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허무하다’등으로 해석되어 버린 것이다.
경(經)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과 행(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며,
우상이나 만다라에 공양하는 것은
“공염불”로 끝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과 행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신의 힘이 주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자력 우선(自力優先)이야말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다.
허무맹랑한 생각을 버림과 동시에,
종래의 그릇된 습성을 깨뜨리고,
신리의 실천에 매진하는 생활이 중요하다.
나의 지도령은 앞의 질문에 답하고,
“그 말 그대로이다.
일체의 모든 현상은,
공(空)의 세계에 의해서 법칙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神)의 의지(意志)라고 말할 수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색즉시공에 대해서 질문한 사람이 마음속으로
‘과연 그렇구나.’
하고 수긍하는 파동이 나에게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마하*지관(摩詞止觀)”》
이란 질문에 대해서는,
《‘위대한 반성’》
이라는 대답이 된다.
《‘멈추어서 본다’》 라는 뜻이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일, 행하고 있는 일을,
확실하게 판단해서, 중도인가.
극단적인 행위인가를,
마음을 가라앉혀 반성하고,
만약 그릇되었으면,
마음으로부터 정정하여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이 없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보다 풍부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어떤 지도자들은, 잘 선정(禪定)하여,
무(無)로 되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큰 잘못이다.
마음속의, 원한, 비방, 시기, 미움, 노여움, 질투, 정욕,
권력욕, 금전욕, 질병에 대한 원인등,
심적(心的) 원인을 반성하지 않고,
어두운 구름이 낀 상태에서는,
지옥령이나 동물령들에게,
그 의사(意思)를 지배되어 버리는 결과로 된다.
반성에 의해서,
이제까지의 마음의 구름을 제거하고,
감정, 지성, 이성, 본능, 상념,
그리고 상념, 의지의 영역에 비뚤어짐이 있는가 없는가를 점검하여,
둥글고 넉넉한 마음의 상태에 도달했을 때,
우리의 마음도 육체도 광명의 빛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보다 조화된 영위기(靈圍氣)가 만들어져,
내재된 위대한 지혜를,
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내재된 위대한 지혜란,
반야바라밀다라고 일컬어지는,
전생윤회(轉生輪廻)의 과정에서 배워온,
불지(佛智)라고도 말하는 것이다.
내재된 지혜의 보고(寶庫)의 문이 열려지는 것이다.
금생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도,
과거세에서 배웠었다면, 당장에 알아버린다는 뜻이다.
현세뿐 아니라, 실재계에 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항상 중도의 위치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이란 것은,
무한에 가까울만큼, 변화무쌍한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자재인 만큼 항상 ‘올바르다.’는 기준을,
확고하게 지니고,
자기 자신의 생활을 기준에 맞추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마음의 자(尺)로써,
스스로의 상념행위를 멈추어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마하지관’의 바른 의미이다.
천태(天台)이후의 승려나 학자들은,
이것을 매우 어려운 문제로 만들어 버려서,
스스로의 마음과 행을 잊어버렸다.
그 까닭은 지(知)만의 해석으로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불교는, 학문이 아니라,
도덕이고, 마음가짐에 대한 가르침이며,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질문자는, 학문적인 체험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지(知)만이 앞서가는 듯 했다.
행(行)이 따르지 않는 불교는,
정법도 아니며, 신(神)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조화된 광명에의 길은, 행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빛(光)’》 즉 《‘행(行)’》 이,
정도(正道)의 모습이다.
(주;
놀랍습니다.
에너지 불멸의 법칙. 질량불변의 법칙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니.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내용들은,
왈가왈부 따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비유하자면,
어젯밤. 밤하늘의 유성을 ‘보았다,
아주 멋진 꼬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라고 오늘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오늘 밤에, 내가 밤하늘을 쳐다보아야 알 수 있겠지요.
이 세상에는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증명하여 보여라."
하고 요구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연있는 이여! 참고하소서.
2.중도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들의 강연회는,
매주 토요일 일요일 각지에서 열리게 되었으며,
질문자도 많아졌다.
그 중에서, 특히 알아야 할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말해보자.
《‘올바르다.’》
라고 하는 기준은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대학생이 물은 것이었다.
올바르다는 것은,
그 나라마다의 지도자의 생각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고,
생활환경에 따라서도 그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올바르다는 것은,
권력이나 인간의 지혜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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