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외 3편
아침이 어둠과 만나듯
봄은 겨울과 만난다
평안을 찢은 굉음의 밤도
몽둥이처럼 날뛰는 음모의 밤도
결국은 아침과 만난다
정의와 진실과 빛으로 가득 찬
봄과 만난다
동장군은 때가 되면 물러가기 때문이다
거짓도 때가 되면 밝혀지기 때문이다
물러가지 못하고 우는 바람이 으악 거리며
사거리에서 거미줄을 치고
광장에서 또아리를 틀고
골목에서 야수처럼
우리의 봄을 막고 있어도
다시 보아라!
불의를 막아선 시민들의 손끝에서 봄이 보였다
담장을 넘는 그들의 디딤 발에서 봄이 보였다
무엇보다 정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에서 봄이 보인다
다시 보아라!
희망이 보일 때 봄은 온다.
줄어들고 있다
이상기온으로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보르네오 숲이 줄어들면서
오랑우탄도 줄어들었다
빙하가 녹으면서
남극에 사는 아델리 펭귄도
줄어들고 있다
초원이 줄고 밀림이 줄고
그 안의 동물들도 줄어들고 있다
이상기온이 심해지면서
먹이가 부족한 코끼리는 수 톤의 몸을 세워
나무 위 잎을 먹기도 하고
야행성 동물이 낮에 마른 땅을 파헤치기도 한다
이상해졌다
그들이 살던 보금자리는 조금씩 인간의 농장으로 변하고
밀림이 사라진 땅은 그늘도 사라져 쩍쩍 갈라진다
그 위를 수많은 동물들이 흰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그리고 어쩌면 그 먼지 속으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인간의 발길은 태풍보다 무섭다.
양말 세 켤레
국가 유공자인 94세 어르신은
전기수傳奇叟*처럼 이야기를 잘했다 하신다
문맹文盲 많고 답답한 시절
신문이나 세상 돌아가는 뉴스는
호롱불 긴 밤에도 재미가 나서
사람들은 마루나 사랑방에 모여서는
그 구수한 입담에 녹아 났다고 한다
내일 밤에도 와 주십사 인사를 하면
당신도 신이 나서는 내일을 궁리하며
또 소설이니 가십이니 이야기 거리를 찾았다 하신다
나는 LED 조명 아래서 〈양말 세 켤레〉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의 실화實話였고 추석이 조금 지난 후였다
요약하면 이렇다
가난한 이웃이 있었는데
안양에서 서울까지 해마다 설날이면
양말 세 켤레를 선물로 가지고 왔었다
삼 년간을
통행금지에 교통사정도 안 좋을 땐데
무엇보다 교통비도 궁할 사람이
그렇게 양말 세 켤레를 들고 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오래 전
통행금지가 한 참이나 지난 시간에
누군가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는데
그 사람이었다
무엇을 잘 못 먹고 생사를 오가던 아내의 목숨을 살리려
그 밤늦은 시간에 우리 집 대문을 마구 두드리는 것이었다
119가 없던 시절이었고 전화기도 많지 않던 때였다
그의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고 응급실로 모셔 갔다고 한다
그의 부인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지만
당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그를 위해
동네 사람들에게 딱한 사정을 이야기 하고
장례비를 조금씩 모아서 장례를 치루어 주셨다고 했다
가난한 이웃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고단한 삶 가운데도 그 먼 길을 달려와
해마다 설날이면 양말 세 켤레를 놓고 갔다
삼 년간을
그래서 말씀하셨다고 한다
“자네 마음 충분히 아니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고
눈물로 위로하셨다고 한다
국가 유공자인 94세 어르신은
지금도 우리에게 선한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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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수傳奇叟: 조선말기, 직업적으로 사람들에게 소설을 읽어주던 사람
돌팔이 의사
처음 갔을 때
“어떻게 오셨어요?”
상처 한 번 보고
솜에 소독약 한 번 바르고
주사 한 대 맞고
“삼 일 뒤에 오세요”
두 번째 갔을 때도
“어떻게 오셨어요?”
상처 한 번 보고
솜에 소독약 한 번 바르고
주사 한 대 맞고
“삼 일 뒤에 오세요”
세 번째 갔을 때도
똑 같은 멘트에
똑 같은 처방
세 번째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이야!
돈 벌기 쉽구나 야.
전선봉
《한강문학》시부문 신인상 수상(2018), 〈한두뼘 미래문화창작소〉 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