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지루한 사람들!
이미 파리지엥이 되어버린 유학파들은 지루하게 몇년간을 이어왔고,
그들은 늘 특별한 일이 일어나게 될것을 습관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국땅에 발이 묶여버린 몇몇 한국의 유학파들은
국제미아가 되어 파리의 이곳 저곳에서 가장 낮은 계층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들은 주로 무더운 여름날에도 옥탑방에서 찜질방을 체험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들은 특별하고도 여행경비가 두둑한 갓 유학파가 되어진
낯선 아줌마에게 거리낌없이 닥아왔고,
나역시 이국땅에서 만난 그들에게 쉽게 적응되기 시작했다.
파리라는 도시에 먼저 발을 디딘 어린 선배들에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익혀야 했을 때,
내 주머니에서는 유로화가 아낌 없이 쏟아져 나왔고,
오랜 유학생활에 주머니가 말라버린 그들에게는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었다.
내가 처음 퐁피두광장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두명의 한국인을 만났고
그들은 이미 5년 이상을 파리에 머물고 있는 가난한 유학생들이었다.
그 두사람을 핵심으로 더 많은 유학파들을 알게 되었고 그중에 5섯명은 여자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10년차 아래였지만 미술을 전공하고 있었기에
쉽게 적응이 되었고 나이차를 극복하며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다.
어느순간엔가 4차원의 공간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연하의 유학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담배 한개피를 얻기 위해 열심히 기타를 치는
흑인의 기타연주를 들으며 아름다운 센강에서 캔맥주와 소금에 대책없이 쩔은 소세지를 씹고 있었다.
그들은 엑스트라가 되어 내 그림속 배경을 채워주기 시작했고,
주인공이 되어진 나는 매일같이 그들을 배경으로 환희에 찬
삶의 추상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예전처럼 5분 지각한 관계로 직장상사에게 자존심 상한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고
업무에 혹사 당하지도 않았다.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가득찼고
그날 쓸 만큼의 유로화를 주머니속에 넣고
그저 내가 원했던 만큼 그림도 그리면서 낭만을 즐기면 될 일이었다.
그것은 천국의 일상이었고 평생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온
마흔 중반에 찾아 온 야망의 열매였다.
비온뒤 광선으로 만들어지는 세느강변의 색채의 향연,
그 오염된 센강의 녹색물결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주변의 경관을 받쳐주는 엑스트라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유의 색에 첨가된 묵은 세월의 흔적은 더 고아한 빛의 건축물을 만들었고
그 오래된 고딕건축물은 파리의 생명이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배경속에 인물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한명씩 한명씩 내 그림속으로 뛰어 들어 와 엑스트라가 되어 준 그들과
어느새 따끈한 월남국수 한그릇으로 배를 채우기위해 돈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졌다
중국집에서 먹는 월남국수는 소고기가 듬뿍 담겨져 영양보충이 충분했다.
갑작스레 기온이 낮아지자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쉐타를 입기 시작하는 파리 사람들,
그 틈바구니에 월남국수 한그릇으로 배가 불러지자
세상부러울 것이 없다는 듯이 퐁피두의 작은 골목을 소란케하는
한국의 유학파들 속에는,
모자를 푹눌써쓰고 목도리를 칭칭 동여맨 동안의 한 여인이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주인공이었다. 내 삶의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