진왜란 때 불타서 소실 되었다가 재건되었는데 이곳의 청석탑은 그 크기는 작지만, 해인사와 금산사, ·법주사 등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점판암(답작한 박판으로 쪼개지는 성분의 암석)으로 된 칠층석탑으로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꿩이 다시 달려 들 것 같은 느낌의 범종각.
오늘 산행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면, 이 사진이 적합할 듯 싶다.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전율했다.
보은으로 희생한 꿩이 상원사 종탑을 향해 날아 가고 있지 않는가 !!
다시 사진을 보니 문뜩 윈스톤 처어칠경과 페니실린 개발자인 알렉산더 플레밍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물에 빠진 어린 처어칠을 구한 사람은 청년 플레밍이었고 처어칠의 부모는 그의 공부를 도왔는데, 바로 그가 훗날 페니실린을 개발하게 되었고 그 혜택으로 두번째 삶을 얻은 정치가 처어칠은 수상이 되어 영국을 구했다. 이 대단한 인연은 삶의 윤회를 생각하게 한다.
오늘 산행을 정리하는 것이 아쉬운 구비 구비 돌아 내려온 하산의 길도 아스라해진다.
산행의 마무리. 행구동 공원지킴터.
원주 시내로 자리를 옮겨 시작된 뒤풀이가 산행의 아쉬움과 여운을 달랜다.
넉넉하고 푸짐했던 해물찜. 찬으로 나온 뜨거운 두부가 별미였다.
임플란트 수술로 퉁퉁 부은 얼굴로 무리한 산행을 했던 고집불통의 나에게도 오늘은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등산화처럼 즐거웠던 하루, 다시 한번 정겨운 시작을 그려본다.
From. 서울토요산악회.
첫댓글 구름 사진이 마치 새가 나르는 모습이군요.^^* 멋져요. 겨울 산행~~
이렇게 잘다니면서도 좀 더 많은 곳을 다니고 싶습니다. 방랑자처럼...다음에는 함백산 백덕산이 기다리고 있군요
ㅋ 바람난 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